145
우기와 치호는 밖으로 나오자 마자 넓은 수련실을 마음껏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녀석들도 이 수련실이 꽤나 마음에 드는 모양.
“둘 다 이리 와봐.”
김서준이 부르자 우기와 치호가 쪼르르 달려왔다.
김서준은 그런 두 녀석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오늘, 둘 다 수고 많았다. 앞으로도 오늘처럼만 잘 해줘라.”
“끼이잉.”
김서준의 칭찬에 치호는 기분이 좋은 듯 더욱 머리를 비벼대는 반면, 우기는 뭔가 띠거운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가만히 서 있었다.
“넌 표정이 왜그래?”
김서준이 묻자 우기가 팔짱을 풀더니 뭐라 뭐라 쫑알대면서 자기랑 치호가 굉장히 고생했다는 걸 바디랭귀지로 재차 강조했다. 그러다가 김서준 앞에 서서는 오른손을 쑥 내밀었다.
한 손은 햄을 세 겹은 두른 것 같은 똥똥한 허리에 척 올려놓고 짜리몽땅한 오른발을 달달 떨면서 분위기 잡고 서 있는 폼이 꼭 빌린 돈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건달패를 닮아 있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수고비로 마석 좀 달라 이거지?”
김서준이 우기가 바라는게 뭔지 정확히 파악하고 말하자, 우기는 손가락으로 오케이 싸인을 만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석이 맛있어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그냥 강해지고 싶어서 맹목적으로 마석을 원하고 있는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우기나 치호가 마석을 먹고 강해질수록 김서준에게도 큰 도움이 되는 것이기에 마음 같아선 직접 구매를 해서라도 계속 마석을 먹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미안해서 어쩌냐? 지금은 너희들 줄 마석이 없거든. 조만간 또 균열 들어가서 잔뜩 구해다 줄 테니까 기다려 주라.”
마석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으나, 지금 가지고 있는 건 블루급에 인디고급이라서 우기와 치호에게 주긴 아까웠다.
“%@#%^*$*!!”
김서준의 말에 우기는 또 다시 쫑알거리다가 발을 한차례 쿵 구르고는 치호를 데리고 저만치 떨어졌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재미있게 놀기 시작했다.
“우기 녀석…. 성깔있네.”
그에 비하면 치호는 순둥이였다.
잠시 두 녀석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던 김서준은 자신이 수련실에 내려온 목적을 실행하기로 했다.
김서준은 지금 격발 스킬과 마력끊기 스킬을 제대로 확인해 보기 위해 이곳에 내려왔다.
원래는 고태환을 상대할 때 스킬들을 직접 사용하면서 익히려고 했지만, 그곳에 워낙 CCTV가 많고 보는 눈도 많았기에 자신의 존재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스킬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저 두 녀석을 상대로 이 스킬들을 시험해 보는 건 무리고….’
스킬 테스트에 가장 적절한 상대는 ‘부우’였다.
우기나 치호는 대형 몬스터로 변신하지 않는 이상 고정 위력을 내는 김서준의 스킬을 버틸 수가 없다.
하지만 부우는 기본 마력이 350이나 되기 때문에 격발 스킬에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 터였다.
“분심강림.”
김서준이 나직히 뇌까리자,
퍼엉
허공에 뜬 상태로 몸을 공처럼 말고 있는 부우가 나타났다.
부우는 몸을 활짝 펴며 김서준 앞에 내려섰다. 그런 부우의 몸에는 연희동에서 입혀 놓았던 회색빛 로브가 그대로 걸쳐 있었다.
[350/노멀/비뢰신보]
‘이번에도 또 비뢰신보가 떴네?’
7개나 되는 신비 중에서 연속으로 두번이나 비뢰신보가 선택된 걸로 보아 부우의 적성은 속도전에 딱 맞는 것 같았다.
김서준은 부우에게 자신이 지금부터 뭘 하려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격발 스킬과 마력끊기 스킬에 대해 대충 이해한 부우는 동그랗고 파란 눈을 번뜩였다. 그리고는 얼마든지 공격해 보라며 제 가슴을 팡팡 두드렸다.
“오케이. 우선 연사부터 해볼 테니까, 조심해.”
끄덕.
부우는 약 7미터 정도 떨어진 상태에서 언제든 비뢰신보를 발동시킬 준비를 마쳤다.
김서준은 부우를 정면으로 바라본 상태에서 오른손 엄지와 중지를 마주댔다. 그리고 부우의 어깨 부위를 노려보며, 따악!
손가락을 튕기자 새빨간 스파크가 팍 튀었다. 그와 동시에, 꽝!
첫번째 폭발을 시작으로.
꽝! 꽝! 꽝! 꽝! 꽝! 꽝!
무려 여섯 번이나 연속적으로 폭발이 일었다.
모든 폭발은 부우의 어깨 근처에서 일어났다.
부우는 미리 준비하고 있었음에도 7회의 폭발을 모두 피해내지는 못했다.
앞선 네 번의 폭발은 피하는데 성공했으나 뒤이어진 세 번의 폭발에 어깨가 살짝 그을렸다.
분명 어깨에 적중했지만 격발의 연사 위력이 마력 100의 수준이라 큰 타격을 입히진 못했던 것.
“이번엔 점사다.”
끄덕.
김서준은 곧바로 손가락을 튕겼다.
꽈과광!
세 번의 폭발이 거의 동시에 터졌다.
부우를 중심에 두고 삼각형 형태로 터진 폭발이었기에 이번엔 충격이 제대로 들어갔다.
폭발 하나 당 300의 위력이 담겨있기 때문에 부우의 부상은 좀 전보다 심했다.
아까는 그을림 정도였다면 이번엔 나무로 된 표피가 움푹 패였을 정도.
“괜찮냐? 상태 안좋아 보이는데.”
김서준이 걱정하며 한 말에 부우는 손가락을 좌우로 까딱거렸다.
그리고 괴상한 손짓과 발짓으로 뭔가 의사를 전달하려 했다.
김서준은 그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바로 이해했다.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부상을 입어도 역소환 되면 다음에 소환될 때는 전부 재생이 되어 있을 거다?”
끄덕. 끄덕.
부우는 힘차게 고개를 아래 위로 흔들며 추가 설명을 보탰다.
“오호…. 한번 소환되었을 때 신체의 70%가 파괴되거나 마력의 80%가 소모되면 자동으로 역소환 된다고?”
끄덕.
부우는 김서준이 자신의 바디랭귀지를 찰떡같이 알아듣자 신이난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고 있던 우기가 팔짱을 끼고는 뚱뚱한 배가 다 들썩일 정도로 키득대며 웃었다.
김서준의 눈에는 우기가 지금 부우의 바디랭귀지는 자신보다 한 수 아래라며 거들먹 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우기야. 너도 테스트에 낄래?”
김서준이 간을 보듯 슬쩍 물어보자 우기는 호다닥 뛰어서는 멀리 도망가 버렸다.
“암튼 웃기는 녀석이라니까.”
김서준은 우기의 행동에 매번 큰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럼 부우야. 네 말 믿고 이번엔 큰 거로 간다.”
끄덕.
부우도 뭔가 단단히 결심했는지 눈을 부릅뜨고는 자세까지 살짝 낮춰 단단히 준비했다.
김서준은 그런 부우의 머리를 노려보다가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손가락이 부딪친 자리에서 스파크가 튄 순간,
화르르르륵
부우의 코앞에서 새빨간 불꽃이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김서준이 혹시 몰라 염동력으로 마력장막을 몇겹이나 둘러놓지 않았으면 아무리 방공호 만큼이나 튼튼하게 지어진 수련실이라고 해도 태반이 무너지고 박살났을만큼 강력한 폭발이었다.
마력 700의 위력은 정말 무지막지했다.
이 스킬 한방이면 10층짜리 건물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
“어우야….”
후끈한 열기와 희뿌연 연기가 수련실에 가득찼다.
잠시 후 자동으로 환풍기가 작동하며 연기를 빠르게 제거했다.
“너, 무사한 거냐?”
부우는 어느새 김서준 옆에 서서 목을 쭉 내민 상태로 격발 스킬의 위력을 지켜보고 있었다.
부우의 온몸은 검게 그을린 상태였다.
제 때에 비뢰신보를 발동시킨 덕분에 폭발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로브가 절반 이상 타버렸고 나무로 된 피부는 죄다 새까맣게 탔다.
부우는 김서준 쪽으로 스윽 고개를 돌리더니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 뭉툭한 쇠공 같은 손으로 열심히 바디랭귀지를 해 보였다.
“아무리 너라도 저 스킬은 두번다시 맞고 싶지 않다고?”
끄덕 끄덕.
부우마저 더 이상의 테스트를 거부할만큼 단발 스킬은 위력적이었다.
“그래, 알았다. 일단 대충이나마 어떤 스킬인지 확인했으니가 격발 테스트는 이걸로 끝. 다음은 마력끊기인데, 어떻게. 할 수 있겠어?”
김서준의 질문에 부우는 쇠공 모양의 손을 다시 인간의 손가락처럼 만들더니 오케이 싸인을 그려보였다.
그렇게 마력끊기 스킬도 테스트가 진행되었다.
이 스킬은 격발과는 달리 공격용이 아니라서 특별히 위험할게 없었다.
부우의 몸에서 흐르는 마력의 흐름을 잘 파악하고 있다가 부우가 비뢰신보의 신비를 사용하려는 순간에 맞춰 검지와 중지를 붙인 손가락으로 심장 부위를 가리키기만 하면 된다.
다행히 이 마력끊기도 격발처럼 굳이 입으로 시동어를 외치지 않아도 발동이 가능했다.
물론, 격발 스킬과 마력끊기 스킬 모두 시동어를 사용해서 발동하는 것 역시 가능했다.
하지만 시스템도 나름 사용자의 창피함을 고려했는지 손가락을 튕기는 행위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행위로도 스킬이 발동 가능하게끔 되어 있었다.
이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이 마력끊기는 꽤 재미있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마력끊기에는 단순히 신비나 스킬의 발동을 끊어내는 효과만 있는게 아니었다.
능력이 발동되는 직전에 마력끊기에 적중되면 능력이 발현되지도 않을뿐더러, 그 능력을 발현하는데 필요한 마력까지 그대로 소실되고 만다.
게다가 이미 한번 능력을 사용한 것으로 판정이 되어서 재사용 대기 시간까지 적용된다.
즉, 이 마력끊기 스킬을 잘만 사용한다면 아무리 강한 상대라도 마력을 소모시키고, 능력을 한동안 사용할 수 없게 잠그는 효과를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다만, 마력끊기를 제대로 사용하려면 타이밍이 매우 중요했다.
너무 빨리 마력을 끊으면 곧바로 재발동이 가능했으며, 너무 늦게 끊으면 위력은 약해질 지언정 능력이 발동되기는 한다.
김서준은 이 타이밍을 정확하게 알아내기 위해 부우와 한동안 반복해서 스킬을 시험했다.
그러다 부우의 소환 시간이 다 되었고, 부우는 김서준을 비롯해 우기와 치호에게까지 손을 흔들어 대며 조용히 모습을 감췄다.
부우를 다시 소환하려면 최소한 1시간은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김서준은 그 시간동안 전보다 더욱 강력해진 염동력 신비도 시험해 보기로 했다.
이 염동력은 반경 20미터 거리 내에서는 공간과 사물을 우그러뜨릴 수 있으며, 손날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반투명한 염동검까지 날릴 수 있는 굉장한 신비였다.
김서준은 자기들끼리 장난치며 놀고 있는 우기와 치호를 목표로 이 염동력 신비를 신나게 뿌려대기 시작했다.
“엇, 거기 조심!”
미리 경고를 한번 해 준 뒤,
콰지직
우기가 서 있던 바로 옆공간이 블랙홀에 빨려들 듯 우그러졌다.
화들짝 놀란 우기가 뚱뚱한 몸을 데구르르 굴려 도망치자 이번엔 손을 칼처럼 만들어 비스듬이 그어 올렸다.
촤악
1미터짜리 반투명한 칼날이 날아들자 우기는 신경질이 났는지 머리로 칼날을 그냥 받아버렸다.
카앙!
우기의 투구에 맞은 칼날은 옆으로 틀어져 날아갔다가 꺼지듯 사라졌다.
“위력은 최대한 약하게 했으니까 화낼거 없다, 이 녀석아.”
김서준이 껄걸 웃으며 한 말에 우기는 고개를 홱 돌리며 발을 세차게 한번 구르는 걸로 화답했다.
김서준은 그렇게 30여분 동안 염동력 신비를 온갖 방법으로 활용하며 장난치듯 훈련을 마쳤다. 그리고는 바닥에 주저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러다 잠시 잊고 있던 두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하나는 유니온 코어에 아직 마력 잔량이 남아 있으니 다른 아티팩트를 각성시킬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공 수치 1천이 넘으면 사슬낫의 특수 능력인 ‘농부 소환’이 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일단 아티팩트 각성부터 해 보자.’
각성이 진행되는 동안 하나 남은 인디고 마석을 흡수하여 내공 수치를 높이면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우선 초시공 건틀릿부터 각성하는게 맞겠지?’
이젠 아공간 속에 시체도 없으니 장비를 모두 꺼내 놓고 각성을 시도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김서준은 이젠 거의 신체의 일부가 되다시피한 오른손의 초시공 건틀릿을 벗은 다음 미리 꺼내 놓은 코어를 왼손에 쥐었다.
-마력 잔량: 74%
남은 마력이 이 정도면 초시공 건틀릿을 각성시키는데 문제가 없을거라고 생각한 김서준은 그대로 코어를 박아넣었다. 그런데, 터엉
코어를 쥔 왼손이 그대로 튕겨나오더니 눈앞으로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코어의 마력 잔량이 부족하여 ‘초시공 건틀릿(S+++++)’을 각성시킬 수 없습니다.
‘잔량이 부족하다고?’
74%나 남아 있는데도 마력이 부족하다니.
김서준은 코어의 마력 잔량이 100%를 채울때까지 기다릴까 하다가 다른 아티팩트를 먼저 각성시키기로 마음을 바꿨다.
초시공 건틀릿을 다시 착용한 김서준은 이번엔 ‘운명의 주사위’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같은 방법으로 코어를 주사위 위에 때려박았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엔 성공이었다.
코어는 작은 주사위 속으로 눈녹듯 스며들었고,
[운명의 주사위]
-각성 중…. 5%
운명의 주사위는 각성을 시작했다.
‘대충 4시간 정도는 지나야 각성이 끝나겠는데?’
지금 시간이 밤 9시였으니 새벽 1시는 되어야 했다.
김서준은 운명의 주사위를 아공간에 넣어두고 스킬낫의 농부 소환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 내공부터 높이기로 했다.
바닥에 정좌를 하고 앉은 김서준.
그는 영롱한 남색 빛깔을 뿜어내고 있는 인디고급 마석을 꺼내 바로 입안에 털어넣었다.
그리고 태양신공을 운용하여 마석의 힘을 몸으로 흡수해 내기 시작했다.
인디고급 마석의 흡수는 10분이나 지나서야 끝났다.
이번에도 혹 다른 신비가 각성되는 건 아닐가 살짝 기대했지만 그렇게까지 운이 좋지는 않았다. 대신, 인디고급 마석를 흡수했을 때 획득할 수 있는 최대치의 마력과 내공을 획득할 수 있었다.
[김서준]
-마력: 240[1201] / 내공: 219[1096] / 제어: 650[650]
-신비: 역발산기개세(51%) / 태양신공(58%) / 염동력(26%) / 수라극섬(21%) / 심안(23%) / 천번구(12%) / 비뢰신보(15%) -스킬: 파륜환(A) / 마력끊기(S) / 분심강림(A) / 격발(S)
드디어 내공 수치가 1천을 넘겼다.
신비의 숙련도도 조금씩이지만 상승해 있었는데, 특히 태양신공의 숙련도가 60%를 코앞에 두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태양신공이 60%에 도달하면 또 어떤 능력이 추가되려나?’
그런 기대감에 혼자 웃고 있던 김서준은 뭔가를 깨닫고 흠칫했다.
‘내가 언제부터 이런 능력에 기대며 살았다고….?’
김서준은 어느새 신비의 각성 시스템에 푹 빠져 설레임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 것이다.
‘이것도 중독이네, 중독이야.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헤어나오기가 쉽질 않겠어.’
김서준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스스로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