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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차니까 기분이 묘하네.’
김서준의 왼팔엔 사슬낫이 칭칭 감겨져 있었다.
아직까진 실전에서 사용해 본 적은 없었지만, 수련을 통해 사슬낫의 사용법은 대충 파악해 둔 상태였다.
김서준이 확인한 사슬낫의 사용법은 꽤나 다채로웠다.
우선, 사슬낫을 내던져 목표에 유의미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거리가 20미터나 되기 때문에 접근전부터 원거리 공격까지 모두가 가능했다.
게다가 이 사슬낫은 팔에 감고 있는 것만으로 능력의 50%를 봉인할 수가 있는데, 김서준 본인의 몸에 감겨있을 때는 능력치의 숫자만 하락할 뿐 실제 능력치엔 아무 영향이 없었다.
하지만 적의 몸에 휘감길 경우엔 실제로 상대의 실제 능력치를 절반이나 떨어뜨릴 수 있게 된다.
또한 이 사슬낫을 이용해 결계를 쳐서 적을 옴짝달싹할 수 없게 가둬놓는 것도 가능하며, 사슬낫을 몸에 차고 있는 것만으로도 관통력, 반탄력, 절삭력이 크게 상승한다.
아직 시험해 본적은 없지만, 사슬낫으로 아공간까지 가를 수 있다고 하니 알면 알수록 대단한 무기였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김서준은 ‘사슬낫.개(SS)’에 대한 내용 중 가장 하단부에 있는 문구에 집중했다.
-낫을 든 농부를 소환한다.(소모 내공 1,000)
농부 소환 능력.
과연 어떤 농부가 소환될지는 모르지만 무려 SS급 무기에서 소환되는 존재이니 결코 평범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설마 진짜 농사짓는 농부가 소환되는 건 아니겠지?’
김서준은 살짝 걱정스런 마음이 들었지만, 일단은 사슬낫이 SS급 무기라는 점을 믿기로 했다. 그리고 곧장 태양신공을 운용하여 내공을 한껏 끌어올렸다.
우우우우우웅
김서준의 몸이 강력한 내공의 기운에 둘러싸이면서 엄청난 진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김서준은 끌어올린 모든 내공을 사슬낫에 모조리 밀어넣었다. 바로 그때,
>>내공이 충전되었습니다.(1000/1000) >>농부를 소환합니다.
쩌적-
김서준의 2미터 앞쪽 공간이 세로로 쭉 갈라졌다. 곧이어 그 틈을 비집고 무언가가 걸어나왔다.
그건….
뼈다귀로 된 인간이었다.
다 찢어진 헐렁한 넝마쪼가리를 걸치고, 밀짚모자를 눌러 쓴 2미터가 넘는 꺽다리 해골 바가지.
틈새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온 해골은 검게 뻥 뚫린 눈으로 김서준을 빤히 바라보더니 절그럭 절그럭 다가왔다.
그러다 갑자기 김서준을 향해 손을 쭉 뻗었다. 순간, 촤르르르르르륵
김서준의 팔을 휘감고 있던 사슬낫의 단봉이 스스로 튀어나가더니 해골의 손에 턱하니 쥐어졌다.
그리고는 해골의 부실한 뼈다귀 위에 살을 붙이듯 사슬이 온몸을 휘감아 버렸다.
해골은 단봉을 꽉 쥐고는 앙상하게 뼈만 남은 왼손으로 밀짚모자를 살짝 고쳐쓰며 김서준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이게…. 무슨 농부야?’
농부가 아니라 해골병사다.
사슬을 온몸에 휘감고 쇠막대기를 손에 든 밀짚모자 해골병사.
달그락. 딱딱.
해골은 턱뼈를 위아래로 부딪치며 지시를 기다리듯 우두커니 서 있었다.
김서준은 농부인지, 해골인지 모를 요상한 존재를 가만히 훑어봤다.
‘내가 살짝만 건드려도 부서질 것 같은데?’
허약해 보이는 해골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김서준은 일단 심안으로 능력치부터 살폈다.
[888/레어/낫술]
‘….헉!’
김서준의 눈이 튀어나올 뻔 했다.
마력수치 888.
이 앙상하게 뼈만 남은 해골이 S급을 웃도는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니.
게다가 해골의 격은 엘리트도 아니고 레어다.
그런데….
‘낫술?’
해골 농부가 지닌 신비가 좀 희한하다.
얼핏 낮술을 한잔 걸치신 나이 지긋한 농부를 떠올리게 만드는 신비.
물론 낮술이 아니라 낫술이니 ‘낫’을 사용하는 무기술일 것이다.
하지만 낫술이라는 단어 자체가 굉장히 낯설다보니 오해의 소지가 다분했다.
아무튼.
“이봐, 해골씨. 내 말 알아들을 수 있어?”
달그락.
고개를 끄덕이는데 턱뼈가 부딪치며 소리가 난다.
한대 툭 치면 와르르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이기도 하고.
“말을 알아듣는다니 다행이네. 그럼 일단, 낫술이라는 걸 한번 보여줄래?”
달그락.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인 해골 농부는 뒤로 몇 걸음 물러서더니 오른손에 쥔 단봉에 힘을 꾹 주었다. 순간, 파칭
단검이 확 늘어나며 낫의 형태로 모습을 변형시켰다. 그리고, 번쩍!
해골이 두 개의 검은 눈 구멍으로 황금빛을 뿜어냄과 동시에, 스슷
그 자리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어느새 김서준의 오른쪽 측면에 나타난 해골.
녀석의 손이 눈부신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촤악! 촥촥!
1초도 안되는 짧은 찰나에 사슬낫이 무려 세 번이나 휘둘러졌다.
김서준은 그걸 자연스럽게 피해냈지만 조금이라도 방심했다면 몸 한두군데는 깊게 베어졌을 정도로 빠르고 강력한 공격이었다.
해골의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촤르륵
김서준이 물러서자 해골은 몸을 감고 있던 사슬을 풀어내며 붕붕 소리가 날만큼 위협적으로 낫을 휘돌리기 시작했다.
해골의 낫술은 기가막힐 정도로 정교했다.
팔로 쇠사슬을 감았다가 종횡으로 원을 그리며 공간을 베거나 목 뒤로 한바퀴 감았다가 팔을 뻗어내 엄청난 속도로 낫을 내던졌다.
거기다 해골의 움직임 또한 눈부시게 빨랐다.
보기엔 허약한 꺽다리 해골 농부였지만, 녀석이 펼치는 낫술만큼은 진짜였다.
김서준은 해골의 방어력 수준을 확인해 볼 겸, 머리를 노리고 격발 스킬을 발동시켰다.
따악!
손가락을 튕기자 해골의 코앞으로 불길이 화르륵 치솟아 오르더니, 꽈아아아아아아앙!
마력 700짜리의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런데,
해골은 어느새 사슬로 오른손뼈를 팽이감듯 감아 직경 2미터짜리의 커다란 방패를 만들어 냈다.
폭발은 그 사슬 방패를 직격했고,
쫘아아아악
해골은 선채로 10여미터나 쭉 밀려났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충격을 받은 모습이 아니었다.
부우에게 사용했던 격발과 똑 같은 위력이었는데, 결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해골은 사슬낫을 사용해 섬전 같은 공격 뿐만이 아니라 강력한 방어까지도 훌륭하게 수행해 냈다.
‘굉장한데?’
해골이 펼쳐낸 낫술은 공수가 완벽하게 균형잡힌 놀라운 신비였다.
잠시 후, 폭발에 의한 희뿌연 연기가 사라지자 김서준은 해골에게 한걸음 다가서며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해골씨.”
달그락
해골도 그러자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김서준은 이 해골에도 이름을 붙여줘야 겠다고 생각했다.
‘뭐가 좋으려나….’
좋은 이름을 붙여주려고 고민해 보려 했으나 의외로 쉽게 쓸만한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오, 이거 좋네. 스컬. 네 이름은 이제 스컬(Skull)이다.”
딱. 따닥.
해골이, 아니 스컬이 턱을 부딪치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이 꼭 자기 이름을 되새기는 것 같았다.
그 후로 김서준은 거의 1시간에 가깝게 스컬과 대인 전투를 벌이며 무공을 수련했다.
둘 다 마력을 이용한 능력 발현은 최대한 자제한 상태에서 오직 신체적인 능력만으로 이루어진 대결이었다.
김서준이 스컬과의 대결 초반에 사용한 무기는 양손대검.
그런데 이 양손대검은 마력물질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슬낫을 상대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로 반동강 나고 말았다.
그래서 김서준은 새로 꺼내든 할버드에 내공을 두름으로써 사슬낫의 절삭력을 버텨내며 전투를 이어갔다.
스컬은 소환한지 정확히 1시간이 되었을 때, 저절로 사라져 버렸다.
‘부우는 10분이고, 스컬은 1시간이군.’
소환에 제한시간이 있다는 건 좀 아쉬웠지만, 그래도 이 둘을 언제 어디서든 불러낼 수 있다는 건 천군만마의 든든한 아군을 얻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김서준이 잠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뚱보 우기가 치호의 등에 올라탄 채로 잽싸게 달려왔다.
녀석은 김서준을 올려다보며 뭐라고 쫑알쫑알 떠들어 댔다. 그러다 자기 손목을 가리켰다가 자는 시늉을 해 보였다.
“시간이 늦었으니 이만 들어가서 자자고?”
끄덕 끄덕.
“너희 오토마톤이라며? 그럼 잠 안자도 되는 거 아니냐?”
김서준의 질문에 우기는 손가락을 좌우로 젓고는 또 다시 시끄럽게 떠들어 댔다.
그 말을 간단히 요약해 보면 이거였다.
[아무리 오토마톤이라도 적당한 수면을 취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활동을 이어가면 생체금속이 빠르게 마모되어 내구성이 떨어지게 된다. 그러니 우리를 오래 오래 부려먹고 싶다면 양질의 수면과 충분한 마석 보급, 그리고 영양가 있는 음식 섭취를 꾸준히 제공해야 할 것이다.]
우기는 이렇게 치호까지 한꺼번에 대변하여 주인인 김서준에게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어이구, 그러시군요. 잘 알겠으니 앞으로 꼭 그렇게 해 드리겠사옵니다, 우기님.”
김서준은 혼자서 킥킥 대며 웃다가 우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어었다.
검지 손가락 크기밖에 안되는 작고 뚱뚱한 오우거가 검치호의 등에 올라탄 상태로 자기가 바라는 걸 당당히 요구하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대견하면서도 귀여워 보였다.
‘성격 드러운거만 빼면 참 괜찮은 녀석인데 말이지….’
김서준은 또 다시 띠꺼운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우기를 보며 피식 웃고 말았다.
“이제, 가자.”
김서준이 한마디 하자마자 치호가 우기를 등에 태운 채로 김서준의 팔을 타고 올라가 머리 위에 척하니 주저앉았다.
김서준은 머리 위에 편안하게 엎드린 치호를 눈만 올려떠서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머리 위는 좀 그렇지 않냐? 그래도 내가 주인인데.”
그 말에 치호는 끼잉 소리를 내며 자리를 옮기려고 했으나, “#$!%^&$#!@#$**%!”
우기가 뭐라고 떠들자 다시 주저앉았다.
우기는 치호의 등에 올라탄 상태에서 팔짱을 끼고 당당하게 앞을 바라봤다.
“에휴. 그래, 니들 맘대로 하세요.”
김서준은 오늘만큼은 이 두 녀석이 하자는데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가자, 가.’
바로 배낭을 챙기고 수련실을 나선 김서준.
1층에 올라가보니 어머니도 2층으로 올라갔는지 조용했다.
김서준은 혹시 몰라 집안과 밖에 설치된 모든 폐쇄회로를 점검한 뒤 자신만의 공간인 3층으로 올라갔다.
배낭을 방에 던져놓은 그는 재빨리 샤워부터 마쳤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휴대폰으로 고태환과 관련된 뉴스를 검색했다.
혹시라도 다른 소식이 있나 살펴봤지만, 매스컴에서 파악하고 있는 내용은 거의 대동소이했다.
고태환이 오래 전부터 현무 길드의 자금을 횡령해 왔다는 사실이 추가로 밝혀진 것 외에는 특별할게 없었다.
‘고태환은 이걸로 끝났으니 이제 다음을 준비해야겠구나.’
내일로 예정된 천간십이지와의 합동 작전이 끝나면 다크디멘션의 뒤를 캐는 일부터 처리해야 했다.
그 다음은 세계 십대가문 중 최상위 네 곳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파악하는 일이고, 마지막으로 가이아닉스의 연구소를 파헤쳐 봐야 했다.
‘여기선 조용하고 유유자적한 삶을 살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어째 예전보다 더 바빠진 것 같네.’
농담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무림계 세상에서 살아갈 때는 오직 복수 하나만 생각하며 맹목적인 삶을 살아갔다.
하지만 여기선 그때와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보호해야할 가족이 있었고, 지켜야 할 친구가 생겼다. 때문에 생각해야 할 것도, 처리해야 할 일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뭐가 됐든, 똑 같은 실수는 두 번다시 하지 않겠어.’
김서준은 적이 자신을 향해 칼을 겨누길 기다리지 않고, 자신이 먼저 움직여 적의 심장을 박살내 버리기로 단단히 마음 먹었다.
‘아직 2시간이나 남았네?’
시간을 보니 11시다.
적어도 코어가 각성을 끝내는 1시까지 취침에 들 생각은 없었다.
김서준은 남는 시간동안 태양신공으로 운기행공을 하기로 했다.
바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잠시 후 그의 몸에서는 강한 태양의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김서준은 태양신공으로 운기행공을 하면서 양의분심공을 동시에 사용했다.
그래서 2시간이 지났을 때에 정확히 맞춰 내공 운용을 중단시킬 수 있었다.
어느새 태양신공의 숙련도는 59%까지 올랐다.
60%에 도달하기까지 1%만 남겨진 상황.
수치가 계속해서 눈앞에 보이게 되니 60%가 되었을 때 어떤 추가적인 효과가 생길지 기대를 안할 수가 없었다.
‘이놈의 각성 시스템은 진짜 중독되기에 딱이라니까. 후유….’
신경쓰지 말자고 아무리 다짐을 해도 막상 수치를 보게 되면 신경을 안 쓸수가 없었다.
그래서 김서준은 억지로라도 노력하는 중이었다.
애써 숙련도 수치를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유니온 코어의 각성 결과에 집중하기로 했다.
아공간에서 ‘운명의 주사위’를 꺼내들자 유니온 코어가 스르륵 빠져나와 툭 떨어졌다.
‘각성이 끝났구나!’
김서준은 바로 심안을 발동시켜 운명의 주사위가 어떤 각성을 이루었는지 확인했다.
[운명의 주사위(A)]
-주사위를 던져 나온 숫자가 3이하이면 숫자에 100을 곱한 수치만큼 마력을 추가로 얻는다.
-주사위를 던져 나온 숫자가 4이상이면 숫자에 150을 곱한 수치만큼 마력을 잃게된다.
-효과를 적용하는 대상이 본인이 아닐 경우, 주사위의 효과가 제대로 적용될 확률은 20%이다.
-히든피스: 주입한 마력이 111일 경우, 주사위의 숫자를 임의로 정할수가 있다.
-히든피스: 주입한 마력이 222일 경우, 주사위 숫자와 곱해지는 수치가 200으로 조정된다.
-유지 시간: 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