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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야만전사-18화 (18/132)

#018화. 타락자 (1)

아티팩트.

달리 부르기를 고대의 유물, 초고도 마법의 정수, 현대 마법사들의 영원한 숙제….

대충 듣기만 해도 돈 냄새가 물씬 나는 이 물건들의 정체는 마도 문명의 정점기라 불리는 고대의 귀물이었다.

마석이 없어도 자연 상태의 마나를 알아서 흡수해 저장하거나, 초월자의 권능을 자그마한 장신구에 가둬둔다거나, 초월종의 시체를 가공해 생전의 힘을 온전히 쓸 수 있게 한다는….

그야말로 불가해의 산물이라 불리우는 물건이 바로 아티팩트고, 지금 시대의 마도구는 그 아티팩트의 모조품에 지나지 않았다.

‘이건 아티팩트 중에서도 거의 최하품…. 유사 아티팩트나 다름없는 물건이지만…….’

그래도 성능은 확실했다.

흑마법사 데빈에게서 입수한 아티팩트. ‘심원의 방패’가 흡수한 충격을 사방으로 퍼뜨린다.

촤자자자작! 쾅! 쾅!

충격파에 얻어맞은 용병들의 몸이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자기들이 발사한 석궁의 충격과 쇠그물의 무게를 모조리 되돌린 충격파다.

평범한 인간의 몸뚱어리로는 버티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치이익…. 방패 모양의 문신이 새겨진 오른쪽 가슴이 불꽃이 이는 듯 뜨겁다.

칸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도끼로 론을 묶은 쇠사슬을 끊었다.

“아이고. 삭신아……!”

사지의 자유를 되찾은 론이 괜스레 앓는 소리를 냈다. 하여간 태평한 놈.

칸은 가볍게 콧방귀를 끼곤 유일하게 두 발로 똑바로 선 용병과 마주 섰다.

“더 준비한 게 있나?”

뿌득. 뿌드득. 칸의 질문에 네로가 이를 갈았다.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화내고 지랄이야.’

자기 왼쪽 어깨에 틀어박힌 쇳조각을 무표정한 얼굴로 제거한 네로가 말없이 검끝을 세웠다.

인질을 잡고, 함정을 팠음에도 통하지 않았으나 전혀 개의치 않는단 것처럼.

“아티팩트라. 이제야 납득이 가는군. 그런 귀물을 가지고 있으니, 천방지축 날뛴 거였나.”

“뭐라는 거야. 새끼가.”

“하지만 그것도 끝이다. 널 보호해줄 아티팩트도 충전할 시간이 필요할 테지. 마나도 없는 열등 인종 녀석.”

‘듣는 야만인 서럽게.’

묵직한 팩트에 가슴이 아파온 것과는 별개로, 칸은 놈이 기세등등한 이유를 깨달았다.

아티팩트가 없으면 자기가 이길 수 있다 생각하는 걸까.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비장의 한 수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

네로에게 들을 게 남은 칸으로서는 저 자신감이 영 성가셨다.

‘뭐. 일단 줘 패보면 알겠지.’

하지만 복잡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여럿이서 다굴을 친다면 모를까. 단순하게 일대일로 싸워서 자신이 지는 그림을 상상할 수 없었다.

오히려 싸움보다 이후에 심문하는 과정이 더 번거롭지 않을는지.

그것도 뭐… 괜찮았다. 칸은 자신의 협상 도구가 어지간해선 잘 먹힌단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까. 바로 주먹 말이다.

쿵.

어김없이 선공은 칸이었다.

크게 발을 굴러 거리를 좁힌 직후 등허리에 숨겼던 팔을 번쩍- 휘둘렀다. 부우우우! 매서운 바람 소리와 함께 솟구친 손도끼.

네로도 지지 않고 두 손으로 검을 마주 뻗어 응수했다.

당연하지만, 힘에서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부딪친 순간에 네로의 상반신이 크게 들썩였고, 칸은 몰아치듯 도끼를 내려찍었다. 위에서 아래로.

쩡! 쩡! 쩡! 쩡!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칸의 일격은 바위조차 박살 낼 수 있었고, 그걸 수십 번도 더 동일하게 수행할 수 있었다.

제국의 기사나, 마탑의 마구스, 검의 귀신이라 불리는 검호가 아니라면 일대일로 맞붙는 것 자체가 성립이 안 됐다.

용감하게 마주 검을 부딪치는 네로의 몸이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리고 갈대처럼 꺾이지 않았다. 새끼 좀 치네.

칸이 놀랍다는 듯 휘파람을 불었다. 과연 어디까지 버티나 호기심마저 생겼다.

‘힘 좀 써볼까.’

거리를 좁힌 이후로 어깨 아래만 움직여 도끼를 휘두르던 칸의 움직임이 변했다.

왼발을 부드럽게 내밀어 축으로 삼고, 허리를 돌려 상반신을 비스듬히 뒤로 재꼈다.

그리고 후려친다.

쾅──! 쩌저적!

“오?”

“끄으으윽……!”

하늘을 떠받치듯 검끝과 가드 부분을 손바닥으로 밀면서 칸의 손도끼를 받아낸 네로가 신음을 토했다.

압력을 버티지 못한 머릿속에서 출혈이 생겼는지, 눈과 귀에서 피를 흘렸다.

그러나 무너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네로가 딛고 있는 바닥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부서졌다.

‘뭐야. 이 새끼 진짜 좀 치는데?’

그 지경에 이르니, 오히려 놀란 건 칸이었다.

전력은 아니어도 오크조차 팔이 박살 났을 일격이었다.

그걸 몸뚱어리만 믿고 무식하게 받아내는 데에 성공한 것. 낮게 잡아도 오크 이상의 괴력을 가졌다는 소린데….

오러나 신성력처럼 신비로운 힘을 다루는 기사나 성기사라면 모를까.

‘미들랜드 퀘스트’의 NPC 중에서도 그만한 스탯을 가진 순수 인간 NPC는 많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스토리의 한 줄이나마 차지할 수 있는 네임드였다.

‘이 새끼가 그런 유형이란 건가?’

오러나 신성력의 힘 없이도 육체 자체를 강철처럼 단련하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아무리 쇠질을 해도 한계가 있는 지구의 인간과 다르게, 이 세상의 인간 중에선 순수한 육체 단련만으로 커다란 바위를 쪼개는 괴물이 적지 않을 정도였다.

그린스킨이나 수인, 서릿골의 야만인처럼 태생부터 남다른 놈들을 단련으로 따라잡는 게 가능하다는 뜻.

물론, 그 자격이 아무에게나 주어지진 않는다. 타고난 재능과 뼈를 깎는 노력이 동반되어야만 했다.

그런데 눈앞의 녀석은 도저히 그런 쪽은 아니었다. 속 빈 강정. 주사 맞은 풍선 근육.

그런 단어들이 칸의 머리를 스친다.

근거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네로의 몸은 용병다운 탄탄하고 날렵한 근육을 가졌지만, 그냥 딱 그 정도였다. 꽤 단련한 용병 수준 말이다.

“으. 으으으!”

그때 네로가 돌연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우드득- 우드득- 심상찮은 소리가 놈의 몸 안쪽에서 나더니, 스테로이드 뽕을 처맞은 것처럼 팔다리의 근육이 급격하게 부풀었다.

‘뭐야, 이 새끼 진짜 약쟁이였어?’

“신이시여, 맙소사!”

뒤쪽에서 싸움을 구경하던 론이 경악했다. 긴 시간 알아온 친구가 웬 괴생명체로 변이하고 있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칸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고.

“건방은 여기까지다! 야만인! 저 얼빠진 놈이랑 같이 끝장내주마─!”

완전히 변이를 마친 네로의 팔다리는 칸의 것보다도 굵직했는데, 몸통은 여전히 날렵해서 퍽 기괴한 몰골이었다.

다만 거기서 나오는 괴력만은 절대 우습지 않았다.

변이의 영향이 머리에도 미쳤는지 네로가 마구잡이로 팔다리를 휘적댔다.

칸은 섣불리 받아내지 않고 가볍게 뒤로 뛰어 거리를 벌렸다.

“도망치지 마라!”

그리 소리치는 네로의 눈은 온통 흰자뿐. 이성이란 게 완전히 날아간 눈치였다.

그걸 뒤쪽에서 지켜보던 론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아무리 야만전사가 역전의 용사들이라 한들, 마녀의 실험체마냥 변한 네로를 상대로도 승산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실제로 칸은 네로의 맹공에 이렇다 할 반격조차 시도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아까의 그 기세는 어디 갔나! 야만인!”

“칸……!”

뻐어억!

기어코 네로의 주먹이 칸의 흉부를 두들겼다. 그 충격에 칸의 발이 잠깐 허공에 붕 떴다. 네로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발끝을 창처럼 찔러 넣었다.

으지지직! 무언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곧장 뒤따랐다. 소리만 들어도 명백히 치명상임을 알 수 있었다.

‘이런!’

론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자신이 상대가 되지 않음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으나 분개에 차서 주먹을 쥐고 뛰쳐나갔다.

어쨌건 칸이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자 나타났으니, 마땅히 도울 책임이 있었다.

“흐아아압!”

다행히 론이 주먹을 내지르기 전까지 아무도 그를 발견하지 못했다.

칸의 덩치가 워낙 커다란 덕분에 시야가 가려진 덕분이었다. 칸의 뒤에서 기습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론이 주먹으로 네로를 냅다 후려쳤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무시무시한 괴생명체처럼 변한 네로가 실 끊긴 인형처럼 너무나 쉽게 나가떨어진다.

‘뭐여 시벌, 내가 이렇게 셌나?’

자기가 해놓고도 믿기지가 않아서 론은 제자리에 서서 네로를 날려버린 주먹을 끔뻑끔뻑 바라봤다.

그러다 무언가 알아차렸다는 듯 기함했다.

“서, 설마. 신에게 선택을 받았단 말인가. 이 쇠망치 론이……!”

종종 그런 얘기가 나돌기는 했다.

평범한 농부가 만신전의 선택을 받아 용사가 되었다든가, 악마에게 복수하기 위해 죽을 각오로 나선 전사가 ‘충성의 서약’을 맺지 않고도 오러를 얻었다든가, 위기의 상황에 깨달음을 얻은 검사가 제국의 검호로 인정받았다든가, 하는….

론은 자신이 그 소문의 주인공이 되었음을 인지했다. 신의를 지키기 위해 나선 자신의 모습에 신조차 감복한 것이다!

“뭐 하냐. 너.”

“응?”

“병신처럼 주먹 들고 뭐 하냐고.”

자아도취에 빠진 론을 일깨운 건 반쯤 뒈졌을 거라 생각한 야만인 친구, 칸이었다.

“자, 자네! 살아있었나?!”

“이런 미친놈이. 그럼 뒈졌을까?”

“분명 네로의 발차기를 맞고……”

“맞기는 뭘 맞았다고.”

“다행일세!”

거의 죽었다 생각한 친구의 생환에 론이 크게 기뻐하며 칸을 끌어안으려 했다.

당연히, 그러기도 전에 칸이 던진 물체에 얻어맞아 가로막혔지만.

뭔가 물컹한 감촉과 찐득한 액체 같은 게 얼굴에 닿아 놀란 론이 허겁지겁 물러났다.

철퍽.

“흐미 시발!”

자기 얼굴에 닿은 것이 사람의 발이라는 걸 확인한 론이 기겁했다.

그리고 뒤늦게 저 발이 네로의 것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네로가 발끝으로 칸의 배를 찢었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처음부터 공격은 통하지 않았고, 되레 발목 아래로 통째로 뜯어버린 칸에 의해 네로가 치명상을 입은 것이었다.

네로가 론의 주먹에 형편없이 나가떨어진 건 그 탓이리라.

신의 선택이니, 각성이니, 전부 론의 착각이라는 얘기.

“큼. 크흠. 그렇구먼.”

‘이 새끼 진짜 베테랑 용병 맞아?’

칸은 보면 볼수록 허당끼를 물씬 풍기는 론을 보며 혀를 찼다. 제5막에서 만난 ‘론’은 말은 많아도 제법 진중한 녀석이었는데. 이건 그냥 머저리 아닌가.

“끄. 끄으윽!”

“카, 칸! 저 친구 좀 보게! 바싹 쪼그라들고 있잖나!”

론도 부끄러움이란 감정을 알긴 아는지, 화제를 돌리려는 듯 저만치 날아가 엎어진 네로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칸은 재차 혀를 차며 구멍 뚫린 축구공마냥 쪼그라들기 시작한 네로를 내려다봤다.

피를 울컥울컥 쏟아내는 네로의 발목을 자세히 보면, 검붉은 핏줄이 꿈틀거리면서 환부를 통해 피를 마구 쏟아내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피를 쏟아낼 때마다 네로의 몸이 기괴하게 느껴질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더욱 기이한 점은, 큰 웅덩이를 이루고도 남을 정도의 출혈량에도 불구하고 네로가 죽지 않았다는 점.

“네로 저 녀석. 대체 왜 저러는 건가? 사람이 아닌 꼴로 변한 것도 그렇고, 갑자기 쪼그라드는 것도 그렇고……. 아니, 자네도 모르겠지. 내가 야만인 친구에게 과한 걸 바랐어. 억!”

아무렇지도 않게 종족 비하성 발언을 지껄이는 론의 뒤통수를 후려쳐 응징한 칸이 네로의 앞에 성큼성큼 다가갔다.

론이 뒤늦게 위험할 수 있다며 만류했지만, 칸은 조금도 위험하지 않다는 듯 거침이 없었다.

“거. 위험하다니까 그러네! 또 수상한 괴물로 변하면 어쩌려고 그러나!”

“그런 건 없다. 이놈은 그냥 이대로 뒈질 운명이야.”

“자,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아나?”

무언가 알고 있다는 듯한 칸의 어조에 론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무식한 야만인이 그런 걸 어떻게 아냐고 묻는 눈빛. 덩달아 기분이 나빠진 칸의 손바닥이 론의 뒤통수에 작렬했다.

“억! 또 왜 때리나!”

“기분 나빠서.”

정확히는 미개한 중세 놈의 눈빛이 불손하단 이유였지만, 칸은 굳이 설명하진 않았다.

꼬우면 나보다 세던가. 대신 저 파멸적인 주둥아리를 닥치게 할 답변을 내놓았다.

“저건 흑마법이다. 아니……. 마법보다는 과학에 가까운가? 대충 신체 개조라 생각하면 편해. 이놈은 지금 자기 생명력을 써서 신체를 강화했고. 얼마 못 가서 뒈질 거다.”

“자네가 그런 어려운 얘기를 하는 건 둘째치고, 저 끔찍한 현상이 마법이 아니라니. 그게 말이나 되나?”

“…그게 가능한 놈이니까. 그 자식은.”

칸은 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이름을 혀에서 굴렸다. 엘리야.

이놈도 그녀와 비슷한 시술을 받은 것이리라. 괴상하게 부푼 몸뚱어리를 보면, 그녀보단 저급한 방식의 신체 개조 같다마는. 결은 같을 것이다.

제5막에 등장하는 ‘죽음을 거부하는 자, 다르킨 페레야스’는 사령술의 대가인 동시에 신체 개조의 선구자였으니.

평범한 인간을 오크 형제로 만드는 거야 쉽겠지.

그리고.

노르딕 최대의 용병대를 이끄는 네로가 다르킨의 신체 개조를 받아들였단 사실은, 이 도시에 다르킨의 마수가 생각보다 깊게 침투했다는 걸 증명한다.

‘일이 귀찮게 될 수도 있겠어.’

네로가 도시 행정부의 사냥개처럼 굴며 자신을 노렸다는 걸 고려하면, 도시의 유력자 중 얼마나 많은 이가 다르킨의 손을 잡았을지 가늠조차 되질 않았다.

놈이 당당하게 이름을 판 도시의 행정관과 상단주라는 놈은 정황상 거의 확정적이고. 어쩌면 이 도시의 시장도…….

‘아니, 일단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이다.’

자신의 추측을 고개를 저어 부정하던 칸의 눈썹이 별안간 씰룩거렸다.

경험치바가 미미하게 상승한 걸 본 까닭이었다. 네로가 죽은 것이었다.

‘물어볼 게 많았는데, 아쉽게 됐어.’

오크 한 마리 분량의 경험치. 그것이 한 도시의 무력을 쥐고 흔들던 권력자의 말로였다.

*

*

*

아리에스는 코를 찌르는 고약한 악취에 눈을 떴다.

물론, 앳된 겉모습과 달리 그녀는 노숙 경험이 매우 풍부했다.

혼자 아르곤 왕국을 몇 년이나 떠돌았으니 당연한 일이다만, 어쨌든 냄새 조금 난다고 잠에서 깰 만큼 잠자리에 예민한 편이 아니란 뜻이다.

그런 그녀가 냄새 때문에 눈을 떴다는 건, 지금 풍기는 악취가 일반적인 것이 아니란 얘기다.

“흑마법.”

음습하고, 무거우면서, 악의에 가득찬 흑마법 특유의 악취가 그녀를 깨웠다.

수도원에 틀어박혀 흑마법의 냄새를 쫓아 뛰쳐나갔다가 칸을 마주쳤던 그때처럼. 그녀는 누운 자세 그대로 감각에 집중해 흑마법의 발원지를 쫓았다.

이윽고 몸을 일으킨 아리에스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칸을 찾다가, 발치에 떨어진 종이를 발견했다.

「잠깐 일이 있어 다녀올 테니, 적당히 자다가 수도원에 가서 성수 좀 받아오시오. 심부름값은 후불로 쳐줄 테니.」

아리에스는 이 자리에 없는 칸에게 대답이라도 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연찮게도.

새로 생긴 목적지와 칸의 심부름지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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