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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야만전사-24화 (24/132)

#024화. 다르킨 토벌전 (4)

“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느낌도 영 구리고.”

“그냥 따라오기나 해라.”

왼쪽 길로 향한 이후. 칸의 걸음은 그야말로 거침이 없었다. 막아서는 적도 없고, 갈 곳도 미리 정해둔 상태니 당연한 얘기다마는.

“흑마법사의 공방이라 길래. 시도 때도 없이 언데드가 덤벼들 거라 생각했었네만. 의외로 그렇진 않구만.”

“소용없다 생각한 거겠지. 아니면 한 번에 모아서 치려는 걸 수도 있겠고.”

물론, 어느 쪽이건 칸은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가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으니까. 다르킨의 몸을 쪼개버리는 것.

터벅- 터벅-

아무것도 없는 복도가 끝나고 나온 건, 학교 운동장의 반쯤 되는 크기의 공동이었다.

공동의 왼쪽에는 지상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있었고, 오른쪽엔 또 다른 길이 있었으며, 중앙에는…….

“킁. 킁.”

개 한 마리가 자기 목덜미를 발로 긁고 있었다. 사실 이렇게만 말하면 몹시 귀여운 모습을 묘사하는 것처럼 보이겠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시발. 더럽게 크네.’

눈앞의 개는 호랑이보다 덩치가 컸으며, 뱀처럼 생긴 꼬리가 자아를 가진 듯 살아 움직였다. 무엇보다 대가리가 두 개였다.

“저……. 저 괴물은……! 저 괴물이 왜 여기에?”

론이 당혹스럽단 반응을 내비쳤다. 칸은 굳이 듣지 않아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야 뻔하지.

“예전에 산을 내려왔다던 심부의 마물이 저 녀석인가?”

“……분명 목을 잘라서 쫓아냈는데.”

“잘 봐라. 오른쪽 대가리의 목덜미에 이어붙인 흔적이 있으니까. 아마 다르킨의 솜씨겠지.”

론이 탄식했다. 쇠망치를 붙잡은 손이 파르르- 떨리는 걸 보면 PTSD라도 찾아온 게 아닐까 싶었다.

‘심부의 마물한테 사람이 백 명 넘게 죽었다는 말만 들었지. 놈을 죽였단 말은 못 들었었지. 생각해 보니까.’

대충 이야기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심부의 마물이 크게 다쳐 도망쳤단 소식을 자기 하수인들에게 전해 들은 다르킨이 중상을 입은 놈을 주워다가 치료해 써먹고 있는 것이리라.

“크릉?”

뒤늦게 칸과 론의 존재를 알아차린 마물이 두 개의 머리를 돌렸다. 검은색과 회색의 머리는 반응의 차이가 있었다.

‘잘렸다 붙은 회색 쪽이 조금 느리군.’

“너는 옆에서 적당히 사려라.”

“서, 설마 저 괴물을 혼자 상대할 셈인가? 무리일세! 기백 명이 달려들어도 끝내 못 죽인 괴물이야!”

‘그야 당연하겠지.’

제각기 소속이 다른 용병들이 무려 수백 명. 제대로 된 연계가 될 리가 없고, 욕심이나 부리다가 순식간에 피해가 불어났겠지.

흔한 일이다. 팀플레이의 오류라 볼 수도 있겠고. 사람 수가 많으면 일이 쉬워질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트롤링 하는 애들 때문에 더 힘들지.’

“크르릉!”

놈은 처음에 안쪽에서 나타난 칸과 론을 차마 적이라 판단할 지능은 없었는지 두 개의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다 론에게서 느껴지는 적의에 반응한 듯, 사람 머리보다 길쭉한 송곳니를 내보이며 짖기 시작했다.

‘천장이 무너진 소리를 못 들은 건가. 감각이 둔한가 보군. 머리가 잘린 부작용일 수도 있겠고.’

“크워어어──!!”

‘시벌, 깜짝이야. 뭔 개새끼가 오우거처럼 포효를 해.’

손도끼를 뽑아 든 칸이 짐짓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이, 이건 정말 무리일세. 저 괴물은 흑익공의 대전사라도 못 잡을 거라니까!”

“뭔 소리를 하는 거냐. 애초에 저놈 잡자고 이리로 온 건데.”

“뭣……!”

오른쪽 길로 향하는 게 다르킨과 마주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쯤은 대충 예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왼쪽으로 향한 건, 후방의 변수를 미리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제5막에서 다르킨은 어느 회차에서건 공방의 입구를 지키는 수문장을 뒀었다.

그것도 자기가 거느린 네임드 중에서 가장 강한 놈을.

그리고 힘겹게 수문장을 격퇴하면, 악마의 위장을 조종해 맵을 변화시키는데 그 종류가 무려 18가지에 달했다.

그 미로를 돌파하여 악마의 매개체를 파괴한 후, 그 뒤로도 끊임없이 쏟아지는 물량을 밀어내며 다르킨에게 도달하는 것이 플레이어의 임무.

‘지하 공방을 그때처럼 미로로 만드는 건 불가능해도, 기본적인 알고리즘은 그대로겠지. 입구에 강력한 수문장을 배치해두는 것 말이야.’

칸은 그리 예측한 끝에 왼쪽 길로 간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었다.

후발대로 뒤따라올 아리에스 일행의 대신, 가장 강력한 네임드를 제거하기 위해.

그래도 론이 걱정하는 일 따위는 없을 터였다.

‘흑익공의 대전사는 무슨.’

왜냐하면.

“크워어어억──!!”

“겨우 공작 따까리로 들어간 그 새끼보다, 내가 더 세.”

지하 전체를 가득 채우는 짐승의 포효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노르딕에서 백 명이 넘는 용병을 학살한 괴물과 서릿골의 전사가 격돌했다.

*

*

*

소년은 자신의 뼈왕좌에 앉아 전황을 내려다보았다.

시체보관소의 천장을 부수고 진입한 야만인은 반대쪽 길을 고르는 악수를 두었고, 후속대로 도착한 성기사는 시체 군세에 발이 묶였다.

‘이 정도면 순조롭군.’

야만인이 선택한 길은 공방의 입구와 이어져 있고, 그곳엔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세뇌한 괴물이 수문장으로 있었다.

야만인의 초월적인 힘은 분명 변수지만, 자신이 세뇌한 심부의 마물 또한 이런저런 개조를 더한 괴물이다. 놈의 승산은 크지 않으리라.

‘만에 하나. 녀석이 야만인의 손에 죽는다 해도……. 그땐 전투를 이어나갈 여력이 없겠지. 무엇보다 반대쪽 길을 고른 이상, 성기사 계집과 제때 합류할 수도 없을 터.’

역시 멍청한 야만인답군. 무식하게 힘만 세선…. 소년은 심부의 마물과의 전투에 돌입한 야만인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성기사가 있는 쪽의 ‘눈’과 동조했다.

이쪽은 이쪽대로 변수가 있었다.

‘노만이 일을 그르친 게 이리 돌아올 줄은.’

‘아에카리스의 구덩이’를 이용해 오랫동안 자신을 추적해 온 성기사를 납치하는 건, 사실 이전부터 계획한 것이었다.

성기사가 머무르는 장원을 습격한 제자의 죽음을 확인했을 때부터 말이다.

‘내 개조를 받아들인 노만과 네로가 힘을 합치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 생각했거늘.’

야만인의 강함이 자신의 상상을 아득히 초월한 것부터가 문제였나. 아니, 어쩌면 엘리야의 표적으로 그 야만인을 골라준 순간부터 일을 그르친 걸지도.

‘무엇보다. 마탑의 쓰레기들이 나선 게 가장 의외군.’

성기사 계집과 동행한 두 마법사. 사용하는 주문으로 추정컨대 회색 마탑 소속. 심지어 보통 마법사도 아닌, 마구스와 그 제자다.

‘엘리야에게 육체를 뺏긴 마법사의 스승인 듯한데…….’

제자를 잃은 스승의 복수…. 그 가능성은 일단 부정했다. 마법사, 그것도 마구스가 그런 쓸데없는 짓거리에 심력을 소모할 리는 없다. 정신병자가 아니고서야….

성기사와 마구스, 그 제자로 이루어진 파티는 자신의 키메라와 용병들의 언데드들을 상대로도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뭐, 그렇게 되겠지.’

그만한 전력이다.

소년은 크게 당황하지 않았고, 초조해하지도 않았다. 그저 예상외의 변수가 나타난 것에 조금 놀랐을 뿐이었다.

그것은 강자만이 가질 수 있는 절대적인 여유였다.

성기사단장이 직접 온 것도 아니고, 마탑의 마스터가 직접 온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 내가 겁을 먹어야 하지? 변수가 뭐 어쨌다는 건가. 야만인이니, 마구스니, 적어도 이 지하 공방 내에서 자신은 무적이다.

소년의 매끄러운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가 걸쳤다.

저 멍청한 것들은 공방의 위치가 발각된 이상, 자신을 해치우는 것쯤은 시간 문제라 여기겠으나….

‘함정에 빠진 건 너희다.’

“준비는.”

“거의 다 끝났습니다.”

‘눈’의 동조를 거둔 소년이 뼈왕좌에서 몸을 일으켰다.

“알의 제물은 충분한가?”

“예정보다 조금 부족합니다. 노만이 공수하기로 한 사제들에게서 신성력을 추출하지 못한 탓…….”

“됐다. 부족하다면 다른 거로 채우면 돼. 일단 융화에 성공한다면, 그 정도는 쉬운 일이지.”

“반드시 성공할 겁니다. 스승님의 비술이니까요.”

제자의 입에 발린 소리가 오늘만큼은 썩 듣기 좋았다.

대계의 끝을 목전에 두고 있기 때문인 걸까. 아니면 제 운명도 모르고 꼬리나 흔드는 제자의 모습이 우스워서인 걸까.

‘멍청한 것.’

차박. 차박.

뼈왕좌의 뒤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순도 높은 피가 맨발을 기분 좋게 감싸는 감각을 느끼며, 고개를 들어 올린다.

그곳엔 알이 있었다.

“그럼……. 지금부터 의식을 시작한다.”

자신을 지금보다 더 높은 경지로 끌어 올려줄 요람을 보며, 소년…….

사령술의 대가이자, 인체 개조의 달인인 다르킨 페레야스가 고했다.

*

*

*

“저, 저리 가!”

청년 마법사 얀이 일으킨 주문에 휩쓸린 시체들이 육편이 되어 흩날렸다.

심약한 그의 언행과 달리 위력은 끔찍했는데, 그만한 주문을 대여섯 번 난사하고도 얀은 숨 하나 헐떡이지 않았다.

마탑의 마스터들의 인정을 받은 마법사에게만 내려지는 호칭인 마구스. 그 마구스의 제자가 된 청년이다.

나이에 맞지 않게 강한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흐아아악! 끄, 끝이 없잖아!”

다만 경험의 부재는 어쩔 수 없는 것이어서, 제자의 형편없는 발악을 지켜보던 제롬이 혀를 찼다.

“허둥대기는. 멍청한 제자야. 저것들은 그냥 고기방패다.”

“요, 용병이잖아요…! 스승님이 그렇게 조심하라고 한 용병!”

“용병을 경계하라는 건, 그들이 몹시 간악하고 신의가 없는 족속이기 때문이다. 죽은 용병 따위가 무에 그리 무섭다고. 봐라.”

제롬이 일으킨 무형의 파동이 십수 개체의 언데드를 단숨에 갈아버렸다.

그리고 나지막이 주문을 외자, 제롬의 빈틈을 노리고 덤빈 키메라 한 마리의 머리와 몸통이 반대로 꺾여 분리됐다.

“이 정도는 너에게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쓸데없이 겁먹는 버릇만 고친다면.”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마법사는 냉철한 이성과 논리적 사고로 이루어진 생물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을 텐데.”

“마법사도 사람이라고요! 사람!”

못난 놈. 재차 혀를 찬 제롬이 아리에스가 싸우고 있는 전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스거거거걱! 쾅!

스물을 겨우 넘긴 듯한 소녀의 손짓 한 번에 전선이 크게 나아가는 광경은, 가히 전율적이라 할 수 있었다.

‘과연. 소문이 반쯤은 사실이었나.’

굳이 말은 안 했지만, 제롬은 저 소녀 성기사의 이름을 진즉에 듣고 온 상태였다.

성기사단장이 총애하는 천재. 만신전의 신격조차 그녀에게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했던가.

적어도 후자는 사실인 듯했다.

그녀의 육체 강도와 신성력은 제롬이 본 성기사들 중에서도 발군이었고, 신의 권능으로 추정되는 흑마력 추적술을 선보이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런 인재가 제국이 아닌 아르곤 왕국에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마는. 아니, 애초에 신전을 통해 내게 보낸 제안부터가 범상친 않았지….’

쩌어억─!

마지막 남은 키메라를 좌우로 갈라버리는 것을 본 제롬이 사색에서 벗어났다.

고민이야 일을 끝낸 뒤에 해도 늦지 않는다. 다르킨, 그 저열한 흑마법사가 보낸 고기방패도 끝이 난 눈치고.

“수고하셨소. 놀라운 신력이군.”

“……치료는.”

“필요 없소이다. 마나를 조금 쓰긴 했지만, 신성력을 낭비할 정돈 아니니.”

“저, 저는 필요한데요…. 심신의 안정에 도움을 주는 신성술은 없나요?”

안타깝게도 얀의 말이 받아들여지는 일은 없었고, 일단의 군세를 모조리 격퇴한 일행은 다시 기다란 복도를 나아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다르킨의 저항이 미미하군. 아무래도 놈은 시간을 끌 속셈 같소만. 뭔가 짐작이 가는 게 있소?”

“…정확히는 몰라. 예전부터 모아온 제물로 뭔가를 한다는 것 정도만.”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군. 제대로 된 마법조차 배우지 못한 떨거지에게 가능한 일이라 해봐야. 피와 살로 추악한 사술을 부리는 게 겨우겠지.”

[누구에게 떨거지라는 거냐. 마탑의 쓰레기가.]

멈칫.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하던 제롬의 움직임이 멎었다. 아리에스는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고, 얀은 그 심약한 얼굴에 두려움을 가득 머금었다.

그리고.

[어서 오거라. 위신의 주구와 마탑의 쓰레기들아. 내 모든 준비를 마치고, 너희를 맞이할 준비가 되었으니.]

머릿속에 직접 울리는 음성이 누구의 것인지는 생각을 거칠 필요조차 없으리라. 이 지하 공방에서 손님을 맞이할 자격이 있는 자.

“다르킨. 페레야스.”

[그래. 성기사 계집아. 나는 오랫동안 널 주시했었지. 지난 몇 년, 끈질기게도 나의 흔적을 쫓더구나. 부질없는 짓이란 것도 모르고.]

으드득-.

이가 부러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만큼 심상찮은 소리를 낸 아리에스가 성큼- 성큼- 앞으로 걸었다.

“서, 성기사님…! 잠시만요!”

얀의 만류도 듣지 않고, 그녀는 오로지 앞으로 향했다.

그 무엇도 아리에스의 앞을 막지 않았다. 다르킨은 정말로 본인이 직접 침입자를 맞이할 작정이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쯧. 영 마뜩치않군.’

본인의 어리숙한 제자를 흘겨본 제롬 또한 아리에스의 뒤를 따라 걸었다. 적어도 몸을 내뺄 여력은 남겨두어야겠다 생각하며.

“스승님! 정말 가시려고요?! 스승니임!”

결국 혼자 남겨진 얀까지 둘의 뒤를 따랐다.

[그래. 오거라. 옳지…….]

몇 개의 방을 지나고, 또 몇 개의 복도를 지나쳤다. 그럴 때마다 다르킨의 웃음소리는 더욱 선명해져만 갔다.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긴장한 얀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는 그의 감각으로도 이 복도의 끝에 자리한 강대한 기척을 느낄 수 있었으니.

이 소름 끼치는 목소리의 주인과 조우할 때가 정말 머지않았음을 저절로 알게 됐다.

[잘 왔다. 어리석은 침입자들아…….]

그렇게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던 길이 끝나고. 아주 거대한 공동에 접어든 순간.

[나의 진화를 처음으로 목도하는 영광이 주어졌음에.]

그가 있었다.

[영광으로 여기거라.]

“영광으로 여기거라.”

거대한 뼈날개와 꼬리, 그리고 피부를 빼곡히 감싼 황금색의 비늘. 피처럼 붉은 입술과 비늘과 같은 금색으로 번뜩이는 뱀눈을 한…….

칸이 겪었던 그 어떤 회차에서도 존재한 적 없던, 용인(龍人)의 모습을 한 다르킨 페레야스가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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