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 속 야만전사-45화 (45/132)

#045화. 경계마을 (5)

바그너의 드워프에게 드라우프니르의 검집을 받았을 때부터 해왔던 상상이다.

마나를 밀어내는 성질을 지닌 검집과 인간의 규격을 벗어난 초인적인 근력이 합쳐진다면, 마법을 받아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부우욱! 푸화하학─!

그 실험은 성공이었다. 정확히는 반쪽짜리에 불과한 성공.

뭉근한 마나의 덩어리를 검집이 후려치는 감각과 함께, 아엘로스의 불새가 방책의 반대 방향으로 튕겨져 나가더니 해자에 빠지면서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애초 의도한 것처럼 일격에 소멸치는 건 실패했으나, 방향을 되돌리는 데에는 성공한 것.

‘이게 진짜 되네.’

마법을 튕겨내거나 베어내는 기예가 마냥 희귀한 것은 또 아니다.

오러, 신성력 따위를 다루는 기사나 성기사는 물론이고. 검의 달인들은 극에 달한 검술로 마법을 반으로 갈라버리는 이적을 선보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특수한 힘이나, 절정에 달한 기술조차 없이 순수한 근력과 조금 특수한 재질의 검집만으로 그게 가능하단 건 대단한 일임이 틀림없었다.

“……마법을 갈랐어?”

“설마 저 야만인이 제국의 검호들처럼 검의 극의라도 깨달았다는 소린가?”

“말도 안 돼…….”

꼼짝없이 불에 타 죽을 거라 생각했던 경계마을의 용병들, 자기들 대장이 부리는 불새가 방책을 모조리 불태울 거라 확신하던 마적단 양측에서 당혹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

가장 당황한 것은 마적단의 대장인 남자였다.

그가 방금 선보인 아엘로스의 불새는 저 마탑의 현자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진짜 마법사’가 직접 각인해준 주문이었으니까.

진짜 고위계 주문과 비교하면 손색이 있다고 하나, 마나도 없는 열등한 야만인 따위에게 파훼될 것이 아니란 말이다.

‘저 검집이 아티팩트라도 되는 건가?’

가장 먼저 떠오른 가능성은 야만인이 휘두른 검집이 아주 특수한 기물이라는 것이었다. 고대의 아티팩트나, 간혹 드워프의 보물선에서 나온다는 전설의 마검 같은-.

“허…….”

정말 그렇다고 한다면 그것도 기가 찰 일이다. 대체 어느 괴짜가 검집 따위에 그런 공을 들인단 말인가. 드워프 장인이 심심풀이로 괴상한 물건이라도 만든 게 아니고서야…….

“이만 눈 뜨시오. 보아하니 주문을 쓰다가 강제로 끊긴 모양인데, 몸을 좀 추스르고.”

“아, 네엡.”

정작 모두를 놀래킨 칸 본인은 담담한 반응이었다. 어차피 이 검집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기술이니.

곧 죽을 환자처럼 안색이 나빠진 촌장을 조심스레 내려놓은 칸이 검집을 휘휘- 털며 경계탑의 난간을 붙잡고 뛰었다.

턱.

가벼운 몸놀림으로 해자를 훌쩍- 뛰어넘은 칸이 해자를 등지고 싸우던 용병들을 향해 툭 내뱉었다.

“그쪽들도 안에 들어가시오. 정 뭣하면 다리라도 지키고 있던가.”

“다, 당신은 어쩌려고요…?”

“당연한 걸 묻는군.”

저놈을 족쳐야지. 이 상황이 마냥 즐겁다는 듯 이빨까지 드러내며 웃어 보인 칸이 도끼를 집어 들며 척척 앞으로 걸어나갔다.

“괴, 괴물이 온다!”

“대장…!”

“씹새들이, 이젠 보는 놈들마다 괴물이라 하네.”

이렇게 잘생긴 괴물이 어디 있다고. 속으로 투덜거린 칸이 커다란 외날 도끼를 등에 턱 하니 올려두고 경고했다.

“이제부터 앞길 막는 놈들은 전부 뒈진다. 죽고 싶은 놈들만 막아서. 지금부터 다섯을 센다.”

경계마을의 용병들과 뒤엉켜 싸우던 마적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눈앞의 야만인과 싸울 자신은 없고, 그렇다고 도망치자니 뒤에 있는 대장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한 혼란의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아예 전장을 이탈해서 도망치려는 움직임이 보병들 틈에서 보이자, 칸도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다섯.”

“씨이발! 도망쳐어─!”

“저 숫자도 모르는 야만인 자식이!”

“모르긴 뭘 몰라, 새꺄!”

그야말로 포탄처럼 쏘아진 칸이 눈 깜짝할 새에 보병들의 앞까지 당도했다.

안 그래도 거대하던 칸의 신형은 코앞에선 거인이나 다름없었다. 적어도 마적들은 그렇게 느꼈다.

감히 대적할 생각이 들지 않았고, 곧장 등을 돌려 도망쳤다.

쩌억!

칸이 휘두른 도끼가 자비 없이 마적 하나의 머리를 쪼갰다. 칸 보고 숫자도 모르냐며 지껄인 놈이었다.

“나 수리 가형 본 사람이야. 새꺄.”

그 핀잔이 무슨 뜻인지 마적은 죽어가면서도 알지 못했다. 죽어가면서 그가 생각한 건, 그래서 ‘넷’은 어디 빼먹었냐는 것이었다.

소소한 복수를 끝낸 칸은 양 떼를 도륙하는 늑대처럼 날뛰었다. 그냥 싸워도 승산이 없을진대, 등을 보이고 도망치는 마적들은 그냥 표적과 다를 게 없었다.

후웅- 쩌억! 후웅- 쩌억!

칸의 도끼가 얼추 여섯 명의 시체를 만든 시점이었다. 뒤쪽에서 말없이 상황을 지켜보던 마적단의 대장이 움직임을 보였다.

“너희가 나서라. 그냥 짓밟아버려.”

“예!”

드디어 기병의 등장이었다. 방책과 먼 곳까지 칸이 돌출되는 순간까지 기다린 것이 분명한 타이밍.

투두두두…!

첫 충격은 중갑을 장비하지 않은 일반 기병들부터였다. 순차적으로 전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찍어누를 생각인 듯했다.

‘이래야 싸울 맛이 나지.’

칸이 환영의 의미로 환히 웃었다.

매서운 기세로 내달리는 기병들이 검을 들어 올렸고, 칸이 도끼를 세게 움켜쥐었다.

“이쪽에서 간다!”

칸의 외침에 충돌의 순간을 계산하던 기병들이 눈을 부릅- 떴다.

제자리에서 받아치려는가 싶던 칸이 아예 기병들을 향해 역으로 달려든 탓이었다.

갑옷과 오러로 육체를 보호하는 기사라도 하지 않을 미친 짓을, 도끼 한 자루를 쥔 맨몸의 야만인이 시도한 것이다.

“으깨버려…!”

콰직! 콰직! 우드득─!

서너 기의 인마와 도끼를 쥔 야만인이 뒤엉킨다.

칸은 맨 앞에 튀어나온 기병의 가슴팍을 도끼로 찍어버리고, 힘을 주어 냅다 밀쳤다.

주인을 잃은 말이 칸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칸은 그때까지도 힘을 풀지 않았다. 도끼날에 시체를 꽂아 넣은 채로 뒤에서 달려오는 기병을 향해 휘둘렀다.

“허억…!”

퍽!

제 동료를 향해 검을 내리찍고서 놀란 녀석이 도끼와 함께 휘둘러진 시체에 얻어맞고 우당탕 굴러떨어졌다.

뒤따르던 말이 그놈을 짓밟고 놀라 투레질을 하는 와중에 말에 탄 놈이 바닥에 떨어져 목이 부러졌다.

“죽어라! 괴물 놈!”

가장 뒤에 있다가 기회를 포착한 마적이 교활하게 눈을 빛냈다.

아예 말로 들이박을 생각인 듯, 미리 충격에 대비하고 웅크린 게 보였다. 새끼- 머리 좀 쓰네.

어지간한 중형마는 그 무게가 400kg을 가볍게 넘는다. 하물며 전력으로 내달리는 말과 추돌사고가 난다면야, 인간의 몸이 버틸 리가 없었다.

꽈드드득….

그러나 칸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놈은 마지막까지 그 사실을 상기했어야만 했다. 도끼를 쥔 손에 양껏 힘을 준 칸이 도끼를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쩌어어억─! 쿵!

순간 엄청난 저항감이 도끼를 통해 손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다만 그뿐이었다.

왼손 전체의 근육이 움찔- 요동치는가 싶더니 말의 상반신이 바닥에 내리꽂히며 곤죽이 되었다.

“사, 살려……!”

꿍-.

칸이 강제로 찍어눌러 말을 멈춘 덕분에 안장에 여전히 발을 걸친 채 살아있던 마적이 큼지막한 주먹에 얻어맞고서 골통이 깨져 즉사했다.

“살려주기는.”

손에 묻은 끈적한 타액과 살점을 대충 털어낸 칸이 고개를 들었다.

이번엔 갑옷을 입은 가짜 깡통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중갑기병, 촌장이 말한 마적단의 ‘정예’들이다.

“드디어 납셨군.”

가장 뒤쪽, 마적단 대장의 모습도 함께 보였다.

잡졸들로 힘을 빼놓고 진짜 전력이라 할 수 있는 중갑기병들과 합공으로 칸을 죽일 심산이리라.

칸은 스스로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체력은 문제가 없고, 도끼는 아직 한참 써먹을 수 있으며, 심원의 방패도 충전을 마쳤다.

그에 반해 상대는? 중갑으로 무장한 인마가 모두 일곱. ‘아엘로스의 불새’가 새겨진 검을 쓰는 놈이 대장으로 있는 만큼, 또 어떤 주문 각인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겉으로 보기엔 누구라도 이렇게 생각하겠지.

그야말로 열세다. 이번에야말로 저 야만인은 버틸 수 없을 거다….

칸은 그러한 추측들을 부정하듯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이 엿 같은 미들랜드에 빙의한 이후, 오로지 몸뚱어리 하나만 믿고 생존한 칸에게 이런 조건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어디, 해 보자고.’

이번에도 증명하면 될 뿐이다.

야만전사에겐 도끼 한 자루와 튼튼한 몸뚱어리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을.

*

*

*

‘저게 사람이 맞나?’

마적단의 대장, 호세는 한 도시의 기병대를 총괄하던 위치에 있던 사내였다.

비록 마적의 탈을 쓰고 있다곤 하나, 마상 전투에 관해서는 북부에서도 알아주는 전문가라는 소리.

그런 호세가 보기에, 저 야만인은 존재 자체가 상식을 부정하는 것과 같았다.

아엘로스의 불새를 검집으로 갈라버린 건 특수한 기물의 도움을 받았다손 치더라도, 도끼 한 자루로 기병들과 정면에서 부딪치는 저 신위는 또 어떻게 설명하지? 이번에도 아티팩트? 아니면 몸뚱어리에 마녀의 실험이라도 받은 건가?

‘제기랄-.’

호세는 상념을 접었다.

‘어차피 놈도 인간이다.’

칼로 쑤시면 죽는 건 매한가지고, 트롤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 결국엔 지치기 마련이니 혼자서는 한계가 있다.

자신처럼 평범한 인간과는 다른 인종처럼 느껴지던 영지의 기사도 목에 칼이 꽂히고선 싸늘한 주검이 되어 죽지 않았나.

철컥─.

투구의 안면 가리개를 덮자 시야가 제한된다. 그러나 호세의 감각은 그 이전보다도 훨씬 선명해졌다. 갑옷에 새겨진 주문의 힘이었다.

“서둘러 처리하고, 임무를 완수한다.”

“예─! 속보!”

야전에선 재앙과 같은 중갑기병들이 한 명의 전사를 향해 달려든다.

처음엔 인간의 발로 따돌릴 수 있을 만큼의 속도였다. 그리고 거리가 좁혀들자 점점 가속이 붙었다.

두두두두……!

내용물이 기사가 아닌, 평범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그 위력은 경시할 수 없다.

갑옷의 무게에 속도가 더해지면 그것만으로도 인간의 연약한 몸 따위는 피곤죽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

“흐아아압!”

가장 선두에서 달리던 두 명의 중갑기병이 기합을 내질렀다.

도시 기병대에서 호세를 제외하곤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녀석들이다. 가장 중요한 첫 충돌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야만인과의 거리가 스무 걸음은 넘게 남아 보이는 시점이었다. 선두의 중갑기병 둘이 말머리를 비스듬히 돌리며 갈라졌다.

정확히 야만인의 측면을 점하는 모양새였다.

“죽어어엇…!”

쐐에에에엑─!

두 중갑기병이 위로 치켜든 검을 내리치자 공기가 찢어지는 듯한 소음이 일었다. 그리고 이어진 굉음이 모든 소음을 잡아먹었다. 꽈아앙──!!

어찌나 소리가 컸는지 순간 눈앞이 아득해질 정도였다.

귀에서 죽죽- 피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이내 호세의 감각이 되돌아왔고, 다시 굉음이 터졌다.

─────!!!

어억. 투구 속에서 신음을 토한 호세가 이를 악물었다. 주문으로 증폭된 감각이 오히려 해가 됐다. 마치 코앞에서 천둥벼락이 꽝꽝 내리치는 것 같았다.

호세는 이를 악물었다.

귀는 물론이고 입 안에서도 피가 흘렀다. 아무래도 혀를 깨문 모양인데, 호세는 결국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검 자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러자 먹먹했던 감각이 되돌아온다. 갑옷을 입고 움직이느라 빠졌던 체력도 되돌아왔다.

아니, 오히려 이전보다 강한 활력이 용솟음쳤다. 천근 같던 갑옷의 무게가 깃털처럼 느껴졌다.

쾅!

그러고 나서야 호세는 굉음의 정체를 제대로 인지할 수 있었다.

야만인의 도끼가 벼락처럼 움직이더니 검을 부서뜨리고, 갑옷을 통째로 우그러뜨리는 소리였다.

쩌엉─!

가장 후열을 내달리던 중갑기병이 두려움을 느끼고 말머리를 돌리려다, 야만인이 던진 도끼를 등판에 얻어맞고 바닥을 굴렀다.

이제는 정말 호세의 차례였다.

‘괴물 같은 놈……!’

피를 대가로 힘을 손에 넣고 나서야 깨달았다.

저 야만인은 인간이란 종으로 판단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저건 기사나 성기사처럼 순수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존재였다.

‘하지만, 그건 지금의 나도 마찬가지다!’

내면의 무언가가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저 야만인을 죽여! 죽이고 피를 취해! 붉게 충혈된 호세의 눈이 안광을 흩뿌린다. 그와 동시에 검신에서 불꽃이 인다.

아엘로스의 불새-.

마나를 태워 만들어진 불꽃의 새가 호세의 생명력을 살라먹으며 현현하고 있었다.

“환장하겠네.”

스윽. 입가에 묻은 피를 손등으로 훔친 야만인의 중얼거림에 호세가 광소를 터뜨렸다.

“놈──!”

불꽃의 새가 검신을 휘감고서 타오른다. 흑색의 갑주가 고열에 달궈지고, 살갗이 녹아내린다. 심지에 불을 붙인 양초가 녹아내리는 것처럼.

그리고 달려드는 호세의 앞에서, 칸은 마찬가지로 검을 들었다.

[놓아라, 미친 인간아! 설마 저 검이랑 날 부딪치려고……!]

우우웅- 드라우프니르의 붉은 검신이 투정이라도 부리듯 떨었다.

‘안 부러져.’

[녹는다! 녹는다고!]

글쎄, 괜찮다니까 그러네. 여태까지 침묵을 고수하던 드라우프니르의 목소리에 속으로 답한 칸이 자세를 취했다.

오랜만에 잡는 검의 감촉과 무게감이 조금은 낯설었지만, 금새 감을 잡았다.

어차피 복잡한 검술은 필요가 없다. 그런 걸 배운 적도 없거니와, 지금 필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힘이다.

[도약]

강하게 진각을 내딛자 반투명한 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한참 전에 90% 넘겼던 도약이 드디어 B등급에 오른 것이었다.

새로 추가된 효과에 눈을 가져간 칸이 피식 웃었다.

보통 도약을 사용할 때, 낮은 높이로 돌진하듯이 뛰려면 위력을 조절하는 수밖에 없었다.

정도 이상으로 힘이 들어가면 높이가 너무 높아져서 포물선을 그리니 속도와 위력이 죽어버리니까.

그러나 새로 추가된 효과가 상상대로의 효과를 낸다면…….

‘마침 실험해보기 딱 좋은 상황이구만.’

반투명한 창에서 눈을 뗀 칸이 시선을 다시 정면으로 가져갔다.

자기 몸이 녹아내리는 것도 느끼지 못하는 듯. 광소를 터뜨리며 불꽃을 휘두르는 기병의 모습은 악마의 군대와 닮아 있었다.

사람이라면 본능적인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는 광기마저도 느껴졌다.

“뭐. 새삼 쫄기엔 너무 멀리 왔지.”

“죽어─라──!”

아주 천천히, 앞으로 내디딘 발을 뗀다.

도저히 주체할 수 없는 거력이 발아래에서 용솟음치고, 땅에 박아넣듯 세운 발끝을 따라 지면에 균열이 퍼져나간다.

그리고.

땅을 밀어내는 감각으로 뛴다.

쩌저저저적…….

쩌엉──!

회색 섬광과 불꽃을 휘감은 악마가 교차한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격돌.

호세는 검을 치켜든 자세 그대로 굳어 있었다. 작은 태양처럼 타오르던 불꽃의 새는 어느새 종적을 감춘 뒤였다. 연료로 삼던 생명력이 끊긴 탓에 소멸한 것이다.

검을 쥐고 있던 손이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반면에, 마치 공간을 뛰어넘은 것처럼 호세의 한참 뒤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칸이 아무렇지 않게 검을 휙휙- 털었다.

[크아악…! 미친 인간노옴……! 어서 얼음을 가져와라! 이 몸이 녹아내리기 전에! 어서─!]

‘잠깐 스쳤는데 엄살은.’

[크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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