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 속 야만전사-58화 (58/132)

#058화. 와이번 토벌전 (1)

하늘에서 엄청난 속도로 강하하는 와이번과 충돌하는 건, 제아무리 칸이라도 시도하지 않을 모험이었다.

다만 직접 부딪치지만 않는다면, 오히려 큰 타격을 입힐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쾅!

왼발을 축으로 오른발을 뒤로 당긴다.

흔히 생각하는 투창 자세였는데, 그의 오른손에 들린 건 마검도 여신의 축복이 깃든 도끼도 아니었다.

어느 도시에서건 쉽게 구할 수 있는, 특별할 것 없는 장창.

칸의 힘으로 제대로 휘두르면 잠깐도 버티지 못할 내구성이지만.

‘한 번이면 충분하지.’

콰드드드득! 팡─!

칸의 손을 떠나간 장창이 눈 깜짝할 새에 와이번의 코앞까지 쏘아졌다.

그러나 맞지 않는다.

거대한 피막 날개를 접어 몸을 빙글- 돌리는 것으로 손쉽게 투창을 피해낸 와이번이 재차 포효를 터뜨렸다.

‘빠르다.’

하기야, 저만한 속도의 비행을 온전히 통제하려면 보통 반사신경으론 안 될 터였다.

무엇보다 게임에서의 경험으로 와이번의 속도가 지극히 빠르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다만 아는 것과 실제로 체감하는 것은 별개의 영역이었다.

쿵─!

놈이 앞발을 쫘악- 펼치며 낚아채기 위한 동작을 준비하기 무섭게 칸이 뒤로 도약을 사용해 거리를 벌렸다.

드르르르륵!

와이번의 날카로운 발톱이 애꿎은 땅을 헤집었다. 마치 몇 자루의 명검을 발끝에 달고 다니는 것 같았다.

부드럽게 땅을 관통한 발톱을 뽑아낸 와이번이 재차 칸을 향해 가속한다.

‘여기선 좀 힘들겠어.’

지나치게 탁 트인 평야다.

놈의 속도를 생각하면 평범한 방식으론 투창을 적중시키기 어려울 테고, 강하를 시도하는 순간 충돌하자니 너무 큰 불리함을 강요받는 셈.

‘이러면…….’

칸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했다.

게임에서 와이번을 상대한 경험 속. 수많은 조건들과 그에 따른 승률, 그 공식에 자신의 스펙을 대입해 가장 나은 선택지를 골라낸다.

미들랜드에서 와이번과 싸운 경험이 가장 많을 게 분명한, 미들랜드 퀘스트의 고인물인 칸만이 할 수 있는 계산.

‘그곳이라면, 가능하겠어.’

그에게 주어진 선택지 중 가장 나은 전장과 싸움법을 선정한 칸이 와이번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 행동에 자극받은 와이번이 귀가 먹먹할 정도의 포효를 터뜨리며 저고도에서의 비행을 감행했다.

반격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나 다름없었으나, 칸은 무시했다.

“크오오오──!”

제 노림수가 사냥감에게 통하지 않자 분노한 와이번이 빠른 속도로 칸의 등을 쫓는다.

도약을 연신 사용하며 내달리는 칸의 속도를 한참 상회하는 속도였다.

그렇게 거리가 바싹 좁혀지려던 그때. 목초지에 유일한 장애물이 와이번의 발톱을 막아섰다.

“크익……!”

칸에 의해 난도질당한 바실리스크의 시체다.

놈은 어떤 이유인지 바실리스크의 시체를 공격하지 않고 머뭇거렸는데, 칸은 그 틈을 타 바실리스크의 얼굴에 꽂힌 도끼를 회수하고 재차 도약을 써 거리를 벌렸다.

──────!

‘더럽게 시끄럽네…!’

아룡 사이에 동족애 따위가 있을 리가 없건만, 작금 와이번의 울부짖음에선 칸이라도 알 수 있을 만큼 노골적인 분노가 느껴졌다.

‘시발. 그놈이 니 애인이라도 되는 거냐?’

이유야 알 수 없지만, 칸의 행동이 와이번을 자극한 것만은 분명했다.

후방에서 들려오는 와이번의 날갯짓 소리가 가열찬 굉음을 동반하며, 빠르게 거리를 좁혀왔다.

“제기랄…!”

이제 별달리 몸을 숨길 장애물조차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등을 돌린 칸의 시야가 온통 붉은색으로 칠해진다.

와이번의 커다란 몸뚱어리가 바로 앞이었다.

잠깐의 집중으로 도끼를 주머니에서 꺼낸 칸이 거칠게 땅을 내디디며 자세를 잡을 새도 없이 전력으로 팔을 내쳤다.

투쾅──!

“큽!”

그런 경험은 없지만, 마치 트럭에라도 치인 것 같았다.

온몸의 장기가 훅- 밀려나는 격통과 함께 몸이 뒤쪽으로 날아간다.

압도적인 체구와 속도로 밀어붙이는 와이번을 상대로 섣불리 접근전을 펼칠 수 없는 이유를 몸으로 체감한 것이었다.

‘이대로 다시 내달리면…!’

와이번과 충돌하며 생겨난 힘을 그대로 이용해 다시 거리를 벌리려던 칸이 눈을 부릅떴다.

어느새 칸의 머리 위를 점한 와이번이 발톱을 쫘악 펼치고 있었다.

‘성흔은……?’

쓸 수 없다.

와이번의 숨결을 막고서 힘을 다한 건지, 심원의 성흔은 빛을 잃은 지 오래. 잔뜩 얼굴을 일그러뜨린 칸이 왼손을 펼쳤다.

촤라락!

아라크네의 은반지에서 사출된 침묵실이 와이번의 두꺼운 발목을 묶는다.

놈은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 듯 날카로운 발톱으로 칸을 찢어발기기 위해 움직였다.

“흐읍!”

거친 호흡과 함께 칸이 공중에서 몸을 웅크리며 외줄을 타듯 허리를 튕겼다. 그렇게 공중에서 빙글- 회전한 칸이 와이번의 측면으로 회피에 성공했다.

“키엑?!”

그에 와이번이 당황한 울음소리를 냈다.

칸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재차 침묵실을 당겨 와이번의 발목으로 순식간에 날아들었다.

“크──!”

모종의 수법으로 칸이 제 몸에다 뭔가를 연결했다는 걸 알아챈 듯, 놈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고도를 올리려는 낌새를 내보였다.

‘됐다.’

칸은 미미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린 후, 허리를 재차 튕기며 침묵실을 없앴다.

반동과 함께 거센 부유감이 칸의 몸을 엄습한다. 그러나 의도한 바다.

칸은 당황하지 않고 가까워지는 지면에 맞춰 발을 굴렀다.

[도약]

─D등급 효과, 안전한 착지 :: 낙사 데미지가 대폭 감소한다.

일종의 편법이다.

착지하는 순간 타이밍을 맞춰 도약을 쓰면, 추락할 때 데미지를 크게 감소시킬 수 있었다.

빙의 초기. 전사의 시험이랍시고 절벽과 절벽 사이를 뛰어넘게 하는 미친 대전사 때문에, 의도치 않게 발견한 방법.

콰앙-!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속도였다.

아우토반을 질주하는 스포츠카에서 머리를 내밀면 이럴까.

속으로 시답잖은 비유를 떠올리며 피식- 웃은 칸이 뒤를 흘겼다.

‘제대로 빡쳤나 본데.’

아룡 특유의 삼백안이 쭈욱- 찢어져선 본래의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게 됐다. 붙잡히면 아주 험한 꼴을 보게 되리란 것은 명정한바.

그거야 잡혔을 때 얘기지.

칸은 코웃음을 치고서 재차 도약했다. 확실히, 체력이 늘어난 덕분에 도약을 여러 번 썼음에도 전투에 지장이 갈 정도로 체력이 빠지진 않았다.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하면, 놈을 땅에다 내리꽂기 전까지 빈사 상태에 이르러선 안 되는 까닭에 체력 배분을 몹시 신경 쓰고 있었다.

‘일단 도시로 들어서기만 하면 반쯤 성공이야. 그 이후엔…….’

직전의 한 수로 제법 거리를 걸린 덕분에 생각을 정리할 틈이 생겼다.

이후 어떻게 행동할지 머릿속에 그리며, 승산을 점쳐보던 칸이 문득 이젠 점으로 조차 보이지 않는 일행을 떠올렸다.

‘알아서 잘 도망쳤겠지.’

*

*

*

“어, 어쩌죠?”

“어쩌기는. 뒤를 쫓아서 그를 돕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있습니까?”

“그치만…. 전사님이 도망치라 한 이유가 있잖아요. 저희 실력으론, 방해만 될 거예요!”

“와이번의 주의를 한 번 끌기만 해도, 충분한 도움이 될 겁니다.”

“하지만. 하지만…!”

“이래서 마법사란…….”

“그만, 그만! 우리끼리 싸워서 나아질 게 없네.”

얀과 마이아의 말다툼을 중재한 론이 머리를 짚었다.

‘상황이 좋지 않아….’

애써 이성적인 척을 했지만, 론도 머리가 복잡하긴 마찬가지였다.

당연하지 않나. 그가 반평생을 용병으로 살아온 것과 별개로, 사안의 중대함이 지나치게 막중했다.

애초에 바실리스크니, 와이번이니, 하는 괴물들과 엮이는 일 따위. 제아무리 험한 인생을 사는 용병이라도 보통은 겪지 못한단 말이다.

‘형씨가 이길 수 있을까?’

물론, 칸은 강하다.

다르킨과의 전투부터 지금까지 곁에서 지켜본 론은 그 사실을 잘 알았다.

하지만 와이번도 격이 다른 괴물인 건 마찬가지 아닌가?

‘형씨가 혼자 싸우겠다 말한 건, 그래도 이길 수 있다는 뜻이 아니겠지.’

평소대로 일행을 신경 쓰면서 싸울 만큼 널널한 상대가 아니라는 거다.

론은 고민했다.

그의 신념을 생각하면 응당 칸을 돕는 것이 옳겠으나, 정말 자신과 일행의 조력이 칸에게 도움이 될까?

그러한 생각이 론의 선택에 망설임을 더하고 있었다.

“저, 저기. 어디 가시는 거예요…!”

얀의 당혹스런 목소리에 론이 생각을 멈췄다.

가녀린 체구와 명랑한 언행 속, 뛰어난 체술과 무자비함을 감춘 소녀. 엘레나가 말없이 칸이 떠나간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가씨. 설마 형씨를 따라갈 생각인가?”

자기가 해놓고도 멍청한 질문이다. 당연히 그럴 생각이겠지.

론이 정말 묻고 싶었던 건, 와이번이라는 규격 외의 괴물을 상대로 도움이 될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엘레나의 대답은 간단했다.

“여신께서 택한 위대한 전사가, 빈껍데기밖에 남지 않은 아룡에게 질 리가 없잖아요?”

“그게 무슨…….”

“애초에, 어디로 도망친단 말인가요.”

슬쩍 고개만 돌려 말하는 엘레나와 눈이 마주친다.

순백의 광채를 머금은 그녀의 눈동자는, 사람의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초월적인 무언가가 그녀의 입을 빌려 의지를 전하는 것만 같았다.

그제서야 론은 엘레나가 말한 ‘도망칠 곳이 없다.’는 것이 진실임을 깨달았다.

예지에 가까운 론의 육감을 억누르던 드래곤 피어가, 엘레나의 음성에 실린 기운에 걷혀나간 덕분이다.

‘어느 방향을 선택해도 위험하다고?!’

사방팔방 어느 쪽도 안전한 방향이 없었다.

“설마……!”

사태의 심각함을 깨닫고 론이 경고를 전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것’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체 어디에 모습을 감추고 있었는지, 수백에 달하는 마물의 떼가 일행이 있는 곳으로 밀려든다.

론은 본능적으로 정답을 도출해냈다.

호드의 규모는 아룡의 수준에 따라 정해져 있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바실리스크와 기존의 호드를 제거한 행동이 새로운 마물 호드를 불러들인 셈이었다.

결국 일행에게 남은 선택지란 와이번이 죽을 때까지 버티거나, 지금이라도 칸의 뒤를 쫓아 그를 돕는 것….

‘아니, 중간에 발이 묶일 수도 있다!’

론은 일행의 짐이 든 배낭을 바닥에 내팽개쳐 무게를 가볍게 하고, 일행에게도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하라 일러두었다.

짐승형 마물 중에는 인간의 속도를 한참 상회하는 것들이 많은 까닭이다.

“달리게! 얀은 내가 책임질 테니! 어서!”

“네? 으에엑!”

얀을 짐짝처럼 어깨에 짊어진 론이 냅다 뛰기 시작했다.

목숨만큼이나 소중히 여기는 쇠망치를 손에 꼭 쥔 채.

쾅…. 쾅……. 쾅……!

칸과 와이번이 격돌하고 있는 건지, 달리는 방향의 한참 앞에서 심상찮은 소리가 들렸다.

론의 얼굴이 굳는다.

‘저 마물들을 데리고 형씨와 합류하는 것도 썩 좋은 방법은 아닌데…!’

차라리 칸이 와이번과의 전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마물들을 최대한 붙잡아두는 게 옳은가?

아니, 일행의 실력으로 수백에 달할 게 분명한 마물을 감당하는 건 불가능하다. 파도에 휩쓸리듯 순식간에 당하고 말 터.

‘떠올려라…. 떠올려…!’

언제나 최상의 선택지를 점지해주던 육감조차 고장이 난 것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그만큼 상황이 최악이라는 뜻이리라.

“허억! 허억…!”

게다가 체감상 알-라스델의 성이 보여도 이상하지 않을 거리를 내달렸음에도 성벽은커녕, 알-라스델의 도시 중심부에 우뚝 솟은 높다란 첨탑조차 보이질 않았다.

“크르르륵!”

“취──!”

짐승형 마물들의 울음소리가 귓가를 파고든다. 그만큼 거리가 좁혀진 거다.

론이 뒤를 돌아보니, 혀까지 빼물고 달려드는 온갖 종류의 마물들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숫자를 세려는 엄두조차 내지 못할, 물경 수십에 달하는 거대한 짐승들이 당장이라도 일행을 물어뜯을 기세로 지척까지 당도한 지금.

이대로 도망만 쳐서는 발이 묶여 마물의 군세를 맞닥뜨릴 뿐.

누구든 이 자리에 남아 마물의 진격을 늦출 필요가 있었다.

선택의 시간이다.

이 자리에 남아, 굶주린 짐승들에게 몸을 내던질 자를 선택하는….

으드득….

론은 조용히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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