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 속 야만전사-65화 (65/132)

#065화. 호문쿨루스 (1)

어째서 처음부터 떠올리지 못한 걸까. 칸은 스스로의 멍청함을 질책했다.

호문쿨루스, 지구에서도 이런저런 매체에 간혹 등장하는 인조 생명체. 그건 이 미들랜드에도 당연히 등장한다.

진리의 추종자 소속의 네임드 보스로.

진리의 추종자들이 생명과 영혼의 금기에 손을 대면서 만들어진 실험체인 녀석은, 평범한 사람들처럼 행동하고 심지어 난해한 학문인 마법조차 완벽하게 이해하는 지능까지 갖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은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이 될 수 없었다.

당연한 것이다.

고대의 마법사들조차 완벽히 정복하지 못한 영혼이란 금역을, 한참 수준이 떨어지는 현대의 마법사가 어찌 할 수는 없었다.

‘인간의 행동을 흉내 내고, 완전한 인간이 되는 것에 집착하는 인조 생명체… 라는 설정이었지.’

그런 놈이 영혼과 관련한 실험이 한창인 곳에 없는 것이 되레 이상한 것이었다.

그 영혼의 해석이 미완성이기에, 여전히 미완성의 실패작으로서 존재하는 가짜니까.

“사람의 모습을 본뜬 골렘을 조종해, 되먹지도 않은 연극에 심취한 실패작…. 그게 너였을 텐데.”

“…….”

까드득 하고. 노인, 인형술사의 입에서 기괴한 소리가 났다.

“북부의 실험이 꽤 효과가 있었나 보지? 골렘이나, 방부처리를 마친 시체나 가지고 놀던 놈이, 살아있는 사람을 조종할 정도면.”

“……대체.”

네놈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

인형술사의 서늘한 음성은 음의 높낮이가 거의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고서 인간의 흉내를 그만두고, 본연의 자신을 드러낸 것이다.

“나에 대한 정보는. 구도자들에게만 허락된 것일진대.”

“글쎄. 그 구도자가 귀띔이라도 해준 걸 수도 있지.”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왜. 정말 아니라고 생각하면, 날 제압하고서 정보를 캐면 될 일 아닌가? 시시콜콜한 대화나 할 게 아니라.”

칸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네가 나와의 대화를 중단하지 못하는 거. 사실은 너도 내부의 유출일 거라 생각해서 그런 거잖나? 어떤 놈의 소행인지 알아내려고.”

이번에도 침묵이다.

지극히 마법사다운 사고능력을 기능의 하나로 갖춘 게 인형술사다.

‘머릿속이 복잡하겠지.’

뜬금없이 나타나 계획을 방해하는 야만인이 마탑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진리의 추종자의 기밀을 샅샅이 꿰고 있음은, 이성적 사고의 괴물과도 같은 놈에겐 내부의 소행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때. 의심되는 구도자가 있나? 네놈을 폐기물로 보는 파괴술사가 나에게 정보를 흘렸을 수도 있고. 네놈을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연금술사가 제 실패작을 부수기 위해 꾀를 부린 걸 수도 있지. 그게 아니라면, 너희가 신처럼 받드는 사도가…….”

“됐다.”

삐그덕- 삐그덕-

기괴한 각도로 돌아가 있던 인형술사의 목이 제 위치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인형술사가 웃었다.

억지로 입을 끄집어당겨 지은 듯한, 기괴한 웃음.

“그래. 직접 알아내면 될 일이지. 처음부터 그랬어야만 했어…….”

“형씨! 마을 주민들이!”

“알고 있다.”

처음부터 말이야. 칸이 한 손에 도끼를, 한 손에 드라우프니르를 집어 들고서 말했다.

“어떤 방법을 써올지 모른다. 양심의 가책 따위는 묻어두고 죽여. 어차피 되살리는 것도 불가능한 빈껍데기니까.”

마치 이전에 사냥한 와이번처럼.

우우우웅─.

칸의 생각을 읽은 드라우프니르가 그에 동의한다는 것처럼 진동했다.

와이번 사냥 이후로 묘하게 협조적으로 나오는 드라우프니르가 마을 주민들의 상태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처음부터 이렇게 알려주고 있었다.

칸의 태도가 처음부터 이상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흐, 그 여유. 언제까지 가나 지켜보도록 하지.”

칸의 경고와 동시에 인형술사가 움직였다.

지팡이로 탕을 텅- 찍자 사방에 몰려들기 시작한 마을 주민들이 굶주린 짐승처럼 달려든다.

어설픈 무장으로 되도 않는 위협을 하던 처음과는 달리, 제대로 된 무기를 각자 손에 들고 있었다.

쿵!

칸이 길을 뚫겠다는 듯 가장 먼저 앞으로 달려나가, 창칼의 틈바구니에 난입했다.

수십 자루의 날붙이가 칸을 향해 동시에 고개를 짓쳐 드는 광경은 꼭 잘 훈련된 정예병들의 움직임 같았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겨우 그 정도였다.

뻐걱! 쾅─!

양손의 도끼와 마검을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것만으로 날붙이의 방벽이 도미노처럼 무너진다.

애들과 어른의 싸움이라도 이렇게 일방적이진 않을 터이나, 칸과 저들의 차이는 그 이상이었다.

[근력 : 62] +1

총 근력 63.

와이번과의 전투로 레벨업을 겪고, 더욱 강해진 칸이었다. 인형술사가 조종하는 촌민들 따위는 훈련용 허수아비조차 되질 못했다.

전방에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그대로 일직선상에 인형술사가 놓여있었고, 칸은 그 즉시 팔을 뒤로 당겼다.

쒜에엑! 투쾅──!

칸의 손을 벗어난 도끼가 말 그대로 포탄이 되었다.

정확히 인형술사가 있는 곳에 명중한 도끼가 굉음과 함께 먼지구름을 일으킨다. 뒤이어 생겨난 충격파에 주민들이 우수수 밀려나는 건 덤.

“해치웠나?!”

‘씹…. 죽은 놈도 되살아나겠다.’

뒤쪽에서 들려온 론의 말에 얼굴을 일그러뜨린 칸이 아에카리스의 주머니에서 새로운 무기를 꺼냈다. 경계마을의 네리아가 건넨 마법검이었다.

이번에는 짧은 송곳 모양의 마법검과 용살검이란 이름이 붙은 흉흉한 마검을 각각 두 손에 쥔 칸이 쾅-! 진각을 밟으며 돌진했다.

먼지구름이 있는 방향으로.

“무식한 싸움법이다.”

“뒈져─!”

순간 번뜩인 칸의 시야에 불투명한 장막을 펼친 인형술사가 눈에 들어왔다. 그 즉시 오른손의 마검을 강하게 내쳤다.

쩌엉─!!

귀가 먹먹할 정도의 충격파. 그러나 인형술사의 장막은 멀쩡했다.

바실리스크의 단단한 비늘조차 상처 낸 칸의 근력을 생각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내구도였다.

“흐읍…!”

칸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가열차게 양팔을 놀려 장막을 부수려 들었다.

쾅! 쾅! 쾅! 쾅─!

짧은 사이에 몇 번의 굉음이 겹친다.

이내 쩌저적- 소리와 함께 인형술사의 장막이 위태하게 흔들렸고, 재차 칸이 마검을 올려쳐 장막을 아예 박살 냈다.

“허튼짓을.”

그러나 인형술사가 지팡이를 휘젓는 것으로 아까의 장막이 재생성된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여유로운 몸짓으로, 이번엔 지팡이가 장막을 짚는다.

투쾅─!

무형의 충격파가 칸의 몸을 통째로 떠민다.

채 반응할 여유조차 없었다. 정신을 차린 순간에 칸은 인형술사가 부리는 인형과의 전투가 한창인 일행의 곁까지 날아갔다.

“칸!”

마침 플레일로 인형 하나를 끝장낸 엘레나가 바닥에 드러누운 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치유의 빛이 스며들면서 골을 흔드는 감각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퉤.”

이거, 상상 이상인데.

인형술사는 진리의 추종자 사이에서도 상당한 전력이었다.

간부급이라 할 수 있는 구도자와 같은 급은 아니어도, 바로 아래 수준은 된다.

그런 녀석이 북부에서 실험을 통해 모종의 결과물을 얻었다면, 상당한 난적이 되리란 것쯤은 당연한 예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심한데.’

스킬을 쓰지 않고도 아룡의 비늘에 상처를 낼 수 있는 일격을 한 번도 아니고 십수 번 버티는 방어 주문이다.

싸움에 대비해 미리 준비해둔 거라면 모를까. 그걸 즉석에서 재생성하는 건, 분명 비정상적이었다.

“당황한 눈치군. 네놈의 예상과 많이 다른가? 하기야.”

장막의 뒤에 선 인형술사가 조소했다.

“다른 구도자들도 이 내가. 이토록 강해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조차도 처음엔 믿을 수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게 현실이다.”

퉁- 인형술사의 지팡이가 바닥을 찍었다.

그러자 죽었다고 생각한 인형들이 하나둘 몸을 일으킨다.

시발, 흑마법사로 전직이라도 한 거냐? 칸이 미간을 좁혔다.

“나는 달라졌다. 아직은 불완전하지만, 머지않아 결실을 맺는다면… 진정한 의미의 완전함을 손에 넣겠지. 그렇게 된다면 구도자들도 날 우러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 사도께서도…….”

“지랄을 하는군.”

“그 전에. 너를 살아있는 인형으로 만든 뒤, 감히 나를 방해하려 든 구도자의 정체를 알아내야겠다.”

인형술사의 눈에서 광망이 튀었다. 막대한 양의 마나를 운용하기 시작했다는 증거.

“감히 날 능멸하려 한 네놈을 가지고 노는 것도. 여흥으로는 괜찮겠지.”

*

*

*

콰하하하학!

불꽃의 파도가 인형들과 전투하던 일행들을 덮쳤다. 칸이 나서서 마검의 검집으로 불꽃을 흩어놓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당했을 터.

그러나 감사 인사나 할 틈이 없었다.

처음엔 날붙이 든 목각인형에 가까웠던 인형들이, 전술적인 움직임과 함께 매서운 일격으로 일행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지랄 났군!’

검집을 다시 소드 벨트에 고정한 칸이 마검을 잡고서 반 바퀴 회전했다. 핏빛 기운을 머금은 반월이 인형들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핏!

동시에 칸의 얼굴에서도 핏물이 튀었다.

상반신과 하반신이 나눠진 인형이 기습적으로 무기를 내친 걸, 미처 회피하지 못한 탓이다.

“제법 해괴한 재주를 부리는군.”

그때 인형술사의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든다.

칸은 아예 네리아의 마법검을 주머니에 수납한 뒤, 검집을 검처럼 쥐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화아아악!

멀리서도 살갗이 녹아드는 것 같은 열기를 품은 불새가 전투가 한창인 빈 공터에 현현했다. 일전에 경계마을에서 상대한 적 있는 주문. 아엘로스의 불새다.

“어디, 이것도 흩어버릴 수 있을까.”

과거 칸이 검집으로 파훼한 바가 있는 주문이지만, 경우가 완전히 다르다.

마도구에 각인된 주문의 위력은 본래 위력에 미치지 못하는 법이며, 하물며 인형술사 수준의 주문쟁이가 직접 시전한 경우엔-.

퍼퍼퍼퍼펑─!

그건 아예 다른 주문이나 다름없다.

불새가 비행하는 경로를 따라 연쇄적인 폭발이 일어났다. 검집으로 쳐내려는 순간 불새가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리란 것쯤은 마법에 무지한 칸이라도 쉬이 예측할 수 있었고-.

“전사님! 이건 제가…!”

그 위험성을 가장 잘 느낄 얀이 발작처럼 주문을 일으켰다.

얀의 등에 생겨난 잿빛의 창이 수십 자루. 거기에 잿빛의 장막이 일행의 전방을 감싸듯 펼쳐진다.

이후 말로 표현하기 힘든 굉음이 수차례 일행을 엄습했다. 얀이 쏘아낸 ‘파괴의 창’이 아엘로스의 불새와 충돌하며 일으킨 폭발이 장막을 두들겼다.

“허억…!”

얀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다.

동시에 주문을 발동한 상태에서 충격을 받자 마나가 역류할 뻔한 것이다.

또한, 자신의 주문이 큰 효과가 없었음을 느낀 탓이기도 했다.

“부디, 이 어리석은 양을 지켜주시옵소서.”

엘레나가 기도했다.

섭리를 거스르는 존재에게서 모두를 보호할 힘을 달라고.

제 천칭이 될 소녀에게 빌려준 눈을 통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여신이 그 기도에 기다렸다는 듯이 응하였다.

순백의 방패가 아엘로스의 불새와 충돌하려는 잿빛의 장막과 겹쳐졌다.

다음 순간 커다란 폭발과 함께 아엘로스의 불새가 소멸했다. 역할을 다한 여신의 방패가 자취를 감추었다.

“쯧. 만신전의 위신 따위가.”

기대하던 참상이 일어나지 않은 것에 인형술사가 혀를 찼다.

그리고 사냥감의 목을 물어뜯기 위해 웅크렸던 사냥꾼들이 움직였다. 두 용병이 저돌적인 움직임으로 인형의 포위망을 돌파했다.

마이아의 창이 빛살을 그릴 때마다 인형들이 투둑- 투둑- 쓰러진다. 엘레나의 축복으로 강화된 근력으로 쇠망치를 휘두르는 론의 앞길이 단번에 뚫린다.

그리고 그 뒤에 칸이 있었다.

쯔저저저적……!

A등급까지 불과 조금만을 남긴 투척 스킬의 풀 차징. 게다가 이전과는 딴판으로 느껴질 만큼 강해진 힘을 최대한으로 때려 박았다.

“음?”

공포라는 감정이 없기에 본능에 따른 반응이랄 게 없어야 할 인형술사조차 심상찮음을 느낀 듯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뒈져─라─!”

퍽……!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