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6화. 호문쿨루스 (2)
적중이다.
최대의 위력으로 투척한 마검이 인형술사가 펼친 장막을 순식간에 찢어발기고, 더 나아가 놈의 머리를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소멸시켰다.
거기에 꼬리를 물듯 터진 용권풍의 충격파가 나약한 주문쟁이의 육신을 말 그대로 갈아버리기까지 했다.
생존은 불가능.
제아무리 언데드라도 육신이 가루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면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
이만하면 인형술사의 죽음을 확신해도 될 터였다.
하지만.
“이, 이것들. 아직도 움직이고 있네…!”
인형술사가 조종하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공세가 멈추지 않고 일행을 덮친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던 론이 화들짝 놀라 쇠망치를 휘두르는데,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가열차게 날뛰는 모습까지 내비친다.
그리고 인형 중 하나가 천천히 걸어 나와, 주인을 잃고 바닥에 떨어진 인형술사의 지팡이를 줍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장난하지 말라고….’
칸이 얼굴을 찡그렸다.
“제법. 위험했다. 이건 인간의 힘이 아니군. 야만전사들에겐 신의 힘을 이어받은 대전사라는 존재가 있다고 들었는데, 네놈이 바로 그 대전사라는 것이겠지?”
어느 도시에서건 스치듯 봤을 법한, 흔한 인상의 청년이었다. 그러나 놈이 풍기는 분위기는 아까의 노인과 완전 판박이였다.
“아끼는 인형탈을 잃었어. 한동안 현자 행세는 무리겠군.”
인형술사. 놈이 육체를 갈아탄 것이다.
육체를 갈아타는 패턴이야 게임에서도 종종 나오는 패턴이다.
슬라임처럼 생긴 검은색 액체괴물이 놈의 진짜 모습이고, 그걸 형체도 남기지 않고 갈아버리는 것이 본래의 공략법이고.
그리고 분명 놈을 완벽하게 처리했을 텐데…….
“별 해괴한 재주를 다 익혔군.”
칸은 별거 아니라는 투로 냉소했지만, 속내는 달랐다.
대체 북부에서의 실험으로 놈이 뭘 얻은 건지, 이제는 짐작조차 가질 않았다.
설마, 놈을 죽이려면 이 근방의 인형을 죄다 죽여야 하는 걸까?
‘그건 쉽지 않은데.’
인형들의 저항력은 별거 아니지만, 그 사이에 인형술사가 퍼붓는 주문은 하나하나가 모두 위협적인 까닭이다.
게다가 공터의 와곽에서 새로운 인형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형을 쓸어버리기 전에 놈의 주문이 일행을 쓸어버리는 게 더 빠를 것이었다.
“위대한 지식이지.”
칸의 비꼼에 여상한 투로 대답한 인형술사가 다시 개전을 알리듯, 지팡이로 바닥을 짚었다.
우우웅. 미미한 떨림과 함께 장막으로 육체를 보호하는 인형술사를 보며 칸 또한 네리아의 마법검과 드라우프니르의 검집을 손에 쥐었다.
인형술사의 주변에 나뒹굴고 있는 도끼와 마검의 대신이었다.
“여전히 싸울 생각인가. 네놈에게 승산은 없다.”
“그거야 해보면 알겠지. 무엇보다, 너만 죽고 없어지면 북부에서의 실험은 중단. 네가 얻은 지식도 잊혀지고 말 테니. 도박에 임하기엔 충분한 판돈 아닌가?”
“그 괴력도 그렇고. 마나도 없는 열등종 따위가 아공간을 다루는 것도 그렇고. 구도자들만이 알고 있어야 할 정보에 해박한 것도 그렇고….”
그래, 이 자리에서 네놈은 반드시 붙잡아야겠군. 인형술사가 낮게 읊조렸다.
“동감이다, 씹새야─!”
불시에 날아드는 불꽃의 화살을 검집으로 쳐낸 칸이 앞으로 달린다.
그의 돌진을 저지하려 인형술사가 인형을 움직였다.
“어딜!”
“으랏차…!”
여전히 끝이란 게 보이지 않는 인형의 파도를 론과 마이아가 대신 감당했다.
결국 이 싸움의 향방이, 인형술사와 칸에게 달려있음을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다행히 인형들은 숫자만 많았지, 전력비로만 따지면 론과 마이아가 압도적이었다. 지금까지는.
“컥!”
인형 하나의 골통을 깨부수고 물러나던 론이 돌연 비명을 질렀다
그에 시선을 돌린 칸의 시야에, 복부에 깊은 자상이 생긴 론의 모습이 보였다. 시발, 갑자기 또 뭔…!
“마법! 이것들 마법을 씁니다!”
몸을 낮게 가져간 뒤, 창대로 인형들의 발목을 부러뜨린 마이아가 외쳤다.
쩌엉─! 그 직후 마이아의 몸이 무언가에 얻어맞은 것처럼 밀려났다.
창대로 방어한 덕분에 큰 부상은 없었으나, 입가에서 피가 흐르는 게 충격이 상당한 듯했다.
‘주문. 그것도 회색 마탑의…?’
칸의 얼굴이 당혹으로 일그러졌다. 본래 인형술사는 적색 주문만을 사용할 텐데?
“이것 또한 위대한 진리의 일부이지.”
인형술사가 입매를 비틀었다. 그 시선이 마탑의 회색 마법사인 얀에게 향했다.
“너, 마탑의 떨거지야. 보아하니 마탑에서도 꽤 귀히 여기는 재능인 것 같은데……. 보라.”
잿빛의 창이 인형술사의 등 뒤를 가득 채운다. 방금 전 얀이 펼쳤던 한 수를 능가하는 압도적인 숫자.
“네놈이 보기에, 내 회색 주문은 어느 정도인가. 너희 마탑이 자랑하는 마구스와 비교하면?”
“…형편없어요.”
“흐. 그런가? 그렇다면, 이건 어떻지?”
다음 순간, 인형술사의 지팡이 끝에서 푸른 얼음꽃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에 얀의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진다.
다중 주문 영창. 마탑에서도 특출난 재능을 타고난 이들에게만 허락된 기예.
인형술사 정도의 마법사라면 별 의외랄 것도 없는 재주다.
하지만 다른 속성의 주문을 동시에 펼치는 건 전혀 다른 얘기였다.
“어떻게…!”
“이 청색 주문은, 너희 청색탑의 마구스와 비교하면 어떤가.”
서로 속성이 다른 주문을 동시에 발동하고, 유지하는 것의 난이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얀의 스승인 제롬조차 섣불리 시도하지 않는…. 아니, 애초에 제정신이라면 하지 않을 짓거리다.
다른 속성의 마나가 충돌하며 마나가 역류하고, 폐인이 될 위험성이 무척 크기 때문이다.
“설마…! 탑주님들과 같은 영역에?!”
그랬다.
지금 인형술사가 선보인 기술은, 오로지 마탑의 마스터들과 같은 영역에 들어서야만 가능한 신기였다.
“흐. 볼만한 얼굴이군.”
얀의 얼굴은 혼란으로 가득 찼다.
눈앞의 수상쩍은 존재가 마탑의 위대한 스승들과 같은 격의 존재라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건 분명한 사실이기도 했다.
‘그래. 탑주님들과 같은 위계에 오른 건 아니야. 주문의 발동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이 너무 커. 위력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구조 자체도 어설프고…….’
“사기꾼!”
얀이 노골적인 분노를 터뜨렸다.
당장은 이해할 수 없지만, 인형술사의 수법이 반칙에 가까운 것임을 짐작한 것이다.
마탑의 젊은 천재는 그걸 용서할 수 없었다.
“마법을 진리로 여기는 자들이. 그딴 눈속임으로 마법을 더럽히다니….”
“나는 구도자들과 다르다.”
인형술사가 조소했다.
“내 목표는 오로지 나 자신의 완성이니까. 저 열등종 야만인이 떠들어댄 것처럼!”
한 차례 큰 폭발이 일었다.
두 마법사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빈틈을 노리고 접근한 칸을 향해 인형술사가 주문을 투사한 것이었다.
스무 자루가 넘는 잿빛의 창과 얼음의 장벽이 위아래에서 칸의 신형을 잡아먹는다.
고작 한 사람의 힘으로는 넘어서기 힘든 압도적인 물량.
쩍! 쩌적! 쾅─!
마검의 검집을 손에 쥔 칸의 오른손이 잔상처럼 흔들린다.
마력을 밀어내는 특수한 성질의 검집과 무지막지한 힘으로 주문을 쳐 내고 있는 것이다.
온갖 각도에서 쇄도하는 잿빛의 창을 한 번의 검격으로 절반이나 부숴버린다. 그리고 발밑에서 용솟음치는 얼음의 장벽을 한 번의 발 구름으로 짓뭉갠다.
“과연, 실체를 갖춘 주문은 힘으로 부순다는 건가. 그럼 이건 어떻지?”
인형술사가 지팡이의 끝으로 칸을 겨냥했다.
그 끝에서 작은 불씨가 순식간에 몸집을 불리더니, 쾅! 하는 폭발음과 함께 불의 파편을 전방으로 마구 흩뿌렸다.
검집으로 쳐낼 수 있는 종류의 공격이 아니다.
짧은 사이에 칸의 약점을 간파한 인형술사가 주문의 종류를 바꾼 것이다.
‘제기랄!’
검집을 쥔 게 칸이 아닌 검의 달인이라 불리는 검호라면, 모든 불씨를 쳐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그러나 검술이라곤 어릴 적 검도장에서 배운 게 전부인 현대인에겐 불가능한 이적이었다.
마치 불꽃의 비가 쏟아지는 듯한 공격의 앞에서 칸이 네리아의 마법검을 짓쳐 들었다.
[네리아의 마법 송곳]
─뛰어난 엘프 마검사가 주무기로 사용했던 무기. 오랜 세월 주문을 각인하며 강화된 이래로 마검에 반열에 가까워졌다.
─바람 송곳 :: 일정 이하의 도검 저항력을 모두 무시하는 관통력을 지녔습니다.
─다중 주문 각인 :: 오랜 시간을 들여 개척한 주문 회로는 정교한 기계장치와 다름없습니다. 다양한 주문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손아귀에 쥔 마석을 부숨과 동시에 마법검에 각인된 주문이 발동된다.
직전에 인형술사가 썼던 얼음의 장벽과 같은 주문이, 칸을 보호하듯 그의 앞에 생겨난다.
콰쾅! 콰콰쾅─!
얼음의 장벽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흔들렸다. 아니, 실제로 얼마 버티지 못하고 부서질 것이 분명했다.
퍼석- 칸이 마석을 하나 더 부숴 마법검의 내장된 다른 주문을 꺼낸다.
‘아룬의 바람 걸음’
회색 주문 중에서도 보조적인 성향이 강한, 공기의 저항을 줄여주는 주문. 일반적인 마법사에게는 큰 쓸모가 없지만, 칸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도약]
팔을 교차한 상태로 포탄처럼 쏘아진 칸의 신형이 장벽을 부수고,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에 인형술사의 앞에 당도했다.
“무식한….”
[닥─쳐─라─!]
무형의 충격파를 터뜨려 칸을 밀어내려던 인형술사의 몸이 우뚝- 멈춘다.
세계의 섭리에서 벗어난 스킬의 공능이 감정을 가지지 못한 호문쿨루스를 강제적으로 경직 상태에 이르게 한 것이다.
그건 아주 찰나에 불과했다.
으저적……!
한 번의 충돌음. 그것만으로 인형술사를 보호하는 장막이 반쯤 파괴되고, 직후 차올린 칸의 발끝이 완전히 산산조각 내었다.
허억. 칸의 입에서 고통에 찬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짧은 순간 마법검과 검집을 수차례 휘두른 여파로 호흡이 바닥난 것이었다.
인형술사가 이번엔 지팡이가 아닌 손을 뻗었다. 칸의 동작이 멈춘 사이에 주문을 발동하기 위해서-.
“으리아앗차─!”
그 행동은 별안간 날아든 쇠망치에 의해 저지되었다.
“아주 작살을 내버리게! 형씨!”
복부에서 피를 줄줄이 흘리며, 론이 씨익 웃었다.
본능이 시키는 대로 승부에 개입할 순간을 정확히 노린 론이었다.
그러나 인형술사의 수작을 완전히 방해하진 못했다. 마이아와 엘레나를 상대로 저위계 주문을 터뜨리며 몰아붙이던 인형 중 일부가 칸이 있는 쪽으로 주문을 쐈다.
미처 회피할 여력이 없었던 칸의 몸이 불길에 휩싸였다.
칸이 인형술사를 다시금 끝장낼 것만 고대하던 론이 경악하고, 인형술사의 입매가 조롱을 머금으려던 그 순간.
후욱─!
칸을 집어삼키고 몸집을 불리던 불꽃의 구체 속에서, 살짝 그을려진 탓에 탁한 잿빛에 가까워진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 광경을 눈앞에서 목도하곤, 감정이 없는 인형술사조차 당황을 드러냈다.
“어떻-.”
터억.
불꽃에 휘감긴 손아귀가 인형술사의 머리를 통째로 움켜쥔다.
불길이 피부를 살라 먹는 와중에도 희번덕 눈을 뜨고 인형술사를 죽이려 드는 칸의 모습은, 지옥에서 기어올라온 악마라 해도 믿을 만큼 끔찍하고- 무시무시했다.
‘어떻게?’
인형술사의 냉철한 이성이 같은 질문을 되뇌였다.
주문은 분명 적중했다. 사람 하나를 통째로 불태울 수 있는 주문을 십수 개나 얻어맞은 것이다.
죽지 않은 것과 별개로, 끔찍한 고통으로 제대로 된 사고조차 멎어야 정상이란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야만인은 멀쩡히 움직일 수 있는 거지? 그러한 의문이 계속해서 맴돈다.
설마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건가?
으드득.
그 추측을 부정하듯, 불을 걷어내며 드러난 칸의 얼굴은 그야말로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그가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걸 본 인형술사는 눈앞의 야만인을 더욱더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대체 어떻게!
“씨이. 발.”
후욱! 입에서 말 그대로 불처럼 뜨거운 입김을 토했다.
“조온나……!”
호문쿨루스인 인형술사가 경악할 정도의 악력이 그의 머리통을 조여들었다.
인형술사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몸이었기에, 멍하니 제 머리통이 구겨진 깡통처럼 변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고기 반죽을 두들기는 듯한 소리와 함께, 인형술사의 시야가 퍽- 암전했다.
그 직후.
“아프네──!”
짐승의 울부짖음과 닮은 포효를 터뜨리며, 인형술사의 지팡이를 칸이 산산조각냈다. 결국, 영혼을 붙드는 매개체가 파괴되면서 인형술사의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인형술사는 생각했다.
‘대체 저 인간의 무엇이, 저토록 단순무식하며 광기 어린 기행을 이끌어 내게 한 것인지-’ 하고.
그리고 만약 그 의문을 칸이 들었다면, 이렇게 답했을 것이었다.
“너도 서릿골에서 뒤지게 굴러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