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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야만전사-81화 (81/132)

#081화. 반란 (13)

대공을 처리하기 위해서 가장 선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절대적인 숫자의 부족.

기사나, 마법사 같은 초인의 숫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창칼을 맞부딪치며 대공의 성을 돌파할 병사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부족했다.

물론 총지부장인 칼엘손이 인력을 빌려주고는 있지만, 그들의 정체성이 용병인 이상 실제 전쟁에까지 따라오려 하지는 않을 터였다.

결국 칸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란 소수의 초인 전력을 이용한 침투 작전뿐.

‘하지만… 그마저도 부족하다.’

그러나 소수정예로 인원을 편성한다 해도 정도가 있는 법.

칼엘손이 추정한 대공의 병사는 최소 오백. 지금도 시시각각 북부의 귀족들을 집합시키며 그 숫자를 불리고 있었다. 게다가 모종의 수법으로 기사를 공장 제품처럼 찍어내는 중이다.

무엇보다 인형술사와 놈과 엇비슷한 수준으로 추정되는 주문쟁이가 대공의 곁에 있으며, 그 대공 본인조차 정확한 경지는 몰라도 상당한 실력의 주문쟁이였다.

대공이 머무르는 성은, 그 자체로 마법 요새라 생각해야만 했다.

그에 반해 칸 일행의 전력은?

‘그나마 비대칭 전력이라 할 수 있는 건, 나랑 칼엘손. 그리고 얀 정도인가.’

칸이야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비대칭 전력이다. 지금까지 상대한 전적만으로도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강자. 게다가 스킬이라는 불가해한 힘으로 상황의 역전을 노리는 게 가능했다.

칼엘손은 검호다.

기사처럼 오러를 통해 병장기의 한계를 극복하지도, 마법사처럼 주문으로 압도적인 화력을 쏟아내지도 못한다. 하지만 검 한 자루만 있다면, 무엇이든 죽일 수 있는 것이 바로 검호였다.

그야말로 무의 극한이다. 손발과 검이 닿는 거리라면야, 칼엘손은 그 상대가 대마법사라고 한들 참살하는 게 가능할 터였다.

동시에 한계 또한 명확하긴 했다. 상대가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해버리면, 가진 무력을 조금도 발휘하지 못하고 형편없이 당하고 만다.

주문쟁이의 공방에 잠입해야 하는 이번 계획에서, 생각보다 무기력할 가능성이 높다고 해야겠지.

그리고 얀은….

‘인정하긴 싫지만, 쓸만해.’

어리숙한 인상과 눈치 없는 언행 탓에 오해를 사기 쉽지만, 얀은 일반적인 마법사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천재다.

챕터 1이 진행되는 시기에 영입할 수 있는 마법사 동료란, 주문 몇 방 쏘고선 탈진 상태에 빠지는 놈들이 태반이었다.

그나마도 주문의 위력이 영 시원찮은 데다가, 대부분 성격이 오만해서 써먹기도 힘들었다.

‘그에 반해 얀은……. 정말 인정하기 싫지만, 성격도 까다롭지 않고 위력도 괜찮지.’

게다가 주문 몇 번으로 끝나는 마나 조루도 아니었다. 저위계 주문은 수십 개를 쏘아도 여유가 남지 않던가.

게다가 마법진 원격 조작이라는, 굉장히 까다로운 수법도 녀석은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았다.

추측하건대, 마탑 내부에서도 상당한 천재로 취급받겠지. 머지않아 제 스승의 경지를 따라잡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그렇지만 그건 미래의 얘기고, 당장에 얀이 인형술사를 상대로 활약을 선보이기는 힘든 게 현실이다.

‘게다가 전투에 익숙하지도 않지. 적어도…. 내가 아니더라도, 칼엘손과 합을 맞출 정도의 강자가 필요해.’

하지만 그런 강자가 그렇게 쉽게 구해지는 거였으면, 머리 아프게 고민할 필요조차 없었겠지.

메인 퀘스트가 발생하는 제국이나, 몇몇 주요 지역이라면 모를까. 이런 변방에선 쓸만한 동료를 영입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그만큼 평균적인 수준도 낮아서 안전하지만…. 문제는 메인 퀘스트에나 나올 법한 놈들이 깽판치고 있다는 거지.’

“어수룩한 놈들 데려가서 거치적거릴 바엔, 차라리 둘이서 전부 해치우는 게 낫다.”

이와 관련해서 쓸만한 의견이 있는지 칼엘손과 상의했다. 당연히, 녀석도 쓸만한 놈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지 반응이 영 시큰둥했다.

“그럼, 어쩔 수 없이 내가 생각한 대로 일을 진행해야겠군.”

“생각해둔 놈이라도 있는 거냐? 내가 알기로 그만큼 쓸만한 놈은 없는데…. 아니면 설마 로렌의 마녀를……?”

“그 여자한테 도와달라고 소식을 보냈다간, 날 찢어 죽이려고 들 거다. 대신이지만 가능성이 꽤 높은 녀석을 알고 있기는 하지.”

“누군데?”

“너도 잘 아는 이름일 거다.”

흑익공의 대전사. 아툰의 딸 파샨투. 그리고 또 다른 신분으로는, 이 육체의 먼 친척쯤 되는 야만인.

“그녀를 부를 거다.”

*

*

*

대공에 대한 소문을 퍼뜨리고, 군벌들과 용병들의 이목을 알-란자스로 집중시키는 모든 과정이 전부.

대공의 눈을 피해 파샨투를 북부까지 데려오기 위한 초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놈의 장악력에 구멍이 뚫린 틈을 타, 조합의 인력을 움직여 파샨투를 북부에 침투시켰다.

그렇게 칼엘손이 마련해준 ‘오두막’에 파샨투를 태운 마차가 도착한 그때.

[카아아아아안──!!!]

마치 ‘워크라이’ 스킬을 사용한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압도적인 성량. 파샨투를 태운 마차가 후드드- 떨리는 것이 눈에 선명히 보일 정도였다.

“어이. 이거 괜찮은 거 맞…!”

그 무식한 행동에 칼엘손이 우려를 드러낸 것은 정답이었다. 마차의 벽을 부수고, 달리는 마차에서 거침없이 뛰어내린 잿빛의 야만인이 무시무시한 기세를 퍼뜨리며 돌진해왔다.

‘시발. 이럴 줄 알았지.’

자신보다 한 뼘은 더 커다란 괴물이 양손에 대형 도끼를 들고 거리를 좁혀올 때의 기분이란….

“물러나라. 아무래도 대화가 먼저일 것 같으니.”

“대화? 저게 대화가 통할 인간의 태도냐!”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서릿골의 전사들은 주먹과 도끼, 칼로 대화를 나누는 법이다.

그 말을 남긴 채, 칸도 도끼를 쥐고서 마주 달리기 시작했다.

“저, 저 미친 것들이…!”

기껏 고생해서 데려왔더니, 대뜸 싸우는 건 무슨 경우냐고…! 칼엘손이 이제 막 맞붙기 시작한 두 야만인의 뒷모습을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의 눈이 덩달아 진중한 빛을 띄웠다.

‘잘 싸우는군.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칸의 실력이야 지금껏 들은 보고와 로열가드의 건으로 대충 알고는 있었기에 놀라울 것까진 아니었다. 하지만 흑익공의 대전사, 파샨투의 실력은 칼엘손조차 감탄할 만큼 대단했다.

[으하하하하!!]

홀로 오우거의 발을 묶은 괴물 같은 힘의 소유자인 칸과 도끼를 맞부딪치는 와중에도 한 치의 물러섬이 없다.

단순히 그녀의 육체가 칸과 버금가는 수준이라서?

‘아니. 힘에서는 밀려. 하지만…….’

기술의 완성도가 차원이 다르다.

검호인 칼엘손처럼 무의 수련을 통해 완성한 기술이 아닌, 실전에서 쌓아 올리며 정립한 움직임이 가히 대가의 경지에 근접했다 하여도 과장이 아니었다.

첫 합에 힘의 격차를 인지하고, 두 자루의 도끼를 모두 이용해 칸의 일격을 방어한다. 그와 더불어 어깨나 팔꿈치, 무릎과 발끝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며 칸에게 반격을 꽂아 넣는다.

‘흑익공이 기사보다 더 아끼는 전사라더니!’

전투의 화신이다. 칼엘손은 파샨투의 싸움을 보고서 그러한 감상을 느꼈다. 제국 출신의 검호인 칼엘손이 말이다.

[믿을 수 없구나! 네가 정녕 내가 알던 코르디의 아들 칸이 맞나─!]

쩌렁쩌렁한 웃음을 터뜨린 파샨투의 움직임이 급변했다. 바뀐 연주에 맞추어 춤사위를 달리하는 것처럼, 전투의 흐름 자체가 일변한 것이다.

퉁! 퉁!

바닥에 떨어진 파샨투의 도끼가 깊은 고랑을 남겼다. 그렇게 맨손이 된 그녀가 벼락과 같은 속도로 칸의 품으로 파고드는 데에 성공했다.

병장기로 손속을 교환하는 싸움에서, 순식간에 근접 박투로 싸움의 영역을 갈아치운 파샨투가 양손을 뻗었다.

[어디─! 주먹도 괜찮게 쓰는지 볼까!]

“이런 정신 나간 아줌마가…!”

도끼를 내리찍기에도 여의찮은 간격이다. 물론, 칸의 힘이라면 도끼의 손잡이로도 바위를 부수는 힘을 낼 수 있겠으나-.

손목을 낚아채고서 통나무 같은 다리를 허리에 걸려는 파샨투의 움직임을 보고도, 도끼를 고집할 수는 없었다.

쾅!

대신 짧게 끊어친 주먹이 파샨투의 안면에 적중했다. 하지만 오크의 얼굴조차 떡반죽으로 만드는 게 가능한 일권을 얻어맞고도, 파샨투는 웃음을 터뜨렸다.

[매섭구나! 매서워! 서릿골의 원로들도 지금 네 주먹에는 죄 쓰러질 거다!]

그렇게 떠드는 것치고는 멀쩡하구만…! 칸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중얼거렸다.

입과 코에서 피를 줄줄이 흘리면서도 파샨투는 허리를 꽉 잡은 다리를 풀지 않았다. 거기에 오른쪽 손목을 단단히 옭아맨 탓에 자유로운 건 왼손뿐.

[왜 그러나! 전사의 시험을 통과했다면, 카르투스로 싸워도 충분할 텐데!]

카르투스. 서릿골의 전사들이 기본으로 수련하는 체술의 일종이었다.

일종의 레슬링 기술이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겠으나, 기본적으로 보통의 그린스킨보다 몇 배는 강한 서릿골 오크를 족치기 위해 고안된 끔찍한 살인기술이기도 했다.

격투기에서도 으레 그렇듯, 복잡한 수싸움이 동반되는지라 익히는 게 어려운 편이어서. 당시, 막 야만인의 육체에 빙의했던 칸은 ‘카르투스의 의례’라 불리는 시험을 단순무식한 방법으로 해결했었다.

꾸구구구국!

[뭣……!]

경악한 파샨투가 조이는 힘을 더했다.

순간적으로 호흡이 곤란해질 정도의 압박감이 흉부를 짓누름에, 칸은 눈동자의 실핏줄이 터져라 이를 악물었고-.

“뒈─져라─!”

힘 하나로 파샨투의 속박을 풀어낸 칸이 손목에 덜렁 매달린 그녀를 그대로 바닥을 향해 내리찍어버렸다.

쾅──!!

멀리서 지켜보던 칼엘손이 이러다가 뒈지겠다며 말리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칸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뒈질 작정으로 후려쳐야, 딱 적당히 뒈지기 직전까지 간다.’

뒈지기 직전에도 즐겁다며 쪼개는 것들이 서릿골 놈들 아니었나. 여기서 괜히 자제했다가는 모욕이니, 뭐니, 떠들 것이 분명한 바.

[이 꽉 깨무시오.]

얼마 만에 내뱉는지 모를 서릿골의 말로 경고를 내뱉은 칸이 주먹을 그러쥐었다.

“이런 제기랄! 멈추라니까!”

칼엘손의 성난 외침이 고막에 꽂힘과 동시에, 칸의 주먹이 쓰러진 상태의 파샨투를 향해 내리꽂혔다.

[일어나서 봅시다. 빌어먹을 숙모.]

*

*

*

결과적으로 파샨투…. 이 육체의 혈연상 숙모의 얼굴을 후려치는 일이 벌어지진 않았다. 기껏 부른 협력자가 어떻게 될까 염려한 칼엘손이 끼어든 탓이었다.

‘괜히 끼어들기는….’

파샨투가 오히려 처맞고서 좋아할 거라는 것에 칸은 전 재산을 배팅할 자신이 있었다.

어쨌든, 서릿골 방식의 대화가 끝난 직후에 칸은 짧게나마 파샨투와 ‘진짜 대화’를 나눴다.

칸이 북부에서 무엇을 할 작정이고, 거기서 널 써먹으려고 이렇게 부른 거라는. 어쩌면 듣는 입장에선 황당하기 짝이 없는 제안을.

[처음엔 너의 이름을 대고 누가 날 찾았다길래. 난 네가 서릿골의 삶을 버티지 못하고 도망쳤다 생각해서 두들겨 패서 돌려보낼 작정으로 왔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이렇게 알았으니! 귀여운 조카와 함께 싸워보는 것도 좋겠지! 싸우다 같이 죽는다면, 그 또한 영광스러운 죽음일 테고!]

[염병할 재수 없는 소리를….]

그렇게, 성공적으로 흑익공의 대전사를 동료로 영입하게 된 것이었다.

“이해가 갔나?”

“아니, 하나도 이해 못 했다…….”

“멍청하군. 대공이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건가?”

“네놈들이 비정상적인 거다!”

리브론 궁중백이 자리를 박차며 외쳤다.

“흑익공의 대전사를 두들겨 패서 같이 싸우도록 만들었다? 대체 어떤 사고방식을 가져야 일처리가 그렇게 되는 건가에 대해선 둘째 치더라도! 흑익공이 그걸 허락은 했나? 아니면 병력을 움직이겠다고 언질이라도 했나? 애초에! 겨우 사람 하나 더해졌다고 해서 대공을 고꾸라뜨리는 게 가능하겠나? 그냥 하나부터 열까지 다 엉망진창이다…!”

“흑익공의 대전사가 여기에 왜 있는지 설명해달라고 해서 해줬더니 역정이나 내다니. 이상한 놈이군.”

“나는! 누구의 허락이 필요 없는! 전사다!”

“그렇다는데.”

“네놈들은 대체 뭘 하고 싶은 거냐…….”

머리를 짚고 고개를 숙인 리브론 궁중백이 깊은 한숨을 토했다.

“나도 알고 있다. 대공에게 여러모로 수상쩍은 면모가 많다는 것쯤. 기왕 상황이 이렇게 된 거, 가능한 선에서 협조할 의향도 있어. 그런데. 기껏 이만한 면면을 모아놓고 하는 얘기가 고작 농담 따먹기라니……! 이래가지고는 대공의 성은커녕, 공도 근처에 발을 디디는 것조차 무리다!”

한숨 섞인 일갈에 무언가 느낀 바가 있었던 걸까. 두 야만인이 가만히 침묵하며 리브론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아예 생각이 없는 놈들은 아니었던 건가…….’

거기에 희망을 느낀 리브론 궁중백이 마음을 다잡으며 생각했다. 그래, 자신이라도 똑바로 정신을 차린다면…….

“무슨 멍청한 소리를 하는 거냐. 르브론 궁중백. 이미 공도 근처에 들어왔는데.”

“르브론이 아니라 리브론……. 아니, 뭐? 어디에 들어와?”

공도라고? 여기가? 리브론 궁중백이 부릅뜬 눈으로 되묻자, 칸이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말 안 했던가? 여기. 공도의 바로 근처에 조합이 몰래 만든 비밀 은신처라고.”

“그, 그, 그게 무슨 헛소리……!”

“싸울 놈들도 다 모였겠다, 질질 끌 필요가 없어졌거든.”

칸이 씨익 웃으며 말하자, 파샨투가 파하하- 대소했고, 완전히 무장을 끝마친 칼엘손이 검자루에 손을 올리며 눈을 빛냈다.

“나, 파샨투, 칼엘손. 그리고 너까지…….”

이렇게 넷이서, 성벽을 넘는다.

“지금 당장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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