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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야만전사-106화 (106/132)

#106화. 무법도시 (7)

“기다리고 기다리시던, 베이츠 암시장의 명물, 무제한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무제한 경매.

말 그대로의 의미에서 무제한(無制限)이다.

경매에 올라오는 모든 물품의 낙찰가엔 상한선은 물론이고, 하한선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운이 좋다면, 절세의 보물을 금화 한 장으로도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의미로는, 경매에 올라오는 품목에 제한이 없음을 뜻했다.

“첫 순서는 언제나 그렇듯, 장물입니다. 하지만 제법 특별한 장물들이지요.”

화려한 진열대를 과장된 몸짓으로 끌어온 진행자가 느물거리는 투로 말했다.

“보십시오. 검신이 중간에서 뚝 부러졌음에도, 진열대 너머로도 알 수 있을 만큼의 예기를 뽐내는 이 검을.”

에토는 자기도 모르게 감탄을 흘렸다.

검의 완성도를 눈으로 볼 식견은 없지만, 그런 에토의 시선에도 저 검이 흘리는 예기가 선명하게 느껴진 까닭이다. 그것도 부러진 검이!

“투사의 땅을 정복하겠다 선언하고,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 비운의 검호. 제국의 명문인 알케라드에서 수련하고, 서른일곱에 검호 면허를 취득한 오만한 천재. 그자가 일평생의 반려로 삼았던 검이, 오늘의 첫 순서입니다!”

“오오…….”

“엄청나군. 이 거리에서도 저릿저릿할 정도야.”

에토는 자기도 모르게 파벨과 마이아의 눈치를 살폈다.

칼밥을 먹고 사는 그들의 반응이 조금 궁금했던 까닭. 하지만 둘의 반응은 예상과 사뭇 달랐다.

‘따, 딱히 관심이 없네?’

동패 용병인 파벨조차 검호의 유품에 넋이 나간 것처럼 눈이 멍했다.

그런데 보는 눈이 남다를 금패 용병인 마이아는, 저 대단한 검에 일말의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 오히려 주변의 동태를 살피려는 듯, 바쁘게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 중이었다.

‘창을 써서 그런가…?’

에토가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검호의 유품에 대한 입찰이 시작됐고, 눈 깜짝할 사이에 금화 수십 장으로 가격이 치솟았다.

“정확히 금화 백 개! 백 개에 낙찰입니다!”

그렇게 결정된 가격은, 결코 싸다고는 할 수 없지만 거창하게 소개한 것치고는 애매한 가격이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호들갑을 떨어대더니, 정작 기대가에 한참 못 미치는 금액에 물건이 낙찰된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점차 경매가 진행되면서 자연스레 깨닫게 되었다.

“마탑에게 쫓기다, 주문의 폭주로 자폭하게 된 적색 마법사의 지팡이! 단순히 손에 쥐는 것만으로도 주문의 발동 시간을 줄여주고, 적색 주문에 한해서 화력을 높여주는 보물이지요! 마법사라면 탐이 날 수밖에 없는 물건의 가격은……. 아, 금화 백오십 개입니다! 운이 좋으시군요!”

“아르곤 왕국의 북부에서 불법적인 실험을 자행하다, 참수자라는 야만인에게 목이 잘리고, 시체조차 찾지 못하게 된 회색 마법사의 연구 일지입니다. 최근 반란으로 시끌시끌한 동네죠? 그 난리통에 피난에 나선 분께서 우연히 발견한 물건입니다. 이 정도면 마탑에서도 탐이 나지 않을까요……. 아, 이번에도 매우 저렴한 가격에 낙찰!”

“그거 아십니까? 지금껏 아룡의 침범을 피해갔던 아르곤 왕국이, 아룡의 습격으로 매우 곤란해 처했다는 사실? 물론, 여러분에게는 좋은 소식일 수도 있겠지만요? 어쨌든. 그곳에서 잡힌 아룡의 소재가 때마침 들어오기로 예정돼 있습니다. 아직 현물은 없지만, 귀한 소재를 원하시는 분들이라면 놓칠 수 없는 기회겠죠? 물품은 따로 받으실 수 있게, 저희 측에서 준비를……. 오오, 금화 이백칠십 장! 제 예상보다 싼 가격인데요?”

처음 등장한 물건뿐만 아니라, 모든 경매품들이 일반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낙찰되고 있었다.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설마, 이 사람들 전부가….”

“같은 물건을 노리고 있나 봅니다.”

“시벌, 이거 경쟁은 가능한 거요?”

일행이 우려를 드러내는 사이, 장물 경매가 완전히 끝난 듯. 진행자의 지시에 따라 칼 찬 남자들이 진열장을 단상 바깥으로 치웠다.

그리고 이어질 순서가 무엇인지, 대충 짐작하고 있던 에토가 눈살을 찌푸렸다.

‘노예….’

그랬다.

장물의 다음 순서는 노예 거래였다. 만신전 교회가 엄격히 금지하며, 발각될 시 성전사들을 소집해 정화에 나선다는 금기.

그것이 아주 버젓하게, 수많은 국가의 귀족과 부호들이 자리한 자리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자자. 안타깝게도, 오늘의 경매에선 여러분이 만족할 만한 수량을 준비하지는 못했습니다. 최근 모종의 이유로 사냥에 차질이 빚어져서 말입니다. 아실 만한 분들이니 설명은 생략해도 되겠지요? 대신! 품질은 엄선했으니 걱정하지 마시지요!”

“호. 확실히, 자신할 만하군.”

“최근에 몰락한 귀족가문이 꽤 있었나 본데…?”

“이런, 안 그래도 자금이 빠듯하구만…….”

사방에서 들려오는 감탄사에 에토는 구역질이 치솟는 기분이었다. 같은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물건을 대하듯 품평하는 저들의 행태에 순수한 분노를 느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대륙의 모든 인간이 만신전 교회의 신도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인간들이 만신전 교회의 가르침을 배우고, 만신전의 신들이 내려주는 은총에 덕을 입으며 살아간다.

특히, 귀족과 부호들의 경우에는 만신전 교회에 매년 엄청난 기부금을 내면서 축복을 받아가곤 했다.

‘그런데 어찌!’

“침착하십시오.”

“하지만…!”

“당신이 나서면, 뭐가 바뀝니까? 바꿀 능력은 있고요?”

“…….”

으드득. 에토가 이를 악물었다.

자신을 말리는 마이아의 행동에 화가 난 것이 아닌, 그녀의 말을 부정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이곳은……. 반드시 사라져야 할 지옥이오. 천상에 계신 신들께서, 이자들을 벌하실 거요.”

“거, 웃기는 소리를. 만신전이라고 여기를 몰라서 납뒀을까? 난 아니라고 보는데.”

“파벨…!”

“내 말이 틀렸수? 그렇게 악마 추종자라면 눈에 불을 켜고 족치는 양반들이, 이렇게 눈에 띄는 암시장을 놓쳤다고? 지나가던 개가 웃지.”

파벨의 지적은 만신전 교회의 모순된 행보를 정확히 꼬집었다.

물론, 에토는 만신전 교회의 충실한 신도는 아니었다. 그저 사제들이 내려주는 축복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들의 은혜를 입었을 뿐이지. 다만 만신전 교회를 내심 평화의 수호자쯤으로 생각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베이츠의 암시장이 보여주는 추악한 진실 앞에서, 그러한 믿음이 점차 무너진다.

“파벨. 그쪽도 입 닥쳐요. 쓸데없는 소리 하라고 데려온 거 아니니까.”

“……시키는 대로 합죠.”

“그리고 에토, 당신도.”

에토는 대꾸하는 대신에 고개만 살짝 까딱거렸다.

마이아는 뜬금없는 부분에서 대립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짜증이 치민 듯 가면 아래에서 얼굴을 찡그렸다.

그렇게, 세 사람의 사이를 침묵이 지배한 가운데.

“하하…! 이번에는 제법 돈을 푸시는군요! 그만큼 상품의 질이 높다고 봐야겠지요? 다른 분들도! 이 기회를 놓치면, 다음 기회가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애초부터 몇 되지 않는 노예를 두고, 참가자들의 입찰 경쟁에도 불이 붙기 시작했다.

유물에 관심을 가지고 참석했지만, 일찌감치 포기하기로 마음먹은 이들이 경쟁에 참가한 것. 그것만으로도 장물 경매에 몇 배에 달하는 금액이 시작부터 입찰가로 호가 됐다.

그렇게.

경매장의 광기가 최고조에 이를 때까지.

“…….”

“…….”

“…….”

세 일행은,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

*

일행 사이에 흐르는 어색한 기류가 걷힌 건, 기다리던 순서가 시작됐을 무렵이었다.

“오늘의 메인 이벤트. 사실, 다들 이 물건만 기다리고 계셨지요?”

마치 시간을 끌듯 느물거리는 말투에 참가자들의 거센 야유가 쏟아졌다. 진행자는 그 반응을 음미하듯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성미가 급하셔서 원. 애석하지만 기다리시던 물건은 아직 순서가 찾아오지 않아서 말입니다. 그전에 저희가 준비한 다른 물건들부터 보시지요!”

매끄러운 진행으로 참가자들의 원성을 가라앉힌 진행자가 박수를 치자, 단상의 뒤에서 열 명도 넘는 장정들이 거대한 수레를 끌며 나타났다.

그 수레의 위에는 거대한 짐승을 가둬둘 때나 쓸 법한 대형 우리가 올려져 있었는데, 위에다 천을 얹어놓은 탓에 안쪽에 뭐가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쾅! 쾅쾅─!

살아있는 생명체, 그것도 상당한 괴력을 지닌 무언가가 가둬져 있다는 것은 명백했다.

“하하. 고놈 참 힘이 좋죠? 저희도 붙잡는 데 깨나 고생했습니다. 도시의 어떤 분께서 외유를 나가셨다가 붙잡은 놈이라는데, 이벤트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서 친히 양도해주셨답니다.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계실 익명의 기부자께 박수 한번 주시지요!”

객석에서 돌아오는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안 그래도 기다리는 물건의 순서가 미뤄져서 애가 타는데, 고운 반응이 돌아올 리가 있겠는가.

“흐흐. 대충 예상한 반응이군요. 하지만, 이 물건의 정체를 보시고 나면 정말 깜짝 놀라서 기립박수를 치실 겁니다. 자──!!”

천을 걷어주시지요! 진행자의 힘찬 함성에 맞춰 수레를 옮긴 장정들이 천을 끌어내렸다.

“허억!”

“꺄아아악─!”

“다, 당신들 미친 거야?!”

반응은 즉각적이었고, 격렬했다.

“저, 저건 설마?”

줄곧 입을 다문 채 침묵하던 에토도 예외는 아니었다.

진행자는 기다리던 반응이 돌아온 것에 흡족해하며, 설명을 시작했다.

“이 자리에 계신 손님들 중에는 수집이 취미인 분들도 계실 테지만, 마법에 조예가 있으신 분들도 상당하시겠죠? 그런 분께, 이놈은 정말 귀중한 연구 자료일 겁니다. 그도 그럴게.”

살아있는 타락자라니, 이걸 어디 가서 구하겠어요? 진행자의 유쾌한 한마디에 장내가 혼란에 빠져들었다.

당연한 반응이다.

끔찍하게 변형된 얼굴에선 싯누런 기포가 끊임없이 부글거렸고, 검게 탄 숯처럼 변해 쩍쩍 갈라진 피부 사이로 혈관과 내장이 엿보였다. 게다가 팔다리는 사람의 것이 아닌, 악마의 것처럼 거대했다. 무엇보다 손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짐승의 아가리 같은 게 달려 있었으니.

“타락자. 그것도 악마의 힘을 직접 받아들인 타락자의 살아있는 견본! 어떻습니까? 연구하고자 하는 학자의 탐구심이 마구마구 샘솟지 않나요?”

쾅! 쾅! 쾅!

진행자가 저를 두고 설명을 늘어놓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 건지, 철창에 갇힌 타락자가 더욱 격렬하게 날뛰었다. 하지만 대체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모를 철창은 부러질 기미조차 없이 굳건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안전하게 가져가실 수 있도록 제국의 흑철로 만든 짐승우리를 같이 드릴 겁니다. 운송하는 동안 날뛰지 않도록, 마땅한 조치도 취할 거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란을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타락자의 끔찍한 외관 때문에 그런 것도 있지만, 악마라는 존재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과 공포가 경매장 전체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타락자라…. 확실히, 연구해볼 가치는 있지.”

흥미롭다는 눈빛을 가면 틈새로 내비치는 이들.

“별장 지하에 가둬두면, 꽤 각별한 수집품이 될 수도…….”

광기에 가까운 수집욕이 공포를 초월한 이들.

“…….”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타락자의 심장을 꿰뚫을 기세로, 몸을 움찔거리는 마이아.

그리고.

“제국 금화 오백 장. 낙원 은행의 수표도 가능하다면, 천오백 장까지 내지.”

실제로 경매에 참가하려는 이까지.

그야말로 혼란과 광기로 가득한 경매장 안에서.

“저, 저거 뭔가 이상하지 않나?”

“시벌. 저 끔찍한 괴물 자체가 정상적일 리가…….”

“아니! 마치, 발작하는 것처럼 상태가!”

키─────!

포효를 터뜨린 타락자의 육체가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며 단상 위의 모든 생명체를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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