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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야만전사-110화 (110/132)

#110화. 무법도시 (10)

[건─방─진──!!]

용을 닮은 대가리에 달린 입과 배에 달린 아가리가 동시에 포효를 터뜨렸다.

그 속에 담긴 증오와 살의가 어찌나 강렬한지, 순간 칸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을 정도였다. 어지간한 정신력으로는 듣는 것만으로도 광인이 되거나, 백치가 되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그릇에 의식만 남겨둔 수준이라도, 악마는 악마라 이건가….’

셰이의 껍데기를 벗어던진 지금. 녀석은 초월자로서 본인이 가진 진면모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본신의 힘을 대부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포효 한 번으로 야만전사의 육체에 물리적인 압박을 가할 정도라니!

[터뜨려주마!]

비대한 몸통에 비해 짧은 팔다리라지만, 인간인 칸에 비하면 충분히 거대한 크기의 팔이 풍압을 터뜨리며 칸이 서 있던 자리를 후려쳤다.

카드드득. 쾅!

붉은 마검이 그리는 궤적을 따라 흑마력이 피처럼 튄다. 안타레우스의 검. 필멸자로 하여금 악마를 도살할 수 있게 만들어진 고대의 검술이, 진정한 적을 마주함으로써 그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우굴라베스의 팔 위로 몇 개의 상흔이 그어지기까지는 찰나. 하지만 녀석은 본인이 지옥 군단의 기수임을 증명하듯, 즉각적인 반격에 나섰다.

───!

초월자의 증오와 살의가 그 즉시 저주가 되어 칸을 덮쳤다.

영창도, 술식도 없이 구현된 저주. 애초에 흑마법이란 악마의 권능과 힘을 흑마력을 통해 구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큭!’

미처 거리를 벌리기도 전에 무릎의 힘이 풀렸다. 다시 일어서서 자리를 벗어나려 했지만, 아우굴라베스의 공격이 더 빨랐다.

[이것도 버텨봐라─!]

공간 포식으로 집어삼킨 영역이 의지를 가지고 칸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수십 배로 강해진 중력이 어깨를 짓누르면 이렇지 않을까 싶은 감각. 저주로 인해 육체의 감각이 혼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위로 칸을 붙잡아 통째로 씹어먹을 작정인 듯, 거대한 몸을 일으킨 아우굴라베스가 손을 뻗어왔다.

화아아악─!

[이건…! 탕녀의!]

몸을 속박하던 저주가 단번에 걷혀나간다. 그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아우굴라베스의 팔을 칸의 검격이 찢어발겼다.

팔에서 흐른 흑마력이 또다시 저주로 변해 실체를 갖추기 전에, 심원의 성흔이 재차 빛을 내뿜었다.

미들랜드의 선악을 저울질하는 여신의 신성이 흑마력을 밀어내고, 용살의 마검이 허공에 수놓은 일선이 아우굴라베스의 팔뚝을 넘어 어깨까지 이어졌다.

[크아아악──!!]

쾅…! 부스스.

팔 하나가 통째로 잘려나가는 고통에는 아우굴라베스조차 고통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육체가 아닌 의식체로 직접 때려박히는 고통은, 제아무리 악마라도 참을 수 없는 것이었으니.

그러나 놈이 내지른 건 비명이 아니었다.

‘이런 미친!’

쩌어어억. 쨍!

심원의 성흔에서 꺼낸 방패가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박살이 났다. 경악도 잠시, 서둘러 뒤로 도약하는 칸의 바로 앞에서 흑마력으로 만들어진 대검이 바닥을 무너뜨리곤 재차 쇄도했다.

아우굴라베스의 대검이 ‘공간 포식’의 영역 위로 상흔을 남긴다.

화르르륵!

흑마력으로 구현한 지옥겁화의 대검은 회피했다고 전부가 아니었다. 지옥겁화가 남긴 불티가 검의 궤적을 따라 그대로 남았고, 그건 칸의 운신 범위를 좁히는 결과를 낳았다.

언제까지고 도망칠 수는 없다. 당연한 소리지만, 그럴 생각도 없었다.

무게가 한계까지 설정된 양날 도끼를 양손으로 움켜쥔 채. 어지간한 건물만 한 크기의 대검을 향해 역으로 돌진한다.

쩌억. 쾅─!

거인과 인간의 대결이라 봐도 무방한 체급 차이였다.

[뭐라……!]

그러나 충돌의 양상은 아우굴라베스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내가 밀린다고?!’

지옥겁화의 대검이 형편없이 밀려난다. 그 사실을 믿을 수 없던 아우굴라베스가 몇 번이고 대검을 찍어내렸으나, 번번이 칸의 양날 도끼에 막혔다. 아니, 튕겨 나갔다.

그는 악마다. 타고나기를 초월자로 태어나, 필멸자들을 아득히 뛰어넘는 힘을 품은 존재란 말이다!

그런 자신이. 제아무리 의식체만을 현현했다고 하나, 필멸자 따위에게 힘에서 밀린다고?

[건방 떨지 마─라─!]

이미 잘려나갔던 아우굴라베스의 팔 한쪽이 순식간에 재생을 마쳤다. 이전보다는 작은 크기였으나, 악마인 그에게 중요치는 않은 차이였다.

화르르륵! 화륵!

두 자루의 지옥겁화 대검을 쥔다. 의식체를 통해서도 느껴질 만큼 묵직한 무게감. 저 괴물 같은 필멸자가 아무리 뛰어나도, 이것만큼은 어찌할 수 없으리라!

“후욱.”

잠깐의 호흡을 가다듬으며, 두 자루의 대검을 상대하게 된 칸이 입꼬리를 비죽였다.

짧뚱한 팔로 대검을 휘두르는 꼴이, 아기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보여 기괴했다. 물론,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하겠지만-.

[안타레우스류 비전 검술(B) - 52%]

제 목적에 맞는 전장을 찾은 안타레우스의 검의 숙련도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양손으로 거머쥔 양날 도끼가, 안타레우스의 검이 그리는 검로를 따라 두 자루의 대검과 맞부딪쳤다.

쾅───!!

한 번의 휘두름으로는 부족했다. 두 번의 휘두름으로는 대검 한 자루의 힘을 상쇄했고, 마지막 세 번의 휘두름으로 아우굴라베스의 일격을 분쇄했다.

그때까지 흐른 시간은, 범부에게는 찰나였으나 악마와 잿빛의 야만전사에게는 억겁과도 같았으니.

[그 검은……!]

칸이 도끼로 펼친 기술이 무엇인지 깨달은 안타레우스의 사백안이 놀라움을 머금는 가운데.

칸이 허공을 향해 빈손을 뻗었다.

크그그극. 그그그극!

아우굴라베스의 권능으로 만들어진 영역이 칸의 손바닥을 중심으로 붕괴하기 시작했다. 그 믿기 힘든 광경을 마주한 아우굴라베스가 뭘 어떻게 하기도 전에, 칸의 눈에서 무형의 안광이 번뜩였다.

파칭!

[────!!]

아우굴라베스가 비명을 내질렀다. 공간 포식의 권능이 강제로 해제되면서, 그 반동이 의식체로 직접 쑤셔박힌 탓이었다.

‘어떻게. 그분의 권능을 필멸자 따위가…!’

자신에게 대적하는 용력조차 놀랍기 그지없으나, 방금 야만인이 행사한 건 놀랍다 못해 불가능 내지는 기적에 가까웠다.

초월자의 권능을 파훼할 수 있는 건, 더 높은 격의 초월자가 행사하는 권능 혹은 구조적으로 상성에서 우위를 점하는 권능이어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

아우굴라베스의 권능을 무너뜨린 건, 전자였다.

겨우 필멸자 따위가, 대악마의 적자이자 만신전의 위신들조차 숨죽이게 하는 악마의 권능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네놈이──! 감히 주군의 권능을 도둑질한 것도 모자라……!]

“꼬우면, 병신같은 네 주인한테 가서 따지던가.”

[크아악!]

여전히 권능 파훼의 반동에서 허우적대는 아우굴라베스의 두 팔을, 도끼로 거칠게 뜯어버린 칸이 단숨에 아우굴라베스의 머리까지 뛰어올랐다.

‘위험하다!’

이대로는 의식체가 소멸하게 될 것임을 직감한 아우굴라베스가 두 개의 아가리를 동시에 벌렸다. 지금은 무리를 해서라도, 저 야만인을 씹어 삼키는 것밖엔 활로가 없음이라!

제단을 통해 연결된 본신에게서 천천히 힘을 끌어오자, 차원의 벽이 방해에 나섰다. 그 억압은 본신에까지 타격을 입혔지만, 아무래도 좋다.

‘저놈을 잡고, 주군의 권능을 회수할 수만 있다면. 그분의 은총으로 염원하던 첫 번째 기수의 자리를 탈환할 수 있을 터!’

베이츠란 도시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존재했던 오래된 궁전이, 아우굴라베스가 발하는 흡입력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칸은 그 심상찮은 현상이 무엇의 전조인지 대번에 알아차렸다.

‘공간 포식.’

녀석이 제 권능의 힘을 담아 마지막 발악을 하려는 것이다. 칸은 지금이야말로 승부수를 띄울 시기임을 직감했고, 지금 이 순간만을 위해 아껴두었던 스킬을 꺼내들었다.

[용아포(A) - 01%]

용아포(龍牙砲).

투척이 A등급으로 상승하며 생겨난 스킬.

스킬명에 용(龍)이 들어간 만큼, 그 위력은 보장되어 있다. 하물며 B등급이던 시절에도 투척은 풀차징 기준으로 B등급을 반쯤 뛰어넘은 위력을 자랑하지 않았던가.

다만 이전처럼 풀차징을 위해 시간을 벌어야 한다던가 하는 제한이 없어졌다. 스킬 사용을 위해 잠깐의 정신 집중이 필요할 뿐. 물론, 그조차도 찰나에 불과했다.

[짓눌려 죽어라───!]

흑마력으로 이루어진 용의 머리가 공간을 집어삼키며 칸을 향해 재차 가속했다.

아우굴라베스의 권능이 흑마력을 통해 실체를 갖춘 거라 봐야만 했다. 공간을 직접 씹어서 소화하는 권능이니, 방어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봐야만 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도망치기엔, 용의 속도가 칸의 속도에 버금갈 정도였다.

칸의 선택은 방어도 회피도 아니었다.

‘깨부순다.’

칸의 손을 벗어난 양날 도끼가 용의 이빨이 되어 비상한다. 투척할 때의 진각만으로도 발아래가 무너질 만큼의 위력. 범인의 눈으로는 번개가 치는 거라 착각할 정도의 속도로!

공간을 포식하는 흑마력의 용과 야만전사의 초인적인 근력과 게임 시스템이라는 불가해한 힘으로 빚어진 용의 이빨이 서로를 잡아먹으려 얽히는 순간-.

콰과과과광──!

두 용이 충돌하며 생겨난 여파로 인해 기둥이 쓰러지고, 위태롭게 흔들리던 천장이 박살이 나 떨어져내린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용의 이빨이 흑마력의 용을 관통한다.

공간을 짓뭉개는 악마의 권능조차도, 용의 이빨을 막아서지 못하고 소멸한 것이다.

당연히, 초월자가 강림시킨 의식의 일부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것이 실체를 가진 이상, 용의 이빨은 악마의 의식마저 씹어서 으스러뜨렸다.

[안……!]

마지막 단말마조차 제대로 완성하지 못하고, 용의 이빨에 꿰뚫린 아우굴라베스의 의식체가 용권풍에 휘말려 찢겨져나간다.

치이이익…….

스킬을 사용한 후폭풍인지, 연기가 피어오르고 붉게 달아오른 손을 보며 혀를 찬 칸이 아우굴라베스의 의식체가 있던 자리로 천천히 걸었다.

이미 승리를 확신한, 여유로운 걸음걸이.

덜컥.

날이 반쯤 엉망이 된 도끼를 집어 아에카리스의 주머니로 회수한 칸이 고개를 내리깔았다.

[크으으악……. 너어어─!]

의식체는 완전히 소멸하지 않았다. 녀석은 언제든지 본신의 힘을 제단을 통해 끌어와 만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도 있을 터. 그러나 녀석이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선택을 내리지 못하리란 걸. 칸은 확신하고 있었다.

아우굴라베스의 머리통을 짓밟은 칸이 비웃음을 흘렸다.

“제단을 통해서 더 힘을 끌어오자니, 영구적인 힘의 상실이 있을 테니 그러진 못하겠고. 내가 품은 네 주인의 권능은 또 회수하고 싶고…. 오만한 네놈 족속의 성격을 생각하면, 어떻게 해서든 복수도 하고 싶겠지.”

이미 의식체를 강림시키며 셰이가 바친 제물을 모조리 소모한 놈이다. 거기서 무리하게 힘을 끌어왔음에도 의식체의 한계와 빙의자라는 규격 외의 존재로 인해 패배하고 말았으니.

“꼴이 좋아.”

녀석은 이대로 꼼짝없이, 의식체의 소멸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칸은 놈을 쉽게 죽여줄 생각이 없었다.

“의식체가 미들랜드에 강림한 동안, 지옥에 있을 본신은 그만큼 힘을 잃은 채 방치되겠지.”

[너, 설마…! 필멸자 따위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 이 빌어먹을 탕녀가 그런 것까지 알려줬다고……?!]

“글쎄. 그럴 수도 있고.”

당연히, 게임에서의 경험으로 알게 된 정보였다.

녀석은 의식체가 소멸하거나 제단이 파괴되어 연결이 끊기기만을 바라고 있겠지. 그리고 적이 바라는 대로 움직이는 건, 멍청이들이나 할 행동이다.

“우리, 진득하게 대화를 좀 나눠볼까?”

희번덕하게 웃는 칸의 얼굴을 마주한 아우굴라베스의 의식체가 흠칫- 몸을 떨었다.

“내가 궁금한 게 아주 많아. 우선은…….”

대악마. 그놈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솔직하게 답변해줘야겠어.

“다른 악마들한테 뒤통수 맞기 싫으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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