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명가의 절대무신 1화
1화.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무형지독(無形之毒)에 중독된 몸으로 저런 무공을 펼치다니!”
서문세가의 고수들이 비명을 질러 댔다.
무림맹주를 여러 번 배출한 당대 제일의 명문 서문세가.
지금 그 서문세가가 궁지에 몰려 있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서문세가의 사위인 현(現) 무림맹주를 제압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것이 천랑무제(天狼武帝) 백무랑!”
“천마신교와 흑사련을 멸망시킨 천하제일인……!”
기다란 흑발을 휘날리며 위태롭게 검강을 펼치고 있는 남자.
그가 바로 천랑무제라 불리는 현 무림맹주 백무랑이었다.
백무랑은 원래 아무런 배경이 없던 인물이다.
하지만 전대의 무림맹주였던 서문휘의 사위가 된 이후, 서문세가와 행보를 함께하게 되었다.
언제나 무림맹의 최선봉에서 싸우던 백무랑은 ‘천랑무제’라 칭송받게 되었고, 장인의 뒤를 이어 새로운 무림맹주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천마신교와 흑사련을 멸망시키는 역사적 위업을 달성했다.
그런 그가 지금 서문세가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항시 백무랑의 곁을 지키던 십이위병(十二威兵)조차 주검으로 변한 지 오래, 오직 그만이 버티고 서 있을 뿐이었다.
서문세가가 백무랑을 공격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천마신교와 흑사련이 사라진 지금…… 서문세가가 지배할 무림에 백무랑이 더 이상 필요 없어졌기 때문이다.
“큭……!”
선대 가주의 아들, 서문환이 입술을 깨물었다.
서문세가의 쟁쟁한 고수들을 쓰러뜨린 백무랑이 천천히 그의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지긋지긋한 놈…… 무형지독에 중독된 상태로 그런 힘을 발휘하다니.”
“역시 무형지독이었군.”
피 칠갑을 한 채 백무랑이 차갑게 내뱉었다.
“서문환, 네 여동생은 어디 있지?”
“그걸 네가 알아서 어쩌겠다는 거냐?”
“내 아내가 어디에 있는지 묻지도 못하나?”
백무랑이 코웃음을 쳤다.
“어떤 기분으로 나한테 무형지독을 먹였는지 묻고 싶군.”
“큭…….”
본래 백무랑이 건재한 상태였다면 혼자서도 서문세가를 전멸시킬 수 있었다.
이런 지경에 놓인 건, 아내가 몰래 먹인 무형지독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선대 맹주의 뜻에 의한 결혼이었고, 우리들 사이에 애정은 없었다. 그래도 나는 항상 남편으로서, 서문세가의 사위로서 책임과 소임을 다하려 했다.”
“…….”
“무림맹주 자리를 이어받은 이후로도 서문세가를 계속 존중해 왔는데…… 천마신교와 흑사련이 멸망하자마자 토사구팽이라니, 어처구니가 없군.”
백무랑이 피식 웃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장인어른이 돌아가셨을 때 서문세가와 무림맹 내부를 싹 정리할 걸 그랬다. 썩어빠진 원로들도 모조리 정리하고.”
“백무랑, 네놈의 그런 패도적인 태도가 오늘의 화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정파에 속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백무랑은 너무 패도적이었다.
천마신교 교주도 흑사련 연주도 백무랑을 탐냈을 정도였다.
서문환은 백무랑의 그런 면모에 위협을 느껴 왔다.
“너는 평화로운 시대의 위협이 될 수 있는 존재다! 너 같은 놈이 무림맹주 자리에 앉아 있는 걸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그래서 나를 죽이고 서문세가 마음대로 무림맹을 지배하겠다는 건가?”
“애초에 나는 처음부터 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천랑성(天狼星)에서 따온 이름을 쓰다니, 무슨 흑도 나부랭이도 아니고……!”
“서문환.”
악에 받쳐 떠들어 대는 서문환 앞에서도, 백무랑은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목소리가 계속 떨리는군. 말하는 내용도 지리멸렬하고.”
“큭……!”
“너를 지키던 고수들이 모두 죽었으니, 이제 네가 나를 상대해야겠지. 두려워하는 것도 당연하다.”
입에서 피를 뱉어낸 백무랑이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덤벼 봐라, 서문환.”
“배, 백무랑…….”
“중독되어 죽어 가는 몸이다. 나를 죽일 절호의 기회지.”
“……!”
지난 십 년간 한 번도 백무랑과 실력을 겨뤄 본 적 없는 서문환이었다.
애초에 백무랑에게 상대가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승산이 있을지도 모른다.
“전력을 다해 덤벼라.”
“네놈……!
서문환이 벽라무극도법(碧螺無極刀法)을 펼치며 달려들었다.
그렇게 푸른 도기(刀氣)가 백무랑의 급소를 노렸다.
“……!”
푸욱!
시커먼 공력이 실린 검이 서문환의 명치를 꿰뚫었다.
무형지독에 중독된 상태여도, 백무랑의 무위(武威)는 압도적이었다.
“서문환, 너는 서문세가 가주의 자격이 없다.”
“백무, 랑…….”
“무림맹주의 자리를 탐할 자격은 더더욱 없고 말이다.”
“…….”
서문환이 힘없이 쓰러졌다.
그 모습을 한동안 응시하던 백무랑이 왈칵 피를 토했다.
정신력으로 버티긴 했지만, 슬슬 한계였다.
“…….”
주위를 둘러보니 수많은 시체가 눈에 들어왔다.
그 참혹한 광경에 백무랑은 한없는 회한을 느꼈다.
과거 다른 선택을 했다면 이런 광경이 펼쳐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결혼 자체를 하지 말 걸 그랬군.”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런 꼴을 보려고 무림맹주가 된 건 아니었는데 말이다.”
무림맹주로서 큰 공적을 세웠다.
천마신교와 흑사련을 멸망시킨다는 위업을 달성했으니까.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었다.
백무랑이 무림의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 최전선에서 싸우는 동안, 무림맹 내부는 썩을 대로 썩어 가고 있었다.
서문세가를 비롯한 주요 문파들은 앞으로 어떻게 이권을 나눠 먹을지만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방해가 되는 백무랑을 제거하려 나선 것이다.
“무림맹을…… 제대로 이끌어야 했었는데.”
만약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새로운 무림맹을 만들 것이다.
흑도(黑道)의 만행을 단죄하면서, 백도(白道)의 부패도 용납하지 않는…… 진정으로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는 연맹을 만들어 내겠다.
“그래, 다음 생에는 반드시…….”
백무랑의 눈이 서서히 감겼다.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는 정말 제대로 된 무림맹을 만들어 내겠다고 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