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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명가의 절대무신-2화 (2/129)

몰락명가의 절대무신 2화

2화. 이 세계에 진정한 무림맹을

“쿨럭! 쿨럭!”

거친 기침과 함께 시야가 서서히 밝아졌다.

신물을 뱉어 내며 몸을 일으키자 전신에서 오한이 느껴졌다.

‘내가…… 살아 있는 건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무형지독에 죽었을 텐데, 왜 멀쩡히 살아 있는 걸까.

‘멀쩡한 상태는 아니지만…….’

팔다리가 아프고,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

특히 전신에서 한기(寒氣)가 느껴졌다.

‘누가 빈사 상태인 내 몸에 사술(邪術)을 시행한 건가?’

급하게 내부를 관조하기 시작하자,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오랜 수련으로 단단한 근골을 갖고 있던 몸이 서생처럼 비실비실해진 상태였다.

‘내 몸이 왜…….’

그 순간.

머리가 갑자기 터질 듯이 아파 오기 시작했다.

“크윽……!”

머릿속에 떠오르는 정보, 정보, 정보들!

한 사람의 인생을 망라하는 정보가 머릿속에서 휘몰아쳤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정보의 홍수를 견디지 못하고 머리가 터져 나갈 것 같았다.

“나,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입에 담은 적 없는 언어가 저절로 입에서 흘러나왔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차츰 이해되기 시작했다.

“나는…… 다른 세계에서 다시 태어난 건가?”

그때였다.

“깨어나셨군요.”

상상도 못 한 일에 생각을 정리하던 중, 들려온 여성의 목소리.

은색의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이국적인 분위기의 여자.

아직 여인이라기보다는 소녀라 부르는 게 더 어울릴 듯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분명 초면일 텐데, 머릿속에 그녀의 기억이 있었다.

“초야(初夜)부터 이런 일이 벌어져서 안타깝지만, 그래도 무사히 깨어나셔서 다행입니다.”

“유스티아……?”

“네, 맞습니다.”

은색 머리카락의 그녀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결혼식을 올린 당신의 아내…… 유스티아 리겔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두통을 느꼈다.

잘못된 결혼 때문에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런데…… 이미 결혼을 했다고?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저희 리겔 가문 사람들 모두 다 알고 있으니까요.”

“……!”

머릿속에서 멋대로 기억이 떠오른다.

자신이 누구인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저절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피로연에서 마신 술 몇 잔에 쓰러졌다고 해도, 다들 이해해 줄 겁니다.”

대륙 5대 명가 중 하나인 리겔 가문의 막냇사위, 시리우스 카니스루트.

그것이 다시 태어난 천랑무제 백무랑의 이름이었다.

* * *

‘정말로 병약한 사람이구나.’

눈앞에 있는 ‘남편’을 응시하며, 리겔 가문의 셋째 딸인 유스티아 리겔은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시리우스가 병약한 남자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남편감을 잘못 고른 걸까.’

유스티아는 딱히 시리우스를 사랑해서 결혼한 게 아니다.

남편 후보들 중에서 가장 무해(無害)할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시리우스를 선택했을 뿐이다.

그동안 혼담이 들어온 남자들은 문제가 많았다.

특히 혼인을 통해 리겔 가문을 집어삼키려는 속셈이 빤히 보이는 놈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무리 리겔 가문이 약해진 상태라고 하더라도, 대륙 5대 명가라는 격(格)만큼은 여전히 가치가 있으니까.

그래서 유스티아는 시리우스를 선택한 것이다.

평생 집안에 틀어박혀 학문만 연구했다고 하는, 카니스루트 가문의 병약한 차남을.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이미 결혼식도 올렸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결혼했다고 해서 지금까지와 생활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거라는 점이다.

시리우스가 데릴사위로서 리겔 가문에 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앞으로 시리우스하고는 형식적인 부부 관계만 유지하면서 최소한의…….

‘아, 잠깐만.’

바로 그때.

유스티아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 남자, 초야(初夜)를 치르는 게 가능할까?’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저 병약한 몸으로 무리하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기라도 하면…….

“……?”

그런데 시리우스가 뭔가 이상했다.

그는 팔짱을 낀 자세로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눈앞에 있는 신부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시리우스?”

“유스티아.”

갑자기 시리우스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겉옷을 몸에 걸치기 시작했다.

“바깥바람 좀 쐬고 오겠다.”

“네?”

“그러니.”

시리우스가 유스티아에게 시선을 향했다.

눈이 마주치고 유스티아는 흠칫 놀랐다.

평소 시리우스의 눈빛하고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공허하고 무기력하기만 했던 예전 눈빛과는 전혀 다른…… 또렷한 눈빛이었다.

“먼저 자라.”

그 말을 남긴 뒤, 시리우스는 침실에서 휙 나가 버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신부를 내버려 둔 채.

“뭐야……?”

결혼 첫날밤.

유스티아 리겔은 부부의 침실에 홀로 남겨졌다.

* * *

천랑무제 백무랑…… 아니, 시리우스 카니스루트는 냉정했다.

무림에서 온갖 사건을 겪으면서도 결코 흔들리는 일이 없었던 것이 백무랑이라는 무인(武人)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해괴한 일을 경험하고도 ‘어떻게 이런 일이!’라고 당황하면서 허둥지둥하는 일은 없었다.

시리우스는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는 걸 우선했다.

‘이건 꿈이나 환술(幻術)이 아니다.’

천마신교와의 싸움에서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에, 누군가가 환각을 보여 주고 있는 거라면 알아챌 수 있다.

온몸에서 느껴지는 생생한 감각들만 봐도 이건 분명 현실이었다.

‘나는 다른 세계에서 다시 태어난 거다.’

천랑무제 백무랑은 서문세가의 음모에 당해 죽었다.

그리고 그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다른 세상의 청년 시리우스 카니스루트로 다시 태어났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군.’

솔직히 황당한 일이기는 했다.

다시 태어나면 제대로 된 무림맹을 만들겠다고 다짐하며 죽었다.

그런데 무림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운명을 저주하며 망연자실할 필요는 없었다.

‘무림이 없는 세계라고 해도, 무림맹 같은 조직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으니까.’

시리우스의 기억을 되새기면 알 수 있었다.

이 세계에서도 여러 명문가가 각자 세력을 형성하며 거들먹거리고 있다.

무림의 흑도들과 같은 무법자들이 사람들을 해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세상을 바로잡을 만한 커다란 단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세계에서 새로운 무림맹을 만들면 되는 것 아닐까.

물론 이름은 바꿔야 하겠지만 말이다.

‘내가 이 세계에서 새로운 무림맹을 만든다면…… 전생처럼 되는 일은 없을 거다.’

천랑무제 백무랑은 잘못된 삶을 살았다.

백무랑은 무림맹주의 자리에 올랐지만, 무림맹 내부를 개혁하지 못했다.

무림맹주로서 천마신교 및 흑사련과 피 튀기는 싸움을 하느라 정신이 없던 사이, 서문세가가 장악한 무림맹 내부는 썩을 대로 썩어 가고 있었다.

결국 백무랑은 서문세가의 배신으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런 일은 두 번 다시 없어야 한다.

‘내가 모든 것을 주도하면서, 이 세계에 진정한 무림맹을 만들겠다.’

누군가에게 주도권을 넘겨 주지 않겠다.

그릇된 것을 모조리 바로잡으면서, 유능한 인재를 모아 새로운 세력을 만들 것이다.

전생에서는 만들지 못했던…… 진정한 무림맹을 만들어 내겠다.

그것이 시리우스 카니스루트의 목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리겔 가문을 활용하는 게 최선이겠지.’

백무랑도 서문세가의 사위였기에 무림맹주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변방의 학자 가문 출신인 시리우스가 무림맹 같은 조직을 만들어 세상의 인정을 받으려면, 대륙 5대 명가인 리겔 가문의 간판을 활용해야 더 수월할 것이다.

대륙 5대 명가는 오랜 역사를 지닌 대륙 최고의 명문가로, 어딜 가나 알아주는 명망 높은 가문이니까.

문제는 리겔 가문이 지금 매우 약해진 상태라는 점이다.

현(現) 가주인 루트베인 리겔이 가문을 물려받았을 때, 리겔 가문은 주위의 중소 가문들에게도 밀릴 정도로 몰락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래도 대륙 5대 명가라는 전통 자체는 여전히 가치가 있는지라, 여러 세력들이 리겔 가문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 내가 리겔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해. 그 과정에서 리겔 가문의 주도권을 잡으면 되는 거지.’

생각해 보면, 백무랑도 이렇게 해야 했다.

선대 가주의 사위 자격으로 서문세가를 바로잡고 주도권을 잡아야 했다.

장남인 서문환을 존중해 준다고 물러서 있는 동안, 서문세가 내부는 완전히 썩어 버렸다.

이번 삶에서는 그렇게 안 할 생각이었다.

몰락명가 리겔 가문을 재건하면서 가문 전체의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다시 태어난 리겔 가문은 시리우스가 새로운 무림맹을 만들기 위한 초석이 되어 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빨리 힘을 되찾아야 해.’

시리우스는 무척 나약한 몸을 갖고 있었다.

원래 카니스루트 가문은 대대로 변방에서 학문 연구만 해 온 집안이다.

시리우스도 평생 실내에서 책만 읽으면서 살았는지 온몸이 비실비실했다.

수십 년 동안 철저히 단련해 온 천랑무제 백무랑의 육체와는 천지 차이였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비록 나약하긴 하지만, 시리우스의 육체는 젊다.

고작 스물다섯밖에 안 되기 때문에, 백무랑보다 훨씬 젊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젊은 몸이라면, 전생보다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하는 것도 가능할 터.’

천랑무제 백무랑은 무(武)의 깊은 이치를 깨달아 현경(玄境)에 도달했던 무인이다.

그 정도만 되어도 강호에서 적수를 찾기 어려웠지만, 백무랑은 항상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하길 원했다.

무림에서도 전설로만 전해지던 최고의 경지…… 신화경(神化境).

시리우스의 젊음을 활용하면 현경을 넘어서 신화경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 이 세계에는 마법이라는 특수한 힘이 존재해. 거기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것도 가능하겠지.’

시리우스의 기억에 의하면, 이 세계에는 무공이 없는 대신 마법이라는 힘이 존재했다.

무공과는 다른 체계를 지닌 것 같은데, 새로운 경지에 도달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이 세계에서 진정한 무림맹을 만들면서, 나 자신도 새로운 경지에 도달하는 거다.’

그러니, 최종 목표는 두 가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계에서 진정한 무림맹을 만드는 것.

무인으로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 신화경에 도달하는 것.

이 두 가지가 앞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였다.

‘그러니…… 빨리 힘을 되찾아야 해.’

천랑무제 백무랑의 힘을 되찾지 못한다면 시리우스는 그냥 아무런 힘이 없는 병약한 학자일 뿐이다.

새로운 세상에서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빨리 힘을 되찾아야 한다.

‘일단 이 비실비실한 육체부터 어떻게 해야겠군.’

시리우스의 병약한 육체부터 정비해야 한다.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는 이미 생각해 두었다.

오늘 밤은 그것에만 집중할 생각이다.

‘그러고 보니…….’

유스티아를 그냥 침실에 내버려 두고 온 게 생각났다.

신혼 초야에 신부를 혼자 두고 바깥으로 뛰쳐나온 건데, 좀 무례한 일이 아니었을까.

‘아니, 괜한 걱정이겠지.’

시리우스의 기억에 의하면, 두 사람은 딱히 애정으로 맺어진 부부가 아니다.

여러 가지 요건을 고려하여 맺어진 정략결혼에 불과하다.

‘애초에 유스티아는 시리우스를 한심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고 말이야.’

시리우스를 쳐다보던 유스티아의 냉담한 눈빛을 떠올렸다.

남편이 치근대지 않으면 유스티아 입장에서는 오히려 반가운 일일 것이다.

‘시리우스도 유스티아에게 별다른 호감은 없었던 것 같고.’

솔직히 말해서, 지금도 유스티아에게는 별 관심이 없다.

유스티아가 여성으로서의 매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는 아니다.

나이가 너무 어리기 때문이다.

유스티아의 현재 나이는 스무 살.

시리우스라면 몰라도 천랑무제 백무랑의 관점에서 보자면 너무 어리다.

‘그냥 형식적인 결혼 관계를 유지하는 게 서로에게 좋은 거지.’

시리우스의 기억에 의하면…… 두 사람은 결혼을 해도 서로 간섭하지 말고 각자 편한 대로 살자는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렇게 합의한 거라면, 최대한 존중해 주면 된다.

‘무엇보다, 이제 결혼 생활은 질색이다.’

백무랑은 아내가 먹인 무형지독 때문에 죽었다.

그 일을 생각하면 누군가와 부부의 연을 맺는 것 자체가 꺼려졌다.

하지만 이미 시리우스는 유스티아와 혼인을 맺은 상태.

그걸 없었던 일로 할 수는 없다.

그러니 그냥 형식적인 혼인 관계만 유지하면 된다.

유스티아도 그걸 원하고 있으니까.

‘그럼 오늘 밤은…… 이 비실비실한 육체부터 뜯어 고쳐 볼까.’

백무랑의 무위(武威)를 회복하기 위한 첫걸음으로서.

오늘 밤 시리우스는 천랑무제의 신공(神功)에 입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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