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명가의 절대무신 4화
4화. 그놈을 족칠 때가 왔다
시리우스가 머무는 곳은 리겔 가문의 별관(別館)이다.
작은 정원이 딸린 3층짜리 건물인데, 서책을 좋아했던 선대 가주(家主)가 만들어 놓은 서재(書齋) 겸 별장이었다.
선대 가주가 사망한 이후로는 먼지만 쌓이고 있었는데, 책을 좋아하는 유스티아가 물려받아 관리해 왔다고 한다.
유스티아는 평상시에도 이 별관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결혼 이후에도 신혼집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한적한 건 좋군.’
별관 주위에는 산과 숲밖에 없다.
그래서 조용했다.
별관에서 일하는 사람도 대여섯 명 정도밖에 안 된다.
사람 손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본관(本館)에서 사람이 온다고 한다.
‘수련을 하려면 아무래도 조용한 곳이 좋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리우스는 별관 편에 있는 산을 올랐다.
전신의 경맥을 정비하여 활력을 만들어 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활동량을 늘리면서 기초적인 체력을 길러야 한다.
산을 오르고 있으니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천랑무제 백무랑 시절이라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겠지만, 시리우스의 육체는 아직 허약하다.
그래도 내공을 운용하여 육체를 보조해 주고 있기 때문에, 시리우스의 본래 체력으로는 불가능한 일도 할 수 있었다.
“흠.”
가파른 경사를 뛰어 올라갔다.
위쪽에 동굴 같은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 능력으로 제대로 된 경공을 펼치는 건 불가능하지만, 이 정도 경사는 뛰어오를 수 있다.
“제법 괜찮군.”
목표했던 지점에 도달해서 안쪽을 들여다봤다.
동굴은 꽤 깊고 아늑했다.
운기조식을 하기에 적절한 공간이었다.
“역시 운기조식은 깊은 산속 동굴 같은 곳에서 해야 제맛이지…….”
충만한 자연지기를 느끼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가부좌를 틀고 바로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 * *
“시리우스 님이 또 뒷산으로 향했다고 하네요.”
“…….”
전속 하녀인 마리아의 목소리를 듣고, 유스티아는 펜을 멈췄다.
지금 유스티아는 2층의 집무실에서 회계 서류를 점검하는 중이었다.
“틈만 나면 뒷산에 들어가 버리고, 집에 돌아오면 연구실에 틀어박혀 버리고…… 대체 뭐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네요. 밥은 또 왜 그렇게 많이 먹는지…….”
“마리아.”
시리우스를 흉보는 마리아를 보면서, 유스티아가 입을 열었다.
“누구한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버려 두세요.”
“아가씨, 하지만 저 사람은 아가씨의 남편인데…….”
“오히려 저한테는 더 좋은데요.”
이건 진심이었다.
시리우스가 저렇게 혼자서 자기 일에만 몰두하고 있어서, 유스티아도 결혼하기 전과 다름없이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쓸데없는 잡담은 그만하고, 이 서류를 본관에 전달해 줘요.”
“아, 네.”
유스티아는 리겔 가문의 회계 관련 서류를 살펴보는 중이었다.
비록 마법의 재능은 없지만, 유스티아는 어렸을 때부터 두뇌 회전이 빨랐다.
그래서 아직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가문의 실무 일부를 담당하고 있었다.
“무슨 문제가 있었나 보죠?”
“치안대 쪽으로 나가는 지출이 너무 많아요. 한 번 점검이 필요해요.”
그렇게 말하며 유스티아는 인상을 찡그렸다.
“들어오는 돈은 점점 줄어드는데, 나가는 돈은 점점 늘어나니…… 리겔 가문의 장래가 걱정되네요.”
리겔 가문은 갈수록 몰락하고 있다.
대륙 5대 명가의 이름만 유지하고 있을 뿐, 이제는 중견 가문들에게도 얕보이는 상황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가문을 지킬 수 없어, 다른 가문의 병력을 빌리고 있을 정도였다.
“마법도 못 쓰는 막내가 이런 걱정을 해 봤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요.”
“아가씨…….”
유스티아는 창문 밖을 쳐다봤다.
남편은 이런 사정에는 관심도 없이 오늘도 태평한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 * *
시리우스는 단순히 체력만 단련하는 게 아니었다.
체력 단련은 보법(步法)과 신법(身法), 경공(輕功)을 몸에 새겨 넣는 과정이기도 했다.
시리우스는 천랑무제 백무랑하고는 골격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이 육체에 딱 알맞은 몸놀림을 찾아야만 한다.
내공을 활용하여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다면 다른 놈들을 상대할 때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이 세계는 이런 힘이 없는 것 같으니까.’
이 세계에 무공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법을 써도 사람의 육체 능력을 강화할 수는 없다고 한다.
적어도 시리우스의 기억에 의하면 그렇다.
‘오늘은 이 정도면 되겠지.’
한바탕 땀을 흘리고, 시리우스는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제 별관으로 들어가 몸을 씻은 뒤, 연구실에서 휴식을 취할 것이다.
원래 홀로 학문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리겔 가문이 마련해 준 방이지만, 지금 시리우스는 그곳에서 그냥 숙식까지 해결하고 있었다.
‘하녀들이 이불도 갖다 줬고…… 삼시 세끼 식사도 가져다주니, 굳이 다른 곳을 기웃거릴 필요는 없지.’
다만, 오늘은 별관 내부를 좀 살펴볼 생각이었다.
슬슬 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목검이어도 상관없으니, 검술을 수련할 검이 필요해.’
별관 안으로 들어서서 복도를 걷고 있자, 지나가던 하녀가 인사를 했다.
“시리우스 님, 씻으러 가시는 건가요?”
“그래, 갈아입을 옷을 부탁하지.”
“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질문을 던졌다.
“이 별관에 검이 있을까?”
“네? 검이요?”
하녀가 당혹스러워 했다.
“검은 왜…….”
“체력 단련을 하고 싶어서 말이다.”
“아…….”
“목검 같은 거여도 상관없는데.”
시리우스의 말을 듣고, 하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창고에 장식용 검이 하나 있는데요.”
“장식용 검?”
“선대 가주님이 응접실에 장식해 놓으셨던 검이에요. 유스티아 아가씨가 치우라고 말씀하셔서 창고에 두었는데…….”
“그걸 내가 쓰려면 유스티아의 허락을 받아야 하나?”
“괜찮을 거예요. 날도 서 있지 않고, 그냥 장식용 검이니까.”
장식용 검이라고는 해도, 내공을 실으면 충분히 무기로 삼을 수 있다.
일단 그거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져다드릴까요?”
“그래 주면 고맙지.”
그렇게 부탁을 한 뒤, 욕실로 향했다.
몸을 깨끗이 씻고 연구실로 돌아가니, 이미 연구실 안에 검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이건가.”
검집에서 검을 뽑아 봤다.
제법 묵직하고, 균형이 잘 잡혀 있는 검이었다.
“장식용 검이 아니었군.”
분명 날이 세워져 있던 검이다.
장식용으로 쓰기 위해 처리를 했던 모양인데, 칼날을 잘 갈아 준다면 충분히 위협적인 흉기가 될 수 있다.
물론, 내공을 실으면 이렇게 뭉툭한 칼날로도 충분한 살상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말이다.
“다음에는 숫돌을 구해 봐야겠어.”
그렇게 중얼거리며, 시리우스는 연구실 안에서 자세를 잡았다.
현재의 육체로 이런 검을 들었을 때 체중 배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확인해야 했다.
“…….”
그리고, 검이 허공을 갈랐다.
아직 빈약한 육체로 휘두르는 검이었지만, 칼날이 허공에 새긴 궤적에는 검술의 극의(極意)가 담겨 있었다.
“…….”
시리우스는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보법을 펼치면서, 연구실 안에서 초식을 전개했다.
검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연속해서 귀를 자극했다.
그리고 초식의 마지막 단계에 접어든 순간.
“……!”
우우웅!
칼날에 검은색 기운이 전개되었다.
천랑신공의 첫 단계인 ‘북명(北溟)’이었다.
“하압!”
파아앙!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연구실 벽에 늘어서 있던 책장이 흔들리고, 꽂혀 있던 책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인상을 찡그렸다.
“역시 한참 부족하군.”
혀를 차면서 다시 자세를 잡았다.
북명의 단계에 입문하긴 했지만, 아직 시리우스의 육체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상태는 아니었다.
북명의 힘을 제대로 제어했다면 이런 충격파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 연습이 필요하겠어.”
아직도 천랑무제 백무랑 시절의 버릇에 사로잡혀 있다.
현재 어느 정도 힘을 지니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여,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무공을 펼쳐야 한다.
지금은 천랑무제 백무랑이 아니라 시리우스 카니스루트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
눈을 감은 채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과거의 기억을 되새겼다.
천랑무제라 불리던 무림맹의 강자가 아니라, 젊은 무명 검객이었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 자신은 무엇을 추구했을까.
기본 소양이 부족한 무인이 상대를 쓰러뜨리려면 어떤 걸 중시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답은 속도였다. 빠르게 상대방의 허를 찌를 수 있는 쾌검(快劍)이 필요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천랑무제 백무랑의 기억에서 현재의 육체에 가장 알맞은 검법이 떠올랐다.
‘흑영탈명검법(黑影奪命劍法) 제일식, 낭교인(狼咬刃).’
원래는 살수들이 쓰던 검술이다.
사냥감을 덮치는 짐승처럼 빠르게 움직여서 목숨을 취하는 쾌검. 그것을 위해 진기가 십이경맥과 기경팔맥을 흐르며 전신을 재조정한다.
시리우스의 육체가 자연스럽게 움직이면서, 쾌속의 검법을 펼쳤다.
“…….”
쩌억!
커다란 소리가 침묵을 깼다.
책장 하나가 반으로 갈라지는 소리였다.
날이 세워져 있지 않은 검인데도 불구하고, 커다란 책장을 두 조각 낸 것이다.
이것은 칼날에 전개된 북명의 기운이 그 정도의 절단력을 발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검에 전개된 기운만으로 눈앞에 있는 것을 벨 수 있는 경지.
즉…… 검기상인(劍氣傷人)의 경지였다.
“이 정도면 문제없겠군.”
머릿속에서 시리우스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바로 며칠 전, 결혼식 피로연 때의 기억이다.
그때 난색을 표하는 시리우스에게 억지로 술을 권했던 중년 남자가 있었다.
리겔 가문 사람이 아니라, 근처 중견 가문에서 리겔 가문을 지원해 주기 위해 파견한 인물이었다.
“치안대 대장이라고 했던가.”
시리우스를 죽이기 위해, 차가운 기운을 지닌 약물을 먹인 범인.
그놈을 족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