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명가의 절대무신 6화
6화. 명분이 존재하는 싸움
“끄악……!”
카르데인 유테루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빨이 우수수 떨어졌고, 얼굴이 피로 물들었다.
“이, 이게 무슨 짓…… 허억!?”
쫘악!
반대 방향으로 싸대기를 한 번 더 때려 줬다.
카르데인은 피를 튀기면서 방바닥을 굴렀다.
제대로 눈도 못 뜨고 헐떡이는 카르데인을 내려다보면서, 차갑게 쏘아붙였다.
“대체 무슨 낯짝으로 얼굴을 내민 거냐?”
“무, 무슨…….”
“얼굴을 내미니까 싸대기를 때려 줄 수밖에 없지. 안 그런가?”
한 번 더 때려 주겠다는 듯이 카르데인에게 접근했다.
그러자 카르데인이 비명을 지르면서 뒤로 물러섰다.
“이, 이 미친 자식……!”
“미친 건 너겠지, 카르데인 유테루스.”
카르데인이 응접실 구석까지 도망치는 모습을 보면서, 시리우스는 차갑게 내뱉었다.
“자기 나이 절반도 안 되는 여자를 손에 넣으려고, 그 남편을 결혼 첫날부터 죽이려고 해? 그딴 짓을 저지르고도 무사할 줄 알았나?”
“크, 크윽…….”
“아무런 힘도 없는 학자 가문의 아들, 그것도 너무 병약해서 어느 날 갑자기 죽어 버려도 이상치 않을 남자라면 뒤탈이 없을 거라 생각했겠지.”
카르데인은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부여잡고 몸을 떨고 있는 중이었다.
무엇보다 결혼식 때하고는 전혀 달라진 시리우스의 모습에 당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뒤탈이 생긴 거다. 어떻게 수습할 거지?”
“시리우스……!”
이성을 잃은 카르데인이 소리를 지르면서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손바닥을 앞으로 내민 자세였지만, 시리우스를 제지하려는 움직임은 아니었다.
그리고, 주위 공간이 진동했다.
“이 개자식……!”
화르륵!
순식간에 카르데인이 전개한 ‘마법 술식’에 의해 불꽃이 쏟아져 나왔다.
예전에 천랑무제 백무랑이 상대한 적 있는 염마(炎魔)의 염옥화왕공(炎獄火王功)을 연상케 하는, 위력적인 화염이었다.
5서클 마법사도 이 정도 위력의 화염을 만들 수 있다니, 이쪽 세계의 마법을 얕봐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죽어라……!”
콰콰쾅!
강력한 화염이 응접실을 휩쓸었다.
어찌나 위력이 강한지 벽까지 무너져 내렸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숯덩이가 된 시체를 찾기 위해 카르데인이 눈을 치켜뜬 순간.
“크아악……!”
툭!
카르데인의 오른손이 방바닥으로 떨어졌다.
사각에서 달려든 시리우스의 칼날에 카르데인의 손목이 잘렸기 때문이었다.
무공에 조예가 없는 마법사 따위가 흑영탈명검법 제일식 낭교인(狼咬刃)에 대응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너, 너 어디서 칼을…….”
“응접실에 들어올 때 보지 못했나? 벽에 걸려 있었는데.”
“……!”
원래 이 장검은 응접실에 장식되어 있던 물건이다.
창고에 있던 걸 꺼내서 시리우스가 쓰고 있었지만, 어제 하녀에게 부탁해서 응접실에 다시 장식해 놨다.
시리우스는 카르데인의 화염 마법을 피하면서 검을 취한 뒤, 거리를 좁혀 단칼에 카르데인의 손목을 떨어뜨린 것이다.
짧은 시간이라고는 하나 그동안 보법, 신법, 경공을 수련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그때 응접실 문이 열리면서 유스티아가 뛰어 들어왔다.
그녀는 손목을 잃은 카르데인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카, 카르데인 님, 이게 어떻게 된…….”
“유스티아……!”
카르데인이 다급히 소리쳤다.
“네 남편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갑자기 뺨을 때리더니 마법사의 생명과 같은 오른손을 절단했단 말이다……!”
“……!”
유스티아가 흠칫 놀라며 시리우스의 얼굴을 쳐다봤다.
“시, 시리우스, 대체…….”
“유스티아, 주위를 잘 봐.”
“네?”
시리우스는 불길이 아직 사그라지지 않은 응접실을 훑어보며 말했다.
“마법사는 평소 쓰던 손을 잃으면 마법 발동이 어려워진다고 하더군. 그러니 내가 카르데인의 오른손을 절단한 것보다, 카르데인이 여기서 화염 마법을 사용한 게 먼저라는 거다.”
“……!”
“치안대장으로서 리겔 가문 사람들을 지켜야 할 남자가, 리겔 가문의 막냇사위한테 화염 마법을 날린 것이지.”
그렇다.
이게 바로 카르데인이 마법을 쓰는 걸 그냥 내버려 둔 이유다.
“심지어 이곳은 리겔 가문의 막내딸인 유스티아 네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 곳에서 화염 마법을 사용하다니…… 유스티아가 불타 죽어도 상관없다는 거였을까.”
“아, 아니다!”
카르데인이 당황한 표정으로 부정했다.
“그런 게 아니다! 나는 유스티아를 해칠 생각은 전혀……!”
“하긴, 그렇겠지.”
시리우스는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나를 죽이고 유스티아를 자기 여자로 만들고 싶었으니까.”
“……!”
주위가 술렁였다.
유스티아 뒤에 서 있던 하녀들도 눈을 크게 뜨고 경악하고 있었다.
“다들 들어라.”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치안대장인 카르데인 유테루스는 나 시리우스 카니스루트를 살해하고 리겔 가문의 막내딸인 유스티아 리겔을 취하려 하고 있었다. 오늘 이곳에서 위험한 화염 마법을 사용한 것도, 결혼식 피로연에서 나에게 독한 술을 먹여 생사를 오가게 만든 것도…… 전부 이것 때문이다.”
“……!”
“나는 이 파렴치한 남자를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이건 놈이 내 목숨을 노렸기 때문이 아니라…….”
숨을 삼키는 사람들 앞에서, 시리우스는 힘주어 말했다.
이것이 사적인 다툼이 아니라, 명분이 존재하는 싸움이라는 걸 밝히기 위해.
“내 아내인 유스티아 리겔을 탐했기 때문이다.”
“……!”
“나는 리겔 가문의 사위로서, 감히 리겔 가문의 막내딸을 넘본 카르데인 유테루스를 용납할 수 없었다.”
하녀들이 탄성을 질렀다.
유스티아조차도 눈을 크게 뜬 채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명분일 뿐이다.
시리우스와 유스티아는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계약 관계에 불과하다.
카르데인이 유스티아를 탐했다고 해도 딱히 화낼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리우스가 이렇게 행동하는 건, 명분으로 써먹기 딱 좋기 때문이다.
“아니다, 아니란 말이다! 유스티아, 저놈이 먼저…… 커헉!”
시리우스는 카르데인의 얼굴을 다시 한번 후려쳤다.
남아 있던 이빨도 모조리 으스러졌을 것이다.
“끄어어…….”
카르데인은 더 이상 말을 못 하고 신음했다.
시리우스는 손을 뻗어 그 목덜미를 붙잡았다.
“이놈은 내가 맡을 테니, 다들 불부터 꺼 주길 바란다.”
“아, 네……!”
하녀들이 뒤늦게 움직였다.
이대로 내버려 뒀다간 응접실뿐만 아니라 별관 전체가 타 버릴 수 있으니, 빨리 불을 꺼야 했다.
하녀들에게 소화 작업을 맡긴 뒤, 시리우스는 카르데인을 질질 끌고 옮기기 시작했다.
홀로 남은 유스티아는 말문이 막힌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시리우스…….”
원래 유스티아는 카르데인이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카르데인이 시리우스를 죽이려 했다는 건 모르고 있었다.
게다가 시리우스가 반격해서 카르데인을 작살 낼 거라고는…… 전혀 예상 못 했다.
“대체, 어떻게…….”
어떻게 5서클 마법사인 카르데인을 제압한 거냐고.
그리고, 어떻게 이 상황을 수습할 거냐고.
유스티아는 그렇게 묻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라, 유스티아.”
“……!”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눈을 크게 뜬 유스티아를 내버려 둔 채, 시리우스는 카르데인을 질질 끌며 바깥으로 나갔다.
“크헉!”
차가운 땅바닥으로 집어 던지자, 카르데인이 비명을 질렀다.
시리우스는 그놈을 내려다보면서 쏘아붙였다.
“엄살 피우지 마라. 죽을 정도의 부상은 아닐 텐데.”
“으, 으으으…….”
“아, 깜빡했군.”
손을 뻗어 카르데인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카르데인, 피로연 때 무슨 약을 먹인 거지?”
“야, 약 같은 건 먹이지 않았…… 히익!”
반대편 손을 치켜들자, 카르데인이 비명을 질렀다.
또 싸대기를 맞을까 봐 겁을 먹은 것이다.
“모, 몰라! 나는 모른다고!”
“계속 시치미를 뗄 건가?”
“정말이야! 나는 가주님이 주신 가루를 술에 탔을 뿐이야! 무슨 약인지는 모른다고!”
“…….”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가루약이라…… 대체 어떤 걸까.
“그럼 너희 가주님까지 족쳐야 모든 것이 해결되겠군.”
“뭐, 뭣……!?”
고작 카르데인 하나를 잡는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배후에 있는 유테루스 가문하고도 결판을 내야 한다.
“시리우스, 네놈…… 정말로 미쳐 버린 건가?”
카르데인이 몸을 떨면서 말했다.
“애, 애초에 말이다, 이런 일을 벌이고도 무사할 수 있을 것 같나?”
“무슨 뜻이지?”
“유테루스 가문과 직접 맞붙었을 때, 리겔 가문 따위가 하루라도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하냐? 그런데 네가 감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니 걱정 마라.”
“뭐, 뭐라고?”
“너희 유테루스 가문의 행적을 보면 알 수 있지.”
카르데인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유테루스 가문이 원하는 건 리겔 가문을 평화적으로 접수하는 거다. 무력으로 리겔 가문을 멸망시킬 수는 없어.”
“……!”
리겔 가문은 대륙 5대 명가다.
역사가 짧은 유테루스 가문은 리겔 가문을 접수하여 가문의 격을 올리고 싶어 한다.
리겔 가문 내부를 장악한 뒤, 혼인 관계를 통해 두 가문을 하나로 만드는 것…… 그것이 유테루스 가문의 계획이다.
“너희가 그동안 무력을 사용해 리겔 가문을 강제로 굴복시키지 않은 건, 그런 방식으로는 다른 가문들한테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이지. 너희가 명문가의 지위를 손에 넣으려면 온건한 방법을 통해 리겔 가문을 접수하는 수밖에 없어.”
“으윽…….”
그동안 유테루스 가문은 리겔 가문을 장악하기 위해 많은 노력해 왔다.
카르데인 한 사람이 당했다고 해서 그 모든 노력을 수포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도 뭐…… 너희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겠지.”
“그, 그래, 적어도 네놈만큼은…….”
지금 상황에서 유테루스 가문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시리우스 한 사람을 표적으로 삼는 것이다.
시리우스를 죽여 버린 뒤,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면 된다.
카르데인은 아무런 죄가 없는데, 시리우스 혼자 착각해서 칼을 들이댄 거였다고.
그리고 리겔 가문에 정중하게 항의하여 사과를 받아 내고, 상하 관계를 더욱 확실히하면 되는 것이다.
여기다가 유스티아까지 내놓으라고 하면…… 유테루스 가문이 리겔 가문을 접수할 수 있다.
“네놈만큼은, 반드시…….”
“그래, 너도 복수하고 싶겠지.”
시리우스는 카르데인의 머리채를 붙잡고 다시 질질 끌고 갔다.
별관 앞에는 카르데인이 타고 온 말이 대기하고 있었다.
“가주님한테 가서 애걸복걸해 봐라. 시리우스 카니스루트를 꼭 죽여 달라고 말이다.”
“끄으…….”
“기다리고 있으마.”
카르데인을 말 위에 태우고, 엉덩이를 두드려 출발시켰다.
이제 카르데인은 유테루스 본가로 돌아가 그동안 있던 일을 설명하고 복수를 부탁할 것이다.
시리우스를 죽이기 위해 유테루스 가문이 움직이면…… 새로운 명분이 생긴다.
유테루스 가문을 쓸어 버릴 명분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시리우스, 조금만 기다려라.’
말을 타고 멀어지는 카르데인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너를 죽이려 했던 놈들이, 이제 곧 죗값을 치르게 될 테니까.’
독백에 응답하듯이, 가슴속의 심장이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