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명가의 절대무신 7화
7화. 내가 길을 열어 주마
“그렇군요. 당신이 아무런 계산 없이 카르데인을 공격한 게 아니라는 건 이해했어요.”
유스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시리우스와 유스티아는 별관 3층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당신의 분석은 정확해요. 당신이 카르데인을 해쳤다고 해서, 지금 당장 유테루스 가문에서 리겔 가문으로 쳐들어오지는 않겠죠.”
유스티아는 예상했던 것보다 침착한 반응을 보였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난리를 피울 법도 한데,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시리우스의 얘기를 경청했다.
“하지만, 시리우스…… 이번 일은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을 거예요.”
유스티아가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카르데인이 당신을 독살하려 한 게 사실이라면 당신은 카르데인에게 보복할 권리가 있어요. 그러니 당신이 카르데인을 공격한 것 자체는 정당한 일이라고 할 수 있죠.”
“…….”
“그래서 그 행동 자체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아요. 솔직히…… 속이 시원했던 것도 사실이고 말이죠.”
그동안 카르데인은 리겔 가문을 상대로 무리한 요구를 많이 했다.
그중에는 유스티아를 아내로 삼고 싶다는 것도 있었다.
그러니 유스티아는 카르데인이 그렇게 되어서 속이 시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유테루스 가문은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예요.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리겔 가문을 강하게 압박하겠죠.”
“…….”
“나이엘 유테루스는 교활한 인물이에요. 이번 기회를 활용해 리겔 가문에 대한 지배력을 더 강화하려 할 게 틀림없어요.”
유스티아는 ‘이 일을 어떻게 책임질 거냐.’라고 떠들어 대며 난리를 치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냉정하고 침착하게 상황을 분석할 뿐이었다.
그 태도를 보면서, 시리우스는 유스티아가 역시 총기 있는 인물이라고 느꼈다.
명문가의 스무 살짜리 아가씨가, 산전수전을 겪은 노련한 책사 수준의 침착함을 보여 주고 있었으니까.
역시 제갈 총관과 비슷하다.
시리우스는 어린 나이부터 뛰어난 총기를 보여 줬던 자신의 오른팔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게다가 유테루스 가문은 당신을 결코 용서해 주지 않을 거예요.”
“…….”
“나이엘 유테루스는 당신을 반드시 죽이려고 하겠죠. 그렇게 나오면 리겔 가문으로서는 당신을 보호해 줄 수 없어요.”
유스티아는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면서…… 시리우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유스티아.”
“네?”
“내 목숨을 걱정해 주는 건 고맙지만, 전혀 쓸데없는 걱정이야.”
유스티아가 눈을 크게 떴다.
“내 목숨은 내가 알아서 챙길 테니, 신경 안 써도 돼.”
“시리우스, 지금 상황에서 무슨 그런 허세를…….”
“그리고.”
말을 중간에 끊으면서, 냉정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당신은 앞으로도 계속 유테루스 가문에 고개를 숙이면서 살아 갈 생각인 것 같군.”
“네?”
“이봐, 유스티아.”
시리우스는 몸을 앞으로 내밀면서 물었다.
“다른 하녀들에게 들었는데, 당신은 리겔 가문을 재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하더군. 하지만 유테루스 가문 같은 놈들이 기생충처럼 달라붙어 있는데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나?”
“……!”
“놈들은 리겔 가문이 자력으로 다시 일어서는 걸 결코 용납하지 않아. 리겔 가문을 최대한 쥐어짜면서, 자기들한테 의존하지 않고는 숨도 제대로 못 쉬게 만들 생각이지.”
아까도 유스티아는 돈을 너무 많이 뜯어간다고 카르데인에게 항의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뜯기는 돈은 점점 많아질 것이고…… 돈 말고 다른 것도 빼앗기게 될 것이다.
“그런 놈들을 쳐 내지 않는다면, 리겔 가문의 재건은 불가능해.”
“다, 당신은 아무것도 몰라요.”
유스티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리겔 가문은 힘이 없어요. 유테루스 가문에서 병력을 제공해 주지 않으면 리겔 가문의 영지는 순식간에 흑회(黑會)에게 유린당할 거라고요.”
흑회.
이 세계에서 무림의 흑도(黑道)와 비슷한 집단을 지칭하는 말이다.
특정 가문에 구애받지 않고, 실력 있는 놈들이 모여서 세력을 형성한다.
가문의 싸움은 명분이 중요하지만, 흑회는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서슴지 않고 사람을 해치고 재물을 강탈하는 놈들이다.
그런 놈들에게서 영민들을 지키는 것이 가문의 역할이지만, 현재 리겔 가문은 흑회로부터 영지를 지킬 힘이 없다.
그래서 유테루스 가문에서 카르데인 등을 파견하여 리겔 가문의 영지를 지켜 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걱정 안 해도 된다.”
“네?”
“유테루스 가문의 도움 없이도, 자력으로 영지를 지킬 수 있으니까.”
유스티아가 눈을 깜박였다.
“그건, 다른 가문의 도움을 받자는 얘기인가요? 유테루스 가문이 그걸 가만 보고만 있을 리가…….”
“그런 얘기가 아니야. 자력으로 가문을 재건하자는 얘기를 하고 있는데, 다른 가문의 도움을 받아서는 안 되지.”
“시리우스, 그 얘기는…….”
자신이 있으면 리겔 가문은 다른 가문에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
시리우스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 당당한 태도에 유스티아는 혼란을 느꼈다.
“당신, 정말로 시리우스 맞나요?”
“무슨 뜻이지?”
“저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줄 전혀 몰랐어요.”
유스티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왜 지금까지 숨기고 있던 거죠? 대체 무슨 의도로…….”
“유스티아.”
유스티아의 말을 중간에 끊으며, 시리우스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서로 비밀을 털어놓을 정도로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을 텐데.”
“……!”
“걱정 마라. 딱히 리겔 가문에 해를 끼치기 위해 입 다물고 있었던 건 아니니까.”
시리우스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스티아, 나는 리겔 가문의 데릴사위다. 리겔 가문의 일원으로서, 가문을 위해 진력(盡力)할 생각이지.”
“…….”
“그러니 당신도 최대한 협조해 줬으면 좋겠군.”
앞으로 리겔 가문을 거점으로 삼아 활동하려면, 내부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 자리에 가장 어울리는 건…… 시리우스의 아내인 유스티아다.
“우리는 서로 형식적인 부부지만, 리겔 가문의 재건을 위해서라면 서로 협조할 수 있겠지.”
“시리우스…….”
“유스티아, 마음을 단단히 먹어라.”
시리우스는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리겔 가문은 영원히 다시 일어서지 못할 거다.”
“……!”
시리우스를 쳐다보는 유스티아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 * *
유스티아는 본관으로 떠났다.
가주인 아버지를 만나 앞으로의 방침을 상의하겠다고 한다.
‘내가 가서 얘기하는 것보다, 유스티아가 얘기하는 편이 낫겠지.’
시리우스가 한 얘기를 유스티아가 얼마나 이해하고 납득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머리는 잘 돌아가는 것 같으니, 어느 정도는 이해했을 것이다.
‘너희가 자강(自强)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한다면, 내가 길을 열어 주마.’
딱히 리겔 가문에 애정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몰락한 명문가라는 상황은 시리우스한테 유리하게 작용한다.
대륙 5대 명가 중 하나인 리겔 가문의 간판을 활용하면, 아무런 배경도 없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게 세상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터.
시리우스는 리겔 가문을 재건하면서 가문의 실권을 잡고, 진정한 무림맹을 만들기 위한 발판으로 삼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너희가 계속해서 노예로 사는 것을 택한다면…….’
그때는 어쩔 수 없다.
리겔 가문이 발목을 잡는 것 같으면 더 나은 곳을 찾아 떠나면 된다.
적당한 흑회를 장악해서 세력을 키워 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것이다.
“시리우스 님.”
그때 연구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온 건 평소 보던 하녀가 아니었다.
항상 유스티아를 따라다니면서 종종 나를 째려보던 하녀다.
“이름이…… 마리아라고 했던가?”
“네, 식사는 이쪽에 놔 드리면 될까요?”
“그래, 거기에 두면 돼.”
마리아가 조심스러운 손놀림으로 책상 위에서 식사를 올려놓았다.
하지만, 다 끝난 뒤에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왜 그러지?”
“시리우스 님.”
마리아가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시리우스 님이 유스티아 아가씨를 전혀 거들떠보지 않으시는 줄만 알고 있었습니다.”
“뭐?”
“하지만, 제 착각이었습니다.”
시리우스의 시선을 피하면서, 마리아가 얼굴을 붉혔다.
“아가씨를 빼앗아 가려는 치안대장에게 당당하게 맞서는 모습……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
“시리우스 님이 유스티아 아가씨를 그렇게 소중히 여기고 계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다른 하녀들도 다 그렇게 얘기하더군요.”
뭔가 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은 서로 서먹서먹한 사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정다운 부부가 되시겠죠.”
“아니, 잠깐.”
“머지않아 유스티아 아가씨도 시리우스 님의 진심을 알아주실 겁니다. 그럼 전 이만…….”
마리아는 얘기도 제대로 듣지 않고 그대로 방을 나갔다.
“…….”
좀 당혹스러웠다.
서로 형식적인 관계만 유지하기로 합의했다고 하녀들에게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냥 내버려 두는 수밖에 없겠군.’
시리우스는 그냥 잊어 버리기로 했다.
하녀들이 무슨 오해를 하든, 당사자들의 생각만 변하지 않으면 되는 거니까.
‘신경 쓸 일도 많은데, 이런 일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지.’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유테루스 가문과의 싸움이다.
유테루스 가문을 제대로 상대하지 못한다면, 리겔 가문의 실권을 잡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건 곧…… 유테루스 가문을 확실히 제압하기만 한다면, 리겔 가문을 쉽게 장악할 수 있단 뜻이었다.
‘유테루스 가문에서 가장 실력 있는 마법사는…… 가주인 나이엘이라고 했던가.’
아마 나이엘은 시리우스를 유테루스 가문으로 불러들일 것이다.
직접 와서 해명해 보라고 말이다.
물론, 그렇게 불러들인 뒤 시리우스를 죽일 속셈일 것이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그 부름에 응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나이엘을 쓰러뜨리려면 유테루스 가문으로 직접 쳐들어가야 할 테니까.
나이엘을 직접 제압한 뒤, 시리우스한테 무슨 약을 먹였는지도 알아낼 계획이었다.
‘나이엘은 시리우스가 어떤 상태였는지 시리우스 본인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 같고 말이야.’
이곳에서는 무림에서 사용되던 영약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나이엘을 족치면 무엇을 먹어야 효과를 보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이엘은 7서클이라고 했던가.’
카르데인은 5서클이었다.
7서클이면 카르데인보다 얼마나 강할까.
‘뭐, 직접 경험해 보면 알 수 있겠지.’
상대가 5서클이든 7서클이든, 크게 개의치 않았다.
가볍게 쥔 주먹에서 북명의 시커먼 기운이 일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