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명가의 절대무신 11화
11화. 더 이상 봐주기 힘들다
“카르데인, 어떻게 이런……!”
유테루스 본가에 돌아온 카르데인의 처참한 모습에, 올스테드 유테루스가 비통하게 외쳤다.
올스테드는 카르데인의 아버지로, 유테루스 가문의 병력을 통솔하는 6서클의 실력자였다.
“리겔 가문의 막냇사위에게 당했다고 들었다. 그게 사실이냐?”
“네, 맞습니다, 아버지…….”
카르데인은 얼굴 살이 찢어지고 이빨이 모조리 날아간 모습이었다.
그리고…… 마법사에게 생명과도 같은 오른손까지 잃었다.
“형님……!”
올스테드가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당장 리겔 가문으로 쳐들어갑시다! 막냇사위뿐만 아니라 리겔 가문 놈들을 모조리 척살해야 합니다!”
“경거망동하지 마라, 어리석은 것.”
차갑게 대꾸한 건, 얼굴에 주름살이 가득한 노인이었다.
올스테드의 친형이자, 7서클의 마도사인…… 유테루스 가문의 가주, 나이엘 유테루스였다.
“지금 우리가 리겔 가문을 치면 어떻게 될 것 같으냐?”
“그건…….”
“리겔 가문 정도야 하루아침에 제압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 뒷수습을 어떻게 할 생각이지?”
올스테드가 몸을 움찔했다.
“몰락했다고는 하나 대륙 5대 명가다. 그동안 리겔 가문의 보호자를 자처했던 우리가 군사를 이끌고 리겔 가문을 쳤다는 걸 알면, 다른 가문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하, 하지만, 저쪽에서 먼저 카르데인을…….”
“5서클 마법사인 카르데인이 병약한 0서클 학자한테 당해서 불구가 되었다는 얘기를 다른 가문들이 믿어 줄 것 같으냐?”
“……!”
숨을 삼키는 올스테드 앞에서, 나이엘이 혀를 찼다.
“솔직히 나도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는다. 다른 가문들은 더 믿어 주지 않겠지. 유테루스 가문이 리겔 가문을 공격하려고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거다.”
“혀, 형님, 그래도…….”
“만약 다른 5대 명가가 움직이기라도 하면…… 우리로서는 대처하기 힘들다.”
“…….”
올스테드가 입을 다물었다.
리겔 가문은 몰락한 상태지만, 다른 명가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유테루스 가문이 신흥 강호라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동북부에서 이름을 날리는 수준이다.
대륙 굴지의 강자인 명문가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올스테드, 그동안 우리가 차근차근 리겔 가문을 장악해 왔던 이유가 무엇이냐?”
“그건, 다른 가문들이 트집을 잡지 못하는 형태로 리겔 가문을 손에 넣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 평화적인 방식으로 리겔 가문을 넘겨받아야 한다. 그 일환으로 리겔 가문의 막내딸인 유스티아를 손에 넣으려 했던 건데…….”
나이엘이 카르데인에게 차가운 시선을 향했다.
“무능한 녀석, 막냇사위를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그놈한테 당하고 돌아와?”
“가, 가주님!”
카르데인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놈, 뭔가 이상합니다!”
“이상하다니?”
“저는 분명 가주님이 주신 약을 시리우스에게 먹였습니다! 그런데 그놈은 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건강해졌더군요!”
“그걸 먹고 예전보다 더 건강해져?”
나이엘이 인상을 찡그렸다.
“이상하군. 그럴 리가 없는데.”
“저도 이해가 잘 안 됐습니다! 그래서 대화를 나눠 보면서 어떻게 된 건지 파악하려 했는데, 그놈이…….”
카르데인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게다가 그놈, 제가 날린 화염 마법을 피하고 그대로 달려들어 손목을 잘라 버렸습니다! 병약한 학자가 아니라 마치 숙련된 검사 같았습니다!”
“…….”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제가 먼저 공격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놈은 제 마법을 피하고 제 손목을 잘라 버린 겁니다!”
카르데인은 5서클의 실력자다.
웬만한 검사가 달려들어서 검을 휘두르는 것보다 빠르게 마법을 발동할 수 있다.
그런 카르데인의 마법을 피하고, 손목을 잘라 버렸다는 건…….
“형님.”
생각에 잠긴 나이엘에게, 올스테드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리겔 가문을 직접 공격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시리우스 그놈을 그냥 내버려 둬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걱정 마라. 나도 그놈을 그냥 내버려 둘 생각은 없으니까.”
나이엘이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리겔 가문에 사람을 보내서, 막냇사위를 이곳으로 보내라고 하겠다. 이번 일에 대한 해명을 듣고 싶다고 말이다.”
“네? 이곳으로 불러들인다고요?”
”리겔 가문이 거절하기 어렵도록, 내가 정중하게 친서(親書)를 쓸 것이다. 명문가들은 그런 것에 약하지.”
만약 리겔 가문에서 거부한다면, 유테루스 가문도 명분이 생긴다.
병력을 몰고 가서 리겔 가문을 압박할 수 있게 된다.
루트베인 리겔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테니, 거절하기 어려울 것이다.
“놈이 리겔 가문을 떠나 이쪽으로 오면, 우리들 마음대로 처리하면 되는 거다.”
“좋습니다! 그렇게 처리하도록 하죠!”
올스테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바로 그때.
“바,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방 안으로 뛰어 들어온 남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리겔 가문에 파견된 사람들이 전부 쫓겨났다고 합니다!”
“뭐라고?”
“해리스 님도 오른손에 큰 부상을 입어서 마법을 쓸 수 없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발레온과 카투스가 목숨을 잃었다고……!”
“……!”
이것도 시리우스 카니스루트의 짓이란 말인가.
유테루스 가문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 * *
결국 나이엘 유테루스는 리겔 가문에 편지를 보냈다.
시리우스와 직접 얘기하고 싶으니 유테루스 가문으로 보내 달라고 말이다.
이렇게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 이상,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잘잘못을 가려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물론, 그렇게 불러놓고 시리우스를 죽여 버리려는 속셈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시리우스 탓으로 돌리면서 리겔 가문을 압박할 것이다.
그걸 다 알면서…… 시리우스는 편지가 도착하자마자 유테루스 가문을 향해 출발했다.
루트베인이 사람을 붙여 주겠다고 했지만 거절했다.
그 인원으로 리겔 가문의 방비를 강화해 달라고 부탁했다.
‘결국 내 요구 사항을 다 들어 줬군.’
본래 시리우스는 한낱 데릴사위에 불과하다.
가주와 친딸에 비하면 발언권이 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이미 리겔 가문 내부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다.
‘걱정 마시오, 가주님.’
말을 타고 달리면서, 마음속으로 말했다.
‘리겔 가문은 내가 책임지고 바로 세워 줄 테니까.’
숲길을 한참 달리자, 관문 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품 안에서 지도를 꺼내 유스티아가 적어 준 내용을 확인했다.
‘저기서부터가 유테루스 가문의 영역이군.’
저기서 신분을 밝히면 유테루스 본가까지 안내해 줄 거라고 한다.
관문을 지키고 있는 건 칼테온 유테루스…… 유테루스 가문의 4서클 마법사였다.
‘환영해 주지는 않겠지.’
시리우스는 관문으로 접근했다.
그리고 경계하는 경비병들에게 주저 없이 신분을 밝혔다
“리겔 가문의 사위, 시리우스 카니스루트다.”
“……!”
잠시 뒤, 콧수염을 기른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만나서 반갑소. 이 관문을 지키는 칼테온이라고 하오.”
“여기 오면 유테루스 본가로 안내해 줄 거라 들었는데, 맞나?”
“…….”
반말로 대꾸하자 칼테온이 인상을 찡그렸다.
“오늘은 너무 늦었소. 숙소를 제공해 줄 테니, 내일 아침까지 기다리시오.”
안 그래도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시리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관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미안하지만 이런 숙소밖에 없소. 양해해 줬으면 좋겠군.”
칼테온이 안내해 준 가건물에는 건초더미를 천으로 덮어 둔 침대밖에 없었다.
하지만 딱히 불만을 느끼지 않았다.
“푹신해서 좋겠군.”
“진심으로 하는 소리요?”
“평소에는 방바닥에서 자니까 말이야.”
“……?”
평소 시리우스는 연구실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잔다.
그러니 딱히 불만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시리우스.”
“뭐지?”
“정말로 당신이…… 카르데인뿐만 아니라 해리스와 발레온, 카투스까지 제압한 거요? 혼자 힘으로?”
“이미 당사자들한테서 얘기를 듣지 않았나? 다들 이쪽 길로 지나갔을 텐데.”
“…….”
칼테온이 입술을 깨물며 시리우스를 노려봤다.
하지만,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내일 해가 뜨면 출발하겠소. 그때까지 쉬시오.”
“그러도록 하지.”
시리우스는 허리에 차고 있던 장검을 풀은 뒤 벽에다가 기대 놓았다.
그 모습을 힐끔 쳐다본 뒤, 캍테온이 방에서 나갔다.
“흠…….”
가볍게 기지개를 피면서 칼테온의 태도를 되새겼다.
칼테온은 시리우스를 경계하는 눈빛이었지만, 그런 것치고는 행동에 망설임이 없었다.
위에서 어떻게 행동하라고 지시가 내려왔을 것이다.
“일단 눈 좀 붙여야겠군.”
혼잣말을 하면서 건초 침대 위에 몸을 눕혔다.
그리고 바른 자세로 누워 잠에 빠져 들었다.
“…….”
두 시간 정도 지났을까.
문이 소리 없이 열리면서 괴한들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시리우스는 잠을 자고 있는 상태였지만, 이 정도 기척은 꿈속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세 명 정도인가.’
한 놈은 칼테온이고, 나머지 두 놈은 칼테온의 부하인 것 같았다.
놈들은 칼을 들고 시리우스를 기습하려 하고 있었다.
‘마법을 쓸 때는 공간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지. 내가 깰까 봐 칼로 죽이려는 건가.’
발상은 나쁘지 않지만, 기척을 없애는 게 너무 서투르다.
“죽이면 안 된다. 팔다리를 노려라.”
“네.”
급기야 놈들은 귓속말까지 시작했다.
그 한심한 수준에 한숨이 나왔다.
“그만 해라. 더 이상 봐주기 힘들다.”
“……!?”
푹 자고 있던 시리우스가 갑자기 입을 열자, 놈들이 흠칫 놀랐다.
“젠장! 제압해!”
“네……!”
칼테온이 다급히 소리치자, 부하들이 동시에 움직였다.
하지만 놈들의 칼이 시리우스를 찌르는 일은 없었다.
건초 침대를 박차고 시리우스가 몸을 날렸기 때문이다.
“……!”
휘날리는 건초 사이로 손을 뻗었다. 가장 가까운 놈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놈은 비명도 지르지 못했고 쓰러졌다.
“이, 이 자식이……!”
“흥분하지 마라! 저놈은 무기가 없는 상태다!”
하나 남은 부하를 칼테온이 진정시켰다.
“놈이 아무리 대단해도 무기를 들지 않은 맨손이면…….”
“방금 맨손으로 네 부하를 쓰러뜨린 걸 보고도 그런 말을 하는 거냐?
“……!”
보법을 활용해 움직였다.
주춤하는 잔챙이 하나의 머리를 후려쳐서 침묵시킨 뒤, 다시 칼테온에게 시선을 향했다.
“젠장!”
우웅!
공간이 진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칼테온이 들고 있던 칼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맺히기 시작했다.
“네놈, 검술뿐만 아니라 체술(體術)도 뛰어난 것 같군.”
마법검을 펼치면서 칼테온이 시리우스를 노려봤다.
“하지만 네가 아무리 몸을 잘 놀려도 맨손으로는 마법검을 막아 낼 수 없다!”
“…….”
승리를 확신한 표정으로 칼테온이 달려들었다.
제법 움직임이 괜찮다. 마법뿐만 아니라 검술도 열심히 단련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리우스의 눈에는 별로 위협적이지 않았다.
검기와 비슷한 힘을 발휘하고 있긴 하지만…… 움직임에 내공이 실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쿠웅!
굉음과 함께 가건물이 들썩였다.
칼테온이 펼친 마법검을 시리우스가 손으로 잡아 냈기 때문이다.
충돌로 인해 발생한 울림이 공간을 뒤흔들었다.
“어, 어떻게 맨손으로……!”
이 어둠 속에서는 제대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천랑신공의 첫 단계, 북명의 기운이 시커멓게 일렁이는 모습을…… 칼테온은 전혀 인식할 수 없다.
“마, 마력이 빨려 들어가고 있……!”
북명은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북쪽 바다를 뜻한다.
북쪽 바다처럼 북명의 공력은 상대의 기(氣)를 집어삼킨다.
칼테온이 칼을 빼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급기야 칼테온은 칼을 손에서 놓고 뒷걸음쳤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칼테온이 도망치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단숨에 거리를 좁히고, 북명의 공력이 실린 오른손을 내밀었다.
“커헉……!”
시리우스의 우장(右掌)이 칼테온의 가슴을 후려쳤다.
가슴 속 서클이 박살 나면서, 칼테온은 피를 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