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명가의 절대무신 12화
12화. 이 정도면 명분은 충분하겠지
“그리고, 아래에 크게 서명도 하고.”
“크으윽…….”
칼테온이 몸을 떨면서 종이에 서명을 했다.
시리우스가 완성된 문서를 집어 들고 다시 한번 확인했다.
“좋아. 이 정도면 정당방위였다는 게 증명되겠지.”
문서에는 유테루스 가문의 음모가 낱낱이 적혀 있었다.
유테루스 가문은 잘잘못을 가리자면서 시리우스를 불러들였으나, 실제로는 시리우스를 해치려는 의도였다는 것.
손님으로 맞아들인 시리우스를 한밤중에 기습하려 했다는 것.
이 모든 것은 유테루스 가문의 가주인 나이엘이 결정한 사항이라는 것.
모든 내막이 상세하게 적힌 문서가 지금 시리우스 손안에 있었다.
“이름 있는 가문들은 아무래도 명분을 중시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크윽…….”
“그러면 난 이만 가 보도록 하지.”
문서를 품 안에 넣고 자리를 뜨려 하자, 칼테온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대, 대체 무엇을 한 거냐!”
칼테온이 시리우스를 노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어떻게 내 서클을 파괴한 거지!? 대체 무슨 방법으로……!”
지금 칼테온은 가슴의 서클이 파괴된 상태다.
무림에서 단전을 폐할 때처럼 했을 뿐인데, 이쪽 세계에는 그런 게 없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너는 분명히 나한테서 흘러나온 마력을 흡수…… 억!”
“시끄럽다.”
더 이상 용무가 없었기 때문에, 뒤통수를 후려쳐서 기절시켰다.
‘그러면 슬슬 가 볼까.’
시리우스는 다시 유테루스 본가로 출발하기로 했다.
지금쯤 놈들은 칼테온이 시리우스를 붙잡았을 거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말을 달려 유테루스 본가를 급습한다면, 놈들의 허를 찌를 수 있다.
‘기다려라, 나이엘 유테루스.’
유테루스 가문을 굴복시키기 위해.
시리우스는 말을 타고 새벽의 관문을 빠져나왔다.
* * *
“카르데인, 좀 괜찮나?”
“괜찮을 리가 있겠습니까.”
아버지인 올스테드의 질문에 카르데인은 인상을 찡그렸다.
“마법사에게 생명과도 같은 오른손을 잃었는데 말입니다.”
“…….”
붕대로 싸맨 카르데인의 손목을 보면서, 올스테드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상심하지 마라. 훈련을 하면 왼손으로도 마법을 쓸 수 있으니까.”
“아예 처음부터 그렇게 수련했다면 몰라도, 20년 넘게 오른손으로만 술식을 전개해 왔는데 이제 와서 왼손으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마법은 마력으로 술식을 구성하여 발동한다.
술식을 구성하는 건 매우 섬세한 작업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마법이 발동하지 않는다.
오른손잡이가 갑자기 왼손으로 글씨를 쓰려고 하면 삐뚤빼뚤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른손을 쓰던 마법사가 왼손으로 마법을 쓰려 하면 완벽한 술식 구성이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 술식으로는 마법이 사용하려 해 봤자 제대로 발동하지 못한다.
물론, 실력이 뛰어나면 그런 것에 구애되지 않는다.
7서클의 마도사들은 굳이 오른손으로 술식을 전개하지 않아도 된다. 심지어 아예 손을 치켜들지 않고도 마법을 발동 가능한 마도사들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카르데인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얘기다.
“젠장, 시리우스 그 자식 때문에…….”
카르데인이 이를 갈았다.
“아버지, 칼테온이 시리우스를 잡아 오면 저한테 맡겨 주십시오.”
“어쩔 생각이지?”
“그놈이 제발 죽여 달라고 할 정도의 고통을 선사해 줄 겁니다.”
보복을 선언한 아들 앞에서, 올스테드가 한숨을 내쉬었다.
“놈에게 보복하는 것도 좋지만, 나이엘 형님이 놈을 심문하시는 게 먼저다. 몸 상태가 어떤지 확인하고 싶어 하시니까.”
“아버지, 그거 말입니다만.”
카르데인이 목소리를 낮추면서 말했다.
“가주님이 저한테 주신 약이 잘못된 것 아닙니까? 그 약을 먹고 몸이 좋아진 것 같던데요.”
“글쎄, 그건 나이엘 형님만이 알 수 있지.”
나이엘은 옛 전설들을 많이 알고 있다.
현대 마법사들이 모르는 약물에 관해서도 조예가 깊다.
유테루스 가문이 신흥 강호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나이엘이 그런 지식들을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런 부분은 나이엘 형님이 생각하실 거다. 너는 신경 쓰지 마라.”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가주님 말만 믿고 시리우스 그놈을 조지려 했다가 이렇게 됐는데.”
“이 녀석이…….”
올스테드가 거칠게 말하는 아들에게 한마디 하려 했을 때, 갑자기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무슨 일이죠?”
“글쎄다.”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복도로 얼굴을 내밀었을 때.
“크헉!”
본가를 지키던 경비병 중 하나가 나가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
그리고, 카르데인과 올스테드는 목격하게 되었다.
칼테온한테 붙잡혀 끌려 오고 있을 시리우스가…… 홀로 복도를 당당히 걷고 있는 모습을.
* * *
시리우스가 도착했을 때, 유테루스 본가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명색이 기습인데 문을 두드리면서 열어달라고 부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담을 넘어 숨어 들어가는 것도 이번 일에는 맞지 않을 거라 생각되었다.
그래서 시리우스는 문을 한 번만 두드렸다.
그리고 대답이 돌아오기 전에 주먹을 꽂아 넣어,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경비병들이 뛰어나왔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주먹을 휘둘러 침묵시킨 뒤 계속 전진했다.
“시, 시리우스?”
그러던 도중,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얼마 전에 손목을 날려 준 카르데인이었다.
그 옆에는 얼굴 생김새가 비슷한데 나이는 훨씬 많아 보이는 남자가 있었다.
카르데인의 아버지인 6서클 마법사 올스테드였다.
“네놈이 어떻게……!”
뒷걸음치는 카르데인을 대신하여, 올스테드가 앞으로 나왔다.
“네놈, 여기서 뭐하는 짓이냐!?”
“이곳으로 오라고 했던 건 너희들 아니었나?”
시리우스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그런데 가주한테 안내해 주는 놈은 없고, 다들 나한테 칼부터 들이대더군.”
“……!”
“역시 유테루스 가문은 이번 일을 대화로 해결할 생각이 없는 것 같구나.”
태연한 표정으로 시리우스가 말했다.
“칼테온의 자백이 사실이었군.”
“카, 칼테온?”
“그래, 칼테온이 모든 걸 털어놓았다.”
시리우스는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처음부터 나를 죽이려는 목적으로 호출한 거라고 말이다. 너희들 가주가 칼테온한테 나를 붙잡으라고 명령했다는 것도 다 자백을 받았다.”
“……!”
“이 정도면 명분은 충분하겠지. 안 그런가?”
숨을 삼키는 올스테드 앞에서, 시리우스는 다시 종이를 품에 집어넣었다.
“아, 아버지, 이거 어떻게…….”
“동요하지 마라, 어리석은 놈!”
당황하는 카르데인에게 일갈한 뒤, 올스테드가 시리우스를 노려봤다.
“시리우스, 그런 종이 쪼가리를 들이댄다고 우리가 겁먹을 것 같나?”
“그렇지는 않겠지.”
“그래! 그까짓 건 아무런 의미가…….”
“내가 이 자백서를 받아온 건 말이다.”
시리우스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 가문을 박살 낸 뒤, 왜 그런 짓을 했느냐고 사람들이 물어봤을 때 보여 주기 위해서다.”
“뭐, 뭐라고?”
“리겔 가문의 이름을 걸고 움직이는 중이니, 명분이 필요하거든.”
놀라는 올스테드와 카르데인을 쏘아보면서,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 유테루스 가문은 리겔 가문의 막내딸 유스티아를 탐한 나머지, 그 남편인 시리우스를 독살하려 했다. 그 사실이 드러나도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고, 오히려 시리우스를 불러들여 함정에 빠뜨리려 했다.”
“……!”
“나는 리겔 가문의 사위로서, 너희들을 단죄할 것이다.”
올스테드가 눈을 치켜떴다.
“미친놈……!”
더 이상의 대화는 의미가 없다.
그렇게 판단한 올스테드가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시리우스의 움직임이 아무리 재빨라도, 이렇게 거리가 있는 상태에서는 올스테드의 마법이 더 빠를 터.
“……!”
우웅!
오른손에서 술식이 전개되고, 마법이 발동했다.
6서클의 마력으로 펼치는 화염 마법이다.
“아, 아버지!”
올스테드의 등 뒤에서 카르데인이 비명을 질렀다.
집안에서 그런 고화력 마법을 쓰면 어쩌냐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올스테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시리우스는 카르데인의 손목을 자른 실력자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시리우스를 일격에 무력화할 필요가 있었다.
이변이 발생한 건 바로 그때였다.
“……!?”
복도를 가득 채우는 화염 사이를 뚫고, 시커먼 무언가가 날아왔다.
시리우스가 투척한 장검이 화염 마법을 가르고 올스테드한테 날아온 것이다.
올스테드는 이해할 수 없었다.
6서클의 마력으로 펼친 화염 마법이다.
있는 힘껏 검을 던진다고 해도, 화염의 기세를 뚫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다.
“억……!”
장검이 오른쪽 어깨를 관통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할 수 없어 올스테드는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 있는 사이, 시리우스가 불꽃 사이를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
올스테드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시커먼 기운을 두른 시리우스의 주먹이 가슴 한가운데에 꽂혔고, 올스테드는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렇게 쓰러진 올스테드는 두 번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즉사(卽死)였다.
“히익……!”
올스테드 뒤에 서 있던 카르데인이 넘어져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시리우스는 그 추태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아, 아, 아아아…….”
카르데인은 오른손을 잃어 마법을 쓸 수 없는 상태다.
하지만 올스테드의 몸에 꽂혀 있는 검을 뽑아서 덤벼들 수는 있을 것이다.
아버지가 눈앞에서 죽었는데, 그렇게 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카르데인은 그냥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치려 하고 있을 뿐이다.
아버지의 원수에게 달려드는 것보다, 자기 목숨을 1분 1초라도 연장시키는 게 중요한 것이다.
“유스티아가 너 같은 남자와 결혼하지 않아서 다행이군.”
“컥……!”
시리우스는 카르데인의 머리를 후려쳤다.
카르데인은 벽에 머리를 부딪쳐 쓰러졌고,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리겔 가문을 장악하기 위해 유테루스 가문의 선봉장으로 나섰던 남자는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다.
자신이 죽이려 했던, 유스티아의 남편 시리우스 카니스루트의 손에.
“…….”
올스테드의 어깨를 관통했던 검을 다시 회수한 뒤, 시리우스는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이 주변은 다른 곳과 분위기가 다르다.
유테루스 가문에서도 가주와 가까운 사람들만이 기거할 수 있는 공간일 것이다.
“여기인가.”
시리우스는 커다란 문을 발로 걷어찼다.
그리고…… 십여 명의 병사들에게 둘러싸인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시리우스 카니스루트…….”
7서클의 마도사.
유테루스 가문 최강의 실력자인 나이엘 유테루스가 시리우스를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