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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명가의 절대무신-13화 (13/129)

몰락명가의 절대무신 13화

13화. 원수는 이걸로 다 갚았다

나이엘 유테루스는 얼굴에 주름살이 가득한 노인이었다.

어두운 피부색이 마치 말라비틀어진 나무를 연상케 했다.

십여 명의 부하들을 거느린 나이엘을 노려보며, 시리우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노인장, 나하고 얘기를 하고 싶다면서?”

“네놈…….”

“찾아와 줬으니, 용건을 얘기해 봐.”

나이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어째서 네놈이 여기에 있는 것이냐? 칼테온은?”

“칼테온은 아직 깨어나지 못했을 거다. 나한테 모든 것을 낱낱이 자백한 뒤 기절했으니까.”

“…….”

나이엘이 입술을 깨물었다.

원래 칼테온이 시리우스를 잡아서 이리로 데려올 예정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칼테온이 당했고, 시리우스 혼자서 여기까지 쳐들어온 것이다.

“바깥에는 올스테드가 있었을 텐데,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온 거지?”

“올스테드는 죽었다.”

“…….”

“그 아들놈도.”

올스테드와 카르데인까지 당했다.

그 사실에 주위가 술렁였다.

“시리우스…….”

나이엘이 이를 갈면서 말했다.

“나는 자식이 없다.”

“그러셨군.”

“그래서 내 동생인 올스테드의 아들…… 카르데인에게 유테루스 가문을 물려줄 생각이었지.”

시리우스를 노려보면서, 나이엘이 계속 말했다.

“카르데인을 유스티아와 결혼시키고, 훗날 그 자식을 리겔 가문과 유테루스 가문의 공동 가주로 삼는다…… 그게 내 계획이었다.”

“원대한 계획이었군.”

“그렇게 해서 유테루스 가문을 누구도 무시 못하는 명문가로 만들 생각이었는데…….”

까드득.

나이엘이 이를 갈면서 눈을 치켜떴다.

“네놈 때문에 모든 게 망가졌다.”

“그것 참 안 되셨군.”

나이엘이 무서운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지만, 시리우스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노인장, 그럴 거면 좀 더 일찍 손을 썼어야지. 유스티아가 카르데인의 흑심을 눈치채고 나와의 결혼을 결심한 시점에서 당신의 계획은 실패한 거야.”

“닥쳐라!”

“물론, 당신은 나를 자연스럽게 죽음으로 몰아넣을 자신이 있었겠지. 하지만, 세상 모든 게 당신 뜻대로 돌아가는 건 아니거든.”

시리우스는 나이엘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때 당신이 나한테 약을 먹이려 하지만 않았어도, 오늘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야.”

“닥치라고 했다……!”

나이엘이 거친 목소리로 외쳤다.

“시리우스 카니스루트, 네놈은 분명 백어증(白瘀症)이었을 터! 어떻게 아직도 살아 있는 거냐!”

“백어증?”

“본인이 어떤 병을 앓고 있었는지도 몰랐던 건가? 학자 가문이라더니, 의외로 수준이 형편없군!”

기억을 되새겨 봐도, 그런 단어는 떠오르지 않는다.

시리우스는 눈썹을 찌푸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모르겠군. 어떤 거지?”

“흥! 차가운 기운이 혈관 속에 맺혀 덩어리지는 병이다! 몸에서 제대로 열을 생산하지 못해 평생을 골골대며 살아야 하지!”

“…….”

“네놈은 어렸을 때 실수로 백빙화(白氷花)를 먹었을 거다! 한 번 더 백빙화를 먹으면 백어증이 악화되어 목숨을 잃을 게 뻔했기에, 카르데인을 시켜서 백빙화를 먹였던 것인데……!”

백빙화.

그것이 시리우스에게 극음(極陰)의 기운을 부여한 영약인가.

“고대의 전승에 박식하다고 들었는데, 역시 명불허전이군.”

“흥, 듣기 싫다.”

나이엘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지금 너는 백어증을 완전히 극복한 걸로 보인다. 대체 어떻게 한 거지?”

“궁금한가?”

나이엘의 의문에 답해 줘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나이엘의 설명 덕분에 그동안 의문이었던 부분이 해소된 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리우스는 대답을 해 주기로 했다.

“몸 안에 흘러 다니는 차가운 기운을 한 곳으로 모아서 응축시켰지.”

“뭐라고?”

“한곳에 잘 갈무리해서, 평상시에는 몸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만든 거다.”

“마, 말도 안 된다. 그런 건 불가능하다.”

나이엘이 다급히 부정했다.

“설마 서클에 모았다는 거냐? 만에 하나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심장을 통해 차가운 기운이 계속 전신으로 흘러갈 텐데…….”

“아니, 서클에 한 게 아니야.”

“그럼 대체 어디에…….”

“글쎄, 거기까지 알려 주고 싶지는 않군.”

“…….”

나이엘이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그 반응을 통해, 시리우스는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박학다식한 나이엘도 모를 정도라면…… 역시 이 세계에는 단전에 기운을 모으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다.

“도무지 알 수가 없군. 아무래도 네놈을 붙잡아서 제대로 실험을 해 봐야겠구나.”

나이엘의 목소리에는 학문적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어쩌면 더 높은 경지로 도달하기 위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글쎄, 그건 어려울 텐데.”

“어째서지?”

시리우스는 담담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노인장은 여기서 죽을 테니까.”

“…….”

나이엘이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쳐라!”

나이엘의 부하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그들은 다들 검을 들고 있었는데, 한 명도 빠짐없이 마법검을 전개하고 있었다.

십여 명의 마법검사들이 달려들고 있었지만, 시리우스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이미 시리우스도 검기를 전개하고 있었으니까.

“크악……!”

첫 번째 비명이 울려 퍼졌다.

놈들은 동시에 달려들었다고 생각했겠지만, 시리우스의 눈으로 보면 차이가 있었다.

가장 빠르게 움직인 놈을 향해 검을 휘두른 뒤, 몸을 회전시켰다.

“……!”

시리우스의 칼날에는 북명의 기운이 전개되어 있었다.

칼날이 부딪힐 때마다 상대방의 마법검이 흐트러졌다.

당황하는 마법검사들의 빈틈을 찌르며, 시리우스는 시체를 하나씩 늘려 갔다.

“크윽!”

“헉……!”

크게 휘두른 칼날에 두 명의 목이 동시에 날아간 순간.

폭음과 함께 발사된 불꽃의 창이 시리우스를 덮쳤다.

사람 하나쯤은 순식간에 숯덩이로 만들 수 있는, 압축 화염의 창.

하지만, 이미 예상하고 있던 공격이었다.

“쯧……!”

가볍게 공격을 피한 시리우스를 보면서 나이엘이 혀를 찼다.

마법검사들을 앞세워서 시리우스를 상대하게 한 뒤, 화염 마법으로 기습하려던 작전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위력이 상당하군.”

공격을 피하긴 했지만, 시리우스도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나이엘이 날린 화염의 창은 카르데인이나 올스테드보다 훨씬 빠르고 위력적이었다.

카르데인과 올스테드가 만든 불꽃은 벽을 불태우는 것에 그쳤지만, 나이엘의 화염창은 벽에다가 커다란 구멍을 뚫어 버렸다.

“정통으로 맞았다간 살아남기 어렵겠어.”

“아직도 여유가 있구나, 시리우스……!”

나이엘이 손을 치켜들어 신호를 보내자, 마법검사들이 더 적극적으로 덤벼들기 시작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달려드는 그들을 보면서 시리우스는 인상을 찡그렸다.

“다들 충성심이 대단하군. 세뇌라도 한 건가?”

시리우스는 정면에서 달려드는 놈의 가슴을 찌른 뒤, 그 몸을 앞으로 밀쳤다.

그 직후, 화염구(火炎球)가 그의 몸을 집어삼켰다.

“부하들이 말려들어도 상관없는 모양이지?”

“흥……!”

코웃음을 치면서 나이엘이 계속 마법을 날렸다.

나이엘의 부하들도 마법에 휘말려 부상을 입었지만, 나이엘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하앗……!”

그리고, 마침내 나이엘의 비장의 마법이 발동했다.

지금까지와 달리, 화염의 창이 무려 여섯 개.

부하들까지 한꺼번에 몰살할 수 있는 공격이었지만, 상관없었다.

나이엘에게는 시리우스를 제압하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쿠쿠쿠쿵!

피할 곳도 마땅히 없었기 때문에 부하들이 연달아 죽어 나갔다.

그리고, 시리우스도 그 속에서…….

“……!?”

시리우스가 갑자기 뛰어올랐다.

화염의 창에 정통으로 꿰뚫릴 수 있는 위치였다.

자살행위처럼 보였지만, 시리우스는 표정 변화 없이 검을 휘둘렀다.

시커먼 기운이 실린 칼날이 화염의 창과 접촉한 순간…….

“아니……!”

나이엘은 경악했다.

화염의 창이 순식간에 붕괴된 것이다.

심지어 그 불꽃 일부가 칼날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건 대체 무슨 마법검이냐!?”

다급히 소리쳤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온 것은, 화염의 창을 뚫고 돌진해 온 시리우스의 칼날뿐이었다.

나이엘은 급히 몸을 피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끄악……!”

촤악!

오른쪽 어깨가 떨어졌다.

극심한 통증 속에서도 나이엘은 이를 악물고 왼손을 치켜들려 했다.

“7서클 이상의 마도사는 양손으로 마법을 쓸 수 있다던데, 너도 그런 모양이군.”

“……!”

이번에는 왼손이 날아갔다.

상상을 초월한 속도로 번뜩인 시리우스의 칼날이, 나이엘의 왼손까지 빼앗아 간 것이다.

높은 경지에 오른 마도사는 손을 움직이지 않고도 마법을 쓸 수 있다고 하지만, 나이엘은 그 정도는 아니다.

“아, 아아…….”

순식간에 무력해진 나이엘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시리우스는 그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걸로 끝이군, 나이엘 유테루스.”

사실…… 마음만 먹으면 더 일찍 전투를 끝낼 수 있었다.

시리우스의 보법이면 나이엘의 부하들 사이를 뚫고 나이엘 본인을 공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나이엘을 상대로 좀 더 오래 싸워 보고 싶었다.

7서클 마법사라는 게 대충 어느 정도 수준인지 확인하고 싶었으니까.

실제로 확인해 보니 공격의 위력 자체는 상당히 훌륭했다.

방금 전에는 북명의 기운으로 파훼할 수 있었지만, 맨몸으로 받았다면 시리우스가 죽었을 것이다.

마법이 발동되는 속도도 카르데인이나 올스테드보다 빨랐다.

하지만 시리우스의 현재 실력으로 대응할 수 없는 속도는 아니었고…… 무엇보다 공격이 너무 단순하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다른 7서클 마법사도 이 정도라면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다.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현재의 실력으로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보다 속도나 기교가 뛰어난 마법사가 나타나면, 지금 실력으로는 위험하다.

그러니 빨리 천랑무제 백무랑 시절의 힘을 되찾아야 한다.

“대, 대체 그 마법검은 뭐냐?”

오른쪽 어깨와 왼쪽 손목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나이엘이 물었다.

“내 마법을 어떻게 파훼한 거지? 심지어 내 마법을 일부분 흡수한 것처럼 보였는데…….”

“지금 상황에서 그게 중요한가?”

“중요하고말고!”

나이엘이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시리우스, 대체 그 힘은 무엇이냐! 나한테 알려다오!”

“…….”

“그 힘을 발전시키면 대륙의 쟁쟁한 명문가들과도 경쟁할 수 있을 거다! 나와 함께 연구해 보자!”

나이엘의 목소리에는, 이름 높은 명문가들에 대한 동경심이 담겨 있었다.

결국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유테루스 가문을 진정한 명문가로 만드는 것이다.

유스티아를 손에 넣으려 했던 것도, 시리우스를 제거하려 했던 것도, 전부 그 목표를 위한 것이었다.

“나하고 손을 잡자, 시리우스! 네 능력과 내 지식을 결합시키면, 충분히 세상의 패권을 노려볼 만하다!”

“나이엘 유테루스.”

시리우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너 같은 노괴(老怪)들을 많이 봤다.”

“노괴……?”

“그들도 처음에는 열심히 노력해서 강해지려 하는 평범한 강호인들이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점차 자신의 한계를 눈치채지.”

“……?”

“이제 정상적인 방식으로는 더 이상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러니 뭔가 새로운 방식을 찾아보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차츰 노괴가 되는 거다.”

천랑무제 백무랑은 그런 노괴들을 많이 목격했다.

다들 살려 둘 가치가 없는 인간들이었다.

“너도 마찬가지다. 너는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그 나이에도 7서클에 머무르고 있지. 스스로의 재능으로는 8서클, 9서클에 도달할 수 없다는 걸 이미 옛날에 깨달았을 거다.”

“시, 시리우스…….”

“하지만 너는 욕심이 너무 강했지. 어떻게든 유테루스 가문을 명문가로 만들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시리우스는 주위를 둘러봤다.

주위에는 가주를 위해 희생된 마법사들의 시체들이 잔뜩 쓰러져 있었다.

시리우스가 직접 죽인 놈보다 나이엘의 마법에 휘말려 죽은 놈이 더 많았다.

“그래서 너는 노괴가 된 것이다, 나이엘 유테루스.”

“네, 네놈……!”

“유스티아를 손에 넣어 리겔 가문을 집어삼키려 했던 것도, 지금 나한테 매달리는 것도…… 전부 노괴의 발악에 불과한 것이지.”

나이엘이 발악하듯이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시리우스의 손이 더 빨랐다.

“……!”

우득.

목이 꺾인 나이엘이 바닥에 쓰러졌다.

“천랑무제는 너 같은 노괴와 손잡지 않는다.”

그렇게 내뱉은 뒤, 손을 가슴에 댔다.

아직 허약한 시리우스 카니스루트의 심장 고동을 느끼면서, 천천히 중얼거렸다.

“봤느냐, 시리우스.”

유테루스 가문의 음모에 휘말려, 결혼식 첫날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시리우스 카니스루트.

이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 영혼을 향해, 조용히 중얼거렸다.

“네 원수는 이걸로 다 갚았다.”

그 말에 대답하듯이, 가슴속의 심장이 힘차게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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