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몰락명가의 절대무신-18화 (18/129)

몰락명가의 절대무신 18화

18화. 여우처럼 교활한 노괴구나

5석 유르카의 죽음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구석진 곳에 있는 유르카의 개인실에서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행동하면 돼. 눈치 못 챌 테니까.”

“네.”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표정으로 알레이온이 지나가자, 다른 말단 조직원들이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시리우스도 태연한 표정으로 알레이온의 뒤를 따랐다.

칼슈타인 검단이 알레이온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건 간부들이나 알고 있는 얘기다.

알레이온이 시리우스를 데리고 돌아다녀도 소란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아랫놈들은 시리우스의 얼굴도 모르니까.

“하지만, 시리우스 님.”

알레이온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귓속말을 했다.

“안쪽에는 유테루스 가문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그들이 시리우스 님을 보면…….”

“그래, 거기서부터는 이렇게 평화롭게 돌아다니지 못하겠지.”

입구에서 멀어질수록 한적해졌다.

인적이 없는 산길을 오르면서, 시리우스는 말했다.

“그러니 여기서부터는 더 빠르게 간다.”

“네?”

“먼저 간다.”

“……!”

시리우스는 경공을 사용해 몸을 날렸다.

뒤에서 알레이온이 다급히 쫓아왔지만, 점점 거리가 벌어졌다.

이윽고 골짜기에 세워진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알레이온이 알려 준 바에 의하면, 3석과 4석이 상주하고 있을 것이다.

“합! 하압!”

가까워지니 기합소리가 들렸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목검을 휘두르면서 훈련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 앞에서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거한(巨漢)의 모습도 보였다.

칼슈타인 검단 4석, 발가트일 것이다.

근처에는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있는 여자도 있었는데…… 3석 율레인으로 보였다.

“음……?”

훈련을 지휘하던 발가트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억……!?”

나무를 뛰어넘어 날아온 시리우스의 칼날이, 마치 먹이를 채가는 맹금류의 발톱처럼 발가트를 유린했다.

흑영탈명검법 제이식 응조인(鷹爪刃)이었다.

“발가트!?”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발가트의 모습에, 율레인이 다급히 의자에서 일어섰다.

“저, 저놈은……!”

“율레인 님! 저놈이 시리우스입니다!

“나이엘 님을 죽인 놈입니다!”

훈련을 받던 놈들 중에는 유테루스 가문 출신들도 섞여 있었다.

상황을 빠르게 파악한 율레인이 급하게 검을 뽑아 들었다.

“네놈,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온 거지!?”

“걸어서.”

“큭……!”

율레인은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미 눈앞에서 발가트가 순식간에 목숨을 잃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방어를 중시한 자세를 취한 채, 마법검을 전개하고 시리우스의 움직임을 기다렸다.

“칼슈타인 검단 3석, 율레인.”

그녀를 향해 시리우스가, 천천히 말을 걸었다.

“바깥에서 들었는데, 인신매매 전문이라고 하더군.”

“뭐……?”

“너한테 부모를 잃고 노예로 팔려 간 어린애들이 많다고 들었다.”

방금 쓰러진 4석 발가트는 물적 자원 전문.

눈앞에 있는 3석 율레인은 인적 자원 전문.

그렇게 분담하는 체제라는 것 같다.

“내가 들은 게 맞나?”

“그, 그게 뭔…….”

“맞는가 보군.”

시리우스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율레인이 움찔하면서 뒷걸음질 쳤지만, 그 직후 시리우스의 모습이 사라졌다.

“……!?”

시리우스는 어느새 율레인의 측면으로 파고 든 상태였다.

순식간에 달려들어 목을 물어뜯는 늑대처럼, 흑영탈명검법 제일식 낭교인으로 율레인을 덮쳤다.

“윽……!”

하지만, 율레인도 명색이 칼슈타인 검단 3석이었다.

억지로 몸을 틀어 치명상을 피했다.

비록 왼쪽 어깨에 깊은 상처가 새겨지긴 했지만, 목숨을 잃을 부상은 아니다.

“하압!”

율레인이 시리우스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상당히 빠르고 날카로운 쾌검(快劍)이었다.

물론, 소용없었다.

“헉……!?”

칼날과 칼날이 부딪힌 순간.

율레인의 마법검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시리우스의 칼날에 전개된 시커먼 검기 때문이었다.

“뭐, 뭐냐, 그 시커먼 마법검은……!”

율레인이 경악하면서 소리쳤다.

“그런 마법검은 칼슈타인 스승님도…… 끄윽!”

촤악!

북명의 검기가 율레인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자비 없는 공격으로 칼슈타인 검단 3석을 쓰러뜨린 뒤, 시리우스는 주위를 쓱 둘러봤다.

“윽……!”

주위에 있던 놈들이 겁먹은 표정으로 뒷걸음쳤다.

아까 소리를 질렀던 유테루스 가문 출신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그들에게 더 이상 관심이 없었다.

그대로 경공을 펼쳐서 이곳을 빠져나갔다.

잠시 뒤, 알레이온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지, 진정해라! 놈은 내가 쫓겠다! 너희들은 여기서 대기해!”

뒤늦게 도착한 알레이온이 다급히 뒷수습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알레이온에게 뒷일을 맡긴 채, 시리우스는 계속해서 산속으로 들어갔다.

* * *

깊은 산속.

나무로 지은 고풍스러운 건물 안에서 두 명의 남자가 차를 마시고 있었다.

한 명은 주름살이 가득한 노인이었고, 또 한 명은 평범한 사람의 두 배 이상 되는 체격을 지닌 중년 남자였다.

“차석은 목적지에 도착했겠느냐?”

“그럴 거라 생각합니다, 스승님.”

거구의 남자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저희 조직이 유테루스 가문을 장악하고 리겔 가문까지 집어삼킬 거라고 밝히면, 그쪽에서도 우리를 무시하지 못할 겁니다.”

“그래, 그렇겠지.”

칼슈타인 검단의 차석 제자는 지금 중요한 임무를 맡아 바깥에 나가 있었다.

“팔리스, 나는 동북부의 한 지역을 주름잡는 중견 흑회에 만족할 생각이 없다.”

“네, 스승님.”

“유테루스 가문을 장악하고, 5대 명가 중 하나인 리겔 가문까지 굴복시키면…… 우리도 더 넓은 세상으로 진출할 수 있겠지.”

“이 팔리스도 전력을 다해 돕겠습니다, 스승님.”

칼슈타인 검단의 수석 제자, 팔리스는 깊게 고개를 숙였다.

눈앞에 있는 스승님…… 7서클 마법검사 칼슈타인의 야망을 위해, 팔리스는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동안 빈틈을 보이지 않던 나이엘 유테루스가 갑자기 죽었고, 유테루스 가문 놈들이 우리한테 도움을 청했다.”

칼슈타인이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팔리스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리겔 가문의 막냇사위, 그놈을 반드시 해치우겠습니다.”

“그래, 그놈을 죽이고 유테루스 가문을 우리가 장악하면 되는 거다.”

그렇게 말하고 칼슈타인이 고개를 기울였다.

“그놈 이름이 뭐라고 했지?”

“시리우스…… 시리우스 카니스루트입니다.”

“흠…… 시리우스라. 별에서 이름을 따온 모양이군.”

칼슈타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무것도 못 하는 병약한 놈인 척 행세하면서 유테루스 가문의 허를 찌른 모양이던데, 우리는 그렇게 안 된다.”

“물론입니다.”

시리우스가 검을 쓴다는 건 이미 유테루스 가문 출신들을 통해 들었다.

아무리 허를 찔렀다고 해도 나이엘을 쓰러뜨린 놈이니, 보통 실력은 아닐 것이다.

“놈의 실력을 제대로 파악한 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습격하겠습니다.”

“그래, 그걸 위해 알레이온을 보낸…….”

바로 그때.

칼슈타인이 갑자기 말을 멈췄다.

“왜 그러시죠?”

“이건…….”

칼슈타인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 모습에 팔리스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팔리스.”

“네!”

팔리스가 바로 일어섰다.

벽에 걸어 놓았던 검을 들고, 건물 입구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을 열어젖힌 순간.

“……!”

수려한 외모의 청년과 눈을 마주치고, 팔리스는 경악했다.

지금 이곳에 있을 리가 없는 놈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시리우스 카니스루트……!”

“생각지도 못한 환대로군. 마중까지 나와 주다니.”

팔리스는 다급히 산 아래쪽을 살폈다.

아래쪽에는 5석 유르카, 4석 발가트, 3석 율레인이 있었다.

시리우스가 여기까지 올라오는 걸, 다들 눈치채지 못했단 말인가?

“5석, 4석, 3석은 이미 죽었다.”

“뭣……!”

“알레이온이 말하길 차석은 출장을 나갔다고 하던데. 그러면 네가 수석 제자인 모양이군.”

그 말을 듣고, 팔리스는 경악했다.

유르카, 발가트, 율레인을 쓰러뜨리고 올라왔다는 것도 놀라웠고…… 알레이온이 시리우스에게 검단 내부의 정보를 알려 줬다는 것도 믿기 어려웠다.

“6석이 배신한 모양이군.”

“……!”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팔리스는 숨을 삼켰다.

“팔리스, 들어오게 해라.”

“스, 스승님, 하지만…….”

“명령을 거역할 셈이냐?”

“아, 아닙니다.”

팔리스는 다급히 물러섰다.

그러자 시리우스는 거리낌 없이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

시리우스는 건물 내부를 쓱 훑어본 뒤, 중앙에 앉아 있는 칼슈타인에게 시선을 향했다.

“네가 칼슈타인인 모양이군.”

“이, 이런 건방진…….”

시리우스의 무례한 말투에 팔리스가 눈을 치켜떴다.

하지만 칼슈타인이 눈짓으로 제지했다.

“시리우스 카니스루트, 네가 여기에 직접 나타날 줄은 몰랐다.”

“상상력이 부족하군, 노인네.”

시리우스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내가 유테루스 본가에 직접 찾아갔다는 얘기를 못 들었나? 그러면 내가 너희들 본거지에 나타날 가능성도 생각해야지.”

“그렇군. 그건 내 생각이 짧았다.”

순순히 인정한 뒤, 칼슈타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5석, 4석, 3석을 쓰러뜨린 모양이군. 똑같은 5서클이지만 3석은 제법 칼솜씨가 뛰어났다. 그 녀석도 쓰러뜨렸단 말이냐?”

“방금 전에.”

“…….”

칼슈타인이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팔리스.”

“네, 스승님.”

“네가 상대해 봐라.”

고개를 숙이는 팔리스에게, 칼슈타인이 명령을 내렸다.

“여기까지 올라오면서 상처 하나 입지 않은 놈이다. 나이엘 유테루스를 쓰러뜨린 것도 요행이 아니었던 모양이군.”

“그런 것 같습니다.”

“차석이 없으니, 놈을 쓰러뜨릴 놈은 너밖에 없다. 사제(師弟)들의 원수를 갚아 봐라.”

칼슈타인은 다른 제자들은 전부 석차로 부르지만, 팔리스만큼은 이름으로 부른다.

그만큼 수석 제자인 팔리스를 신뢰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네가 저놈을 쓰러뜨려 사제들의 원수를 갚는다면, 오랫동안 네가 탐냈던 내 절기(絶技)를 가르쳐 주마.”

“……!”

절기.

그것은 어떤 마법사 혹은 마법 유파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낸 기술을 가리키는 말이다.

칼슈타인도 제자들을 모아 하나의 세력을 형성할 정도의 마법검사이니만큼, 자신만의 절기를 갖고 있다.

팔리스는 언젠가 칼슈타인에게 인정받아 절기를 전수받는 게 꿈이었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팔리스는 흥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이 팔리스가 저놈을 쓰러뜨리고 칼슈타인 검단의 명예를 지켜 내겠습니다!”

그렇게 소리치며, 팔리스는 시리우스를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검을 뽑지도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우둔한 놈.”

“뭣……?”

“지금 그렇게 기뻐할 상황이냐?”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시리우스가 차갑게 쏘아 붙였다.

“네 스승은 너를 제물로 삼아서 내 검술을 살펴보고 싶을 뿐이다.”

“……!”

눈을 크게 뜨는 팔리스 앞에서, 시리우스는 칼슈타인에게 시선을 향했다.

“저 노인네는 네 실력으로 나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이미 꿰뚫어 봤어. 하지만 너를 먼저 싸우게 하면 내가 어떤 검술을 쓰는지 알아낼 수 있지. 그렇게 미리 정보를 얻은 다음에 나하고 붙어 보려는 거다.”

차가운 눈동자로 칼슈타인을 노려보며, 시리우스가 독설을 내뱉었다.

“여우처럼 교활한 노괴(老怪)구나, 칼슈타인.”

칼슈타인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