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명가의 절대무신 19화
19화. 이게 전력인가?
칼슈타인과 수석 제자 팔리스.
그 두 사람 앞에서 시리우스는 차갑게 쏘아붙였다.
“나는 너희 같은 놈들을 그동안 많이 봤다.”
이 세계에서의 얘기가 아니다.
무림에서 백무랑으로서 살던 때의 얘기다.
“강적이 나타나면 가장 강한 윗대가리가 나서서 해치우는 게 가장 합리적이다. 그래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으니까.”
“…….”
“그런데 자기보다 약한 부하들을 먼저 내세우는 놈들이 종종 있더군. 자기는 뒤에서 잔뜩 무게를 잡고 있으면서 말이다. 그 이유가 뭘까?”
칼슈타인을 노려보면서, 시리우스가 말했다.
“온갖 이유를 갖다 붙이지만, 그 본질은 단순하다. 윗대가리가 비열한 겁쟁이라는 것이지.”
“네놈…….”
칼슈타인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너는 내가 어떻게 싸우는지 모른다. 기껏해야 검을 쓴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지. 쾌검(快劍)인지 중검(重劍)인지도 모르고, 마법검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른다.”
“…….”
“그래서 네 수제자부터 먼저 내세우는 것이다. 네 수제자를 어떻게 쓰러뜨리는지 지켜보면서 작전을 세워야 하니까.”
칼슈타인은 이미 시리우스가 보통 놈이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
5석 유르카, 4석 발가트, 3석 율레인을 상처 하나 없이 해치우고 여기까지 올라왔으니까.
그렇기에 수석 제자인 팔리스를 내세워서, 시리우스가 어떻게 싸우는지 관찰하려 하고 있다.
“너는 아무런 정보 없이 나하고 일대일로 싸우는 게 두려운 거다.”
“…….”
“네가 제자들을 아끼는 참된 스승이라면, 직접 나서서 제자들의 원수를 갚는 게 옳다. 그러지 않고 수석 제자를 내세워 먼저 싸우라고 한다는 건…….”
시리우스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눈앞의 늙은 여우를 경멸하는 미소였다.
“누구한테 스승이라 불릴 자격이 없는, 비열한 겁쟁이란 뜻이지.”
“네놈…….”
바로 그때.
무시무시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닥쳐라……!”
목소리를 높인 건 칼슈타인이 아니었다.
칼슈타인의 수제자인 팔리스였다.
“스승님은 나에게 경험을 쌓게 해 주시려는 것뿐이다! 너 같은 애송이는 스승님의 깊은 뜻을 이해 못 한다!”
“…….”
그렇게 소리친 뒤, 팔리스가 칼슈타인에게 시선을 향했다.
“염려 마십시오, 스승님! 팔리스는 저런 놈의 궤변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저에게 부여해 주신 시련을 반드시 이겨 내고, 스승님의 절기를 전수받겠습니다!”
당당하게 말하는 팔리스를 보면서, 시리우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여우만 있는 줄 알았더니 개돼지도 있었군.”
개돼지.
그 적나라한 표현이 팔리스가 눈을 치켜떴다.
“네놈……!”
“좋다, 그러면 이렇게 하지.”
시리우스는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칼슈타인, 나는 여기서 앉아서 기다리겠다. 그동안 너는 네 제자한테 절기를 가르쳐 줘라.”
“뭣……?”
칼슈타인이 인상을 찡그렸고, 팔리스도 눈을 크게 떴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팔리스, 잘 생각해 봐라.”
시리우스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지금 네 목표가 무엇이지? 나를 이겨서 절기를 배우는 거 아닌가?”
“그게 무슨…….”
“그러면 순서를 바꿔도 상관없지 않겠나? 나를 이긴 뒤 절기를 배우는 거나, 절기를 배운 뒤 나를 이기는 거나 똑같을 텐데.”
“……?”
어리둥절해하는 팔리스에게 시리우스가 계속해서 말했다.
“어차피 네가 절기를 터득할 자격이 없는 놈이라면, 절기를 배워 봤자 나한테 죽을 거다.”
“그건…….”
“결국 네 운명은 나를 이기고 절기를 배우든가 나한테 지고 죽든가 둘 중 하나다. 그렇다면 절기를 배워서 조금이라도 네 승산을 끌어올리는 편이 낫지 않을까?”
“으음……?”
팔리스가 눈알을 굴리며 고민에 빠졌다.
시리우스의 말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을 때, 칼슈타인이 목소리를 높였다.
“팔리스, 놈의 궤변에 현혹되지 마라!”
“스, 스승님…….”
“놈은 말장난을 하고 있을 뿐이다! 심리전에 휘둘리지 마라!”
“그, 그렇군요.”
다급히 고개를 끄덕이는 팔리스를 보면서, 시리우스는 피식 웃었다.
“안타깝구나, 팔리스.”
“뭐?”
“네 스승님은 네가 죽든 말든 상관없는 모양이다. 수제자가 죽게 생겼는데, 그깟 절기 하나 가르쳐 줘도 될 텐데 말이야.”
“…….”
팔리스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하지만, 곧바로 눈을 부릅뜨고 고함을 질렀다.
“더 이상 수작을 부리지 마라, 비겁한 놈!”
“흠, 그러면 이 정도로 할까.”
시리우스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검을 뽑고 자세를 잡았다.
“그러면 덤벼라, 팔리스.”
“건방진……!”
팔리스도 자신의 검을 치켜 들었다.
커다란 체격에 걸맞은 대검(大劍)이었다.
“후회하게 해 주마, 애송이!”
우웅!
대검의 칼날에 푸르스름한 마력이 전개되었다.
시리우스가 지금까지 상대해 온 놈들 중에서 가장 위압적인 마법검이었다.
“하압!”
바닥을 박차고 팔리스가 달려들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패도적인 일격.
단순하지만 정확하다. 평소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시리우스의 육체 능력만으로는 저 일격을 받아 낼 수 없다.
방어하는 것과 동시에 검이 부러지고 팔이 아작날 것이며, 이어서 온몸이 짓이겨질 것이다.
하지만 시리우스에게는 내공이 있고 북명의 검기가 있었다.
“……!?”
쿵!
팔리스의 대검이 튕겨져 나갔다.
시리우스의 가느다란 팔로 휘두른 검이, 마법검이 전개된 팔리스의 대검을 받아낸 것이다.
시리우스의 전신은 내공의 힘으로 강화되고 있었고.
시리우스의 칼날은 북명의 힘이 담긴 검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이놈……!”
쿠웅!
칼날과 칼날이 다시 한번 충돌했다.
이번에는 팔리스의 검이 튕겨져 나가지 않았다.
팔리스는 이를 악물고 시리우스와 힘겨루기를 하려 했다.
하지만, 곧바로 팔리스는 이변을 눈치챘다.
자신의 마법검이 흐트러지고 있던 것이다.
“아니……!”
시리우스의 칼날에 전개된 시커먼 기운.
북명의 공력이 마법검의 마력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팔리스가 그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시리우스의 칼날이 교묘하게 움직였다.
“……!?”
팔리스의 대검을 다른 방향으로 흘려보내면서, 시리우스는 팔리스의 빈틈으로 파고 들었다.
그 순간, 팔리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사실 팔리스는 아까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시리우스가 말한 대로, 칼슈타인은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생각인 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한 탓에, 팔리스의 빈틈은 더욱 커졌다.
“으윽……!”
일격에 치명상을 입히고 검을 거둬들였다.
바닥으로 쓰러지는 팔리스를 응시하며, 시리우스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 생에서는 좀 더 제대로 된 놈을 스승으로 섬겨라.”
“…….”
팔리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쿵 소리를 내면서 쓰러졌을 뿐이다.
침묵한 팔리스를 내버려 둔 채, 시리우스는 칼슈타인에게 시선을 향했다.
칼슈타인은 수제자가 죽었는데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시리우스는 그 미소가 역겹다고 느꼈다.
“심리전을 펼쳤군.”
칼슈타인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여유가 있었다.
“시리우스, 너는 내가 너를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너도 마찬가지다.”
“마찬가지?”
“너도 네 실력을 나한테 노출하고 싶지 않았던 거지.”
칼슈타인이 시리우스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팔리스를 최대한 빠르게 해치워야 했다. 그래서 아까 같은 소리를 하면서 팔리스를 동요시킨 거겠지?”
“…….”
“그 빈틈을 찌른 덕분에, 체력도 온존할 수 있었다. 그런 잔머리를 굴린 것부터가 네 밑바닥을…….”
그냥 내버려 두면 헛소리가 길어질 것 같았기 때문에, 시리우스는 칼슈타인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착각하고 있군, 칼슈타인.”
“뭐라고?”
“내가 너희들 상대로 이런저런 얘기를 한 건, 저기 있는 놈한테 들려주기 위한 거였다.”
그렇게 말하면서 시리우스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문밖에서 엿보고 있던 알레이온이 모습을 드러냈다.
“네가 어떻게…….”
“스승님…….”
알레이온은 팔리스보다 먼저 시리우스한테 던져 준 희생양이었다.
그 알레이온이 살아서 전부 지켜보고 있던 것이다.
“알레이온, 저딴 노괴를 스승이라 부를 필요 없다.”
“…….”
시리우스의 말에 알레이온이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6석! 네가 감히 배신을……!”
“닥쳐라, 칼슈타인!”
알레이온이 칼슈타인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나뿐만 아니라 팔리스 사형까지 희생시키다니! 당신에게 우리 제자들은 한낱 도구에 불과했던 건가!?”
“6석……!”
“당신에게 중요한 건 이 지역에서 힘을 길러 중앙으로 진출하는 것뿐이겠지! 우리 제자들은 그걸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던 거야!”
자신을 비난하는 제자를 보면서 칼슈타인이 까득 이를 갈았다.
마음만 같아서는 알레이온부터 죽이고 싶겠지만, 지금은 우선해야 하는 대상이 있었다.
“건방지게 입을 놀린 대가는 잠시 뒤에 치르게 해 주마.”
그렇게 말하며 칼슈타인은 시리우스를 노려봤다.
“칼솜씨보다 아가리를 놀리는 솜씨가 더 뛰어난 놈 같군. 어느새 6석을 구워삶은 거냐.”
“싸대기 몇 번 때리면서 타일렀을 뿐이다.”
“흥…….”
코웃음을 치면서 칼슈타인이 일어섰다.
그리고 벽에 걸려 있던 검을 집어 들었다.
“좋다. 내가 상대해 주마.”
칼슈타인의 자세는 지금까지 시리우스가 상대해 온 제자들하고는 많이 달랐다.
다양한 움직임을 펼치면서 변화무쌍한 공격을 전개할 수 있는 자세다.
그 모습만 봐도, 칼슈타인이 다른 제자들보다 훨씬 높은 경지에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검술의 진수를 혼자서만 독점하고 있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시리우스, 나는 네놈의 능력을 이미 간파했다.”
“…….”
“팔리스의 마법검과 충돌한 순간, 네놈의 마법검이 팔리스의 마력을 빨아들이더군. 너는 그 시커먼 마법검을 내세워서 지금까지 승승장구한 거다.”
칼슈타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 시커먼 마법검을 어디서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통하지 않는다.”
칼슈타인이 앞으로 움직였다.
푸르스름한 마법검이 시리우스의 정면으로 파고들었다.
시리우스도 북명의 공력을 담은 검으로 맞섰다.
쿵!
칼날과 칼날이 부딪힌 순간, 굉음이 발생했다.
칼슈타인은 팔리스보다 몸집이 훨씬 왜소한 노인이고, 검도 훨씬 가볍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리우스에게 전혀 밀리지 않았다.
게다가…….
“어떠냐, 시리우스!”
팔리스의 마법검은 시커먼 검기에 접촉하자 금방 무너졌다.
하지만 칼슈타인의 마법검은 전혀 끄떡 없었다.
“네 녀석의 마법검에 잡아먹힐 만큼…… 내 마법검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칼슈타인이 포효하면서 연속적인 공격을 펼쳤다.
시리우스는 모든 공격을 막아 냈지만, 북명의 검기는 칼슈타인의 마법검을 흐트러뜨리지 못했다.
이건 북명의 한계였다.
북명은 시커먼 북해처럼 모든 것을 집어삼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쪽의 내공이 상대방을 압도할 때의 얘기다.
게다가 칼슈타인의 마법검처럼 마력을 단단하게 고정한 상태라면 더더욱 힘들어진다.
지금 시리우스의 내공은 1갑자를 조금 넘는 정도.
칼슈타인의 마법검을 집어삼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칼슈타인.”
하지만, 시리우스는 딱히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칼슈타인의 마법검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7서클의 마법검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게 전력인가?”
“뭐라고?”
“전력을 다한 마법검이냐고 물었다.”
“허세를 부리기는……!”
칼슈타인의 마법검이 한층 더 격렬해졌다.
정교하면서 현란한 움직임으로 시리우스의 목을 노렸다.
“그 정도가 한계인 모양이군.”
그렇게 중얼거리며, 시리우스는 탐색전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칼날에 전개되어 있던 검기의 색깔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시커먼 북쪽 바다 같은 흑색에서…… 눈 쌓인 설원(雪原) 같은 백색으로.
“……!”
칼날이 다시 한번 충돌한 순간, 칼슈타인이 경악했다.
천랑신공의 두 번째 단계.
백랑(白狼)의 공력이 칼슈타인의 마법검을 얼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