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명가의 절대무신 22화
22화. 남자 마음을 모르시네
시리우스는 리겔 가문으로 돌아가기 전에 유테루스 가문부터 들렀다.
팔테온에게도 현재 상황을 알려 줘야 했기 때문이다.
“정말로…… 믿어지지 않는군요.”
시리우스의 얘기를 듣고 팔테온은 혀를 내둘렀다.
그 칼슈타인 검단을 아예 통째로 자기 수하로 만들어 버리다니, 상상을 초월한 일이었다.
“시리우스 님, 혹시 흑회 출신이십니까?”
“뭔 헛소리냐.”
“흑회 놈들의 생태나 심리를 완전히 꿰뚫어 보고 있으신 것 같아서 말입니다.”
팔테온은 시리우스가 나설 때만 해도 칼슈타인 검단을 해산시킬 거라고만 생각했다.
칼슈타인 등 수뇌부를 해치우면 구심점을 잃고 뿔뿔이 흩어질 테니까.
하지만 시리우스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칼슈타인 검단을 그대로 가로채서 자기 부하로 만들어 버렸다.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만약 제가 그런 짓을 하려고 했어도, 다들 제 말은 듣지 않고 도망쳐 버렸겠죠. 아니면 다 함께 저를 죽이려 들거나.”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
“정말 흑회 출신 아니십니까?”
“태어나서 줄곧 북쪽 변방에서 책만 읽고 살았다.”
“근데 어떻게 흑회 놈들을 그렇게 잘 다루시는지…….”
“책에서 배웠다.”
“…….”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알겠습니다, 시리우스 님.”
팔테온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한배를 탄 몸이기도 하고…… 유테루스 가문은 계속해서 시리우스 님을 따르겠습니다.”
시리우스가 발카인 길드와 오블레아 용병단까지 쓰러뜨리고 이 일대를 완전히 제패한다면…… 유테루스 가문의 미래는 걱정 안 해도 될 것이다.
“그럼 나는 이만 리겔 가문으로 돌아가겠다. 유스티아하고도 상황을 공유해야 하니까.”
“아, 그렇군요.”
팔테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부인에게 승전보를 전하셔야죠. 남편의 활약을 들으면 기뻐하실 겁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다…….”
시리우스는 눈썹을 찡그리며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 * *
시리우스가 리겔 가문의 본관에 도착했을 때, 가주인 루트베인은 외출 중이었다.
변두리에 나타난 도적 무리를 토벌하러 갔다고 한다.
그래서 시리우스는 바로 유스티아를 만나 현재 상황부터 공유했다.
“…….”
팔테온과는 달리, 유스티아는 시리우스의 설명을 듣고도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단지 길게 한숨을 내쉬었을 뿐이다.
“시리우스.”
“왜 그러지?”
“당신은 정말 신기한 사람이에요.”
유스티아가 진지한 눈빛으로 시리우스를 쳐다봤다.
“저는 당신이 책만 읽어 온 나약한 학자인 줄만 알고 있었어요.”
“…….”
“하지만 당신은…… 서슴지 않고 무력(武力)을 사용해 상대를 제압하는 패도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죠.”
시리우스가 어떤 인물인지, 유스티아는 충분히 확인한 뒤에 혼담을 진행했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유스티아가 알던 것과 전혀 달랐다.
“당신은 어떻게 해야 흑회의 불한당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지 알고 있어요. 한편으로는 명분을 따지는 명문가들의 습성까지 꿰뚫어 보고 있었죠.”
“…….”
“명가와 흑회…… 양쪽의 심리를 완벽히 이해하고 전략을 세우고 있어요.”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백무랑은 백도든 흑도든 가리지 않고 싸우던 인물이었으니까.
“게다가 나이엘과 칼슈타인을 쓰러뜨릴 수 있는 힘까지 갖고 있죠.”
“…….”
“당신은 대체 어떻게 그런 능력을 갖게 된 거죠?”
유스티아의 질문에, 시리우스는 간결하게 대답했다.
“책에서 배웠다.”
“…….”
유스티아는 잠시 입을 다문 채 시리우스를 응시했다.
“역시 제대로 말해 줄 생각은 없는 거군요.”
“…….”
“정말로, 신용할 수 없는 사람.”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유스티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지?”
시리우스는 유스티아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를 신용할 수 없다면, 리겔 가문에서 쫓아낼 건가?”
“지금의 리겔 가문에 당신을 쫓아낼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유스티아가 시리우스를 흘겨보며 말했다.
“만약 당신이 다른 마음을 품고 있더라도, 리겔 가문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건 그렇지.”
“어차피 리겔 가문은 당신한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그러니 당신을 따를 수밖에 없죠.”
유스티아는 침착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했다.
“저는 당신을 신용할 수 없어요.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신용하고 있어요.”
“그게 뭐지?”
“당신이 제시하는 방향성.”
“…….”
“천천히 말라 죽어 가고 있던 리겔 가문에게 활로를 열어 준 게 당신이에요.”
유스티아에게 시리우스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존재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 있다.
시리우스가 가는 길이야말로, 리겔 가문을 재건하기 위한 길이다.
그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당신이 리겔 가문의 사위로서 패도를 추구한다면…….”
“…….”
“저는 리겔 가문의 딸로서, 당신이 걷는 패도를 함께 걷겠어요.”
방침은 정해졌다.
시리우스는 전생에서 이루지 못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리겔 가문이 필요하다.
유스티아는 리겔 가문을 재건하기 위해 시리우스의 힘이 필요하다.
두 사람은 애정과 신뢰로 맺어진 부부가 아니다.
하지만 서로의 목표를 위해 힘을 합칠 수 있다.
일심동체는 아니어도, 같은 길을 걸을 수는 있는 것이다.
“유스티아.”
“네, 시리우스.”
“앞으로의 방침을 정하기 위해, 리겔 가문을 둘러싼 정세를 확인하고 싶군.”
“지도를 보여 드릴게요.”
유스티아가 바로 지도를 폈다.
망설임 없는 태도였다.
“지도를 보면 아시겠지만, 리겔 가문은 대륙 동북부 변방에 있어요.”
“확실히 끄트머리에 있군.”
“옛날에는 동부 전체가 리겔 가문의 세력권이었어요. 점점 쪼그라들다 여기까지 밀려난 거죠.”
지도 구석에 리겔 가문의 위치를 표시하면서, 유스티아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북방 산맥을 등지고 있는 위치이기 때문에, 북쪽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편이에요. 요소요소의 길목만 지키면 되죠.”
“문제는 남쪽이군.”
“네, 남쪽으로는 훤히 뚫려 있죠.”
중간에 산이나 숲이 있긴 하지만, 북쪽에 비하면 장애물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리겔 가문 남쪽에는 유테루스 가문과 칼슈타인 검단이라는 큰 세력이 있었어요. 하지만 이 세력들은…… 시리우스 당신이 제압했죠.”
유스티아는 유테루스 가문과 칼슈타인 검단의 세력권을 그린 뒤, 바로 X 표시를 했다.
“주변에는 유테루스 가문 말고도 크고 작은 가문들이 있어요. 하지만 이 가문들은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을 거예요.”
“어째서지?”
“저희가 편지를 썼거든요.”
“편지?”
“리겔 가문이 유테루스 가문과 다투게 된 전말을 설명해야 하니까요. 리겔 가문의 이름으로 편지를 보내는 편이 가장 효과적이죠.”
시리우스가 적들과 싸우기 위해 바깥으로 나가 있던 동안…… 그들도 외교전에 힘쓰고 있었다.
“저희는 어디까지나 피해자이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싸움에 나섰을 뿐이라고 강조했어요. 다들 우호적인 반응을 보여 주더군요.”
“다행이군.”
“당분간 대놓고 우리를 적대하는 가문은 없을 거예요. 그런데…….”
말을 하던 도중, 유스티아가 잠시 머뭇거렸다.
“시리우스, 한 가지 사과할 게 있어요.”
“사과라니?”
“편지에서, 좀 과장되게 표현한 부분이 있어서.”
유스티아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당신을…… 아내를 탐하는 놈들을 결코 용서하지 않는 애처가처럼 표현했어요.”
“…….”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설득력이 부족해서…… 죄송해요.”
그렇게 말하며 유스티아는 시리우스의 눈치를 살폈다.
“화났어요?”
“아니, 화낼 일은 아니지.”
시리우스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꾸했다.
다른 놈들이 쓸데없는 헛소리를 하는 거라면 몰라도, 유스티아가 판단하여 그렇게 얘기하고 다닌 거라면 문제 될 게 없다.
“그렇게 하는 편이 우리한테 더 유리하다면 그렇게 해야지.”
“네, 고마워요.”
“그런 부분에 관해서는 당신 판단에 맡길 테니, 알아서 해.”
명문가들 사이에서 어떤 논리가 잘 통하는지는 유스티아가 더 잘 알고 있다.
이런 부분은 유스티아한테 맡기는 편이 낫다.
“현실하고 동떨어진 얘기지만 말이야, 내가 애처가라니.”
“네, 현실하고 동떨어진 얘기죠, 당신이 애처가라니.”
실제로는 시리우스도 유스티아도 서로에게 아무런 애정이 없다.
형식적인 결혼을 했을 뿐이고, 지금도 서로의 목표를 위해 손을 잡고 있을 뿐이다.
그 사실을 재확인한 뒤, 두 사람은 다시 논의를 시작했다.
“칼슈타인 검단 남쪽에서 위세를 떨치는 조직은 발카인 길드와 오블레아 용병단이에요. 그동안 칼슈타인 검단 때문에 이쪽으로 진출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칼슈타인이 죽은 걸 알면 분명 야금야금 쳐들어올 거예요.”
유스티아가 지도에 발카인 길드와 오블레아 용병단의 본거지를 표시했다.
그들은 칼슈타인 검단과는 달리 대도시를 본거지로 삼고 있었다.
“발카인 길드는 수송단 길드에서 발전한 세력으로, 상인들을 겁박하여 동북부의 물류 흐름을 상당 부분 장악하고 있어요. 오블레아 용병단은 이름대로 돈을 받고 싸우는 용병들의 집단인데, 요즘은 보호비 명목으로 민간인들에게서 돈을 갈취하는 일을 더 많이 하죠.”
시리우스는 기시감을 느꼈다.
무림에서 비슷한 짓을 하는 흑도들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양쪽에서 동시에 돈을 뜯기는 사람들도 많겠군.”
“네, 맞아요.”
“놈들을 쓸어버리고 이 일대를 우리 세력권으로 삼으면, 지역 전체가 더 번영할 수 있겠지.”
“…….”
아예 천랑표국(天狼鏢局) 같은 걸 만들어서 이 지역의 물류를 주도해 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표국 같은 걸 만들려면 돈 계산을 잘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누가 적임일까?
“시리우스, 발카인 길드와 오블레아 용병단까지 몰아낸다면 우리는 동북부에서 손꼽히는 세력이 될 거예요.”
“그렇겠지.”
“그렇게 되면 모든 흑회 위에서 군림하는 ‘연맹’에서도 우리를 주시할 거예요. 다른 명문가들도 우리를 견제하기 시작할 거고요.”
유스티아가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상황에 놓여도 괜찮을까요?”
“상관없어.”
“시리우스…….”
“나중에는 동북부를 벗어나 동부 전체, 나아가서 대륙 전체에 이름을 떨치게 될 테니까.”
“…….”
할 말을 잃고 자신을 쳐다보는 유스티아 앞에서, 시리우스는 다시 지도를 가리켰다.
“일단 지금은 당장 상대해야 하는 놈들부터 생각하지. 발카인 길드와 오블레아 용병단에 대해 더 자세히 알려 줘.”
“알겠어요.”
그 이후, 시리우스는 유스티아한테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앞으로의 방침을 충분히 의논한 뒤, 시리우스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아. 그러면 나는 잠깐 나갔다 오지.”
“어디를 가시려고요?”
“가주님이 도적 떼를 토벌하러 가셨다면서.”
“가세하러 가신다는 건가요?”
“그래, 이 근방 분위기도 점검할 겸.”
“…….”
마치 산책이라도 나가는 것처럼, 가벼운 목소리였다.
“알겠어요. 다녀오세요.”
“그래…… 아, 그렇지.”
시리우스는 품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게 뭔가요?”
“칼슈타인의 금고에서 꺼내 온 거야.”
“……!”
주머니에는 온갖 보석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동안 칼슈타인이 모아 놓은 재물의 양은 결코 적지 않았다.
그 대부분은 천랑검단의 운영 자금으로 사용될 예정이었지만…… 시리우스는 자금이 부족한 리겔 가문을 위해 일부를 챙겨 온 것이다.
“살림에 보태.”
“…….”
이 정도면 유스티아의 활동 자금으로 충분할 것이다.
할 말을 잃은 유스티아를 뒤로한 채, 시리우스는 바깥으로 나갔다.
* * *
“유스티아 아가씨, 식사는 어떻게…… 어라?”
방 안에 들어온 마리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유스티아가 보석을 잔뜩 늘어놓고는 망연자실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보석, 설마 시리우스 님이 주고 가신 건가요?”
“네, 방금 전에…….”
“세상에…….”
마리아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시리우스 님이 이렇게 로맨틱한 분일 줄은 몰랐네요.”
“네?”
유스티아가 흠칫했다.
“로맨틱?”
“오랜만에 돌아오자마자 이렇게 많은 보석을 선물한 거잖아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요. 아내한테 보석 선물이라니, 무슨 중세 시대도 아니고.”
“어라, 다른 아가씨들은 남편한테 보석을 받으면 무척 기뻐하실 텐데요?”
“…….”
유스티아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언니들이 이런 보석을 선물 받았다면 잔뜩 신이 나서 자랑하고 다녔을 것이다.
“시리우스는 그냥 가문의 운영 자금으로 쓰라고 주고 간 거예요. 저한테 선물로 주는 거라고는 한마디도…….”
“시리우스 님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표현하는 분이시잖아요.”
“아니, 그게…….”
“아가씨도 참, 남자 마음을 모르시네.”
“…….”
마리아의 열변에 유스티아는 잠시 혼란스러워졌다.
하지만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이건 전부 매각할 거예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아가씨! 그랬다간 시리우스 님이 마음속으로 엄청 섭섭하실 거예요! 겉으론 저러셔도 아가씨를 얼마나……!”
“아니라고요.”
귀가 빨개진 채 항변하면서, 유스티아는 보석을 다시 주워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