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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명가의 절대무신-24화 (24/129)

몰락명가의 절대무신 24화

24화. 각개 격파가 아니라 일망타진

“우읍……!”

입에서 피를 뿜으면서도, 라그나스는 땅을 구르며 거리를 벌렸다.

그 신속한 움직임에 시리우스는 내심 감탄했다.

“제법이군.”

살살 때리긴 했지만, 웬만한 놈은 시리우스의 싸대기 한 방이면 정신을 못 차린다.

남쪽에서 이곳까지 홀로 잠입하기도 했고, 보통 녀석은 아닌 것 같았다.

“젠장……!”

우웅!

라그나스의 손을 중심으로 바람이 휘몰아쳤다.

기이한 감각에 시리우스가 몸을 옆으로 날린 순간, 옷자락이 칼에 베인 것처럼 찢어졌다.

‘바람의 칼날?’

칼슈타인이 바람의 힘을 빌려 빠르게 움직이던 것이 떠올랐다.

라그나스는 그걸 공격용으로 사용하는 모양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의 칼날을 날린다니, 제법 위협적이었다.

물론, 시리우스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지만 말이다.

“으윽……!”

라그나스는 신음을 흘리면서도 바람의 칼날을 연속해서 날렸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그 공격을 모조리 피하면서 거리를 좁혔다.

순식간에 다가온 시리우스가 주먹을 뻗었다.

그 주먹에는 어느새 시커먼 기운이 전개되어 있었다.

“커헉……!”

쿵!

뒤로 날아간 라그나스가 벽에 충돌했다.

라그나스의 몸은 벽에 반쯤 파묻혔고, 입에서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한 가지만 더 지적하지, 라그나스.”

시리우스는 뒷짐을 진 채 라그나스에게 다가갔다.

“너희는 리겔 가문을 위해 천랑검단 단주와 싸울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

“너희 단장은 7서클인 칼슈타인과 싸우는 것조차 두려워하던 놈이다. 그런 놈이 칼슈타인을 단칼에 해치운 실력자하고 싸운다고?”

시리우스는 코웃음을 쳤다.

“게다가 천랑검단 단주는 연맹에서 파견된 놈이라는 소문이 있다. 그놈하고 싸우면 너희는 연맹과 적대하게 되지. 과연 너희 같은 일개 지방 흑회 조직이 연맹과 적대할 용기가 있을까?”

“큭…….”

“물론, 그건 내가 퍼뜨린 가짜 소문이었지만…… 어쨌든 너희는 처음부터 천랑검단 단주와 싸울 생각이 없었을 거야. 그래서 이런 제안을 한 거지.”

이놈들은 자신들의 이득만을 추구하는 흑회다.

리겔 가문을 위해 연맹에서 파견된 실력자와 싸우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손해 보는 장사다.

“너희 목적은 어디까지나 리겔 가문에게서 돈을 뜯어내는 것이었겠지. 그리고 그 돈 일부를…… 천랑검단에게 건네줄 생각이었을 거야.”

“……!”

“천랑검단이 리겔 가문을 위협하게 만들고, 리겔 가문에는 천랑검단의 위협을 빌미로 더 많은 돈을 뜯어내는 거지.”

이걸 반복하면 오블레아 용병단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리겔 가문을 착취할 수 있다.

“나는 너희들처럼 더럽게 장사하는 놈들을 많이 봤다. 눈에 띄는 대로 족족 척살했지.”

시리우스가 놈들의 수법을 꿰뚫어 볼 수 있었던 건, 무림에서도 이런 식으로 다른 이를 등쳐 먹는 놈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저급한 흑도 방파들이 자주 써먹는 책략.

그쪽 세계나 이쪽 세계나, 쓰레기들의 발상은 비슷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너희들을 살려 둘 필요가 없는 거다.”

“…….”

라그나스에게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는 상태였다.

“…….”

시리우스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살려 놓고 고문했다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겠지만, 그러기에 적절한 장소가 아니었다.

“시리우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자 식당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루트베인의 모습이 보였다.

“어떻게 되었지? 오블레아 용병단에서 왔다면서?”

“네, 유테루스 가문을 대신하여 리겔 가문을 지켜 주겠다고 하더군요.”

시리우스는 차분한 태도로 대답했다.

“외부 세력의 힘을 빌릴 생각은 없다고, 저희들 입장을 확실히 전했습니다.”

“아…… 잘했네. 오블레아 용병단은 강압적인 사람들인데 용케도 설득했군.”

시리우스의 대답을 듣고 루트베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식사 도중이었지. 어서 들어가게.”

“가주님, 죄송하지만 저는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뭐?”

루트베인이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왜 갑자기…….”

“급히 가 봐야 하는 곳이 생겨서 말입니다.”

오블레아 용병단은 이미 행동에 나섰다.

그렇다면 발카인 길드도 움직이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놈들을 한꺼번에 쓸어버릴 때가 온 것이다.

* * *

경공을 사용하면서 빠르게 남쪽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칼슈타인 검단…… 아니, 천랑검단의 본거지였다.

유스티아와 의논하면서 구상했던 작전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천랑검단을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

하지만 산기슭에 위치한 입구 근처가 소란스러웠다.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

시리우스는 속도를 한 단계 올렸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피 냄새가 진해졌다.

“젠장, 덤벼……!”

알레이온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피투성이가 된 알레이온이 검을 휘두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확인한 순간, 시리우스는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집어 던졌다.

쐐애애액!

바람을 가르고 날아간 검이 알레이온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 탓에 알레이온이 기겁하면서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알레이온을 죽이려 하던 괴한 역시 다급히 뒷걸음칠 수밖에 없었다.

“웬 놈이냐?”

푸른색 외투를 걸친 남자였다.

손에는 장검을 들고 있었는데, 열 명 가까이 되는 부하들도 거느리고 있었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대꾸조차 하지 않고 주위 상황부터 확인했다.

검단의 구성원들이 열 명 넘게 쓰러져 있었다.

그중에는 알레이온이 소개시켜 준 간부들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숨이 끊어진 사람은 아직 없다는 점이었다.

“다, 단주님……!”

알레이온이 눈물을 글썽이며 시리우스를 불렀다.

“저놈들이 갑자기 쳐들어와서 난동을……!”

“알레이온.”

시리우스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상자들을 수습해서 물러서라.”

“단주님!”

“너도 부상을 치료하고.”

그렇게 말하며, 시리우스는 알레이온의 어깨를 두드렸다.

“수고했다.”

“……!”

눈물을 삼키는 알레이온을 뒤로하고, 시리우스는 한 걸음 전진했다.

“발카인 길드에서 나왔나?”

“눈치가 빠르군. 네놈이 천랑검단의 단주인가.”

푸른색 외투의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인사를 하러 왔다.”

“용기가 가상하군.”

“용기?”

남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설마 우리가 그 소문을 믿을 줄 알았나? 네가 연맹에서 보낸 실력자라고?”

“…….”

“이미 확인했다. 너는 연맹에서 온 사람이 아니라…… 리겔 가문의 막냇사위다.”

오블레아 용병단과는 달리, 발카인 길드는 이미 확인 작업을 마친 모양이었다.

“하필이면 그런 가짜 소문을 퍼뜨리다니, 겁도 없는 놈이군. 대체 무슨 생각으로…….”

“멍청한 녀석.”

“뭐라고?”

시리우스는 냉정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내가 리겔 가문의 막냇사위? 우리가 퍼뜨린 가짜 소문을 믿고 있었구나.”

“……?”

“잘 생각해 봐라.”

어리둥절히는 남자 앞에서, 시리우스는 천천히 말했다.

“시리우스는 병약한 학자였다. 그런 놈이 7서클 마법검사인 칼슈타인을 죽일 수 있을까?”

“뭣……?”

“평범한 마법사였다면 허를 찔러서 죽이는 것도 가능했겠지. 하지만 칼슈타인은 노련한 검사다. 허를 찌르는 건 너희들 대장도 어려울 거다.”

남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잠깐, 그렇다면…….”

“이런 것도 이해 못 한다니, 역시 동북부 촌구석 놈들은 머리가 나쁘군.”

“……!”

“너, 이름이 뭐냐.”

시리우스의 질문에 남자가 머뭇거리면서 대답했다.

“발카인 길드 3번대의 줄리안이다. 좀 확인을 하고 싶은데…… 네가 정말로 연맹에서 나온 사람이라고?”

“아직도 이해를 못 했나?”

“아니, 그러면 왜 리겔 가문의 막냇사위라는 소문을…….”

“연맹의 큰 뜻을 너희들에게 일일이 설명해 줄 이유는 없지.”

“……!”

줄리안은 명백히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정말로 천랑검단의 단주가 연맹 직속의 실력자라면, 지금 줄리안은 연맹에게 싸움을 건 셈이 된다.

“줄리안, 잠깐 이쪽으로 와라.”

“……?”

시리우스가 손가락을 까닥였다.

줄리안이 머뭇거리며 다가가자, 시리우스는 바로 싸대기를 후려쳤다.

“억……!”

두둑.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줄리안이 눈을 치켜뜨고 시리우스를 노려봤다. 하지만 시리우스의 살기 어린 눈빛을 확인하고 금방 움츠러들었다.

“왜? 너는 죄 없는 내 부하들한테는 칼질을 해 댔으면서, 싸대기 한 대도 못 참는 거냐?”

“큭…….”

“이봐, 줄리안.”

시리우스는 줄리안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칼슈타인이 내 손에 죽었다는 걸 잊지 마라.”

“……!”

줄리안이 움찔했다.

“줄리안, 현재 연맹은 이 일대를 싹 정리하려 하고 있다. 칼슈타인을 죽인 것도 그 일환이지.”

“뭐, 뭣…….”

“그래도 연맹에서 이 일대를 직접 다스리려는 건 아니다. 적당한 흑회를 지정해서 운영을 맡길 생각이지…….”

시리우스는 목소리를 낮추면서 말했다.

“물론, 발카인 길드도 그 후보다.”

“그, 그게 정말인가?”

“그리고, 오블레아 용병단도 후보고.”

“……!”

잠깐 풀어졌던 줄리안의 표정이 다시 딱딱해졌다.

“그런데 발카인 길드의 줄리안이라는 놈이 내 부하들한테 칼부림을 했으니…… 점수가 깎이겠군.”

“자, 잠깐만, 그건…….”

“농담이다.”

“뭐?”

“어차피 오블레아 용병단도 점수가 깎일 요소가 있었거든. 그러니 지금으로서는 동점이라 할 수 있지.”

줄리안은 당혹스러웠다.

알 수 없는 소리가 계속되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이건 시리우스가 의도한 바기도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빠르게 결정하고 마무리해야 될 것 같다.”

“무슨…….”

“너희 길드의 우두머리에게 전해라.”

시리우스가 줄리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내일 밤, 이 일대를 다스릴 정식 지배자를 지정하겠다. 연맹의 대리인인 내가 말이다.”

“……!”

“그러니…… 길드의 정예 병력을 모조리 끌고 이곳으로 와라. 길을 열어 둘 테니, 너희를 방해하는 놈들은 아무도 없을 거다.”

본래라면 아직 남아 있는 칼슈타인 검단의 조직망 탓에 이쪽으로 함부로 진군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시리우스는 중간에 제지하지 않을 테니 병력을 끌고 오라고 한 것이다.

“오블레아 용병단에게도 내 얘기를 똑같이 전해라. 그래야 공평하지.”

“……!”

“네가 책임지고 전달해라. 만약 얘기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경우, 뒷일은 감당하기 어려울 거다.”

내일 밤, 발카인 길드와 오블레아 용병단이 이곳으로 집합할 수 있도록 하라. 그러면 그중에서 이 일대를 다스릴 정식 지배자를 지명하도록 하겠다.

시리우스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 얘기는 끝이다. 이만 가 봐.”

“자, 잠깐만, 좀 더 설명을…… 으윽!”

쫘악!

시리우스가 줄리안의 얼굴을 다시 후려쳤다.

“내 얘기는 끝이라고 말했을 텐데.”

“…….”

줄리안이 피를 뚝뚝 흘리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시리우스의 강압적인 태도 앞에서는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단주님.”

줄리안과 부하들이 자리를 뜨자, 응급처치를 마친 알레이온이 다가왔다.

“어떻게 입에 침도 안 바르시고 그런 거짓말을…….”

“거짓말? 뭐가 거짓말이지?”

“네?”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

알레이온이 신속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단주님은 연맹에서 나온 분이셨죠.”

“그래, 맞다.”

천랑검단 단주는 시리우스가 아니라 연맹에서 나온 정체불명의 실력자 ‘천랑’이다.

그게 천랑검단의 공식 입장이었다.

“굳이 내일 밤으로 지정하신 건 놈들에게 확인할 여유를 주지 않으시려는 거군요.”

“그래, 똑똑하군.”

알레이온의 표정이 밝아졌다.

마치 칭찬받은 강아지 같은 얼굴이었다.

‘십이위병의 술인도 그랬었지…….’

역시 보면 볼수록 술인이 생각나는 녀석이다.

검술 실력만 좀 더 갈고닦으면 술인과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시간 여유를 주면 놈들은 내 얘기가 사실인지 확인하려 할 거다. 연맹 관계자에게 확인하든 유테루스 가문 관계자에게 확인하든……. 하지만 내일 밤이 기한이면 그러고 있을 여유가 없지.”

“놈들은 부리나케 달려오겠군요. 단주님이 정말로 연맹 사람이라고 믿고서 말입니다.”

“글쎄, 그건 모르겠다.”

“네?”

알레이온이 눈을 깜박이며 시리우스를 쳐다봤다.

“그 줄리안이라는 놈도 돌아가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한 말이 개소리라는 걸 금방 깨달을 수 있을 거다.”

“개소리……?”

“방금 나는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놈은 그냥 내가 조성한 분위기에 말려든 거지.”

“……!”

설사 줄리안이 깨닫지 못하더라도, 발카스 길드의 다른 간부들이 눈치챌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리고 이건 오블레아 용병단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놈들이 내 말을 의심해도 상관없다.”

“네?”

“이렇게 된 이상, 놈들은 정예 병력을 이끌고 여기로 달려올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만약 내일 밤에 이 일대의 지배자를 결정하는 게 사실이라면, 절대로 불참해서는 안 된다.

다른 쪽 세력에게 지배권을 그냥 넘겨주는 셈이 되니까.

설사 가짜라도 상관없다.

몰고 온 정예 병력으로 시리우스를 죽여 버리면 그만이니까.

“이곳까지 길을 열어 주겠다고 약속도 했으니…… 결국 놈들은 내일 밤 여기로 집합할 거다.”

“단주님, 그러면…….”

“그래.”

시리우스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 밤, 발카인 길드와 오블레아 용병단을 동시에 잡는다.”

각개 격파가 아니라 일망타진.

그것이 이번 작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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