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명가의 절대무신 26화
26화. 네 실력을 보여 봐라
발카인 길드와 오블레아 용병단.
두 흑회의 정예 병력이 돌격해 왔다.
주위의 부하들이 긴장하는 걸 느끼고, 시리우스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 마라.”
“단주님…….”
“내가 앞장설 테니까.”
천랑무제 백무랑에게는 신념이 있었다.
격렬한 싸움이 벌어질 때 우두머리는 가장 선두에 나서야 한다.
맨 뒤에서 부하들이 죽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다면, 그건 제대로 된 조직이 아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칼슈타인 검단은 수준 미달이었다.
그리고 그건 발카인 길드와 오블레아 용병단도 마찬가지다.
“크헉……!”
“아악……!”
휘익!
시리우스가 휘두른 장검에 잔챙이들이 우르르 쓰러졌다.
칼날에는 이미 북명의 기운이 전개된 상태였다.
“뭣들 하느냐!”
알레이온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단주님이 앞장서서 싸우고 계신다! 단주님을 따르라……!”
“으아아……!”
그 외침과 동시에 검사들이 돌격하기 시작했다.
항상 뒤에서 무게만 잡고 있던 칼슈타인과는 달리, 시리우스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적진 사이로 뛰어들고 있다.
그 명백한 차이가 검사들의 사기를 향상시켰다.
“분위기 좋군.”
하지만, 발카인 길드와 오블레아 용병단 쪽은 어떤가.
우두머리인 발카인과 오블레아는 뒤로 물러서서 부하들에 보호받고 있었다.
그 모습에 시리우스는 경멸감을 느꼈다.
“네놈……!”
시리우스가 앞을 가로막는 잔챙이들을 거침없이 도륙하고 있자, 푸른 외투의 남자가 튀어나왔다.
어제 찾아와서 천랑검단의 검사들에게 부상을 입혔던 줄리안이었다.
“결국 우리를 속인 건가……!”
“그러고 보니.”
시리우스는 어제 있었던 일을 되새기며 중얼거렸다.
“어제 너한테 다친 놈들이 많았지.”
“……!”
줄리안은 마법검을 전개한 상태였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일격에 줄리안의 손에서 검을 떨어뜨린 뒤, 치명상을 입히기 위해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다.
“으윽!”
여기서 줄리안이 의외의 행동을 보였다.
몸통으로 칼날이 파고들자, 두 팔로 칼날을 꽉 붙잡은 것이다.
“죽여……!”
줄리안이 고함을 지르자 주위에 있던 놈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시리우스가 검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한 상태라면 승산이 있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근성이 있는 놈이군.”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시리우스는 이미 반대편 손에 북명의 공력을 전개한 상태였다.
“커헉!”
“윽……!”
쿵! 콰앙!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어졌다.
검이 없어도 맨손으로 사람을 도륙하는 시리우스의 모습에 다들 경악했다.
“뭐, 뭐 하는 거지?”
“어떻게 맨손으로……!”
어두운 밤이다.
시리우스의 손에 전개된 시커먼 기운을 육안으로 판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이 자식, 마법검을, 칼날이 아니라 맨손으로……?”
가까이 붙은 줄리안만이 시리우스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어렴풋이 눈치챘지만, 피를 흘리며 죽어 가는 중이라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비명 속에서 시리우스는 맨손으로 적들을 도륙했다.
“계속 지켜만 보고 있을 생각인가, 발카인, 오블레아?”
“……!”
뒤로 물러서 있던 발카인과 오블레아가 흠칫 놀랐다.
“부하들을 끝없이 희생시키면서, 내가 지치는 걸 기다리고 있는 거겠지만…….”
뒷걸음치는 잔챙이를 북명의 흡인력으로 끌어당겨 쓰러뜨린 뒤, 시리우스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내가 지치는 것보다 너희 둘만 남는 게 더 빠를 것 같다.”
“……!”
그 말에 발카인은 얼굴을 일그러뜨렸고, 오블레아는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발카인, 어쩔 수 없다!”
“오블레아……!”
“네가 부하들과 함께 앞장서라! 이 방법밖에 없다!”
“큭……!”
발카인이 입술을 깨물면서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오른손을 치켜들자, 그 손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다만 일반적인 화염 마법처럼 전방으로 화염이 발사되는 건 아니었다.
압축된 불꽃의 줄기가 허공에서 뱀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화염의 채찍인가? 그런 마법도 있군.”
“쳐라!”
발카인이 부하들과 함께 시리우스에게 달려들었다.
부하 중에는 마법검을 쓰는 놈도 있었고 일반 공격 마법을 쓰는 놈도 있었지만, 시리우스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부하들을 희생양 삼은 사이, 발카인이 시리우스의 측면으로 파고들었다.
휘익!
불꽃의 채찍이 시리우스를 덮치려 했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날렵한 움직임으로 그 공격을 피한 뒤 발카인에게 달려들었다.
“……!”
북명의 공력이 실린 시리우스의 손이 발카인을 포착하기 직전.
공기가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죽어라……!”
휘리릭!
오블레아가 펼친 바람의 칼날이 시리우스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오블레아의 부하였던 라그나스와 비슷했으나, 그 규모도 속도도 훨씬 우위였다.
하지만.
“제법이군.”
“……!?”
바람의 칼날은 시리우스의 옷깃을 베었을 뿐이다.
어둠 속을 질주하는 불가시(不可示)의 칼날을, 시리우스는 어려움 없이 피했다.
“어떻게……!”
“이미 지난번에 본 적이 있어서 말이다.”
오블레아가 계속해서 바람의 칼날을 날렸지만, 시리우스의 몸에는 닿지 않았다.
심지어…….
“제법 괜찮은 재주지만, 이 정도면 칼슈타인 정도만 되어도 대응할 수 있겠군.”
“……!?”
시리우스가 바닥에서 집어 든 검으로 바람의 칼날을 튕겨 냈다.
그 모습을 보고 오블레아도 숨을 삼켰다.
“네가 칼슈타인과의 정면 승부를 피한 이유를 알겠다, 오블레아.”
“크윽……!”
누가 먼저 100명을 죽이는지 겨룬다면, 오블레아가 칼슈타인보다 우월할 것이다.
하지만 일대일로 생사결을 한다면 오블레아는 칼슈타인을 이길 수 없다.
검술의 달인이었던 칼슈타인이라면 바람의 칼날에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테니까.
“발카인! 뭘 하고 있나! 시리우스를 더 몰아세워서 빈틈을 만들어!”
“큭…….”
오블레아가 발카인을 다그쳤다.
하지만 발카인은 오블레아의 마법에 말려들까 봐 제대로 달려들지 못하고 있었다.
“가관이군, 가관이야.”
시리우스가 느긋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발카인, 네가 고생이 많다.”
“뭣…….”
“오블레아 저놈은 네가 다치든 말든 전혀 상관없지. 나를 공격하다가 실수로 네 팔다리를 잘라 버려도 전혀 미안해하지 않을 거다.”
“……!”
원래 발카인과 오블레아는 적대하는 관계다.
오늘도 이 일대의 지배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울 생각이었다.
지금은 단지 시리우스를 쓰러뜨리기 위해 손을 잡고 있을 뿐이다.
“저놈은 머릿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다. 시리우스와 발카인, 두 사람을 한꺼번에 해치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이렇게 말이다.”
“……!”
“무, 무슨 소리냐!”
오블레아가 다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발카인, 현혹되지 마라! 우리가 협력해야 놈을 잡을 수 있다!”
“아, 알고 있다!”
발카인이 다급히 불꽃의 채찍으로 시리우스를 공격했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가볍게 피하면서 코웃음을 쳤다.
“협력하면 이길 수 있을 것 같나?”
“뭐라고?”
“차라리 따로따로 싸우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만.”
시리우스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한 놈은 바람의 칼날로 원거리 공격을 하고, 한 놈은 불꽃의 채찍으로 근거리 공격을 한다…… 얼핏 보기에는 조합이 잘 맞을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군.”
“……!”
“마법이라는 게 원래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거냐? 아니면 그냥 너희들 수준이 형편없는 거냐?”
시리우스의 독설에 발카인과 오블레아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거 아무래도 안 되겠군.”
시리우스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일대일로 싸우는 게 낫겠다.”
“뭣…….”
그 순간.
시리우스가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뭐야!?”
마법도 쓰지 않고 하늘 높이 날아오른 시리우스의 모습에 다들 경악했다.
특히 발카인은 완전히 허를 찔렸다.
“……!”
경공을 사용해 몸을 날린 시리우스의 표적은 오블레아였다.
오블레아 곁을 지키고 있던 부하가 다급히 마법으로 요격하려 했지만, 시리우스가 집어 던진 검이 그 몸통을 꿰뚫었다.
“멍청한 놈……!”
그때 오블레아가 목소리를 높이며 바람의 칼날을 날렸다.
하늘로 날아오른 상태라면 회피 동작을 취하기 어려울 거라 생각한 것이다.
게다가 시리우스는 방금 검을 집어 던져서 맨손이다.
맨손으로 바람의 칼날을 받아칠 수는 없을 거라 확신하며, 오블레아가 바람의 칼날을 난사했다.
“단주님……!”
적들과 싸우다 그 모습을 본 알레이온이 다급히 목소리를 높였으나.
“네 싸움에나 집중해라, 알레이온.”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시리우스는 오른손을 허공에 휘둘렀다.
얼핏 보기에는 헛손질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
천랑신공의 두 번째 단계, 백랑의 공력을 방출하는 중이었으니까.
백랑의 기운이 어둠 속에서 새하얗게 빛났고, 시리우스를 덮치려던 바람의 칼날이 공중에서 얼어붙었다.
“……!?”
상식을 초월하는 광경에 다들 경악했다.
바람의 칼날을 얼어붙게 만들다니, 어떤 마법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마, 말도 안…….”
오블레아가 경악하면서 뒷걸음쳤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이미 오블레아에게 접근한 상태였다.
“윽……!”
오블레아는 다른 마법을 펼쳤다.
공기를 압축하여 방벽을 만들어 시리우스를 막으려 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소용없었다.
시리우스가 오른쪽 손바닥을 앞으로 내민 순간, 방벽이 허무하게 깨져 버렸으니까.
“이, 이건 단순한 냉기가 아니라…… 마력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힘인가!?”
도망치려 하는 오블레아의 손목을 시리우스가 붙잡았다.
그와 동시에 손목을 통해 차디찬 기운이 침투하기 시작했다.
“끄아악……!”
오블레아는 비명을 지르며 어떻게든 마법을 쓰려 했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손목을 통해 침투한 백랑의 기운이 마력의 흐름을 얼리고 있었으니까.
“돼지 멱따는 소리는 그만해라.”
“컥……!”
쿠웅!
시리우스의 주먹이 오블레아의 명치에 꽂혔다.
멀리 날아간 오블레아는 아까 무너진 바위에 충돌한 뒤, 피를 뿜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 직후, 시리우스의 눈동자가 기민하게 움직였다.
“하앗……!”
배후에서 거친 화염이 쏟아지고 있었다.
오블레아와의 싸움을 지켜보며 기회를 엿보던 발카인이 마법을 전개한 것이다.
“그래, 네 실력을 보여 봐라.”
시리우스는 서슴지 않고 백랑의 공력을 방출했다.
서늘한 냉기가 거칠게 휘몰아치는 화염의 폭풍을 가르며 활로를 만들었다.
“크윽……!”
발카인도 몸을 날렸다.
그 오른손에서는 네 가닥으로 늘어난 불꽃의 채찍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점점 가까이 오는 시리우스를 향해 발카인이 채찍을 휘둘렀다.
“하압……!”
네 가닥의 채찍이 서로 다른 궤도를 그리며 시리우스를 덮쳤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시리우스는 두 가닥은 피하고 나머지 두 가닥은 백랑의 공력을 전개한 양손으로 튕겨 냈다.
하얀 기운에 휩싸인 손과 충돌할 때마다 불꽃의 채찍이 부서졌다.
붉은 불꽃에 하얀 얼음이 새겨지는 광경.
발카인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지고 있었다.
“크으윽……!”
급기야 발카인이 마지막 힘을 쥐어짰다.
불꽃의 채찍이 순식간에 여섯 개. 아니, 여덟 개로 늘어났다.
동시에 발카인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한계를 넘어선 마법을 사용해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하지만, 그 마지막 발악조차도 시리우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불꽃의 채찍 사이를 거침없이 파고든 시리우스가 마침내 발카인의 코앞까지 접근했다.
“시리우스……!”
쿠웅!
새하얀 공력이 실린 우권(右拳)이 불꽃을 뚫고 발카인의 가슴에 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