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명가의 절대무신 27화
27화. 간판을 떼어 버려라
“커흑……!”
피를 토하며 발카인이 땅을 굴렀다.
백랑의 공력이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즉사는 하지 않더라도, 심장과 서클이 동시에 얼어붙는 고통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살려, 살려다오…….”
“발카인.”
급기야 발카인이 목숨 구걸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리우스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너희 길드는 이 일대의 물류 흐름을 장악하고 상인들에게 과다한 비용을 청구하고 있다더군.”
“그, 그건…….”
“돈을 많이 벌었을 텐데…… 그 재물을 어디다 쌓아 놨지? 너희 본부에 있나?”
“도, 돈이라면 얼마든지 주겠다.”
시리우스가 길드의 돈을 탐낸다고 생각한 발카인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래, 원한다면 앞으로도 계속 천랑검단에 상납금을 바치겠다.”
“상납금?”
“우리 길드는 지금 다양한 영역에 진출하여 돈을 긁어모으고 있다. 최근에는 건축업 조합도 관리하기 시작했다. 거기서 들어오는 돈만 해도…….”
발카인은 더 이상을 말을 잇지 못했다.
시리우스가 바닥에서 검을 집어 들어 그 목을 날렸기 때문이다.
“너희 같은 놈들이 민간인들을 쥐어짜니까 동북부가 촌구석 취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다.”
유스티아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동북부는 다른 지역에 비해 상공업의 발달이 더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장사하는 사람들을 이중삼중으로 뜯어 먹는 흑회들이 존재했다.
동북부의 흑회 세력들을 깨끗이 정리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면…….”
시리우스는 주위를 쓱 둘러봤다.
이미 전투는 마무리된 상태였다.
발카인 길드도 오블레아 용병단도…… 살아 있는 놈이 아무도 없었다.
알레이온이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다가와서 고개를 끄덕였다.
“단주님, 전부 해치웠습니다.”
“수고 많았다.”
천랑검단은 칼슈타인 검단에서 남은 찌꺼기들로 만들어진 조직이었다.
발카인 길드와 오블레아 용병단의 정예 병력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인 게 당연하다.
하지만 시리우스가 앞장서서 적들을 유린해 준 덕분에 그들도 용기를 얻었다.
사기가 오른 상태에서 혼란에 빠진 적들을 해치우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천랑검단의 첫 번째 승리다. 모두 오늘의 기억을 잊지 마라.”
“네……!”
알레이온이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시체 치우고, 병장기 중에 쓸 만한 게 있으면 챙겨라.”
“네, 알겠습니다.”
“일이 끝나면 너희들끼리 술도 마시면서 휴식하고.”
“저희끼리 말입니까? 단주님은…….”
“나는 가 봐야 할 곳이 있다.”
“어딜 가시려는…… 아.”
갑자기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이는 알레이온을 보고 시리우스는 인상을 찡그렸다.
“알레이온.”
“네, 단주님.”
“너, 지금 무슨 생각했냐.”
“부인한테 가 보셔야 하는 건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니다.”
“그렇습니까? 죄송합니다.”
“…….”
시리우스는 왠지 짜증이 났지만, 부상 입은 부하한테 더는 뭐라 할 수 없었다.
사실…… 이번 일까지 마무리하면 바로 유스티아한테 가야 하는 게 맞기도 하고.
“지금부터 나는 발카인 길드의 본거지로 갈 생각이다.”
“네? 거기는 왜…….”
알레이온이 발카인의 시체를 힐끔 쳐다봤다.
“아, 발카인 길드의 재산을 접수하시려는 겁니까?”
“그것도 있지.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그러면 왜…….”
시리우스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사업을 좀 하려고 말이다.”
* * *
알레이온에게 뒷일을 맡긴 뒤, 시리우스는 산에서 내려와 바로 남쪽으로 향했다.
어디로 향하면 되는지는 이미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여긴가.’
경공으로 한나절 정도 내달려 도착한 곳은 상당히 큰 규모의 도시였다.
동북부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상업 도시라고 한다.
하지만 경기는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상인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없고, 빈 점포가 많았다.
유스티아의 얘기에 의하면…… 발카인 길드와 오블레아 용병단이 이중으로 돈을 뜯어 가고, 작은 흑회들도 여기저기서 행패를 부린다고 한다.
장사가 잘되어도 항상 쪼들릴 수밖에 없으니, 갈수록 침체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멍청한 놈들이군.’
무림의 흑도들도 여기저기서 상납금을 뜯어내긴 한다.
하지만 상납금을 너무 많이 뜯어내서 불경기로 만드는 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그런 바보 놈들이 많이 모여 있는 모양이었다.
“주인장, 먹을 것 좀 내주게.”
시리우스는 적당한 식당에 들어갔다.
천랑검단에서의 싸움 이후 아무것도 먹지 않았기 때문에 배를 채울 필요가 있었다.
“요새 장사는 잘되나?”
“손님은 그럭저럭 오는데, 별로 남는 게 없죠.”
식사 때가 아니라서 그런지, 손님은 시리우스밖에 없었다.
그래서 주인을 상대로 이런저런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미 유스티아를 통해 대략적인 얘기는 들었지만, 당사자들에게 직접 얘기를 들을 필요가 있었다.
“주인장.”
식사를 마친 뒤, 시리우스는 음식값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했다.
“발카인 길드 본부가 어디에 있는지 아나?”
“아, 여기서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돈을 많이 줘서인지, 주인장은 자세히 가르쳐 줬다.
시리우스는 감사를 표한 뒤 바깥으로 나갔다.
식당 주인장이 알려준 대로 길을 걷자, 담장에 둘러싸인 3층짜리 건물이 보였다.
‘큼지막한 창고도 있고, 마구간도 있고…….’
커다란 간판도 달려 있었기에 한눈에 발카인 길드의 본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시리우스가 정문으로 들어가려 하자, 문지기가 제지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무슨 일이지?”
“…….”
대꾸하지 않고 시리우스가 지나가려 하자, 문지기는 시리우스의 어깨를 붙잡았다.
“뭐 하는 놈…… 윽!”
문지기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기절했다.
시리우스가 손날로 뒤통수를 후려쳤기 때문이다.
“후유증은 없을 거다.”
그렇게 중얼거리며 시리우스는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았다.
발카인이 주요 인원들을 모두 데리고 나간 탓일 것이다.
“뭐냐? 여기는 어떻게 들어왔어?”
그중에서 험상궂게 생긴 놈이 시리우스에게 다가왔다.
허리에 칼을 차고 있지만…… 발카인이 선정한 50명의 정예 부대에는 뽑히지 못했던 놈이다.
즉, 평소에 힘없는 상인들을 겁박하는 일밖에 못 하는 놈이란 뜻이다.
“여기가 어디라고…… 억!”
짜악!
시리우스의 싸대기 한 번에 놈은 벽에 처박혔다.
“웬 놈이냐!?”
“이 자식……!”
곧바로 다른 놈들도 달려들었다.
하지만 결국 50명의 정예 부대에 선발되지 못한 잔챙이들이다.
심지어 마법을 쓸 줄 아는 놈도 없었다.
내공도 사용하지 않고 순식간에 정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리우스가 한 바퀴 휘젓고 다니자…… 건물 안에는 싸울 줄 모르는 놈들만 남게 되었다.
“미, 미친 자식……!”
비만 체형의 중년 남자가 시리우스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침을 튀겼다.
“대체 어디서 온 놈이냐! 길드장님이 돌아오시면 네놈 따위는 바로…… 커헉!”
시리우스는 곧바로 손을 뻗어 남자의 목을 꺾어 버렸다.
비전투원이라고 해도, 평소 사람들의 고혈을 빨아 온 놈이다. 비협조적인 놈까지 목숨을 살려 줄 이유는 없었다.
“다들 들어라.”
공포에 질린 놈들을 한곳에 모아 놓고, 시리우스는 입을 열었다.
“너희 길드장인 발카인은 나한테 죽었다.”
“……!”
“발카인이 데려간 정예 병력 50여 명도 내 부하들 손에 죽었다.”
그 발언에 다들 시리우스가 누구인지 눈치챘다.
발카인이 만나러 간 천랑검단의 단주가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오블레아 용병단도 같은 꼴을 당했다.”
“……!”
“나는 이후 오블레아 용병단을 찾아가서 남아 있는 놈들도 모조리 척살할 생각이다. 여기저기서 칼을 휘두르며 돈을 뜯는 것밖에 못 하는 놈들이니까.”
시리우스의 잔혹한 발언에 다들 몸을 떨었다.
“하지만, 너희는 좀 사정이 다르다.”
“……?”
시리우스는 바깥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곳에는 마차가 잔뜩 대기하고 있었다.
“원래 발카인 길드는 운송업자들의 모임이었다고 들었다.”
“…….”
“원래 운송업은 거친 일이다. 산적이니 뭐니 하는 놈들한테 물건을 빼앗길 수 있으니까. 그러니 운송업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힘 꽤 쓰는 놈들이 모이게 된다.”
무림의 표국(鏢局)을 떠올리면서, 시리우스는 천천히 말했다.
“그런데 가끔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힘 쓰는 놈들이 모였으니 그걸로 위세를 부려 볼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
“너희 발카인 길드가 그런 경우다.”
시리우스의 차가운 목소리에 다들 고개를 숙였다.
“식당 주인도 물가가 자꾸 올라서 남는 게 없다고 아우성이다. 너희들이 물류 흐름을 꽉 휘어잡고 자꾸 깽판을 치기 때문이지.”
“…….”
“지역 경기가 침체되면 너희들한테도 좋을 게 없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서로 눈치만 보고 대답하는 놈이 없었다.
시리우스는 가장 앞쪽에서 비교적 젊은 놈을 하나 찾아서 지목했다.
“거기, 안경 쓴 놈.”
“……!”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안경 쓴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 사실 길드장님에게도 건의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하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손해가 될 거라고…….”
“그래? 발카인은 어떤 반응을 보였지?”
“그게…… 머지않아 다른 지역으로도 진출할 거니까 별문제 될 게 없다고…….”
시리우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발카인을 죽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두머리가 그 모양이니, 조직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 리 없지.”
“으음…….”
“그래도, 그 우두머리는 이미 목이 날아갔다. 주변에 있던 힘 쓰는 놈들도 마찬가지고.”
길드장과 정예 부대가 전멸했으니, 발카인 길드에서 힘 쓰는 놈들은 거의 다 사라졌다.
이제 남아 있는 건 대부분이 실무진이다.
그러니…… 새 출발을 할 수 있다.
“오늘부터 발카인 길드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본래의 모습이라는 건…….”
“물건을 안전하고 신속하게 전달하는 것을 추구하는 운송업자로 돌아가는 거다.”
“……!”
숨을 삼키는 사람들 앞에서, 시리우스는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부터 너희는 저렴한 요금으로 물건을 운송하며 지역 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
“상인들에게 불합리하게 돈을 뜯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그런 짓을 하는 놈이 있으면 내가 직접 찾아내서 벌을 주마.”
시리우스가 조성하는 살벌한 분위기에, 다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바빠서 직접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천랑검단에서 사람이 나와서 응징할 거다.”
“…….”
“하지만.”
숨을 죽이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시리우스는 천천히 말했다.
“너희들이 운송하는 물건들을 빼앗으려 하는 놈이 있다면, 천랑검단이 나서서 너희를 지킬 것이다.”
“……!”
“그렇다고 해서 너희들이 천랑검단에게 보호비를 지불할 필요는 없다. 그냥 밥값과 술값만 두둑하게 쳐주면 된다.”
천랑검단은 앞으로 이 일대의 흑회를 견제하며 치안을 유지하는 역할을 할 예정이다.
그 안에는 운송업자의 안전을 책임지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너희들은 더 이상 흑회가 아니다.”
“……?”
“너희는 앞으로 대륙 5대 명가 중 하나인 리겔 가문의 산하 기관이 된다.”
“……!”
이미 시리우스는 유스티아와 얘기를 마쳐 놓은 상태다.
리겔 가문의 세력권을 확대하기 위해, 발카인 길드를 접수하여 이 일대의 경제 흐름을 주도하기로.
시리우스가 무력을 사용해 세력권을 확대하면, 유스티아가 내정을 전담해 리겔 가문의 지배를 확고히 한다.
이것이 시리우스가 유스티아와 의논하여 결정한 역할 분담이었다.
“바깥에 있는 발카인 길드의 간판을 떼어 버려라. 발카인도 죽었고, 더 이상 그 이름을 쓸 필요는 없다.”
시리우스는 이곳의 새로운 이름을 밝혔다.
“오늘부터 이곳은 천랑표국(天狼鏢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