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명가의 절대무신 30화
30화. 제정신이 아닌 놈이구나
시리우스는 벨리드를 데리고 동굴 안으로 진입했다.
“웬 놈이냐!?”
내부에는 도적들이 우글댔다.
불을 피워 동굴 안을 밝히고 있었는데, 어딘가 바람이 통하는 구멍이 있겠지만 공기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
시리우스는 빨리 끝내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나가던 흑의인이다.”
“컥……!”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놈을 후려친 뒤, 그놈이 차고 있던 칼을 빼앗았다.
오늘은 검을 들고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자식……!”
“죽여!”
거친 목소리와 함께 도적들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그들에게 칼을 휘두르지 않았다.
가장 먼저 노린 것은 동굴 안을 밝히고 있던 모닥불이었다.
“엇……!?”
순식간에 동굴 안이 어두워졌다.
놈들은 어둠에 눈이 적응되려면 시간이 걸리지만, 시리우스는 아니다.
어둠 속에서 사는 살수처럼, 바로 흑영탈명검법의 초식을 펼쳤다.
“컥!”
“크악……!”
연속해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놈들의 눈도 어둠에 적응했다.
놈들이 시리우스에게 반격하기 위해 결사의 각오로 달려든 순간.
“윽!?”
번쩍.
갑자기 동굴 안이 대낮처럼 환해졌다.
기껏 어둠에 눈이 익숙해졌는데, 이제는 갑자기 밝아져서 눈앞을 분간하기 어렵게 되었다.
시리우스가 그들의 목을 날려 버린 뒤 고개를 돌리자, 벨리드가 빛나는 구체(球體)를 생성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뭐 하는 거냐?”
“아니, 너무 어두워서…….”
“기껏 불을 껐는데 다시 불을 켜네.”
“아…… 안 되는 거였나?”
벨리드가 멍청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었다.
마법 자체는 꽤 편리할 것 같지만, 지금은 방해가 된다.
“꺼라.”
“…….”
벨리드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광구(光球)를 없애 버렸고, 시리우스는 다시 어둠 속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도적들은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하는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계속 간다.”
“자, 잠깐, 어두워서 앞길이…… 윽!”
벨리드가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신경 쓰지 않고 전진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공간이 나왔다.
“…….”
벽에 횃불이 걸려 있었고, 짐승 가죽이 깔린 침대가 있었다.
그리고 그 침대 위에 한쪽 눈이 없는 사내가 걸터앉아 있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커다란 대검(大劍)을 잡은 채.
“저, 저놈이 골고트다!”
시리우스를 쫓아 온 벨리드가 목소리를 높였다.
“틀림없어! 연맹에서 추방당할 때 오른쪽 눈을 잃었다고 들었…….”
“벨리드.”
시리우스는 벨리드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여기 말고 다른 곳에도 도적들이 남아 있을 거다. 놈들을 소탕해.”
“뭐?”
“불 켜도 된다.”
“…….”
벨리드는 잠시 주저하더니 바로 물러섰다.
시리우스의 목소리가 진지하다는 걸 눈치챘기 때문이다.
벨리드가 자리를 뜨자 골고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고맙군. 일대일로 싸울 수 있게 해 줘서.”
골고트는 이미 자신의 부하들이 순식간에 몰살당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죽음을 각오한 사내의 눈빛으로 시리우스를 보고 있었다.
“이름을 물어도 되겠나?”
“시리우스.”
시리우스는 짧게 대답한 뒤, 곧바로 덧붙였다.
“천랑이라고도 한다.”
“천랑…… 그렇군.”
골고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랑검단의 소문을 들었다. 연맹에서 나왔다는 얘기도 있던데.”
“그건 내가 퍼뜨린 가짜 소문이지.”
“겁이 없군. 연맹이 두렵지 않은 건가?”
왼쪽 눈을 찡그리면서 골고트가 물었다.
“지금은 가만히 내버려 두더라도, 조만간 연맹에서 나서서 너를 죽이려 할 거다.”
“그걸 바라서 하는 일이다.”
“뭐라고?”
“내가 연맹을 찾아가는 것보다 그쪽에서 나를 찾아오는 게 더 편하니까.”
“…….”
이 세계를 제패하려면 연맹과의 대결은 피할 수 없다.
연맹과 접촉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니, 연맹 쪽에서 먼저 접근하게 만드는 편이 더 낫다.
“놀랍군. 나 같은 놈하고는 그릇이 다른 것 같구나.”
“너는 연맹에서 추방당했다는 것 같은데.”
“재능이 부족했다. 검술은 일정 수준에 이르렀지만, 마법검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지.”
골고트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검술은 나름 자신 있다, 천랑.”
“기대되는군.”
서로 자세를 잡았다.
짧은 호흡을 한 뒤, 골고트가 먼저 움직였다.
“하압……!”
육중한 선제공격.
공기가 울리면서 골고트의 대검이 다가왔다.
위에서 아래로, 단순하지만 파괴적인 일격이다.
시리우스는 검을 치켜들어 골고트의 대검을 막아 냈지만, 그 직후 두 발이 바닥으로 움푹 들어갔다.
“흐읍……!”
골고트가 이대로 시리우스를 찍어 누르겠다는 듯이 힘을 줬다.
가죽옷 아래에서 두터운 근육이 부풀어 오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시리우스의 육체만으로 대적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결국, 시리우스는 내공을 끌어올렸다.
“음!?”
쿵!
골고트의 대검이 튕겨 나갔다.
그 직후, 시리우스는 보답이라는 것처럼 골고트와 똑같은 궤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골고트는 거체에 어울리지 않는 민첩함으로 검을 막아 냈지만, 이번에는 골고트의 두 발이 바닥으로 파고들었다.
자신보다 훨씬 빈약한 체구의 시리우스에게서 자신을 능가하는 힘이 나왔다.
그 사실에 눈을 크게 뜨면서 골고트는 몸을 비틀었다.
측면으로 이동하여 검을 흘려보낸 뒤, 대검의 넓은 날로 시리우스를 후려치려 했다.
하지만, 이 공격은 막혔다.
시리우스도 몸을 비틀면서 골고트의 검을 그대로 받아쳤기 때문이다.
쿠쿵!
충돌로 인한 굉음이 동굴 안에서 메아리쳤다.
그 메아리 속에서 골고트의 신형이 솟구쳤다.
공중에서 쏟아지는 연속적인 공격. 시리우스는 보법을 펼치면서 그 모든 것을 받아 내거나 흘려 보냈다.
충돌이 발생할 때마다 동굴이 울렸고 횃불이 일렁였다.
얼핏 보기에는 공방이 팽팽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달랐다.
골고트는 점점 지쳐 가고 있었고, 시리우스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유일하게 시리우스가 불리한 부분이 있다면…… 아까 졸개들한테서 빼앗은 검을 사용한 탓에 칼날이 부러지기 직전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검기를 사용하면 이쪽의 칼날이 아니라 골고트의 칼날이 부러지겠지만…… 시리우스는 검기를 쓰지 않고 있었다.
순수한 검술과 검술의 대결.
시간이 흐를수록 골고트의 검술에는 빈틈이 많아졌고, 시리우스의 검술은 그 빈틈을 더 능숙하게 파고들게 되었다.
“흐읍!”
골고트가 승부를 내겠다는 듯이 벼락같은 일격을 펼쳤다.
어마어마한 검력이 담긴 공격이다. 그러면서 지금까지의 모든 공격을 통틀어 가장 날카로웠다.
이 공격을 펼치고 죽어도 상관없다는 듯한, 동귀어진(同歸於盡)의 검이었다.
그렇기에 시리우스도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기로 했다.
‘흑영탈명검법 제삼식, 당비인(螳臂刃).’
사선으로 내리찍는 대검을 상체의 움직임만으로 피한 뒤, 두 줄기 궤적을 그렸다.
먹잇감을 제압하는 사마귀의 앞발처럼 뻗어 나간 궤적이 두 개의 칼자국을 남겼다.
“크, 윽…….”
골고트의 거체가 뒤로 쓰러졌다.
두 개의 치명상에서 흘러내린 피가 바닥을 적시기 시작했다.
“골고트.”
패배한 사내를 내려다보며, 시리우스가 입을 열었다.
“누구에게서 검술을 배웠지?”
그 질문에 골고트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마법검을 쓰지 않으면서 내 검술을 관찰한 건 그것 때문인가.”
“꼭 그것만은 아니다.”
“그런가?”
“검술을 겨루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니까.”
시리우스의 말을 듣고, 골고트도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부하들이 순식간에 몰살된 시점에서 이미 죽음을 각오하였지만, 골고트에게도 시리우스와의 대결은 즐거운 일이었다.
“내 스승은 연맹에서 검제(劍帝)라 불리는 인물이다.”
“검제…….”
“9서클의 마법검사다. 연맹의 검사들은 전부 검제의 제자라 할 수 있다.”
9서클이라.
그동안 시리우스가 상대한 적들은 기껏해야 7서클 정도.
단 2계급 차이지만, 얼마 전에 들은 바에 의하면 9서클의 벽은 까마득하게 높다고 한다.
9서클이 어느 정도 힘을 갖고 있을지, 시리우스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웠다.
“검제가 연맹에서 가장 강한가?”
“글쎄다. 다만, 검술로는 정점에 오른 사람이다.”
시리우스는 검제의 이름을 기억했다.
골고트와 한동안 검을 주고받았기에, 검제의 검술이 어떤 것일지는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여기에 9서클의 마력까지 더해지면…… 시리우스의 현재 힘으로는 상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내공을 늘려 천랑무제 백무랑의 힘을 되찾아야 하는 이유였다.
“그러면…… 시리우스.”
골고트의 숨이 점점 가늘어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원 없이 검을 휘두를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
그걸로 끝이었다.
숨을 거둔 골고트의 얼굴을 잠시 응시한 뒤, 시리우스는 등을 돌렸다.
골고트도 칼슈타인처럼 검으로 일세를 풍미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법검을 쓰지 못하는 그가 칼슈타인처럼 굴어 봤자 다른 흑회나 알브라임 가문에 사냥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동굴 속에 숨어서 도적 떼의 두목 노릇밖에 할 수 없던 것이다.
‘연맹이라…….’
골고트를 추방시킨 걸 보면, 실력을 중시하는 조직일 것이다.
하지만 그 실체는 아직 제대로 알 수 없었다.
그동안 중소 흑회들을 족칠 때마다 정보를 얻으려 했지만, 별다른 수확이 없었다.
칼슈타인이나 발카인, 오블레아라면 뭔가 알고 있었을 것 같지만…… 그놈들은 이미 죽었다.
“시, 시리우스.”
그때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벨리드가 숨을 헐떡이며 이쪽을 보고 있었다.
“나머지 잔챙이들은 전부 해치웠다. 그런데…… 너 설마 연맹하고도 싸울 생각이냐?”
“그쪽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렸지.”
“……!”
연맹하고 어떤 관계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충돌하게 될 가능성이 높을 것 같지만, 그러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구제 불능인 놈들이면 사생결단을 내겠지만, 말이 잘 통해서 다른 길을 모색할 수도 있다.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어떻게 될지 예상하기 어렵다.
그러니 연맹에서 접촉해 올 때까지 힘을 기르면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허…… 이것 참.”
제정신이 아닌 놈이구나.
벨리드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쟁쟁한 흑회들도 설설 기는 게 연맹이라는 세력이다.
벨리드도 연맹이 정확히 어떤 조직인지는 잘 모르지만, 동북부 촌구석의 막냇사위 따위가 함부로 대적할 만한 세력이 아니라는 것만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벨리드는 가슴이 설레는 걸 느꼈다.
“연맹이란 말이지…….”
“혹시 연맹에 대해 아는 게 있나?”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벨리드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확실히 난세가 오려는 것 같군.”
“……?”
“원래 혼란스러운 세상일수록 기회가 오는 법이지. 음, 나쁘지 않아.”
“…….”
제정신이 아닌 놈이구나.
혼잣말을 하는 벨리드를 보면서, 시리우스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