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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명가의 절대무신-35화 (35/129)

몰락명가의 절대무신 35화

35화. 언제까지 6등 타령이야

“빌어먹을……!”

와장창!

꽃병이 떨어지면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카이엔 아그타스가 화를 못 참고 팔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아버님, 진정하십시오.”

보다 못한 파리엘이 아버지를 제지했다.

얼마 전에 알브라임 가문을 다녀온 파리엘은 동남부 곳곳을 돌면서 병력을 모집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이번 소식을 듣고 급히 아버지에게 달려왔다.

“그렇게 화를 낸다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카이엔이 목소리를 높였다.

“놈들이 동북부에 소문을 퍼뜨린 거라면 참을 수 있었다! 동북부를 빠르게 제압한 뒤 모든 게 거짓이었다고 발표하면 되니까! 하지만 이렇게 대륙 곳곳에 소문을 퍼뜨리면……!”

엔트로빌 6인회는 강줄기를 따라 대륙 곳곳에 무차별적으로 괴문서를 퍼뜨리고 있다.

이건 리겔 가문을 대신하여 대륙 5대 명가에 편입되려 하는 아그타스 가문에게는 치명적인 일이다.

“우리는 동부 전체를 제압하는 것으로 대륙 전역에 이름을 알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이런 추문이 퍼지게 된 거다!”

“아버지…….”

“이제 대륙 사람들은 아그타스 가문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리겔 가문의 막내딸을 납치하려 했다는 얘기부터 떠올리겠지! 빌어먹을……!”

근처 가문들에 소문이 퍼진 거라면 카이엔이 직접 해명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런 교류도 없는 대륙 곳곳의 가문들한테 어떻게 해명한단 말인가.

아그타스 가문이 리겔 가문을 멸망시키고 동부를 장악한다고 해도, 이 소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 일단 엔트로빌 6인회부터 잡읍시다.”

파리엘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놈들을 붙잡은 뒤, 모든 게 거짓이었다는 진술서를 작성하게 만드는 겁니다. 그리고 그걸 퍼뜨리는 거죠.”

“…….”

아들의 제안에 카이엔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런 걸로 해결될 리가 없다. 우리가 강제로 쓰게 했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

“어차피 놈들을 가만 내버려 둬서는 안 됩니다. 계속해서 괴문서를 퍼뜨릴 테니 빨리 놈들을 붙잡아야 합니다.”

파리엘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놈들의 진술서를 내세우면서 시리우스를 공격하는 것이죠. 우리한테 누명을 씌웠다고 말입니다.”

“으음…….”

확실히…… 지금은 그렇게 행동하는 수밖에 없다.

아들의 말을 듣고 카이엔도 슬슬 냉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러면 파리엘…… 엔트로빌 6인회를 잡는 건 누구한테 맡기면 좋을까?”

“슈레이드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겠죠.”

“그래, 그게 맞다.”

칼슈타인 검단 차석이었던 슈레이드는, 엔트로빌 6인회와 직접 접촉한 중개인이기도 하다.

직접 책임을 지는 의미에서 슈레이드에게 맡기는 게 좋을 것이다.

“이런 일을 우리 가문 사람에게 맡길 수는 없다. 만약 실패해서 포로로 잡히거나 하면 더 곤란해지니까.”

“네, 흑회 출신을 활용해야죠.”

“이런 일은 흑회 놈들이 더 잘하겠지.”

그렇게 말하고 카이엔은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해 보면 이번 사태는 흑회 놈들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벌어졌다.”

“그렇긴 합니다.”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싹 정리를 해야겠군.”

슈레이드도, 엔트로빌 6인회도…… 더 이상 살려 둘 필요가 없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카이엔은 슈레이드를 호출했다.

* * *

‘일이 완전히 꼬였군.’

어둠 속을 걸으면서, 슈레이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슈레이드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수하들과 함께 엔트로빌로 향하고 있었다.

‘카이엔 놈…… 모든 걸 내 책임으로 돌리다니.’

슈레이드는 어디까지나 카이엔의 명령을 받아 움직였을 뿐이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긴 건 슈레이드지만, 그것도 결국 카이엔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카이엔은 전적으로 슈레이드 탓인 것처럼 얘기했다.

‘무슨 모함이라도 당한 것처럼 화를 내다니…… 문서 내용은 거의 다 사실인데 말이다.’

엔트로빌 6인회가 퍼뜨리고 있는 문서의 내용은 대체로 사실이었다.

허위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긴 한데, 바로 아그타스 가문이 직접 엔트로빌 6인회에 접촉했다는 듯이 서술되어 있는 부분이었다.

실제로는 슈레이드가 중개인 역할을 했고, 아그타스 가문의 이름을 직접 언급한 적도 없었다.

‘젠장, 이렇게 되면 앞날이 암담한데…….’

일이 잘 마무리되더라도, 아그타스 가문에서는 슈레이드를 우대해 주지 않을 것이다.

토사구팽당할 가능성도 높다.

‘어쩔 수 없지. 일단 시리우스를 죽일 때까지만 아그타스 가문에 머무르고, 그 이후는 다른 길을 찾아봐야겠어.’

슈레이드의 목표는 시리우스를 죽이는 것이다.

시리우스가 칼슈타인을 죽이고 칼슈타인 검단을 가로챘기 때문이다.

수석 제자는 팔리스였지만, 칼슈타인이 가장 신뢰하는 건 차석 제자인 슈레이드였다.

검술밖에 재능이 없는 팔리스와는 달리 슈레이드는 권모술수의 재능도 있었다.

칼슈타인이 슈레이드를 연맹으로 파견한 것도 그만큼 슈레이드의 능력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칼슈타인의 신뢰를 받으며 조직의 실권을 손에 넣은 뒤, 칼슈타인이 늙어 죽으면 팔리스를 제거하고 조직의 일인자가 될 계획이었는데…… 시리우스 때문에 모든 게 틀어졌다.

‘시리우스, 그놈만 없었어도…….’

까득.

이를 갈면서 슈레이드는 시리우스를 향한 증오심을 불태웠다.

하지만 슈레이드 혼자서 시리우스를 어떻게 할 수는 없다.

스승인 칼슈타인도 시리우스한테 당했는데, 차석 제자인 슈레이드가 시리우스를 당해 낼 수 있을 리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그타스 가문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리우스만 해치우면 아그타스 가문 따위는 바로 떠나 주마.’

그렇게 다짐하면서 슈레이드는 엔트로빌로 접근했다.

가장 먼저 잡아야 하는 건 역시 엔트로빌 6인회의 수장인 로디우스였다.

각지에 괴문서를 퍼뜨린 것도 로디우스가 주도했을 것이다.

‘로디우스의 저택은 엔트로빌 서쪽 외곽에 있었을 터…….’

재력가인 로디우스는 엔트로빌 서쪽에 으리으리한 저택을 세워 놨다.

저택을 경비하는 놈들이 있겠지만 슈레이드의 실력이면 충분히 숨어 들어갈 수 있다.

‘너희는 여기서 기다려라.’

저택에 도달한 슈레이드는 수하들에게 눈짓했다.

그리고 담장을 넘어 저택 안으로 잠입했다.

‘지난번보다 훨씬 허술하군.’

수면약을 전달할 때 방문한 적이 있기에 저택 내부 구조는 이미 훤히 파악해 둔 상태였다.

슈레이드는 벽을 타고 3층에 있는 로디우스의 침실로 향했다.

‘세상모르고 자고 있군.’

로디우스는 코를 골며 잠들어 있었다.

슈레이드는 소리 없이 접근한 뒤, 잠들어 있는 로디우스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

“읍……!?”

로디우스가 순간 잠에서 깨어났지만, 슈레이드는 바로 주먹을 처넣어 다시 기절시켰다.

축 늘어진 로디우스를 둘러업고 슈레이드는 다시 창문 바깥으로 나왔다.

‘쉽군.’

나머지 놈들도 잡아가야 하지만 6인회의 수장인 로디우스를 잡았으니 목표의 절반은 달성한 셈이다.

슈레이드는 가벼운 마음으로 건물에서 내려와 다시 담장을 뛰어넘었다.

하지만…….

“뭐야?”

“……!”

담장 옆에 숨어 있던 수하들이 전부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있는 건…….

“알레이온?”

“슈레이드 사형? 왜 여기에…….”

칼슈타인 검단 6석, 알레이온.

그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슈레이드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네 녀석…… 시리우스한테 붙었다고 했었지.”

“……!”

“시리우스의 명령을 받고 로디우스의 저택을 지키고 있었던 건가.”

슈레이드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둘러업고 있던 로디우스를 내려놓은 뒤, 허리의 검을 뽑아 들었다.

“배신자 자식, 네놈은 꼭 내 손으로 죽이고 싶었다.”

“사형……!”

이렇게 된 이상, 알레이온을 죽이는 편이 낫다.

로디우스를 업은 채 도망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니까.

빠르게 알레이온을 해치운 뒤, 로디우스를 데리고 엔트로빌을 떠나면 된다.

“흐읍……!”

슈레이드는 빠른 움직임으로 알레이온에게 달려들었다.

바람 같은 움직임이었다. 원래도 슈레이드의 속도는 칼슈타인의 제자 중에서 가장 빨랐다.

6석 제자였던 알레이온은 슈레이드의 공격을 한 번도 막아낸 적이 없다.

그 정도로 6석과 차석의 격차는 컸다.

하지만.

“……!”

챙!

알레이온이 슈레이드의 공격을 막아냈다.

조금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은, 완벽한 방어 기술이었다.

그리고 슈레이드에게는 낯선 기술이기도 했다.

“알레이온, 너……!”

“사형!”

알레이온이 반격에 나섰다.

슈레이드의 급소를 노리는 움직임이 날카로우면서도 정교했다.

몇 번 공격을 주고받으면서, 슈레이드는 비로소 눈치챘다.

이건 칼슈타인에게서 배운 검술이 아니었다.

“알레이온, 너 어디서 이런 검술을……!”

“흐읍……!”

쾅!

검과 검이 부딪혔다. 지금까지 중 가장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검을 잡은 손에서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알레이온의 근력이 과거보다 훨씬 향상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자식, 6석 주제에……!”

슈레이드는 다급히 마법검을 펼쳤다.

그 틈을 파고든 알레이온의 칼날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슈레이드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흐읍……!”

우웅!

강렬한 마법검이 허공을 갈랐다.

비록 몸에 닿지는 않았지만, 제대로 명중했다면 알레이온을 즉사시킬 수 있는 공격이었다.

알레이온이 어디서 새로운 검술을 배웠는지는 모르지만, 마법검사로서의 능력은 지금도 슈레이드가 더 뛰어날 것이다.

“주제를 알아라, 6석……!”

시간을 오래 끌어서는 안 된다.

슈레이드는 일격에 승부를 내기 위해 움직였다.

뒷걸음치는 알레이온이 보였다. 단숨에 거리를 좁혀 급소를 찔러야 한다.

마법검의 마력을 끝부분에 집중시켜, 최강의 찌르기를 퍼부어 주겠다.

결의를 담은 슈레이드의 돌진이 한 줄기 광선처럼 알레이온을 향했다. 그 순간.

“……!?”

알레이온의 모습이 사라졌다.

전력을 다한 슈레이드의 돌격은 허공을 찔렀을 뿐이다.

어디냐. 대체 어디로 도망쳤냐.

뒤늦게 슈레이드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그리고, 시야의 끄트머리에서 알레이온의 옷자락을 찾아낸 순간.

사냥감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늑대처럼, 칼날이 슈레이드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크악……!”

슈레이드는 반격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모든 마력을 불어넣었던 마법검은 땅으로 떨어졌다.

분수처럼 피를 뿜으며 슈레이드는 힘없이 무릎을 꿇었다.

“아, 알레이온, 이 검술은 대체…….”

“흑영탈명검법 제일식, 낭교인.”

알레이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랑검단에서 가르쳐 준 검술입니다, 사형.”

“이 자식, 칼슈타인 검단에서는, 고작 6등이었던 주제에…….”

출혈이 멈추지 않았다.

슈레이드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끼며 땅에 쓰러졌다.

“1등부터 5등까지 다 죽었는데 언제까지 6등 타령이야, 개 같은 자식…….”

알레이온이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슈레이드는 의식을 잃었다.

* * *

슈레이드를 쓰러뜨린 뒤, 알레이온은 한동안 숨을 가다듬었다.

방금 전, 알레이온은 흑영탈명검법의 첫 번째 기술인 ‘낭교인’을 사용했다.

시리우스가 천랑검단의 실력 있는 검사들에게 직접 가르쳐 준 검술이었다.

제자를 직접 지도해 주는 시간이 거의 없었던 칼슈타인과는 달리, 시리우스는 부하들이 제대로 기술을 익힐 때까지 철저히 지도해 줬다.

칼슈타인 검단에서 배웠던 검술하고는 전혀 다른 철학이 담긴 검술이었지만 시리우스의 철저한 지도 덕분에 제대로 터득할 수 있었다.

‘내가 슈레이드를 쓰러뜨리다니.’

칼슈타인 검단 차석이었던 슈레이드는 알레이온을 계속 깔봤다.

그 슈레이드를 쓰러뜨린 것이다.

알레이온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게 전부 다…… 단주님, 시리우스 님 덕분이다!’

시리우스가 없었다면 알레이온은 칼슈타인 검단에 이용만 당하다가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리우스가 눈을 뜨게 해 줬고, 자신의 검술까지 손수 가르쳐 주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6등에 불과했던 알레이온이 슈레이드를 쓰러뜨릴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시리우스 덕분이었다.

“알레이온.”

“……!”

감동에 취해 있던 알레이온의 머리 위에서,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보니 시리우스가 담벼락 위에 걸터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숨을 고르는 것도 좋지만 주위를 살펴라.”

“앗……!”

아까 기절시켰던 잔챙이 중 몇 명이 깨어나서 도망치고 있었다.

알레이온은 다급히 추격하려 했지만, 시리우스가 제지했다.

“됐다.”

“네?”

“도망치게 내버려 둬.”

어리둥절하는 알레이온에게, 시리우스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그타스 가문에게 소식이 전해져야 하니까.”

“앗…….”

시리우스가 또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 사실을 깨닫고 알레이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추격하지 않겠습니다.”

“그래, 그러니…….”

시리우스가 고개를 까딱했다.

“거기 쓰러져 있는 로디우스나 챙겨 줘.”

“앗……!”

아까 슈레이드가 집어 던진 로디우스가 신음하고 있는 걸 깨닫고, 알레이온은 황급히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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