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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명가의 절대무신-36화 (36/129)

몰락명가의 절대무신 36화

36화.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슈레이드까지 당했다고?”

소식을 들은 카이엔 아그타스는 현기증을 느꼈다.

“칼슈타인의 차석 제자라는 놈이…… 정말 실망스럽구나!”

시리우스에게 당한 거라면 이해가 된다.

하지만 도망쳐 온 놈들이 전한 얘기에 따르면, 고작 칼슈타인 검단 출신의 후배한테 당했다고 한다.

정말로 한심한 얘기였다.

“아버지, 이건 좀 위험한 상황입니다.”

옆에 있던 파리엘이 우려를 표했다.

“슈레이드나 다른 놈들이 생포 당했다면 이번 일에 우리가 관여했다는 걸 증언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 그게 문제다!”

물론 물적 증거는 없다.

엔트로빌 6인회가 퍼뜨리는 괴문서에 물적 증거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슈레이드는 아그타스 가문의 내부 상황도 꽤 알고 있다.

그런 놈이 증인으로 나선다면 골치 아파진다.

“엔트로빌 6인회가 괴문서 2탄을 퍼뜨리기라도 하면……!”

“아버지.”

흥분하는 카이엔을 향해, 파리엘이 다시 입을 열었다.

“차라리…… 엔트로빌을 지금 공격하면 어떻겠습니까?”

“엔트로빌을?”

“슈레이드가 포로로 잡혔다면 아직 엔트로빌에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리우스 일당이 수작을 부리기 전에 엔트로빌을 장악하고 슈레이드도 처치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아들의 제안에 카이엔이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하면 엔트로빌 6인회에서 괴문서를 퍼뜨리는 것도 원천 봉쇄할 수 있겠군.”

“리겔 가문을 직접 치는 것도 아니고, 엔트로빌의 흑회들을 정리하는 겁니다. 남들 눈치를 볼 필요는 없지요.”

“그래, 시리우스도 동북부의 흑회들을 쓸어버렸으니…… 우리가 저들을 처리해도 문제 될 게 없겠지.”

“다만 사전 조사가 필요합니다. 만약 시리우스도 엔트로빌에 있다면…….”

그렇게 논의하고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파리엘 님, 알브라임 가문에서 편지가 왔습니다.”

“편지? 알브라임 가문에서?”

동북부의 알브라임 가문은 이번에 중립을 지키기로 했다.

그런데 왜 편지를 보냈을까.

“벨리드 님이 보내셨습니다.”

“벨리드라면…… 알브라임의 둘째 아들?”

파리엘은 얼마 전에 벨리드와 마주친 적이 있다.

그때 벨리드는 시리우스와 함께 있었다.

“어서 가져와라.”

“네.”

문을 열고 들어온 측근이 편지를 전해 줬다.

파리엘은 편지 내용을 확인하고 눈을 크게 떴다.

“이건…….”

“왜 그러지?”

“요즘 시리우스가 알브라임 가문에 머무르면서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파리엘은 아버지에게 편지를 건네줬다.

“아무래도 우리와의 싸움에 알브라임 가문의 힘을 빌리려 하는 것 같습니다.”

“알브라임 가문은 중립을 유지하기로 했을 텐데?”

“그래서 곤란하다는 것이죠. 중립을 유지하려고 하는데, 시리우스가 자꾸 압박하니까요.”

파리엘의 목소리가 흥분에 휩싸였다.

“아버지, 이건 기회입니다.”

“파리엘, 아무리 이런 상황이라고 해도 클린드 알브라임이 우리 편을 들어줄 것 같지는 않은데…….”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파리엘이 고개를 저었다.

“시리우스가 알브라임 가문에 머무르고 있다면 엔트로빌은 텅텅 비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

카이엔은 뒤늦게 아들의 말을 이해했다.

“그래, 알브라임에서 엔트로빌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으니……!”

“시리우스가 뒤늦게 달려와도 늦습니다. 우리 전력이면 충분히 엔트로빌을 점령할 수 있습니다.”

그 이후는 시리우스의 대응을 보면서 결정해도 된다.

일단 시리우스의 허를 찌를 수 있다는 게 더 중요하다.

“아버지,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네가 말이냐?”

“그래야 아버지도 믿음이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아들의 호언장담에 카이엔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 엔트로빌 6인회나 슈레이드 같은 흑회 나부랭이들하고는 다르지.”

그렇게 말하며 카이엔은 파리엘의 어깨를 두드렸다.

카이엔의 눈빛에는 자랑스러운 아들을 향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너는 아카데미에서 마법을 배우고 온 실력자니 말이다.”

6서클.

그것이 파리엘이 도달한 경지다.

시리우스가 머무르고 있는 중이라면 모를까…… 엔트로빌에서 으스대는 흑회 나부랭이 정도는 쉽게 쓸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정예병들을 데려가라. 엔트로빌을 점령하고, 동북부 진출의 교두보를 만드는 거다.”

“저한테 맡겨 주십시오, 아버지.”

아그타스 가문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파리엘이 이끄는 정예 부대가 엔트로빌로 향했다.

최대한 신속하게 점령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쉬지 않고 들판을 달렸다.

“파리엘 님, 엔트로빌은 평소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늦은 밤, 선행했던 정찰병이 돌아와서 파리엘에게 소식을 전했다.

“도시는 조용합니다. 선착장에서 인부들이 짐을 옮기고 있을 뿐입니다.”

“이 시간에도 짐을 옮긴다고?”

“요즘 들어서 동북부로 많은 물자가 들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

“최근 리겔 가문이 동북부의 상공업을 부흥시키고 있기 때문에…….”

정찰병의 얘기를 들으면서 파리엘은 인상을 찡그렸다.

“선착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이라면 엔트로빌 6인회의 수하들이겠지?”

“네, 로디우스의 부하들일 겁니다.”

“그러면 전부 해치워야겠군.”

“……!”

파리엘의 냉혹한 발언에 다들 숨을 삼켰다.

“파리엘 님, 그렇게 하면 엔트로빌의 수운(水運) 기능이 마비됩니다. 동북부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영향이…….”

“알 게 뭐냐.”

파리엘이 코웃음을 쳤다.

“지금은 엔트로빌의 흑회들을 쓸어버리는 게 더 중요하다.”

“…….”

파리엘의 발언에 다들 아무 말도 못 했다.

“괜히 시간을 끌 필요는 없다. 바로 공격한다.”

“알겠습니다.”

부하들을 이끌고, 엔트로빌 시내로 진입했다.

이미 늦은 시간이다. 무기를 갖춘 집단이 몰려다니니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창문 밖을 확인하고 숨을 죽였다.

사람들이 겁내는 모습을 확인한 파리엘은 한층 더 의기양양해졌다.

이제 곧 동부 전체가 아그타스 가문에게, 파리엘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너희는 선착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을 해치워라. 나는 로디우스 같은 간부들을 잡을 테니.”

“네!”

부하들을 먼저 전진시켰다.

파리엘은 자신만만한 발걸음으로 그 뒤를 따랐다.

선착장으로 접근한 부하들이 검을 뽑아 들었다.

아그타스 가문에서 철저히 훈련시킨 정예 병력이다.

평소 선착장에서 물건이나 나르는 인부들이 당해 낼 수 없을 것이다.

선착장에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을 기대하면서, 파리엘은 느긋하게 전진했다.

“아악!”

“허억……!”

그리고, 파리엘의 기대대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파리엘은 미소를 지었지만, 곧이어 들려오는 다급한 소리는 그의 기대와는 동떨어져 있었다.

“파, 파리엘 님…… 커헉!”

아군의 비명이다.

흠칫 놀라며 파리엘은 고개를 치켜들었다.

아그타스 가문의 정예병들이, 선착장에서 짐 나르는 인부들한테 당했단 말인가?

“이게 어떻게 된…….”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결국 파리엘은 마법을 사용했다.

광구(光球)를 생성하여 선착장을 밝히자 비로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

선착장에 잔뜩 모여 있던 화물선.

거기서 검사들이 우르르 뛰쳐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신속한 움직임으로 아그타스 가문의 정예병들을 찔러 죽였다.

풍덩, 풍덩, 중상을 입은 정예병들이 연달아 강물 속으로 빠졌다.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저놈들은 누굴까. 뭐 하는 놈들이기에 저기 숨어 있다가 칼을 휘두르는 걸까.

“파, 파리엘 님!”

그때 측근 중 하나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놈들…… 천랑검단입니다!”

“……!”

천랑검단.

동북부의 칼슈타인 검단을 전신으로 하는 조직이다.

시리우스가 칼슈타인을 죽이고 그 조직을 가로챘다. 그리고 주위 흑회들의 잔당들까지 흡수했다.

그놈들이 왜 저기서 뛰쳐나와 아그타스 가문의 정예병들을 학살하고 있단 말인가.

“실력이 만만치 않습니다! 이놈들…… 아악!”

비명 소리가 들리고, 물에 빠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아그타스 가문의 정예병이 또 한 명 죽었다.

“으윽……!”

뒤늦게 파리엘도 정신을 차렸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놈들이 여기서 매복해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파리엘이 나서야 한다.

저놈들 실력이 생각보다 뛰어나다고 해도, 고작 칼을 휘두르는 것밖에 못 하는 놈들이다.

파리엘이 마법으로 쓸어버리면 된다.

“내 화염 마법으로……!”

파리엘은 놈들이 숨어 있던 배까지 모조리 불태워 버릴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면 부하들도 피해를 입겠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감수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파리엘이 술식을 전개하기 위해 오른손을 치켜든 순간.

“……!”

근처 옥상 위.

그곳에서 두 청년이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얼마 전에 알브라임 가문에서 본 얼굴들이었다.

“시리우스와 벨리드……!”

이건 무슨 의미일까.

알브라임 가문에 머무르는 중이라는 시리우스가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편지를 보내 줬던 벨리드는 왜 또 여기에 있단 말인가.

지금 대체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리엘은 뒤늦게 깨달았다.

“네놈들……!”

이건 함정이다.

벨리드가 거짓 정보를 보내서 아그타스 가문을 유인했다. 물론 배후에는 시리우스가 있었다.

그리고 아그타스 가문의 병력이 도착하는 시점에 맞춰서, 엔트로빌에 천랑검단을 매복시켰다.

이 모든 것은 아그타스 가문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음모였다.

“으아악……!”

천랑검단의 검사들을 공격하는 것조차 잊고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근처 옥상에서 느긋하게 지켜보고 있는 시리우스와 벨리드를 죽이기 위해, 화염 마법을 전개했다.

쿠쿵!

커다란 화염구(火炎球)가 밤하늘을 뚫고 발사되었다.

벨리드가 흠칫 놀라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표정 변화가 없었다.

“……!”

시리우스가 갑자기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밤하늘을 배경으로 크게 검을 휘두른 순간.

콰쾅!

마치 불꽃을 터뜨린 것처럼, 화염구가 산산조각 나면서 밤하늘을 수놓았다.

파리엘도 잠시 시선을 빼앗길 정도로, 환상적인 광경이었다.

“아……!”

그리고, 밤하늘을 가로지른 시리우스가 파리엘의 코앞에 착지했다.

본능적인 위기감을 느끼고 파리엘은 다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시리우스, 잠시만……!”

하지만 이미 늦었다.

어둠을 가르고 뻗어 나온 칼날이 파리엘의 오른쪽 어깨로 파고들었고, 파리엘은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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