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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명가의 절대무신-37화 (37/129)

몰락명가의 절대무신 37화

37화. 연맹보다 커다란 맹

파리엘 아그타스가 중상을 입고 쓰러지는 모습을 목격하고, 벨리드 알브라임은 몸을 떨었다.

파리엘도 벨리드처럼 아카데미 출신이다. 아카데미에 재적했던 시기는 다르지만, 저쪽도 제법 우수한 성적이었다고 들었다.

그랬던 파리엘도 시리우스한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무섭구나, 무서워…….’

이번에 벨리드가 아그타스 가문에 편지를 보낸 건, 시리우스의 요청에 응한 것이었다.

시리우스의 요청이 있으면 협력하라는 아버지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알브라임 가문은 표면적으로는 중립을 유지하고 있지만 가주인 클린드 알브라임은 내심 리겔 가문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었다.

사실 편지 내용이 그리 잘못된 것도 아니다.

편지를 쓸 때 시리우스는 실제로 알브라임 가문에 와 있었으니까.

‘경공이라고 했던가? 출발한 지 하루도 안 되어서 엔트로빌까지 도착하다니…….’

벨리드가 함께 가고 싶다고 하니 시리우스는 벨리드를 어깨에 둘러업고 출발했다.

엄청난 속도에 벨리드는 비명을 질렀지만 시리우스는 막무가내였다.

그래도 시리우스가 그렇게 데려다준 덕분에…… 벨리드는 이 광경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정말로 엄청나다.’

시리우스는 파리엘과 아그타스 가문의 정예병을 엔트로빌로 유인했다.

그리고 그들이 선착장에서 일하는 엔트로빌 6인회의 수하들부터 공격할 걸 예상하고, 화물선에 천랑검단을 매복시켜 놨다.

천랑검단은 아그타스 가문을 기습하여 완전히 우세를 점했고, 지휘관인 파리엘도 시리우스가 순식간에 정리했다.

아그타스 가문은 엔트로빌을 점령하여 동북부 진출의 교두보로 삼으려 했지만, 결국 시리우스의 함정에 빠져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시리우스…… 저 녀석, 난세의 영웅인가?’

당당하게 서 있는 시리우스의 모습을 보면서, 벨리드는 동경심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모든 것을 주도하며 승리를 이끌어 내는 그 모습은, 벨리드가 꿈꿔 왔던 난세의 주역 그 자체였다.

* * *

엔트로빌을 기습했던 아그타스 가문의 정예병들은 완전히 괴멸되었다.

지휘관이었던 파리엘 아그타스는 중상을 입고 포로로 잡혔다.

“정말로 시리우스 님의 계획대로 돌아갔군요.”

엔트로빌 6인회의 수장이었던 로디우스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한밤중에 습격을 받았는데, 로디우스의 수하들은 경상을 입은 사람이 몇 명 있었을 뿐이다.

“그놈들, 엔트로빌을 완전히 짓밟을 듯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래, 가만 내버려 뒀다면 엔트로빌 전체가 불바다가 되었겠지.”

시리우스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로디우스, 어느 쪽에 붙는 게 옳은지 대충 알았겠지?”

“그거야 뭐, 진작 알고 있었죠.”

아그타스 가문은 엔트로빌의 도시 기능을 완전히 마비시켜도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한편 시리우스는 희생을 최소한으로 하고 싶다면서 엔트로빌 6인회 수뇌부와 담판을 했다.

그리고 천랑표국을 통해 엔트로빌의 체질을 개선하자는 제안도 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자명했다.

“로디우스.”

“네, 시리우스 님.”

“오늘부로 엔트로빌 6인회는 해체된다. 정식으로 천랑표국 산하에 들어간다고 발표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습격으로 인해 엔트로빌이 피해를 입었다고 대대적으로 알리고.”

“시리우스 님이 잘 대처해 주신 덕분에 피해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만.”

“구체적인 건 생략하면 사람들이 알아서 상상해 주겠지.”

“그렇겠군요.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로디우스는 미소를 지었다.

이미 대륙 곳곳에 아그타스 가문을 비방하는 문서를 잔뜩 뿌렸다.

이제 2탄을 준비하면 되는 것이다.

“시리우스 님.”

그때 턱수염이 덥수룩한 사내가 들어왔다.

엔트로빌 6인회의 구성원 중 한 명이었던 슈미츠였다.

그는 엔트로빌 대장장이 길드의 우두머리이기도 했다.

“어젯밤,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희도 골목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참전하지 그랬나?”

“싸움질은 그만두고 본래 업무로 돌아가라고 시리우스 님이 말씀하셔서…….”

슈미츠가 턱수염을 긁적이며 웃었다.

“사실 의뢰하신 물건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래?”

“한번 살펴봐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며 슈미츠가 나무 상자를 내밀었다.

뚜껑을 열어 보자 붉은 천에 싸인 날붙이가 보였다.

“비수라고 하셨던가요? 하여튼 지시하신 대로 만들어 봤습니다.”

“…….”

이 세계에는 무림에서 사용되는 비수 같은 날붙이가 없었다.

단검 같은 건 있었으나, 손맛이 영 아니었다.

그래서 시리우스는 무림에서 쓰던 것 같은 비수를 만들고 싶었다.

엔트로빌은 대장장이들 솜씨가 좋고, 수로를 통해 좋은 철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슈미츠에게 부탁해 비수를 제작하게 한 것이다.

“괜찮군.”

시리우스는 비수를 잡은 채 가볍게 휘둘러봤다.

명품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듯이, 장검은 좀 기다려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평소 저희가 만들던 검과는 많이 달라서…… 어렵군요.”

“어설픈 완성도면 굳이 필요 없어. 최고의 물건이 나올 때까지 해 봐.”

“네, 감사합니다.”

슈미츠에게는 검도 만들어 달라고 했다.

무림에서 쓰던 검과 이쪽 세계의 검은 상당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시리우스가 사용하는 검은 리겔 가문에 있던 이름 모를 보검이다.

그것보다 쓸 만한 검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천랑검단에 공급한 검은 만족스러우셨습니까?”

“어젯밤에 싸우는 모습들을 보니 나쁘지 않더군. 계속 생산해 줘.”

“네, 대량 생산에 들어가겠습니다.”

칼슈타인 검단을 비롯한 흑회의 조직원들은 병장기가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

시리우스는 슈미츠에게 얘기하여 천랑검단 조직원들이 다 같이 쓰기 위한 무기를 제작하게 했다.

똑같은 무기를 쓰면서 똑같은 훈련을 받게 하여 평균적인 전투력을 빠르게 향상시킬 생각이었다.

“천랑검단의 전투력이 예상 이상이더군요. 솔직히 저희도 놀랐습니다.”

슈미츠가 미소를 지었다.

“칼슈타인 검단 출신들은 그렇다 쳐도,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중소 흑회 출신들은 정식으로 검술을 배운 적이 없었을 텐데…… 이렇게 단기간에 단련시키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천랑검단은 시리우스의 사병(私兵)이다.

천랑표국은 유스티아가 표국주를 맡고 있기에 리겔 가문 직속이라 할 수 있지만, 천랑검단은 리겔 가문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시리우스 직속의 세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리우스는 천랑검단을 공들여 육성하고 있었다.

훗날…… 시리우스가 이끌게 될 무림맹의 주력 부대가 될 수 있도록.

“시리우스 님, 그러면 이대로 천랑검단을 움직여서 아그타스 가문을 치는 겁니까?”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네?”

“천랑검단은 이대로 엔트로빌에 대기하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

혼란스러운 상황을 틈타서 다른 가문이나 흑회들이 움직일 수도 있다.

그들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천랑검단을 엔트로빌에 배치시켜 놓는 편이 낫다.

“하지만 파리엘이 중상을 입고 포로로 잡혔다는 걸 알면 카이엔 아그타스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선수를 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선수를 쳐야지.”

시리우스는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병력을 움직일 필요는 없어.”

“……?”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로디우스와 슈미츠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 * *

시리우스는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지 지시한 뒤 바깥으로 나왔다.

엔트로빌의 거리에는 어젯밤에 있었던 전투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 탓에 사람들이 나와서 시체를 치우고 핏자국을 닦는 중이었다.

아마 오늘 중으로 청소가 끝나고 엔트로빌의 평소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시리우스!”

시리우스가 시내를 둘러보고 있자 벨리드가 다가왔다.

“본가에는 연락을 취했나?”

“그래, 사람을 보냈다.”

벨리드는 아버지인 클린드 알브라임의 밀명을 받고 시리우스를 지원해 주고 있다.

아버지에게 연락해서 현재 상황을 알려 줄 필요가 있었다.

“그러면 시리우스, 이제는 아그타스 가문과의 정면 대결이겠군.”

벨리드가 들뜬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도 함께하겠다.”

“함께한다고?”

“어차피 카이엔 아그타스도 알브라임 가문이 너한테 붙었다는 걸 알아차렸을 거야. 그러니 더 이상 중립인 척할 필요도 없지.”

벨리드의 목소리에는 흥분이 담겨 있었다.

“너희와 아그타스 가문과의 싸움은 그동안 동부에서 없었던 대규모 전쟁이 되겠지. 그러면 나도 당연히 참가해야지.”

“쯧쯧…….”

시리우스는 혀를 찼다.

또다시 난세병 증상이 나타난 모양이었다.

“혹시…… 안 되는 거냐?”

벨리드가 불안한 표정으로 시리우스를 쳐다봤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안 될 건 없지.”

“……!”

사실 시리우스는 벨리드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알브라임 가문의 아들인 벨리드는 앞으로 동부를 규합하기 위해 필요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조, 좋다. 나도 이래 뵈어도 아카데미 출신의 5서클 마법사다.”

벨리드가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치며 말했다.

“분명 도움이 될 거다.”

“그래, 부탁하지.”

그때 마침 맞은편에서 알레이온이 걸어왔다.

알레이온은 시리우스를 보고 깍듯이 허리를 숙였다.

“단주님, 준비가 다 끝났습니다.”

“좋아, 그러면 출발하지.”

시리우스가 알레이온과 하는 얘기를 듣고, 벨리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리우스, 출발이라니? 벌써 아그타스 가문을 치는 건가?”

“그래, 맞아.”

“아직 출발 준비가 안 된 것 같은데…….”

벨리드가 주위를 둘러봤다.

천랑검단 소속의 검사들이 길거리 정리를 돕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 녀석들은 안 갈 거니까 신경 쓰지 마.”

“뭐?”

그때 알레이온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단주님, 설마 그 녀석도 가는 겁니까?”

“그래, 자진해서 같이 간다는군.”

“겁도 없는 녀석이군요.”

그 대화를 듣고, 벨리드가 눈을 치켜떴다.

“이봐, 너 지금 뭐라고 했지? 녀석?”

“무슨 문제 있나?”

“내가 누군지 알고서 그러는 거야?”

“모르는데.”

“이 녀석이……!”

벨리드가 화를 내며 알레이온에게 달려들려 했지만, 시리우스가 뒤통수를 때려서 제지했다.

“쓸데없이 다투지 말고, 너도 출발 준비나 해. 바로 떠날 거니까.”

“아야야…… 시, 시리우스, 그게 무슨…….”

“나, 알레이온, 그리고 너.”

시리우스는 여기 있는 세 사람을 한 번씩 언급했다.

“이렇게 셋이서 아그타스 가문을 친다.”

“…….”

벨리드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어? 농담?”

“농담이 아닌데.”

“……!”

시리우스의 진지한 대답에 벨리드가 입을 떡 벌렸다.

“단주님, 이런 덜떨어진 놈을 데리고 가야 합니까? 수행원은 저 혼자여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만.”

“본인이 위험을 무릅쓰고 따라오겠다고 하니 존중해 줘야지. 그리고 너 혼자면 불침번 서기도 힘들잖아.”

“자, 잠깐만!”

벨리드가 다급히 시리우스의 팔을 붙잡았다.

“시리우스, 여기 있는 셋이서 아그타스 가문을 친다고?”

“그래.”

“내가 말 안 했으면 너랑 저 녀석이랑 둘이서 칠 거였고?”

“그렇지.”

“아, 어지러워.”

정말로 현기증이 난다는 듯이 벨리드가 머리에 손을 댔다.

“아그타스 가문은 동남부, 아니 동부 최대의 세력이야. 천랑검단을 다 끌고 가도 머릿수에서 밀릴 거라고. 그런데 뭐? 셋이서 친다고? 정신이 나간 건가?”

“벨리드.”

시리우스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천랑검단을 모조리 끌고 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뭐?”

“아그타스 가문도 동남부 곳곳에 흩어져 있던 병력을 집결시켜서 대항하려 하겠지. 그렇게 되면…….”

시리우스는 양 주먹을 치켜든 뒤, 서로 부딪혔다.

“양 진영이 부딪치면서, 네 말대로 그동안 동부에서 볼 수 없던 대규모 전쟁이 벌어질 거다. 그러면 많은 피가 흐를 테고, 천랑검단도 결코 무사하진 않겠지.”

“……!”

“그런 상황에서 다른 세력이 어부지리를 노리고 동부로 쳐들어오면 대응할 수 있을까?”

벨리드가 할 말을 잃고 시리우스를 쳐다봤다.

“상대가 이 세상에서 반드시 없애야 하는 마도(魔道)라면 어느 한쪽이 멸망할 때까지 결사적으로 싸워야 하는 게 맞다.”

“…….”

전생에서는 천마신교와의 싸움이 그랬다.

수많은 무인이 죽어 나갔지만 천랑무제 백무랑은 이를 악물고 싸움을 계속했다.

무림의 미래를 위해 천마신교를 반드시 멸망시켜야 했으니까.

“아그타스 가문이 그 정도로 악독한 세력이냐? 말단 병사 하나조차 살려 두지 말아야 할 정도로?”

“그건…….”

“정신 차려라, 벨리드.”

시리우스는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원하는 난세라는 게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 끝없는 투쟁의 세상이라면, 그런 난세는 절대로 오지 않을 거다.”

“……!”

“내가 반드시 막을 테니까 말이다.”

당연한 얘기다.

세상의 혼란을 막는 것 또한 무림맹의 사명이니까.

“시리우스, 너는 대체…….”

벨리드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시리우스를 쳐다봤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등을 돌렸다.

그 대신, 알레이온이 입을 열었다.

“단주님은 칼슈타인 검단을 칠 때도 병력을 끌고 가지 않으셨다.”

“뭐……?”

“혈혈단신…… 아, 나한테 길 안내를 시키시긴 했군. 어쨌든 단주님 혼자서 칼을 휘두르면서 검단의 간부들을 차례차례 죽이셨다. 그리고 칼슈타인과 일대일로 싸워서 승리하셨지.”

“……!”

“단주님은 우리한테 종종 얘기하셨다. 강적이 나타났을 때 부하들부터 앞장세워서 피해를 키우는 건 겁쟁이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말이다.”

시리우스는 그런 인물이다.

그걸 알고 있기에 알레이온을 비롯한 칼슈타인 검단 출신들이 시리우스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이다.

“그게 단주님의 방식이다. 이번에도 직접 남쪽으로 쳐들어가서 저쪽의 수뇌부를 죽여 버리고 아그타스 가문을 굴복시킬 생각이시겠지.”

“그, 그게 가능한 건가?”

“나도 구체적인 방법은 듣지 못했다. 하지만 단주님이라면 가능하시겠지.”

“아…….”

벨리드는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시리우스를 알면 알수록 더 큰 충격을 받게 되는 벨리드였다.

“단주님은 리겔 가문을 동부의 맹주로 만들겠다고 하시더군. 하지만 나는 그걸로 끝내지 않으실 거라 생각한다.”

“…….”

“단주님이라면 아그타스 가문뿐만 아니라 대륙의 모든 세력을 무릎 꿇리실 것이다.”

시리우스에 대한 존경심이 담긴 목소리로, 알레이온이 말했다.

“그리고…… 흑회들의 연맹보다 커다란 맹(盟)을 이끌게 되시겠지.”

연맹보다 커다란 맹.

그것은 난세병자 벨리드는 상상도 하지 못한…… 원대한 위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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