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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명가의 절대무신-39화 (39/129)

몰락명가의 절대무신 39화

39화. 못 볼 걸 봤다는 표정으로

나인부르크 연합은 동남부의 중소도시 나인부르크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흑회 조직이다.

나인부르크는 아그타스 가문의 영향력이 약한 도시로, 치안도 좋지 않다.

각지에서 몰려든 불량배로 구성된 나인부르크 연합은 상인들에게서 상납금을 뜯고 인신매매에도 관여하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지금 뭐라고 했지?”

나인부르크 연합의 수장인 갈루이스는 인상을 찡그렸다.

수금을 위해 시장을 걷고 있던 도중, 다급히 달려온 부하가 심상치 않은 소식을 알려 줬기 때문이다.

“유베르토가 들판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네, 그렇습니다.”

유베르토는 수하들과 함께 행상인이나 여행자를 습격하여 강도질을 하던 놈이다.

제법 솜씨가 좋았기에 쉽게 당할 놈이 아니었는데…….

“설마 아그타스 가문 놈들을 건드린 건 아니겠지?”

“그럴 리는 없을 겁니다.”

“조심해야 돼. 요새 아그타스 가문 분위기가 흉흉하다고 하니까 말이야.”

나인부르크 연합의 상위 조직에서 전달한 정보에 의하면 조만간 아그타스 가문이 본격적인 전쟁에 나설 거라고 한다.

그러니 말려들지 않도록 최대한 몸을 사리는 게 좋다.

싸움이 끝나면 사업을 확장할 기회가 올 테니까.

“가만있자, 다음에 수금할 가게는…….”

“저쪽 식당입니다.”

모퉁이에 꽤 큰 규모의 식당이 있었다.

상납금을 뜯기 위해 갈루이스는 그쪽으로 향했지만, 곧바로 발을 멈췄다.

못 보던 얼굴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저놈들…….”

유베르토가 당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유심히 관찰했다.

3인조인 것 같았는데, 그중 두 명은 허리에 검을 차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

의자에 앉아 있는 일행과는 달리, 일어서서 목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가로 베기, 세로 베기, 찌르기를 계속 반복하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부하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친놈일까요?”

“아니, 잠깐만.”

갈루이스는 목검을 휘두르는 청년을 자세히 관찰했다.

“옷차림을 봐라. 여기서는 구경도 못 할 비싼 옷이다.”

“네? 그러면…… 유복한 명문가 사람일까요?”

“아그타스 가문 사람은 아닌 것 같으니…… 어쩌면 시리우스 카니스루트일 수도 있다.”

“……!”

시리우스의 이름은 동남부 흑회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칼슈타인 검단, 발카인 길드, 오블레아 용병단 등 동북부의 쟁쟁한 흑회가 시리우스의 손에 무너졌고, 최근에는 엔트로빌 6인회조차 시리우스에게 굴복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 남자가 정말로 시리우스라면 비상사태다.

“천육백삼십…… 천육백삼십일…….”

“벨리드, 네가 시킨 요리는 조금 오래 걸린단다.”

“알겠어. 천육백삼십…… 아, 젠장, 헷갈려!”

목검을 휘두르던 남자가 바보 같은 표정으로 짜증을 냈다.

그 모습을 보며 갈루이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리우스가 아닌가……?”

“형님, 시리우스가 이런 곳에 있을 리 없지 않겠습니까?”

부하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말했다.

“아그타스 가문과 전쟁을 할 것 같다고 하는데, 고작 세 명이 이런 곳을 얼쩡거릴 리 없죠.”

“그것도 그렇군…….”

일리 있는 얘기였다.

그래도 저놈들이 유베르토를 죽였을 가능성이 있으니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수금은 너희가 해라. 내가 저놈들하고 얘기해 볼 테니.”

“네, 알겠습니다.”

갈루이스는 그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사람이 다가오는 걸 보자 목검을 휘두르던 놈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옆으로 물러나 길을 비켜 줬다.

그 모습을 보자 역시 시리우스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명 높은 시리우스가 이런 배려심을 보여 줄 리가 없다.

“흠…….”

갈루이스는 앉아 있던 놈들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날카로운 인상의 청년이 입을 열었다.

“자리가 많은데 왜 거기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 말이다.”

“거기는 벨리드 녀석의 자리인데.”

“목검이나 휘두르라고 해.”

“이 자식이…….”

청년이 눈을 치켜뜨자 옆에 있던 장발의 미남자가 입을 열었다.

“알레이온, 내버려 둬.”

“네, 알겠습니다.”

날카로운 인상의 청년이 바로 고개를 숙였다.

갈루이스는 장발의 미남자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네가 우두머리인가 보지?”

잘생기긴 했지만 세 명 중에서 가장 비실비실하다.

상당히 건장한 체격을 지닌 갈루이스가 보기에는, 한 대만 후려쳐도 죽을 것 같았다.

“같이 먹으면서 얘기를 좀 하지. 이 근방에서 못 보던 얼굴인데, 대체 무슨 일로…….”

여유롭게 말하며 미남자 앞에 놓여 있던 감자튀김에 손을 뻗은 순간.

갈루이스의 손등에서 끔찍한 통증이 느껴졌다.

“끄악!?”

어느새 갈루이스의 손등은 식당 탁자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손바닥만 한 길이의 ‘칼’이 갈루이스의 손을 관통하고 있었으니까.

“혀, 형님!?”

“이 자식이……!”

“머, 멈춰!”

부하들이 다급히 달려오려 했지만, 그는 역으로 목소리를 높여 제지했다.

지금 눈에 보이지도 않은 속도로 자신의 손을 꿰뚫은 남자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 어디서…….”

갈루이스는 손의 통증을 애써 참으며 물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어디서 왔을 것 같아?”

“그게…… 울텐슈바인 총회에서 오셨는지?”

울텐슈바인 총회는 나인부르크 연합의 상위 조직이다.

갈루이스는 매달 울텐슈바인 총회에 상납금을 바치고 있었다.

“알레이온, 울텐슈바인 총회가 뭐 하는 곳이었지?”

“동남부에서는 꽤 알아주는 흑회입니다. 울텐슈바인이라는 7서클 마도사가 수장입니다.”

“아, 그랬지.”

“다음에 우리가 토벌할 대상입니다, 단주님.”

단주.

이 일대에 그런 칭호로 불리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동북부로 올라가면…….

“서, 설마…… 시리우스 카니스루트?”

“그래, 맞다.”

“……!”

갈루이스는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정말로 시리우스라면 갈루이스가 대항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사, 살려 주십시오.”

등에서 땀을 질질 흘리면서 목숨 구걸을 했다.

“저, 저희도 시리우스 님 밑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그동안 모아 놓은 재물도 전부…….”

“벨리드.”

그 순간.

휘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천육백사십이.”

“컥!?”

정수리를 덮치는 충격……!

목검에 머리를 맞은 갈루이스가 탁자 위에 쓰러졌다.

“이 자식들……!”

“갈루이스 형님에게 무슨 짓을……!”

지켜보던 부하들이 다급히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에게 접근할 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알레이온이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휘두르자 순식간에 피를 뿜으며 쓰러졌기 때문이다.

“천육백사십삼…… 천육백사십사…….”

휙휙휙, 휙휙휙.

그 와중에도 목검을 계속 휘두르고 있는 미친놈까지 있으니…… 갈루이스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봐.”

시리우스의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베르토라는 놈한테 들으니 너희 일당은 그냥 돈을 뺏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살인이나 인신매매도 많이 한다고 하더군.”

“윽…….”

“특히 어린애들까지 매매한다던데…… 너무 선을 많이 넘었다.”

일말의 자비도 없이, 시리우스가 말했다.

“갱생의 여지가 없는 놈들까지 살려 두지는 않는다…… 알레이온.”

“네, 단주님.”

휘익!

목검이 아니라 진검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고, 갈루이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 * *

나인부르크 연합이 하루아침에 괴멸되었다.

이 소식은 며칠 지나지 않아 울텐슈바인 총회에도 전해졌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갈루이스는 그동안 우리한테 상납금도 잘 바치던 놈입니다.”

“울텐슈바인 총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각지에서 모여든 하부 조직의 수장들이 수군댔다.

다들 시커먼 옷을 입고 있었는데, 이건 그들이 울텐슈바인 총회의 간부라는 걸 나타내는 것이었다.

“가볍게 생각하지 마라.”

그렇게 발언한 건 울텐슈바인 총회의 2인자라 할 수 있는 발드웨인이었다.

그는 이지적인 눈매를 지닌 인물로, 실제로 울텐슈바인 총회의 참모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이번 일, 리겔 가문의 막냇사위인 시리우스 카니스루트의 짓일 가능성이 높다.”

“……!”

시리우스 카니스루트.

그 이름에 간부들이 술렁였다.

“갑자기 나타나서 조직을 괴멸시키다니, 북쪽에서 시리우스가 하던 방식과 똑같다. 놈이 엔트로빌 이남으로 내려온 거다.”

“말도 안 돼!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이쪽으로 올 리가 있나?”

“아그타스 가문이 놈 때문에 이를 갈고 있어! 그런데 병력도 없이 남쪽으로 내려왔다고?”

간부들이 의문을 제기하자 발드웨인이 냉정한 말투로 대꾸했다.

“교묘한 작전이다. 만약 시리우스가 병력을 이끌고 남쪽으로 왔다면 아그타스 가문이 반드시 눈치챘을 것이다. 하지만 한두 명만 데리고 은밀히 움직이고 있는 거라면 아그타스 가문이 감지하기 어렵다.”

“아……!”

“그리고 그건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놈들이 나인부르크 연합을 괴멸시킨 뒤 어디로 사라졌는지 전혀 정보가 없다.”

놈들은 나인부르크에서 한바탕 칼춤을 춘 뒤 사라졌다.

행방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신출귀몰한 놈이다. 그리고…… 목적이 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

“북쪽에서 시리우스는 크고 작은 흑회들을 해산시키고 쓸 만한 놈들을 자기 수하로 삼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남쪽에서 그런 짓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

같은 동부 지역이라도, 동북부와 동남부는 사정이 다르다.

만약 시리우스가 동남부에서 흑회 조직들을 굴복시켜 세력을 만들려고 하면 당장 아그타스 가문에서 병력을 투입하여 저지할 것이다.

“그렇다면 아그타스 가문과의 싸움을 위한 것일까? 정찰? 암살? 파괴 공작? 하지만 그런 게 목적이라면 흑회 조직을 괴멸시키고 다닐 이유가 없다.”

발드웨인의 목소리에는 답답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나름 머리 쓰는 역할을 하는 입장인데, 시리우스의 의도를 전혀 알 수 없었다.

“회주님.”

발드웨인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가장 상석에 앉아 있는 거구의 남자를 쳐다봤다.

“놈의 의도를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놈을 그냥 내버려 둬서는 안 됩니다.”

“…….”

“아그타스 가문에 협력해서 함께 대처합시다. 놈들도 시리우스 때문에 이를 갈고 있기에 분명 힘을 합쳐 줄 겁니다.”

발드웨인의 제안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원래 울텐슈바인 총회 같은 흑회와 아그타스 가문 같은 명가는 서로 어울려서는 안 되는 존재다.

하지만 서로 이해가 일치된 상황이라면 물밑에서 손을 잡을 수 있다.

“소용없다.”

하지만 거한에게서는 냉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그타스 가문은 지금 온갖 추문들이 퍼져서 곤경에 처해 있다. 그런 상황인데 우리 같은 흑회와 손을 잡을 리 없다.”

“앗…….”

“현재의 가주인 카이엔 아그타스는 가문의 명예를 신경 쓰는 인물이다. 어떻게 해야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을 테니 쓸데없는 기대는 하지 마라.”

“그, 그렇다면…….”

발드웨인이 다급히 말했다.

“이쪽에서 일방적으로 정보를 넘겨주는 건 괜찮지 않겠습니까? 서로 협력은 안 해도, 각자 독자적으로 시리우스를 잡기 위해 움직이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뭔가 성과가…….”

바로 그때.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늦은 것 같군, 발드웨인.”

“네……?”

“간부들은 전투 준비를 해라.”

울텐슈바인 총회의 수장, 울텐슈바인.

그가 흉터투성이의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놈이 온 모양이다.”

* * *

콰쾅!

철문이 망가지면서 길이 열렸다.

안쪽에도 병력이 잔뜩 있는 걸 확인하고, 시리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여기가 맞는 것 같군.”

“네, 오늘이 울텐슈바인 총회의 긴급회의 날인 것 같습니다.”

알레이온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오늘 이곳에서 울텐슈바인 총회의 긴급회의가 열린다.

갑자기 나타나서 나인부르크 등의 흑회들을 때려잡고 다니는 정체불명의 인물…… 즉, 시리우스에게 어떻게 대처할지를 의논하기 위한 것이다.

하부 조직의 수장들도 집결한다고 들었기 때문에 놈들을 일망타진하기에 좋은 기회였다.

“이대로 돌입해서 놈들을 싹 쓸어버리자.”

“네, 잔챙이들은 저한테 맡겨 주십시오.”

“그래, 그리고…….”

시리우스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목검으로 흑회 조직원을 두들겨 패고 있는 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사천이백이십오…… 사천이백이십육…….”

“크억……!”

시리우스와 알레이온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못 볼 걸 봤다는 표정으로 철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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