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명가의 절대무신 44화
44화. 이 세계에 필요 없는 존재다
“알레이온, 벨리드.”
시리우스는 뒤쪽에서 주춤하고 있는 알레이온과 벨리드에게 말했다.
“둘이 협력해서 싸워라. 따로따로 싸우면 너희 목숨이 위험하다.”
“……!”
해골 병사들에게서는 상당히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력이 부여되어 있는 것 같은데, 아마 전신이 마법검 같은 상태일 것이다.
마법검으로 전위 역할을 할 수 있는 알레이온과 공격 마법을 날릴 수 있는 벨리드가 협력해야 한다.
“그럼 단주님은…… 앗!”
쿠쿵!
발레리온에게서 강렬한 기운이 방출되었다.
부정형의 시커먼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시리우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시리우스는 북명의 공력을 끌어 올리며 검풍(劍風)을 날렸다.
검의 궤적을 따라 흑색의 기운이 뻗어 나갔다. 그리고 발레리온의 흑색 마법과 충돌하면서 흩어졌다.
그 양상을 확인하며 시리우스는 발레리온의 마법이 천랑신공의 북명과 유사한 성질을 갖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내 암흑 마법과 유사한 힘을 쓰는 건가!”
발레리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반쯤 썩어 있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날아올랐다.
천장이 높은 공간이라 날아다니면서 싸울 수 있었다.
“아버지, 어느새 암흑 마법까지……!”
“방해하지 마라, 카이엔!”
“윽……!”
아들이 휘말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발레리온이 암흑 마법을 난사했다.
시리우스는 검풍을 날려 암흑 마법을 요격하면서, 전방에서 달려오는 해골 병사들에 대응했다.
“…….”
발레리온이 사령 마법으로 되살린 불사병들.
그들은 전신이 마법검처럼 마력으로 강화되어 있는 상태였다.
살아 있는 육신으로는 어려운 일이지만 뼈만 남은 상태에서는 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평범한 공격으로는 상처조차 줄 수 없는 상황.
하지만 시리우스는 백랑의 공력을 전개하여 놈들에게 맞섰다.
하얗게 물든 칼날이 번뜩일 때마다, 마력으로 보호되던 놈들의 골격이 깨져 나갔다.
“훌륭한 마법검이다!”
발레리온이 암흑 마법을 무차별적으로 퍼부었다.
시리우스는 검풍으로 계속 요격했지만 발레리온에게는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불사병들이 계속 달려들고 있는 데다가, 발레리온의 마법 폭격 자체가 워낙 거셌기 때문이다.
“가주님! 무슨 일이십니…… 아악!”
바깥에서 뛰어 들어온 병사들이 암흑 마법에 휘말려 목숨을 입었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놈들도 발레리온과 해골 병사들의 모습에 경악했다.
“가, 가주님, 저게 무슨……!”
“큭……!”
카이엔은 싸움에 끼어들지도 못하고 당혹스러워 하고 있었다.
아버지인 발레리온을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암흑 마법 사이에서 어떻게 지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방금 전에도 발레리온의 암흑 마법에 휘말릴 뻔했기 때문에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카이엔, 한 가지 알려 주지.”
그런 카이엔에게, 시리우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의 아들인 파리엘은 엔트로빌에서 잘 치료받고 있다. 적당한 시기에 돌려보내 줄 테니 걱정 안 해도 된다.”
“그, 그게 정말인가?”
“비록 한쪽 팔을 잃긴 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재능 있는 녀석이라 하니 제대로 수련하면 다시 마법을 쓸 수 있게 되겠지.”
“아아…….”
카이엔이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카이엔이 마음속으로 가장 걱정했던 게 무엇인지 드러나는 얼굴이었다.
“물러서라, 카이엔.”
그런 카이엔에게, 시리우스가 다시 한번 목소리를 전했다.
“어차피 발레리온은 네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병사들을 데리고 뒤로 물러서.”
“……!”
카이엔이 동요하자 발레리온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음대로 해라, 카이엔!”
“아, 아버지…….”
“어차피 네 실력으로는 이 싸움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 직후.
자기 가문 사람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발레리온의 고화력 마법이 작렬했다.
거칠게 휘몰아치는 암흑 마법의 여파로 천장까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가, 가주님……!”
“다, 다들 물러서라!”
결국 카이엔은 병사들을 이끌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뒤, 시리우스는 무너져 내리는 천장을 뚫고 발레리온을 추격했다.
발레리온은 무너진 천장 사이로 날아오르며 시리우스에게 마법을 난사하고 있었다.
“크하하……!”
발레리온이 불현듯 웃음을 터뜨린 순간.
사각에서 갑자기 뼈다귀들이 튀어나왔다.
아까 시리우스가 쓰러뜨렸던 불사병들의 뼈가 저절로 튀어 올라 시리우스를 덮치려 한 것이다.
시리우스는 검을 휘둘러 막으려 했지만 수많은 뼈들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시리우스를 위협했다.
이윽고 서로 복잡한 구조를 이루며 결합되더니 거대한 뱀 같은 형상을 취했다.
아니, 뼈로 만들어진 용이었다.
“골룡(骨龍)을 상대해 보거라……!”
쿠쿠쿵!
골룡이 시리우스를 덮쳤다.
대량의 뼈로 이루어진 자신의 질량을 활용해, 시리우스를 짓뭉개려고 한 것이다.
그 여파로 건물이 자꾸 무너져 내렸고, 시리우스는 경공을 사용하며 몸을 피했다.
“그 움직임, 역시 마력으로 자신의 육체를 강화하고 있는 건가? 하지만 어떻게 그 정도의 안정성을 확보한 거지? 보통 인간이면 벌써 몸이 터져서 죽었을 텐데……!”
발레리온은 상공에서 시리우스를 관찰하는 중이었다.
시리우스를 빨리 해치우는 것보다, 시리우스가 어떻게 싸우는지 관찰하는 걸 더 우선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네 녀석을 연구하면 염원하던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겠구나……!”
“경지?”
시리우스는 검을 휘둘러 골룡의 돌진을 막아내며 물었다.
“무슨 경지를 말하는 거지? 9서클인가?”
“그런 게 아니다! ‘리치’의 경지 말이다!”
리치.
그 이름을 입에 담으면서 발레리온이 웃음을 터뜨렸다.
“모든 사령술사가 원하는 궁극의 경지! 스스로 죽음을 극복하여 영원한 삶을 사는, 불사(不死)의 육체를 지닌 초월자!”
“…….”
“네 녀석이 어떻게 그렇게 육체를 안정시키고 있는지 연구하면 리치의 경지에 도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발레리온이 두 팔을 벌리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리치의 경지에 도달하면 9서클조차 능가하는 힘을 얻을 수 있다! 그 위업을 달성하기 위한 희생양이 되거라, 시리우스……!”
“웃기는군.”
바로 그때.
시리우스의 입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9서클도 되지 못한 주제에 그 이상의 경지를 노리겠다고?”
“뭐라고?”
“똑바로 말해라, 발레리온.”
무너지는 건물을 발로 차고 날아오르며 시리우스가 말했다.
“네 재능으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9서클에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으니 어떻게든 꼼수를 써서 다른 방식으로 강해지려 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이다.”
“……!”
“발레리온, 설마 본인이 무슨 대단한 마도사라도 되는 줄 착각하는 거냐?”
시리우스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너는 대륙 5대 명가의 압력에 굴복해서 가주 자리를 내려놓고 은둔해 버린 8서클 마도사에 불과했을 텐데?”
“네놈,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슨 소리를……!”
“네가 정말로 9서클을 넘어선 초월자가 될 자격이 있었다면 대륙 5대 명가의 압력에 굴하지 않았을 것이다.”
발레리온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발레리온, 너는 스스로도 알고 있었을 거다. 네 재능으로는 9서클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
“그래서 너는 은둔하면서 사령 마법을 연구했다. 썩어 가는 몸이 되면서까지 억지로 수명을 연장하여, 어떻게든 리치가 되는 방법을 찾으려 했지.”
리치가 되어서 자신에게 굴욕감을 준 대륙 5대 명가에 복수하고 싶다.
결국, 발레리온은 그것을 원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너 같은 노괴(老怪)들을 많이 봤다.”
“뭣…….”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더 이상 강해질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순리를 벗어난 길을 걷는 늙은이들…….”
무림에 있었을 때도 이런 노괴들을 많이 봤다.
그런 놈들을 봤을 때 천랑무제 백무랑이 취하는 행동은 항상 정해져 있었다.
“너희는 이 세계에 필요 없는 존재다.”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말하다니……!”
쿠쿠쿵!
발레리온이 흑색의 마법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전혀 위협으로 느끼지 않았다.
이미 파악이 끝났기 때문이다.
경공으로 암흑 마법 사이로 움직이면서, 자신을 집어삼키려고 꿈틀거리는 골룡으로 시선을 향했다.
골룡은 발레리온이 조종하고 있는 게 아니라 자율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다만 발레리온과 마력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발레리온이 암흑 마법을 쓸 때마다 움직임이 느려졌다.
그 순간을 노려, 시리우스가 백랑의 공력을 끌어 올렸다.
서늘하게 빛나는 백색의 검기를 전개하며 골룡을 향해 뛰어들었다.
골룡을 구성하고 있는 골격 구조의 취약한 부분을 찾아내,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으로 충격을 가했다.
“아니……!?”
발레리온이 경악했다.
시리우스가 몇 번 검을 휘두르자 골룡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마력으로 연결되어 있는 골룡의 구조를 시리우스가 정확히 꿰뚫어 봤다는 증거였다.
“네놈……!”
무수히 많은 뼈다귀가 주위로 흩어지고 있었다.
발레리온은 마력을 뻗어서 새로운 해골 괴물을 만들려 했다.
그때 시리우스가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
차디찬 검의 궤적이 허공을 수놓았다.
그것이 발레리온의 마력 흐름을 방해했다.
냉기의 칼날과 접촉한 순간, 마력이 얼어붙으면서 뼈와의 접속이 끊어졌다.
이렇게 되면 저 많은 뼈들은 그냥 아무 가치 없는 뼈다귀로서 바닥에 떨어질 뿐이다.
“네놈, 어떻게……!”
9서클에 도달할 재능은 없었다고 하나, 줄곧 사령 마법을 연구해 온 마법사다.
수많은 뼈를 완벽히 제어하여 수족처럼 조종할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그걸 전부 저지했다.
마치 발레리온이 어떻게 뼈를 제어하고 있는지 다 보인다는 것처럼.
그러고 보니…… 그토록 많은 암흑 마법을 퍼부었는데, 시리우스는 아직 상처 하나 없었다.
“……!”
쿵!
시리우스가 무너진 건물 옥상을 발로 차고 도약했다.
솟구치는 시리우스의 모습을 확인하고, 발레리온은 다급히 더 높이 날아올랐다.
시리우스가 비행 마법을 쓰지 못한다면 그냥 이대로 거리를 벌리면 된다.
높은 곳에서 암흑 마법을 퍼부으면 일방적으로 공격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 안 되겠다 싶으면 그냥 도망치면 된다.
그리고 민간인들을 불사병으로 만들면 전력을 보충할 수 있다.
영묘에 안치되어 있던 선조 마법사들의 유골보다는 약하겠지만 머릿수로 승부하면 충분히 시리우스를 제압할 수 있을 터.
“하아아……!”
발레리온이 포효하면서 암흑 마법을 난사했다.
흑색의 마력이 하늘을 뒤덮어 발레리온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냉정했다.
발레리온의 노림수 정도는 쉽게 꿰뚫어 볼 수 있었으니까.
확실히 지금 시리우스의 내공으로는 허공답보(虛空踏步)가 불가능하다.
발레리온이 하늘 높이 날아가거나 아예 도망치면 쫓아가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문제 될 건 없다.
“격추하면 되는 거니까 말이다.”
콰앙!
백랑의 공력이 가득 실린 검이 사출되어, 시커멓게 물든 하늘을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