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명가의 절대무신 46화
46화. 연맹에서 왔나?
“시리우스가 아그타스 가문을 굴복시켰다고 하더군.”
깊은 산속에 세워진 산장.
그곳에는 가면을 쓴 인물들이 모여 있었다.
다들 얼굴을 가리고 있긴 했지만 서로 정체가 누구인지는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악행(惡行)을 할 때는 얼굴을 가리고 있는 편이 더 거리낌 없어지기 때문이다.
“연맹 상부에서는 아직 구체적인 지시가 내려오지 않았지만, 시리우스를 이대로 방치하면 안 될 것 같다.”
“…….”
흑회들 위에 군림하는 ‘연맹’.
이 모임은 연맹의 동부 지부였다.
동부 지역에서 연맹의 인정을 받은 인물들은 전부 여기에 모여 있었다.
동북부의 칼슈타인이나 동남부의 울텐슈바인 등은 이 자리에 끼고 싶어서 많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한 번도 발을 들이지 못했다.
그 정도로 연맹의 인정을 받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방치하면 안 된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가 중요할 것 같군.”
중간 자리에 앉아 있던 적색 가면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의 정체는 동부에서도 손꼽히는 무력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루텐펠트 검단의 수장…… 7서클의 마법검사, 루텐펠트였다.
“그냥 죽여 버리자는 건가?”
“꼭 죽여야 할 필요는 없겠지.”
은색 가면을 걸친 여성이 팔짱을 끼면서 발언했다.
그녀는 동남부 암흑가에 군림하는 대모(大母) 샤잘리나였다.
“오히려 연맹에 끌어들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
“끌어들인다고? 그게 가능할 것 같나?”
샤잘리나의 발언에 루텐펠트가 코웃음을 쳤다.
“리겔 가문의 막냇사위가 연맹에 들어온다고?”
“안 될 게 뭐가 있지? 여기도 명망 높은 가문 사람이 참가하고 있는데.”
가면 쓴 인물들의 시선이 움직였다.
그러자 갈색 가면을 쓴 남자가 입을 열었다.
“저도 시리우스를 연맹에 포섭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동남부에서 명망 높은 마이우 가문의 수장, 노이엔 마이우였다.
얼마 전, 카이엔의 요청을 받아 아그타스 가문을 방문한 적도 있었다.
사실 이 자리에는 노이엔 외에도 명문가 출신이 있었다.
연맹의 영향력이 세상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증거였다.
“그동안의 행보를 살펴보면 알 수 있겠지만 시리우스는 명문가의 온실 속 화초 같은 도련님들하고는 다릅니다. 무자비하고 폭력적이죠.”
“…….”
“게다가 아그타스 가문을 상대로 온갖 모략까지 보여 주더군요.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시리우스가 엔트로빌 6인회를 통해 퍼뜨린 괴문서를 카이엔에게 보여 준 것도 노이엔이었다.
“누가 봐도 백(白)보다는 흑(黑)에 가까운 인물 아니겠습니까?”
“…….”
노이엔 마이우 또한 명문가의 가주이면서 연맹에 몸을 담고 있는 ‘흑’의 인물이다.
그런 노이엔의 발언인 만큼 다들 납득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시리우스는 처음부터 연맹에 가입하는 걸 고려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동북부에서 자신이 연맹의 관계자인 척 행세한 적도 있으니…….”
“흠…… 그렇다면 시리우스의 속마음을 알아내는 걸 우선해야 하겠군.”
“하지만 놈이 속마음을 쉽게 드러낼까?”
“그냥 여기로 데려오는 건 어떻소? 우리들 앞이라면 시리우스도 본심을 드러내겠지.”
참석자들이 앞다투어 입을 열며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러자 가장 상석에 앉아 있던 흑색 가면의 인물이 입을 열었다.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군. 방침을 정하겠다.”
바로 조용해졌다.
흑색 가면의 인물이 이곳에서 가장 지위가 높았기 때문이다.
“시리우스가 연맹 가입에 긍정적이라면 그 의사를 존중하도록 하겠다. 물론 무조건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심사를 해야겠지.”
“…….”
“하지만 그가 연맹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는 없다. 바로 제거하고, 동부를 다시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도록 하지.”
다들 입을 다문 채 수긍했다.
“그러면 시리우스와의 접촉을 담당할 사람을 정해야겠군. 누가 맡겠나?”
“…….”
다들 눈빛을 교환했다.
시리우스는 분명 위험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번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연맹에서 그 공적을 인정해 줄 것이다.
“그러면 내가…….”
“아니, 이 몸이 직접…….”
“제가 하겠습니다.”
바로 그때.
말석에 앉아 있던 백색 가면의 인물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은 입을 다물어 버렸다.
비록 말석에 있었고, 나이도 가장 어렸지만…… 그 실력은 여기 모여 있는 잡다한 인물들하고 비교가 안 됐기 때문이다.
“8서클의 사령술사였던 발레리온까지 쓰러뜨렸던 놈입니다. 제가 나서는 게 맞겠지요.”
“그렇군.”
흑색 가면의 인물이 고개를 끄덕였다.
“독왕(毒王)의 직속 제자인 자네라면 시리우스 카니스루트를 충분히 상대할 수 있겠지.”
독왕.
그 이름에 다들 긴장했다.
지금 이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도 나름 큰 세력의 수장들이지만…… 독왕은 연맹에서 까마득하게 높은 곳에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음만 먹으면 여기 있는 사람 모두를 한순간에 즉사시킬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말석에 있는 백색 가면의 애송이라 할지라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독왕의 직속 제자라니……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두려운 존재였다.
“맡겨 주십시오, 여러분.”
하얀 가면의 인물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시리우스를 이곳으로 데려오겠습니다. 시체로 데려올 수도 있으니 이해해 주십시오.”
가만 아래로 보이는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떠올랐다.
* * *
리겔 가문에 편지를 보낸 뒤, 시리우스는 카이엔과 함께 주변 흑회 조직 소탕에 나섰다.
울텐슈바인 총회 말고도 크고 작은 조직이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민중들은 시리우스가 나타날 때마다 환호했다.
함께 움직이는 카이엔도 지금까지 경험한 적이 없는 환대를 받았다.
이 경험은 카이엔에게 앞으로 시리우스와 계속 함께해야겠다는 확신을 주었다.
“오늘 토벌은 이 정도면 된 것 같군요.”
“음, 산적들의 본거지가 이렇게 깊은 곳에 숨겨져 있었을 줄은 몰랐소.”
오늘은 산속에 숨어 있던 산적들을 토벌하는 날이었다.
울텐슈바인 총회가 무너졌다는 소문을 듣고 산속에 숨어 몸을 사리고 있었으나, 시리우스가 산채를 찾아내서 습격했다.
“그런데…… 시리우스.”
“왜 그러지?”
“저거…… 괜찮은 것이오?”
카이엔이 조심스럽게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팔천팔백이십, 팔천팔백이십일…….”
가로 베기, 세로 베기, 찌르기.
세 가지 움직임의 삼재검법을 반복해서 수련하고 있는 벨리드였다.
시도 때도 없이 목검을 휘두르고, 때로는 흑회 조직원들에게 마무리를 가할 때도 저 동작을 한다.
그런 모습에 카이엔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좀 미친 사람 같소.”
“…….”
카이엔은 생각보다 솔직한 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미친 거 맞으니 신경 안 써도 됩니다.”
“아…….”
카이엔은 동정심이 담긴 눈빛으로 벨리드를 쳐다봤다.
아들뻘 되는 놈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하니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건드리지 않은 편이 낫겠군…….”
“그냥 내버려 두십쇼.”
원래 벨리드는 난세를 바라는 난세병자여서, 약간 제정신이 아닌 구석이 있었다.
다만 지금 벨리드의 모습은 시리우스가 유도한 것이기도 했다.
벨리드는 시리우스처럼 강해지기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벨리드는 지금까지 마법만 수련했고, 무공은커녕 검술 하나 배운 적이 없다.
그런 놈이 강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미친 듯이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시리우스는 오히려 벨리드가 제대로 미쳐 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팔천팔백이십오…… 팔천팔백이십육…….”
“벨리드, 오늘 점심은 양고기라고 한다.”
“그래? 팔천팔백이십…… 말 걸지 말라고 했잖아! 헷갈린다고!”
“알려 줘도 지랄이야.”
벨리드와 알레이온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리우스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이번 싸움을 통해 벨리드도, 알레이온도 많이 성장했다.
특히 알레이온은 해골 병사들과 싸우면서 모종의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았다.
알레이온은 벨리드보다 낮은 4서클이었으나, 조만간 5서클에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
다른 녀석들이 점점 강해지는 모습을 보니 시리우스도 왠지 몸이 근질근질해졌다.
시리우스는 아직도 천랑무제 백무랑의 힘을 되찾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최근 시리우스는 발레리온을 쓰러뜨리고 그 마력을 일부분 흡수했다.
발레리온은 시리우스와의 싸움에서 마력을 대량으로 소비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마력을 빨아들일 수 있었다.
다만 너무 혼탁한 기운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평범한 무림인이었다면 기운을 받아들이자마자 피를 토하고 죽었을 것이다.
본래 천랑신공의 북명은 어떤 기운이든 조화롭게 받아들이는 힘을 갖고 있지만 이렇게까지 지저분한 마력이면 얘기가 달랐다.
이걸 그대로 받아들이면 상한 음식을 먹는 것과 똑같기에 시간을 들여 정제해야 했다.
“카이엔, 사람들을 데리고 먼저 들어가시죠.”
“음? 무슨 일이오?”
“산을 좀 둘러보고 싶어서 말입니다.”
“……?”
아까 산적들을 토벌하다가 적당한 동굴을 발견했다.
오늘 시리우스는 그곳에서 운기조식을 하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시리우스, 내일 오전에 리겔 가문에서 오는 사람들을 마중 나간다고 하지 않았소?”
“그건 문제없을 겁니다.”
운기조식도.
그 이후에 있을 일들도.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 * *
‘역시 좋은 동굴이야.’
어두운 동굴 안으로 들어서면서, 시리우스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동굴 속이지만 눅눅하지 않고, 온도도 적당하다.
무엇보다 자연지기가 잘 느껴진다.
운기조식을 할 때…… 특히 탁한 기운을 정화해야 할 때는 이런 곳에서 해야 더 효과적이다.
‘그러면…… 시작해 볼까.’
시리우스는 동굴 바닥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그리고 천랑신공의 구결에 맞춰 진기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오늘이야말로 발레리온의 탁한 기운을 완벽히 정화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
여러 번 토하고, 피를 쏟았다.
솔직히 말해서 상당히 고역이었다.
발레리온에게서 마력을 흡수한 게 후회가 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멈출 수는 없었다.
이런 경험도 더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리우스에게는 천랑무제 백무랑보다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쪽 세계의 마법에 대한 탐구도 필요했다.
무공과는 완전히 다른 체계를 지닌 마법을 연구하면 새로운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력은 내공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많이 다르단 말이지…….’
마법사들은 5서클만 되어도 커다란 불꽃을 뿜을 수 있다.
무공으로 그런 힘을 발휘하려면 몇 갑자의 내공을 갖춘 고수여야 했다.
하지만 막상 마법사들이 갖고 있는 마력을 내공으로 환산해 보면…… 1갑자에도 못 미치는 것 같았다.
어떻게 그 정도 마력으로 그런 위력을 낼 수 있는 걸까?
앞으로 시리우스가 계속 고민해야 할 과제였다.
‘발레리온의 마력이 이렇게 혼탁한 건, 스스로 마력을 늘리기 위해 어떤 부정한 짓을 한 결과일 거야. 그렇다면 어떤 방법을 썼을까……?’
여러 가지 고민을 하면서, 시리우스는 끈기 있게 운기조식을 했다.
반나절 정도 시간이 지나니…… 비로소 발레리온의 마력을 완전히 정화할 수 있었다.
“후우…….”
시리우스는 천천히 눈을 떴다.
발레리온의 마력이 정순한 내공으로 바뀌어 단전에 저장된 상태였다.
효율 자체는 별로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덕분에 목표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2갑자다.’
이쪽 세계에 온 지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2갑자에 도달했다.
천랑무제 백무랑도 이 정도로 빠르게 내공을 증진시키지는 못했다.
백무랑의 무학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기에 시리우스는 세상 누구보다도 빠르게 강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몸 상태를 확인하며 시리우스는 전방을 응시했다.
동굴 입구를…… 흑의인(黑衣人) 집단이 가로막고 있었다.
“이제야 눈을 떴군.”
선두에 서 있는 흑의인이 목소리를 냈다.
“시리우스 카니스루트, 너를 만나고 싶어 하는 분이 계신다.”
“…….”
“네 실력은 이미 파악한 상태다. 그러니 얌전히…….”
쐐애액!
어둠 속을 뚫고 날아간 비수가 흑의인의 목에 꽂혔다.
그는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고, 주위의 동료들이 숨을 삼켰다.
“누구 실력을 파악했다고?”
“……!”
시리우스는 손을 움직였다.
그러자 흑의인의 목을 찔렀던 비수가 저절로 시리우스의 손에 돌아왔다.
지금까지 하고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최근 내 주위를 맴돌던 놈들인 것 같은데.”
요 며칠 동안, 시리우스는 누군가가 자신을 관찰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시리우스가 흑회 조직들을 토벌하는 모습을 관찰하며 실력을 분석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들은 큰 착각을 하고 있다.
시리우스는 발레리온에게서 혼탁한 마력을 흡수하는 바람에 며칠 동안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전부 다 회복되었고…… 내공도 2갑자에 도달한 상태다.
“그동안 내가 토벌했던 흑회 조직들의 잔당은 아닌 것 같고…… 연맹에서 왔나?”
“……!”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위압감을 드러내는 시리우스의 모습에 흑의인들이 침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