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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명가의 절대무신-47화 (47/129)

몰락명가의 절대무신 47화

47화. 기어들어 와라

검은 옷을 입은 괴한들이 주춤거렸다.

이건 당연한 일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피와 땀을 흘리며 눈을 못 뜨고 있던 놈이, 짧은 비수를 날려 동료의 숨통을 끊어 버렸으니까.

그런 흑의인들을 훑어보면서, 시리우스는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연맹에서 나온 게 맞나?”

연맹.

여러 흑회들 위에 군림한다는 정체불명의 단체다.

하지만 웬만한 흑회들은 연맹과 직접 소통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 탓에 시리우스도 연맹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대답을 안 하는군.”

시리우스는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다 죽어야 대답을 하겠나?”

“……!”

비수가 시커멓게 물들기 시작했다.

천랑신공의 첫 번째 단계, 북명의 공력이 담긴 것이다.

시커먼 기운이 실린 비수가 어둠을 가르고 흑의인들을 덮쳤다.

“윽……!”

그들이 다급히 동굴 밖으로 몸을 날렸다.

비수는 허공을 뚫고 멀리 날아갔지만…….

“악……!”

저절로 되돌아온 비수가 운 나쁜 놈의 뒷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시리우스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은 채 비수만 날리며 놈들을 견제했다.

놈들은 이를 갈면서 비수에 대응하기 위해 애썼다.

“슬슬 적응되는군.”

“커헉!”

이 육체로 2갑자의 내공을 운용하는 것도 익숙해졌다.

시리우스는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땅을 박차면서 측면으로 움직이며 비수를 날렸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날아온 비수가 흑의인의 목을 꿰뚫었다.

“……!?”

이대로는 안 된다.

흑의인들이 반격에 나섰다.

수적 우위를 살려서 시리우스를 포위하려 했다.

시리우스는 그들의 움직임을 눈여겨봤다.

제대로 훈련된 놈들이다. 그동안 이쪽 세계에서 이런 움직임을 펼치는 놈들은 보지 못했다.

무림에 있을 때 지겨울 정도로 많이 느꼈던, 살수(殺手)의 냄새가 났다.

“쳐라!”

정교하게 계산된 살진(殺陣).

그들은 이미 마법검을 펼치고 있었다. 지금까지 봤던 그 누구보다 신속하고 정교한 마법검이었다.

칼슈타인이 시리우스의 검술을 보고 연맹의 관계자인 줄 의심한 적이 있었다. 연맹에서는 일반적인 것보다 더 발전된 마법검 기술이 있는 걸까?

그런 의문을 느끼면서, 시리우스는 냉정하게 몸을 움직였다.

이미 시리우스의 손에는 천랑신공의 두 번째 단계, 백랑의 공력이 전개되고 있었다.

“……!”

파직!

시리우스가 맨손으로 마법검을 붙잡자 마력이 얼어붙었다.

숨을 삼키는 놈들 사이로 움직이면서, 비수를 휘둘러 그 목을 찔렀다.

그들의 진형은 정교하게 계산되어 있었지만, 시리우스는 그사이를 여유롭게 빠져나갔다.

포위망을 빠져나온 시리우스를 쫓기 위해 그들이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검을 뽑아 든 상태였다.

“컥……!”

일도양단.

백랑의 공력으로 하얗게 물든 검이 흑의인을 두 조각 냈다.

남아 있는 놈은 고작 세 명.

하지만 그들은 주춤하기는 했어도 도망가지는 않았다.

정말로 훈련이 잘되어 있는 놈들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천마신교의 살수 집단 살영대(殺影隊)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흑사련의 천살회(千殺會) 정도는 될 것이다.

“크윽……!”

세 놈이 결사의 각오로 달려들었다.

시리우스는 비수를 날려 한 놈의 이마를 꿰뚫었다. 이어서 백랑의 공력이 실린 검으로 또 다른 놈의 가슴을 뚫었다.

“하압……!”

마지막 생존자가 동료의 시체를 뛰어넘어 검을 휘둘렀다.

결사의 각오가 담긴, 전력의 일격.

시리우스는 그 공격을 정면에서 받아쳤다.

“……!”

칼날과 칼날이 마주친 순간.

파팟 소리와 함께 흑의인의 칼날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냉기는 칼날을 얼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흑의인의 손목까지 하얗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흑의인이 검에서 손을 뗀 순간.

“컥……!”

촤악!

하얀 궤적이 마지막 흑의인을 스쳐 지나갔고, 붉은 핏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주위가 조용해졌다.

“…….”

시리우스는 검과 비수에서 피를 털어 냈다.

운기조식 직후에 꽤 격한 운동을 했다.

하지만 전신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선 필요한 과정이었다.

발레리온의 혼탁한 마력이 완전히 정화되었는지 실전을 통해서도 확인해야 했으니까.

“흠…….”

몸 상태를 점검한 뒤, 시리우스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주위는 조용하다. 별다른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주위를 향해 미약한 기(氣)를 퍼트렸다.

실처럼 가늘게, 사방으로 수백 가닥을 방출했다.

예전 같았으면 어려웠을 일이다. 하지만 내공이 2갑자에 도달하면서 사방으로 기를 뻗어 주위를 살피는 것이 가능해졌다.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뻗은 기의 그물에서…… 실 한 가닥이 꿈틀거렸다.

“…….”

쐐액!

시리우스는 숲을 향해 비수를 던졌다.

하지만 단말마의 비명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누군가가 시리우스의 비수를 낚아챈 것이다.

“대단하시군요.”

나무 위에서 인영(人影)이 떨어져 내렸다.

얼굴을 백색 가면으로 가린 인물이었다.

체형을 보니 젊은 여성 같았다.

키는 크지만, 팔다리가 가늘고 군살이 없었다.

한쪽 손에는 방금 시리우스가 던진 비수를 들고 있었지만, 반대편 손에는 깃털이 달린 부채를 들고 있었다.

“방금 그놈들을 보낸 게 너냐?”

“그렇습니다, 시리우스.”

그녀에게서는 알 수 없는 요사스러움이 느껴졌다.

천마신교의 마인(魔人)들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여자였다.

“자기소개부터 하지요.”

그녀는 시리우스의 비수를 손에 든 채 미소를 지었다.

“제 이름은 베르디안이라고 합니다. 독왕(毒王) 전하의 직속 제자로, 지금은 이곳 동부에 파견 나와 있습니다.”

“독왕…….”

지난번에 로디우스한테 들은 이름이다.

처음 만났을 때 로디우스는 시리우스에게 수면제를 먹였다.

독왕의 제조법으로 만든 약이라 눈치채지 못할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독왕 ‘전하’라니…… 기묘한 느낌이다.

무림에서도 검왕(劍王)이니 권왕(拳王)이니 하는 별호를 쓰는 고수들이 있었지만, 전하 같은 경칭을 붙이지는 않았다.

“시리우스 님, 현재 연맹에서는 당신에게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연맹이 왜 나한테 관심을 갖지?”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지요.”

베르디안이 피식 웃었다.

“저희 연맹은 수많은 흑회들 위에 군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동부 흑회들을 모조리 때려잡고, 그중 일부는 자신의 수하로 만들고 있으니…… 연맹으로서는 그냥 넘어갈 수 없지요.”

그렇게 말하면 베르디안이 백금색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게다가 당신은 연맹 관계자로 사칭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소문도 있었지.”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사칭의 죄를 물을 생각은 없으니까요.”

“그러면 왜 굳이 나를 보려 한 거지?”

시리우스는 냉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흑회들을 박살 내고 다니는 바람에 너희 수입이 줄어들었으니 배상금이라도 요구할 생각인가?”

“배상금? 그런 건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저희가 지원을 해 줘야겠지요.”

“지원?”

“시리우스 님, 저희는 당신을 섭외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연맹에 들어오라는 말이었다.

“내가 왜 연맹에 들어가야 하지?”

“당신만큼 연맹에 어울리는 남자는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베르디안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동안 당신의 행보를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당신은 대륙 5대 명가의 사위면서 매우 패도적인 성향을 갖고 있더군요.”

“…….”

명가의 사위면서 패도적이다.

그건 백무랑이 서문환을 비롯한 다른 무림인들에게서 많이 들었던 평가였다.

“당신은 다른 명문가들처럼 고지식하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실리적으로 움직이면서, 방해되는 놈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지요.”

“…….”

“그리고…… 흑회에서도 쓸 만한 놈들은 살려 놓고 자기 수하로 삼고 있습니다. 지금도 칼슈타인 검단의 6석 제자를 측근으로 두고 있죠.”

시리우스가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자 베르디안이 웃으면서 말을 이어 갔다.

“시리우스 님, 연맹에 들어온다고 해서 딱히 크게 달라질 건 없습니다. 당신에게서 돈을 뜯거나 하는 일도 없을 겁니다.”

“…….”

“가끔 모임에 얼굴을 내밀고, 연맹의 일에 힘을 실어 주면 됩니다. 그것만으로도 연맹은 당신을 인정하고 지원해 줄 겁니다.”

베르디안의 말을 듣고, 시리우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연맹의 일이라는 게 뭐지?”

“여러 가지 일이 있습니다. 구체적인 건 이 자리에서 말하기 어렵군요.”

“그렇게 말하니 영 수상한 느낌이 드는군.”

시리우스는 일부러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사기를 당할까 봐 걱정되어서 말이다.”

“하하, 시리우스 님…….”

베르디안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당신한테 매우 좋은 기회입니다.”

“글쎄, 네 설명만으로는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는데.”

“백빙화(白氷花)를 구하고 있지요?”

“…….”

“천랑표국에서도 수소문하고 있고, 아그타스 가문을 통해서도 찾고 있는 것 같던데…… 연맹에 들어오면 백빙화 정도는 쉽게 구할 수 있을 겁니다.”

연맹은 정말로 많은 걸 파악하고 있었다.

시리우스는 연맹의 정보 수집력에 내심 감탄했다.

“시리우스 님, 저는 당신이 어디선가 고대의 마도서를 손에 넣었을 거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고대의 마도서?”

“옛 마법의 비밀이 적혀 있는 고서(古書) 말입니다. 카니스루트 가문에 있을 때 얻었는지, 리겔 가문에 온 뒤에 얻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의 힘은 고대 마법에서 비롯된 것이겠죠?”

“…….”

시리우스는 방금 전에 감탄했던 걸 취소했다.

이 부분은 완전히 헛다리를 짚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리우스가 다른 세상의 무공을 사용하는 존재라는 걸 어떻게 알겠는가.

“당신의 힘을 증진시키는 데 백빙화가 필요하다면 연맹에서 공급해 드리겠습니다.”

“…….”

“그리고 연맹과 함께…… 대업(大業)을 달성하는 거지요.”

대업.

그 단어를 들으면서, 시리우스는 백무랑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천마신교 놈들이 세상을 지배하겠다고 떠들어 댈 때도 그런 단어를 썼었다.

“시리우스 님, 당신은 패도를 추구하는 인물입니다.”

“…….”

“그렇다면 연맹만큼 당신한테 어울리는 곳이 없지요.”

그렇게 말하며 베르디안이 비수를 돌려주겠다는 듯이 손을 내밀었다.

“제가 인도하겠습니다, 시리우스 님.”

시리우스는 그 손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리고…….

“윽!?”

베르디안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손으로 잡고 있던 비수가 튀어 오르면서 손바닥에 상처가 났기 때문이다.

북명의 기운으로 비수를 끌어당긴 시리우스는, 손을 부여잡는 베르디안을 보며 입을 열었다.

“기껏 여기까지 와 준 건 고맙지만, 그 제안은 거절할 수밖에 없군.”

“시리우스 님, 어째서…….”

손에서 피를 뚝뚝 떨어뜨리며 베르디안이 시리우스를 노려봤다.

가면의 눈구멍에서 붉은 눈동자가 무섭게 빛났다.

“어째서 거부하는 거지요? 당신은 명문가보다 흑회에 더 어울리는 인물입니다. 당신도 알고 있을 텐데요?”

“그런 소리는 예전부터 들었지. 하지만 나는 어느 한쪽에 치우칠 생각이 없다.”

백도에도, 흑도에도 치우치지 않고.

서로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는 길을 걷는 것.

그것이 천랑무제 백무랑의 사명이었으며 시리우스 카니스루트의 목표다.

“게다가, 나는 누구 밑에 들어갈 사람이 아니다.”

“무슨…….”

시리우스는 이 세계에서 진정한 무림맹을 만들 생각이다.

그렇기에 연맹 밑으로 들어갈 이유가 없다.

“연맹, 너희가 정 그렇게 나를 원한다면…….”

2갑자로 늘어난 내공을 끌어 올리면서, 시리우스가 분명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너희가 내 밑으로 기어들어 와라. 내가 연맹을 이끌어 주마.”

가면 아래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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