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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명가의 절대무신-49화 (49/129)

몰락명가의 절대무신 49화

49화. 막내 생활을 즐겨라

“아악……!”

베르디안이 비명을 질러 댔다.

무언가 괴이한 기운이 베르디안의 등을 통해 체내로 들어와, 가슴속 서클을 파괴하고 있었다.

서클의 마력은 그대로 체외로 유출되었다.

그 소름 끼치는 감각에 베르디안은 공포심을 느꼈다.

“머, 멈…… 으윽!”

시리우스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베르디안의 몸에서 마력을 빨아들였다.

발레리안과 비교하자면 깨끗하지만 역시 혼탁한 부분이 있었다.

그래도 제대로 단전에 정착시키면 적지 않은 보탬이 될 터였다.

“멈춰, 멈춰 주…… 아아악!”

결국 베르디안은 단말마 같은 비명을 지른 뒤 기절해 버렸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멈추지 않았다.

베르디안의 일곱 개 서클을 모조리 파괴하여, 마법을 못 쓰는 몸으로 만들어야 하니까.

* *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눈을 떴을 때 베르디안은 웬 허름한 시골 식당의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

“깼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시리우스의 모습을 확인하고, 베르디안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시리우스는 베르디안을 자기 맞은편에 앉혀 놓고 느긋하게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그 직후, 베르디안은 흠칫 놀랐다.

그동안 자신의 가슴속에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7서클의 마력이…… 전부 사라져 있었다.

“내 마력이……!”

“소란 피우지 마라.”

“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죠?”

“무슨 짓을 하긴.”

시리우스가 포크를 움직이면서 담담히 말했다.

“네 서클을 없앴다. 이제 마법은 쓸 수 없을 거다.”

“어떻게 그런……!”

“문제 될 게 있나?”

눈을 치켜뜨는 베르디안의 얼굴을 보면서, 시리우스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며? 목숨을 빼앗기는 것보다 마력을 빼앗기는 게 더 낫지 않나?”

“무슨…….”

“살려 두면 내 뒤통수를 칠 거라면서? 7서클 마도사한테 뒤통수를 안 맞으려면 그냥 서클 자체를 없애서 마법을 못 쓰게 하는 편이 가장 안전하지.”

“…….”

베르디안은 말문이 막혔다.

“뭐, 이 얘기는 이 정도로 하고.”

“아니, 무슨…….”

“내가 네 몸을 확인해 보니 육체 곳곳에 마력이 흐르는 통로를 만들어 놨더구나.”

“……!”

베르디안이 기절해 있는 동안, 시리우스는 베르디안의 육체를 자세히 살펴봤다.

그 결과, 베르디안은 마력을 전신에 퍼뜨려 육체 능력을 향상시키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가냘픈 육체를 지닌 베르디안이 시리우스의 비수를 낚아챌 수 있었던 것도, 숲속을 뛰어다니며 도망칠 수 있었던 것도, 전부 마력으로 육체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림인들이 내공을 사용하는 방식과 유사했다.

“이건 일반적인 마법사들의 방식이 아니다.”

“…….”

“마법검사들도 칼날을 강화할 뿐이지 자신의 육체를 강화하지는 못한다. 마력으로 육체를 강화하려면 몸이 망가지게 되지.”

얼마 전에 싸웠던 울텐슈바인도, 마지막 발악을 하면서 마력으로 자신의 육체를 강화했다.

하지만 혈관이 터지면서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런데 너는 그렇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마력으로 육체 능력을 끌어올리고 있었지.”

“…….”

“연맹에서는 마력으로 육체를 강화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는 건가?”

이건 흥미로운 얘기였다.

마법으로 무공과 비슷한 힘을 구현하려 하는 세력이 있다니 말이다.

“제가 그걸 당신한테 얘기해 줄 이유가 있을까요?”

“그렇긴 하지.”

“이미 말씀드렸지만 저는 당신에게 연맹 내부의 정보를 알려 드릴 생각이 없습니다.”

베르디안이 시리우스를 노려보며 말했다.

“고문을 하고 싶으면 해 보시죠. 저한테는 통하지 않을 겁니다.”

“고문에 버티는 훈련도 받았나?”

“물론입니다.”

“네 스승이 꽤나 가혹하군.”

“…….”

시리우스는 베르디안의 얼굴을 확인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베르디안, 만약 네가 독왕을 진심으로 존경해서 충성심을 바치고 있는 거라면 나는 그걸 존중해 줄 거다.”

“네?”

“하지만 너는 그런 게 아니다. 네가 어쩌다가 독왕 밑으로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주입식으로 교육을 받아서 독왕에게 절대복종하는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을 뿐이다.”

“…….”

“그걸 세뇌라고 한다, 베르디안.”

세뇌.

그 단어에 베르디안이 입술을 깨물었다.

“네가 어떤 신념을 갖고 입을 열지 않겠다고 하는 거라면, 그냥 너를 여기서 베어 버리면 된다. 절대로 입을 안 열겠다는 사람을 붙잡고 고문을 하고 약물을 먹이고 하면서 애쓰는 건…… 너무 구차하지.”

“…….”

“그게 네 신념을 존중해 주는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나는 명확한 신념을 지니고 있다면 상대방이 악인이라고 해도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용서해 줄 필요는 없겠지만 말이다.”

상대가 무림에서 이름 높은 악인이라고 해도, 명확한 신념을 지닌 무인이었다면 존중할 가치가 있다.

다만 여기서 존중이라는 건 제대로 숨통을 끊어 준다는 의미다.

신념을 지닌 무인끼리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베르디안…… 너 같은 놈들은 그런 게 아니다. 스스로 판단해서 신념을 갖고 행동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주입해 준 사고방식에 따라 행동하고 있을 뿐이지.”

“…….”

“내가 그런 놈들의 신념을 존중해 줄 필요가 없지. 안 그런가?”

그렇게 말한 뒤, 시리우스는 식사를 재개했다.

베르디안은 잠시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결국 저를 어떻게 할 생각이시죠?”

베르디안이 딱딱한 목소리로 물었다.

“결국 고문을 하신다는 건가요?”

“그런 건 안 한다.”

시리우스는 고개를 저었다.

“너 같은 어린애를 고문해 봤자 내 기분만 나빠진다.”

“…….”

베르디안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실 거죠?”

“너는 이제부터 천랑검단의 막내가 된다.”

“……?”

베르디안은 잠시 귀를 의심했다.

“지금 뭐라고 하셨죠?”

“천랑검단의 막내가 된다고.”

“…….”

다시 한번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게…… 무슨 뜻이죠?”

“말 그대로다. 막내 노릇을 한다는 거지.”

시리우스는 식사를 하면서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밥도 하고,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심부름도 하고…… 막내다운 일을 하면 된다.”

“네……?”

“그래도 한동안은 나를 따라다니게 될 테니 시중 들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거다.”

“아니, 대체…….”

베르디안은 여전히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지금 내가 데리고 다니는 놈 중에 벨리드라는 도련님이 있다. 알고 있나?”

“네, 알고 있습니다만…….”

“넌 그 녀석보다 서열이 낮다.”

“네?”

벨리드가 어떤 인물인지는 베르디안도 잘 알고 있다.

알브라임 가문의 허세 가득한 둘째 아들.

시리우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깝죽대는 똘마니.

그리고…… 아무 곳에서나 목검을 휘두르고 다니는 미친놈.

그런 놈보다…… 서열이 낮다고?

“벨리드가 ‘막내야, 목이 마르니까 물 한 잔만 가져와라.’라고 말하면 네가 물을 떠다 줘야 한다. ‘막내야, 내가 연습한 목검 닦아 놔라.’라고 말하면 네가 목검을 닦아서 광을 내 줘야 한다.”

“…….”

“벨리드가 너를 두들겨 패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한 대 쥐어박을 수는 있을 거다. 나도 가끔 벨리드를 쥐어박으니까.”

베르디안은 잠시 머릿속으로 상상해 봤다.

허세 가득한 5서클짜리 잔챙이한테 구박받으면서 심부름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건…… 고문보다도 견디기 어려운 굴욕적인 일이었다.

“말해 두지만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라.”

시리우스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어디로 도망치든 나는 찾아낼 능력이 있으니까.”

“……!”

“허튼짓을 할 때마다 네가 후회할 일이 벌어질 거다. 그러니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베르디안은 몸이 떨리는 걸 느꼈다.

시리우스는 베르디안을 해방시켜 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만약 베르디안이 자결을 하려고 해도, 시리우스는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으로 베르디안의 자결을 저지할 것이다.

“베르디안, 너는 첫 시작부터 잘못되었다. 그러니 처음부터……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지.”

“…….”

“독왕이 네 머릿속에 심어 놓은 사고방식을 완전히 몰아내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

시리우스는 옛 기억을 떠올렸다.

천랑무제 백무랑의 측근이었던 십이위병 중에도 비슷한 인물이 있었다.

천마신교에 납치당해 요마(妖魔)의 후계자로 육성당한 과거를 지닌 사련(巳憐)이 베르디안과 비슷했다.

백무랑은 그녀를 생포한 뒤, 그녀의 비뚤어진 사고방식을 교정하는 데 공을 들였다.

사련에게서 무공을 빼앗은 뒤 평범한 문파의 막내 제자처럼 대우한 것이다.

사련은 강하게 반발했다. 자신보다 실력이 약했던 오랑이나 자준 등한테 구박받는 것도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활을 겪으면서…… 사련에게도 인간다운 마음이 깃들게 되었다.

천마신교 요마의 후계자가 아니라, 백무랑 세력의 막내로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렇게 변화한 그녀는 훗날 천마신교를 무너뜨릴 때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시리우스는 베르디안도 그렇게 변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다.

가면 속의 베르디안의 눈빛을 봤을 때부터, 사련하고 비슷하다고 느꼈으니까.

“네가 나한테 연맹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는 건, 그때 이후여도 상관이 없다. 어차피 지금 당장 연맹하고 싸울 건 아니니까.”

“…….”

“그러니 느긋하게 막내 생활을 즐겨라. 나는 네가 갱생할 때까지 기다려 줄 테니까.”

시리우스는 건배하듯이 물잔을 치켜들었다.

“갱생을 위하여.”

그렇게 말하고, 시리우스는 시원하게 물을 들이켰다.

그 모습을 보면서 베르디안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베르디안은 여전히 시리우스가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지옥문이 열렸다는 건 분명해 보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베르디안은 콧대가 높았다.

연맹에서 손꼽히는 실력자인 독왕의 직속 제자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7서클의 힘을 지닌 마도사였다.

동부 지부의 쟁쟁한 간부들도 베르디안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허세 가득한 5서클짜리한테 구박받으면서 심부름이나 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 굴욕적이고 모욕적인 상황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흐윽…….”

결국, 베르디안은 울먹이기 시작했다.

차라리 죽이거나 고문하는 게 낫지, 이런 취급을 하는 게 어디 있단 말인가.

억울해서 눈물이 나왔다.

“흑, 흐윽…….”

그렇게 울면서 베르디안은 시리우스를 노려봤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네가 아무리 질질 짜도 아무 소용없다.’라는 눈빛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이 남자는 결코 자신을 봐줄 사람이 아니다.

절망적인 현실을 이해하고, 베르디안은 더 눈물을 흘렸다.

* * *

“예상보다 일찍 도착하게 되었네, 유스티아.”

“네, 레티시아 언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유스티아는 옆에 있는 여성을 쳐다봤다.

유스티아와 닮았으면서도 좀 더 화려한 외모를 지닌 그녀가 바로…… 리겔 가문의 차녀인 레티시아 리겔이었다.

그녀는 몇 년 전에 남부의 중견 가문인 레티우드 가문의 아들과 결혼했다.

그동안 계속 남부에 머무르고 있었으나, 아버지인 루트베인의 요청을 받고 본가로 돌아왔다.

그리고 리겔 가문의 재건을 돕다가…… 이번에 아그타스 가문으로 가는 사절단에도 동행하게 되었다.

“솔직히 아직도 실감이 안 가. 그 아그타스 가문이 우리 리겔 가문에게 굴복하다니 말이야.”

“리겔 가문이라기보다는, 시리우스한테 굴복한 거겠죠.”

“흥, 남편 자랑하는 거야?”

“아니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유스티아는 해명하려 했지만 레티시아는 들은 척도 안 하고 코웃음만 쳤다.

“유스티아, 너한테 시리우스는 자랑스러운 남편이겠지만, 나는 네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아.”

“언니…….”

“솔직히 나는 아직도 이해가 안 돼. 그렇게 대단한 힘을 갖고 있으면서 줄곧 숨기고 있었다니 말이야.”

“…….”

“그런 사람을 어떻게 믿어? 나중에 배신하면 어쩌려고?”

레티시아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리겔 가문으로 돌아온 이후로 계속 이런 소리를 하고 있었다.

솔직히 유스티아 입장에서는 답답한 일이었다.

위기에 처해 있던 리겔 가문을 구해 주고 새로운 길로 이끌어 준 것이 바로 시리우스다.

그런데 남부에서 유유자적 여유롭게 살고 있던 레티시아가 시리우스한테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걸까.

“시리우스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에요.”

“어휴, 남편한테 푹 빠졌네, 푹 빠졌어.”

“언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아무리 남편이 좋아도 말이야, 이런 건 냉정해져야지. 네 남편이 너를 배신하면 어쩔 건데?”

“…….”

유스티아는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시리우스를 직접 만나서 얘기해 보세요.”

“알겠어. 내가 네 남편을 만나서 그 속마음을 알아내 줄게.”

그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사절단이 작은 마을로 들어섰다.

“네 남편은 아직 도착을 안 했겠지?”

“그렇겠죠. 우리가 너무 일찍 도착했어요.”

오늘 시리우스가 미리 마중을 나오기로 되어 있었다.

이 마을에서 합류한 뒤 시리우스의 안내를 받으며 아그타스 가문으로 갈 예정이었다.

“그러면 밥이라도 먹자. 휴대 식량은 입에 안 맞아.”

“마침 저쪽에 식당이 있네요.”

“저런 허름한 식당에서 먹는다고?”

“언니, 이런 마을에서는 저런 게 일반적이에요.”

“마음에 안 드는데…….”

“그러면 분위기를 살펴보고 결정하죠.”

유스티아는 레티시아와 함께 식당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식당 안으로 고개를 내밀어 내부를 확인했다.

“응? 저 사람…….”

“시리우스……?”

식당에 낯익은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일찍 도착했는지 시리우스가 식당에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리우스는 혼자가 아니었다.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백금색 머리카락의 소녀와 마주 앉아 있던 것이다.

그녀는 마음의 상처를 입은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울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유스티아, 네 남편이 어린 여자와 단둘이 밥을 먹으면서…… 여자를 울리고 있어……!”

어깨를 붙잡고 마구 흔드는 언니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유스티아는 머리가 아파지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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