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명가의 절대무신 50화
50화. 연맹의 일원이었군
“결혼식 이후로 처음이군요, 레티시아 씨.”
시리우스는 레티시아에게 인사를 했다.
그녀는 유스티아의 언니이기 때문에 시리우스에게는 처형이 된다.
유스티아와 닮았지만 유스티아가 단아하고 청순한 느낌을 주는 편이라면 레티시아는 화려하고 도도한 느낌이었다.
“역시 결혼식 때하고는 전혀 다르네.”
자신의 제부를 노려보면서 레티시아가 말했다.
“그때는 이렇게 목소리가 당당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야.”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많이 아팠습니다. 동부로 오면서 건강해졌지요.”
“으음, 확실히 그때는 많이 아파 보이긴 했는데…….”
레티시아가 미심쩍어하는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이 여자는 누구야?”
시리우스의 뒤에서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자…… 베르디안을 가리키며 레티시아가 물었다.
“왜 네 앞에서 울고 있던 건데?”
“저희 막내입니다.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막내?”
“최근 제 수하가 되었습니다. 좀 다그칠 일이 있었을 뿐입니다.”
시리우스의 말을 듣고, 베르디안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그 모습을 보면서 레티시아가 인상을 찡그렸다.
“정말로 단순한 부하야? 내가 보기에는 전혀…….”
“언니, 그런 얘기는 나중에.”
“유, 유스티아. 언니가 네 남편을 검증하고 있는데…….”
유스티아가 레티시아를 밀치고 끼어들었다.
“시리우스, 편지를 통해 그동안 있었던 일들은 확인했어요. 이후 달라진 게 있었나요?”
“카이엔 아그타스와 함께 동남부의 흑회 조직들을 소탕하고 있는 중이야. 하지만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확실히 뿌리를 뽑으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군.”
이건 인신매매 등과 관련된 연맹의 하부 조직에 대한 얘기였다.
“그 부분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는 아그타스 가문과 앞으로의 일들을 협의하면 돼.”
“알겠어요. 그 부분은 저한테 맡겨 주세요.”
아그타스 가문과 함께 동부 지역의 흑회를 소탕하고, 앞으로 있을 싸움에 대비하기 위한 체제를 갖추는 건 시리우스가 할 일이다.
하지만 그 외의 부분, 예를 들어 경제적인 사안에 관해 협상하는 건 유스티아가 해야 했다.
유스티아는 천랑표국을 활용해서 동북부를 나날이 발전시키고 있다.
동남부에도 진출하여 동부 전체를 크게 발전시킬 수 있다면 리겔 가문은 명실공히 동부 지역의 맹주가 될 것이다.
“잠깐, 두 사람…… 신혼부부가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런 사무적인 얘기만 하는 거야? 영 수상한데?”
“언니…… 제발 참견 좀 하지 마요.”
끊임없이 한마디 하려 하는 작은언니의 태도에 유스티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 * *
시리우스는 유스티아와 레티시아를 안내하여 카이엔과 만나게 했다.
두 사람은 아그타스 가문과 협상을 하면서 동부 전체의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실무 협상을 맡긴 뒤, 시리우스는 베르디안을 알레이온과 벨리드에게 데려갔다.
“인사해라. 알레이온, 벨리드.”
두 사람은 베르디안을 보고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 내 수하로 들어온 베르디안이다. 막내로 대우하면 된다.”
“막내? 그러면 나보다 서열이 낮다는 건가?”
벨리드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동안 벨리드는 줄곧 자신의 서열이 알레이온보다 낮다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좋아! 그러면 앞으로 내가 막내한테 교육을 시켜 주지.”
벨리드가 으스대면서 선배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베르디안의 얼굴이 한층 더 일그러졌다.
“일단 목검 휘두르기부터 시작한다. 내가 기초부터 잘 가르쳐 줄 테니 걱정 말고…….”
“그건 안 해도 돼.”
“왜?!”
벨리드가 두 팔을 벌리고 경악했다.
“이 녀석도 나처럼 목검 일만 번 해야지!”
“안 해도 된다니까.”
“왜……!”
벨리드는 무척 억울해했지만, 시리우스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단주님, 그 녀석 실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알레이온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벨리드하고 비슷한 정도입니까?”
“아니, 마법은 못 써.”
“네? 그러면 검을 쓰나요?”
“이렇게 팔다리가 가는데 검을 휘두르고 싸우겠냐? 싸움에서는 도움이 안 될 거야.”
“아니, 왜 그렇게 쓸모없는 녀석을…….”
시리우스의 말을 듣고, 알레이온이 한심해하는 눈으로 베르디안을 쳐다봤다.
베르디안은 한층 더 얼굴을 일그러뜨릴 수밖에 없었다.
독왕의 직속 제자인 7서클의 마도사로서 승승장구해 왔는데, 이런 놈들한테 무시를 당하다니…… 베르디안은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대체 뭐에 쓰려고 데려오신 겁니까?”
“생각보다 쓸 곳이 많아.”
“자질구레한 잡일이라면 벨리드한테 시키면 될 텐데요.”
알레이온의 말에 벨리드가 눈을 치켜떴다.
동시에 베르디안도 한숨을 내쉬었다.
잡일꾼 취급당하는 놈보다 서열이 아래라니,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곧바로 들려온 시리우스의 목소리에 흠칫 놀랐다.
“약물이나 독물의 지식이 많거든. 앞으로 도움을 받을 생각이야.”
“아…….”
베르디안은 시리우스의 얼굴을 쳐다봤다.
확실히 베르디안은 마력을 잃었지만, 독왕의 직속 제자로서 다양한 지식을 갖고 있다.
“그러니 너희도 쓸모없는 놈이라고 구박하지 마라. 그런 분야에 관해서는 동부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을 거다.”
“아, 그렇군요. 안 그래도 무슨 약초를 찾고 있으셨으니…….”
“흠, 그런 능력이 있으면 인정해 줘야겠군. 쓸모없는 놈이 아니었나.”
쓸모없는 놈이 아니다.
그 말에 베르디안은 왠지 모를 위안을 느꼈다.
“그리고.”
시리우스가 다시 베르디안을 쳐다봤다.
“다른 곳에서도, 분명 쓸모가 있을 거다.”
“……?”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어, 베르디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동남부의 대표적인 중견 가문 중 하나인 마이우 가문.
그 가주인 노이엔 마이우는 느긋한 심정으로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슬슬 베르디안이 시리우스와 접촉했겠군.’
노이엔은 마이우 가문이라는 명문가의 가주지만 연맹 동부 지부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동남부에서도 손꼽히는 명문가인 마이우 가문의 힘을 활용해 연맹의 일을 돕는 것이 노이엔의 역할이었다.
‘베르디안이 시리우스를 제거하든, 포섭하든…… 나한테 기회가 올 거다.’
그동안 마이우 가문은 아그타스 가문을 동남부의 맹주로 인정해 왔다.
하지만 속으로는 아그타스 가문을 제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시리우스가 발레리온을 쓰러뜨리고 카이엔을 무릎 꿇린 지금이 기회였다.
‘베르디안이 시리우스를 제거하면, 약체화된 아그타스 가문쯤은 우리 마이우 가문이 집어삼킬 수 있다.’
시리우스만 없어지면 리겔 가문은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
마이우 가문이 동부 전체를 차지할 가능성도 생기는 것이다.
‘한편 시리우스가 연맹으로 들어오면…… 서로 동지가 되는 거니까, 우리 마이우 가문을 우대해 주겠지.’
시리우스는 지금 아그타스 가문과 함께 동남부의 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하지만 손을 잡는 상대가 꼭 아그타스 가문이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연맹의 일원으로 서로 속마음을 알고 있는 마이우 가문과 함께 일을 진행하는 편이 낫다.
‘시리우스는 리겔 가문의 사위면서 연맹에 가담하는 거니…… 입장이 비슷한 나하고 가까워질 수밖에 없겠지.’
노이엔은 마이우 가문의 가주이면서 연맹에 가담하고 있다.
시리우스가 자신에게 의지하게 될 거라고 확신하면서, 노이엔은 미소를 지었다.
“가주님.”
그때 집사가 다가와서 노이엔에게 귓속말을 했다.
그는 노이엔이 연맹과 손을 잡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바깥에 시리우스 님이 찾아왔습니다. 베르디안 님과 함께입니다.”
“그게 정말인가?”
갑작스러운 얘기였지만 반가운 얘기이기도 했다.
“내 예상대로 돌아가는군.”
아마 베르디안이 시리우스를 포섭했을 것이다.
그리고 노이엔이 연맹 동부 지부의 일원이라는 얘기를 듣고, 앞으로 협력 관계를 구축하자는 부탁을 하기 위해 찾아온 게 아닐까.
“바로 들어오라고 해라. 내가 직접 맞이하겠다.”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노이엔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시리우스는 알레이온, 벨리드. 그리고 베르디안을 데리고 마이우 가문을 방문했다.
베르디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매우 불편해하는 표정이었다.
“마이우 가문의 노이엔 님은 꽤 능력 있으신 분이지.”
묻지도 않았는데 벨리드가 혼자서 떠들어 댔다.
“시리우스, 노이엔 님의 협력을 얻으면 동부 전체를 하나로 만드는 게 더 쉬워질 거야.”
“그랬으면 좋겠군.”
이윽고 응접실에 수염을 기른 남자가 모습을 나타냈다.
마이우 가문의 가주인 노이엔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시리우스 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노이엔 님.”
시리우스와 악수를 하면서 노이엔이 미소를 지었다.
“설마 이렇게 찾아와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먼저 인사를 드리러 가야 했었는데.”
“제가 찾아뵙는 게 맞지요. 오히려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이쿠, 별말씀을.”
노이엔은 자리에 앉으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시리우스 님의 무용담, 그동안 많이 들었습니다. 특히 아그타스 가문의 발레리온을 토벌하신 것…… 정말로 통쾌했지요.”
“그러셨군요.”
“발레리온은 동부의 여러 가문들에게 매우 골치 아픈 존재였습니다. 그동안 계속 은거하고 있었지만, 다들 발레리온이 다시 활동을 개시하는 걸 두려워하고 있었지요.”
노이엔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시리우스 님이 그 발레리온을 쓰러뜨려 주셨으니…… 정말 감사합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하하, 그러시군요.”
짧게 웃은 뒤, 노이엔이 목소리를 낮췄다.
“그러면 이제…… 동부에는 시리우스 님의 방해가 되는 존재는 없겠군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아직도 크고 작은 흑회들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요.”
시리우스가 태연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데…… 다들 알아서 무릎을 꿇어 줬으면 좋겠습니다.”
“흠, 그렇다면 시리우스 님이 여러 흑회 위에 군림할 수 있는 분이라는 걸 보여 주셔야 할 것 같군요.”
노이엔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베르디안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
하지만 베르디안은 입을 다문 채 시선을 피했다.
시리우스가 이미 아혈(啞穴)을 짚어 놨기 때문에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노이엔 님,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시리우스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이 사람과 함께 온 것만 봐도 알 수 있으시겠지만…… 저는 노이엔 님과 함께하려 합니다.”
“하하, 그렇게 마음먹으셨다면 저야 기쁘지요.”
노이엔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동부 지부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동부 지부.
물론 연맹의 동부 지부를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노이엔 님.”
“왜 그러시죠?”
“노이엔 님은…… 중앙 쪽하고도 관계가 있지 않으십니까?”
중앙.
그 말에 노이엔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거기까지 들으셨습니까? 시리우스 님도 동참하고 싶으신 모양이군요.”
“저도 중앙으로 진출하고 싶은 건 마찬가지니까 말입니다.”
“야심이 있으시군요.”
노이엔이 탁자 위에 손을 올린 채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맞습니다, 시리우스 님. 그 부분은 제가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습니다. 흑회 소속도 아닌 제가 지금과 같은 지위에 있는 건, 전부 제가 그 일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
“다만 저도 그냥 그쪽에서 부탁하는 대로 공급을 해 줄 뿐입니다. 자세한 건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렇게 말하며 노이엔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연맹에서 어린애들을 납치해 가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상상이 잘 안 가는군요.”
그 말이 나온 순간.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벨리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노, 노이엔 님?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네?”
“무슨 얘기를 하고 있나 했더니…… 설마 노이엔 님이 아이들 인신매매에 관여하고 있었던 겁니까? 그것도 연맹에 넘기고 있었던 거고요?”
벨리드는 완전히 경악하고 있었다.
오늘 여기에 오면서 시리우스한테 아무런 설명을 못 들었기 때문이다.
“마이우 가문이면 동남부를 대표하는 명문가 중 하나 아닙니까? 그런데 어떻게……!”
“시, 시리우스 님, 이게 어떻게 된…….”
“노이엔 마이우.”
시리우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차갑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베르디안은 나한테 아무런 얘기도 해 주지 않았다.”
“네?”
베르디안은 여전히 연맹의 정보는 알려 줄 수 없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시리우스는 그냥 노이엔 마이우가 의심되어 찾아온 것이었다.
“그동안 나는 울텐슈바인 총회 등에서 납치한 어린애들을 어디로 팔아 치웠는지 조사했지. 그런데 많은 흑회들을 털고 다니다 보니 너희 마이우 가문이 관여한 흔적이 있더군.”
“……!”
“그래서 베르디안을 데리고 온 거다. 베르디안을 앉혀 놓고 의미심장한 소리를 늘어놓고 있으면 알아서 자백해 줄 거라 생각했으니까.”
시리우스도 명확한 증거를 확보한 건 아니라서, 제대로 확인을 해야 했다.
그리고 시리우스의 예상대로, 노이엔은 스스로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역시 너는 연맹의 일원이었군, 노이엔 마이우.”
“……!”
노이엔이 다급히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시리우스가 비수를 꽂는 게 더 빨랐다.
“악……!”
탁자 위에 있던 노이엔의 손등을 비수가 관통했다.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트는 노이엔을 보면서, 시리우스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확인은 끝났으니 이제 심문의 시간이군.”
노이엔은 얼굴을 일그러뜨렸고, 베르디안은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