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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명가의 절대무신-52화 (52/129)

몰락명가의 절대무신 52화

52화. 분명 차이가 있을 거다

리겔 가문과 아그타스 가문의 회담이 진행 중인 회의장.

그곳에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꺄아악!”

비명을 지른 건 리겔 가문의 차녀인 레티시아 리겔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중년 남자…… 노이엔 마이우가 회의장 안으로 굴러들어 왔기 때문이다.

“시리우스, 이게 무슨 일이오! 왜 마이우 가문의 가주를……!”

동석하고 있던 카이엔 아그타스도 목소리를 높였다.

마이우 가문은 오랫동안 아그타스 가문과 우호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이 상황은 충격적이었다.

“시리우스.”

당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평정을 유지하고 있던 건 딱 한 사람뿐이었다.

리겔 가문의 차녀, 유스티아 리겔이다.

유스티아는 노이엔을 회의장 안으로 집어 던진 시리우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아무 이유 없이 마이우 가문의 가주님을 이렇게 만들 리 없죠. 어떤 사정이죠?”

“울텐슈바인 총회 등에서 저지르던 아동 인신매매의 관련자야.”

“…….”

유스티아가 인상을 찡그렸다.

“증거는 있는 건가요?”

“저기에.”

시리우스가 뒤돌아보자 벨리드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노이엔 마이우 스스로 자백한 진술서입니다. 그리고 그 자백이 사실이라는 걸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비밀 장부들도 있습니다.”

“……!”

벨리드가 가져온 자료를 탁자 위에 올려놓자 카이엔을 비롯한 사람들이 눈을 크게 뜨고 확인했다.

“아니, 어떻게 이런……!”

“마이우 가문에서 이런 짓을 했다니, 믿어지지 않는군!”

당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 여자가 몸을 일으켰다.

다름 아닌 레티시아였다.

“이런 쓰레기……!”

그녀는 피투성이가 된 채 기절해 있던 노이엔을 발로 걷어찼다.

구두 앞코 부분이 뾰족했기 때문에 노이엔의 얼굴에서 새로운 피가 흘렀다.

“어떻게 어린애들을 갖고 이런 짓을……!”

레티시아가 분노하면서 노이엔을 마구 짓밟으려고 하자 유스티아가 급히 레티시아를 붙잡았다.

“언니, 진정하세요.”

“어떻게 진정할 수 있어! 이런 쓰레기들은 바로 죽여 버려야 해!”

“언니가 직접 하실 필요는 없어요. 정식으로 벌을 받게 해야죠.”

유스티아는 씩씩대는 레티시아를 가까스로 진정시켰다.

“여러분, 죄송합니다. 언니가 좀 다혈질이어서요.”

“아, 그렇군요…….”

카이엔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레티시아 님이 화를 내는 건 저희도 이해가 됩니다. 마이우 가문의 가주가 이런 짓을 하다니…… 아!”

바로 그때.

노이엔이 힘겹게 손을 치켜들었다.

레티시아에게 걷어차이고 정신을 차린 걸까.

남아 있는 힘을 쥐어짜서 마법을 쓰려 하고 있었다.

“억!”

하지만 벨리드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목검으로 노이엔을 구타한 뒤, 짧게 중얼거렸다.

“구천육백육십일.”

“…….”

그 모습에 다들 할 말을 잃었다.

특히 레티시아는 몸을 움츠리며 겁먹은 표정이었다.

“유스티아.”

시리우스는 그나마 냉정을 유지하고 있는 유스티아에게 말을 걸었다.

“노이엔 마이우는 당신들에게 맡기지. 얻어 낼 만한 정보는 이미 다 얻어 냈으니, 어떻게 처벌할지는 당신들이 의논해서 알아서 결정해.”

이런 부분은 카이엔이나 유스티아한테 맡기는 게 낫다.

“벨리드, 너도 여기 남아서 논의에 참가해.”

“알겠어.”

벨리드는 시리우스가 노이엔을 심문할 때 함께 있었고, 알브라임 가문의 대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여기서 논의에 참가하게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런데 시리우스, 너는?”

“가야 할 곳이 있어.”

그렇게 말하면서 시리우스는 고개를 돌렸다.

“제대로 뿌리를 뽑아야지.”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베르디안이 입술을 깨물었다.

* * *

“노이엔 마이우가 당했다.”

깊은 산속에 세워진 산장.

그곳에서는 연맹 동부 지부의 간부들이 가면을 쓴 채 집합해 있었다.

가장 상석에 있는 흑색 가면의 인물…… 동부 지부장이 소집했기 때문이다.

“시리우스가 베르디안과 함께 마이우 가문에 방문했다고 하더군. 그리고 노이엔을 초주검으로 만들어 끌고 갔다고 한다.”

“……!”

다들 숨을 삼켰다.

이 상황은 아무도 예상 못 했다.

베르디안이 시리우스를 죽이거나, 아니면 이곳으로 시리우스를 데리고 올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 거지?”

“베르디안이 배신했다는 얘기인가?”

“그럴 리가 없다. 독왕 전하의 직속 제자인데.”

“그러면 왜 시리우스와 베르디안이 함께 노이엔을 습격했단 말인가?”

그때 은색 가면을 걸친 여성…… 동남부 암흑가의 대모 샤잘리나가 입을 열었다.

“혹시 노이엔이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 아닐까? 그래서 베르디안이 시리우스와 함께 노이엔을 숙청한 거지.”

“노이엔을 숙청……?”

“어쩌면 베르디안이 시리우스에게 제시한 연맹 가입 시험이었을지도 몰라.”

“…….”

샤잘리나의 추측에 고개를 끄덕인 사람도 있었지만, 납득 못한 사람도 많았다.

그동안 노이엔은 마이우 가문의 힘을 활용해 여러 조직의 편의를 봐줬다.

그렇기 때문에 노이엔이 숙청당하면 곤란한 사람들이 많았다.

“도무지 모르겠군.”

적색 가면의 남자…… 루텐펠트 검단의 수장인 루텐펠트가 입을 열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지? 중앙에서는 어떤 언질도 없었나?”

“…….”

흑색 가면의 남자는 잠시 침묵했다.

“모르겠다. 연맹 내부도 복잡하기 때문에 나한테 정보가 공유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쯧, 도움이 안 되는군.”

루텐펠트가 거칠게 내뱉었다.

“혹시 독왕이 베르디안에게 동부 지부를 접수하라고 명령한 거 아닌가?”

“뭐라고?”

“시리우스와 손을 잡고 동부 지부를 싹 쓸어버리라고 말이야. 그런 명령이 떨어진 거면 당신이 모르는 것도 말이 되지.”

“……!”

루텐펠트의 발언에 주위가 술렁였다.

“그래, 그런 거라면…….”

“그러고 보니 시리우스가 연맹에서 파견된 인물이라는 소문이 있지 않았나?”

“그게 거짓말이 아니었을 수도 있는 건가?”

“설마 독왕이 비밀리에 시리우스를 파견한 거라고?”

“그런 거라면 지부장이 시리우스의 정체를 몰랐던 것도 이해가 되는군.”

다들 지부장을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한마디씩 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루텐펠트가 어깨를 으쓱했다.

“지부장, 지금 상황이 좋지 않아. 그러니…….”

“루텐펠트.”

콰르릉!

실내에서 갑자기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루텐펠트가 멍하니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봤다.

“아……?”

루텐펠트의 가슴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작렬한 뇌전(雷電)이 루텐펠트의 가슴을 꿰뚫어 버린 것이다.

“네가 예전부터 내 자리를 노리고 있던 건 알고 있었다, 루텐펠트.”

“…….”

“이 상황을 이용해 내 입지를 흔들려고 해도, 소용없는 짓이다.”

루텐펠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슴에 구멍이 뚫린 상태로, 쓰러져 버렸다.

“회의를 계속하지, 제군.”

“……!”

다들 몸을 떨면서 흑색 가면의 남자에게 시선을 향했다.

루텐펠트는 7서클의 마법검사였지만 초고속의 뇌전 마법 한 번에 절명했다.

그 정도로 흑색 가면의 남자…… 동부 지부장의 실력은 압도적이었다.

“이것이 독왕의 계략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 아무리 독왕이라고 해도 이런 일을 꾸민다는 건…….”

가면 너머의 금색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뇌제(雷帝) 폐하를 거스르는 일이다. 내가 이곳에서 동부 지부를 관리하고 있는 건 뇌제 폐하의 뜻이니까.”

“……!”

뇌제.

연맹에 소속된 사람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전율하는…… 뇌전 마법의 정점.

이곳에 있는 동부 지부장은 뇌제의 심복이었다.

“베르디안이 무슨 생각인지는 내가 직접 알아보겠다. 그러니 너희는 동요하지 말고…….”

바로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가면을 쓴 사람이 안쪽으로 들어왔다.

“지부장님, 큰일입니다.”

“무슨 일이냐?”

“아래쪽에 침입자가 있습니다.”

“침입자? 그럴 리가…….”

“시리우스 카니스루트인 것으로 보입니다. 베르디안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숨을 삼켰다.

하지만 지부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을 뿐이다.

“그래, 그렇게 나왔단 말이지.”

“지, 지부장, 그러면 어떻게…….”

“동요하지 마라. 이건 오히려 잘된 일이다.”

동부 지부의 구성원들을 훑어보면서, 지부장은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굳이 놈들을 잡아 오지 않아도, 놈들이 먼저 찾아와 줬으니까.”

* * *

연맹의 동부 지부로 가는 길은 노이엔 마이우를 족쳐서 알아냈다.

놈들의 본거지를 향해 어두운 산길을 걷던 도중, 알레이온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단주님, 한 가지만 질문드리겠습니다.”

“뭐지?”

“저 여자…….”

알레이온이 베르디안의 뒷모습을 보면서 물었다.

“연맹에 소속된 사람입니까?”

“그래, 맞다.”

“역시…….”

시리우스의 말을 듣고, 알레이온이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는 더 강한 사람이었습니까?”

“그래, 내가 마법을 못 쓰게 했을 뿐이다.”

“그랬군요…….”

“그래도 신경 쓰지 마라. 지금 저기 있는 여자는 너희 막내일 뿐이니까.”

“알겠습니다. 벨리드한테는 말 안 하는 게 좋을까요?”

“그게 낫겠지.”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자 베르디안이 뒤돌아보면서 무서운 눈을 했다.

“왜? 할 말 있나?”

“…….”

“아, 그랬지.”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않도록 아혈을 짚어 놓은 상태였다.

시리우스가 다시 혈을 짚어 말을 할 수 있게 해 주자 베르디안의 입에서 표독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까부터 계속 제가 걷는 대로 따라오고 있는데…… 제가 잘못된 길로 안내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은 건가요?”

“걱정 안 해도 돼. 네가 잘못된 길로 안내한다면 금방 눈치챌 수 있으니까.”

이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시리우스는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어도 제대로 된 길을 찾을 자신이 있었다.

천랑무제 백무랑 시절, 수많은 세력의 본거지를 공략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굳이 저를 앞세우는 거죠?”

“그래야 도망칠 생각을 안 하지.”

“…….”

베르디안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알레이온, 만약 저 녀석이 도망치려 하면 네가 먼저 쫓아가서 잡아라.”

“칼을 써도 됩니까?”

“상관없어. 다치면 벨리드가 치료해 주겠지.”

벨리드의 치유 마법은 제법 효과가 좋다.

“시리우스 님, 말해 두지만…… 동부 지부장은 만만한 사람이 아니에요.”

“알레이온, 귀담아들어라.”

시리우스는 알레이온에게 귓속말을 했다.

“드디어 저 녀석이 마음을 열고 우리한테 연맹의 내부 정보를 알려 주기 시작했으니까.”

“아, 그렇군요. 베르디안도 슬슬 단주님에게 진정한 충성을 바치게 될 모양입니다.”

“큭…….”

베르디안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딱히 정보를 알려 주려는 건 아니에요. 당신들이 지부장한테 쓰러지면 저는 유유히 연맹으로 복귀할 거라고 말해 주고 싶었을 뿐이에요.”

“흠, 그런 거였군.”

시리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베르디안, 그게 가능할까?”

“네?”

“모든 마력을 잃고 마법을 못 쓰게 된 네가 복귀해 봤자…… 연맹에서 잘 대해 줄지 모르겠군.”

“……!”

움찔하는 베르디안을 보면서, 시리우스는 과거의 기억들을 되새겼다.

“독왕이 너를 다시 거둬들인다고 한다면…… 서클을 파괴당한 희귀 사례이니 각종 실험을 하면서 연구 대상으로 삼을 거다.”

“……!”

베르디안은 반박하지 못했다.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잘 생각해 봐라, 베르디안.”

그렇게 말하며 시리우스는 베르디안을 지나쳐 앞서 나갔다.

“네 미래를 위해, 어떤 사고방식을 갖는 게 가장 좋을지 말이다.”

“…….”

베르디안이 시리우스의 뒷모습을 보면서 서 있자 알레이온이 말을 걸어왔다.

“베르디안, 단주님이 너를 죽이지 않고 거둬들이신 건 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의미가…… 있다고?”

“나도 처음 만났을 때는 단주님을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알레이온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만약 단주님이 나를 거둬들이지 않으셨다면 나는 칼슈타인 검단에 이용만 당하다가 죽었을 거다.”

“…….”

“나는 너를 잘 모르지만, 연맹 소속이라니 악인(惡人)일 가능성이 높겠지. 그런데 단주님이 너를 죽이지 않고 거둬들이셨다면 너한테 갱생의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갱생의 여지.

그 말에 베르디안은 입술을 깨물었다.

“단주님은 네가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셔서 너를 거둬들이신 거다.”

“그럴 리가 없어요. 연맹과 싸우는 데 이용하려고…….”

“베르디안.”

그렇게 말하며 알레이온은 앞서가는 시리우스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봐라, 단주님은 네 도움을 받지 않아도 혼자 걸어가실 수 있는 분이다.”

“…….”

“물론 너를 수하로 삼아서 이득 보는 점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알레이온은 예전에 시리우스가 칼슈타인 검단의 잔당을 모아 놓고 했던 얘기를 떠올렸다.

훗날 충분히 죗값을 치르면 밑천을 챙겨 줄 테니 어디 가서 장사라도 하면서 결혼도 하고, 가정도 이루며 평범하게 살아가라고.

대체 어떤 사람이 흑회 조직원들을 거둬들이며 그런 말을 할까.

“단주님은 그런 분이시다. 우리 같은 소인배들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그릇을 지니신 분이란 말이다.”

“…….”

“네가 지금까지 섬기던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하고 비교하면 분명 차이가 있을 거다.”

베르디안은 잠시 시리우스와 독왕을 비교하려 했다.

하지만 곧바로 머리를 흔들고 그 생각을 지워 버렸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꺼림칙했다.

아마…… 독왕의 세뇌 때문일 것이다.

“알레이온.”

그 대신, 베르디안은 다른 질문을 던졌다.

“벨리드 그 사람도 악인인데 갱생의 여지가 있어서 거둬들인 건가요?”

“…….”

알레이온이 잠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 녀석은 그냥 바보다.”

“그렇군요.”

베르디안은 한숨을 내쉰 뒤 시리우스의 뒤를 따라 산을 올랐다.

이제 곧 시리우스와 동부 지부장의 싸움이 시작된다.

알레이온이 해 준 얘기는 그 싸움을 지켜보면서 고민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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