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명가의 절대무신 53화
53화. 구차하기 짝이 없구나
산길을 걸어 올라가는 도중, 시리우스는 미약한 살기를 느꼈다.
시리우스는 미세한 기(氣)를 사방으로 뻗어 주위를 살폈다.
그러자 숲속에 기척을 숨긴 놈들이 숨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알레이온.”
시리우스는 뒤에서 따라오던 알레이온을 불렀다.
“베르디안을 보호해 줘라.”
“네?”
그 직후, 시리우스는 땅을 박찼다.
북명의 공력을 실어 비수를 날리고, 가장 가까운 나무 위를 향해 손을 뻗었다.
“컥!”
“윽……!”
비수를 날린 방향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그와 거의 동시에 시리우스는 나무 위에 숨어 있던 괴한의 목을 붙잡았다.
단번에 숨통을 끊은 뒤, 반대편 손으로 비수를 다시 돌아오게 했다.
다급히 시리우스를 향해 덤벼드는 놈들이 있었지만, 가볍게 비수를 놀려 처리했다.
쿵, 쿠쿵!
나무 위에서 시체들이 연달아 떨어졌다.
순식간에 정리한 뒤 고개를 돌려 보니 알레이온도 한 놈을 처리한 뒤였다.
“문제없습니다, 단주님.”
“그래, 이 주변에는 이게 전부인 것 같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베르디안은 할 말을 잃었다.
베르디안은 이미 자신의 수하들이 시리우스에게 순식간에 쓰러지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예 습격을 시작하기도 전에 전멸당한 상황이라, 더 어이가 없었다.
“베르디안, 이걸로 끝일까?”
“…….”
“너까지 위험해질 수 있으니 이 정도는 말해 줘도 될 것 같은데.”
시리우스의 말에 베르디안이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에는 최소한의 인원만 배치되어 있어요. 이제는 간부들 정도밖에 안 남았겠죠.”
“그러면 앞으로 걸리적거리는 놈들은 없겠군.”
이미 시리우스는 기를 더 멀리 날려서 전방을 확인한 상태였다.
베르디안의 말대로 앞길을 방해하는 놈들은 더 이상 없을 것 같았다.
“계속 올라가지.”
“…….”
시리우스는 알레이온과 베르디안을 데리고 산길을 올랐다.
이윽고 깊은 산속에 숨겨진 작은 건물을 발견했다.
얼핏 보기에는 나무꾼이나 사냥꾼이 잠시 쉬어 가기 위해 지어 놓은 통나무집 같았는데, 노이엔의 증언에 의하면 내부는 전혀 다르다고 한다.
하지만 그 안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이미 바깥으로 사람들이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
머릿수는 다섯.
기를 뻗어서 살펴보니 4서클부터 7서클까지 다양했다.
다만 가운데에 있는 흑색 가면의 남자의 서클은 파악할 수 없었다.
기가 도달한 순간, 서클의 마력을 탐지할 새도 없이 튕겨 나갔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 같이 마중을 나와 주다니, 고마운 일이군.”
시리우스는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그들은 전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분위기가 한층 험악해지는 걸 알 수 있었다.
“시리우스 카니스루트…… 정말로 여기까지 찾아오다니.”
은색 가면을 쓴 여성이 긴장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머리색이나 체형을 보니 노이엔이 말해 줬던 동남부 암흑가의 대모, 샤잘리나 같았다.
“게다가 베르디안, 너는 무슨 생각으로 시리우스에게 붙은 거지?”
“…….”
“설마 독왕의 지시인가?”
독왕의 지시.
그 말을 듣고, 침묵하던 베르디안이 한숨을 내쉬었다.
“독왕 전하는 전혀 관여하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면 왜 네가 시리우스를 여기로 안내한 거지?”
“시리우스가 이곳을 알아낸 건 노이엔 마이우가 위치를 발설했기 때문입니다. 제 책임이 아닙니다.”
“책임이 없다고? 그 말을 믿으라는 건가?”
다른 사람들도 샤잘리나에게 동조했다.
“애초에 시리우스를 노이엔에게 데려간 것도 저 여자일 텐데.”
“저렇게 멀쩡한 모습으로 여기에 온 것만 봐도, 베르디안이 시리우스와 한패가 되었다고 봐야겠지.”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베르디안이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베르디안보다 먼저 시리우스가 입을 열었다.
“베르디안은 그냥 나한테 완패했을 뿐이다. 어쩔 수 없이 끌려다니고 있는 거니 너희가 베르디안을 비난할 필요는 없다.”
“뭐라고?”
“실제로 베르디안은 너희 정보를 발설하지 않았다. 노이엔이 모조리 토해 냈을 뿐이지.”
그렇게 말한 뒤, 시리우스는 냉정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렇다고 해서 노이엔을 비난하지는 마라. 내가 보기에 여기 있는 네놈들도 조금만 족치면 모든 정보를 토해 낼 얼굴이니까.”
“……?”
시리우스의 발언을 듣고, 알레이온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단주님, 가면으로 얼굴을 가렸는데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그냥 해 본 소리다.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라.”
“아…….”
알레이온은 납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다.
“시리우스, 네놈…… 우리를 조롱하는 건가?”
“걱정 마라, 너희를 조롱하기 위해 찾아온 건 아니니까.”
시리우스는 냉담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나는 너희를 말살하러 찾아왔을 뿐이다.”
“네놈……!”
험악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흑색 가면의 남자가 손을 치켜들었다.
“다들 진정해라.”
“지부장……!”
불만을 드러내는 사람들 사이로, 흑색 가면의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시리우스, 내가 이곳 동부 지부의 책임자다.”
“그럼 네가 뇌제가 임명한 사람인가 보군.”
“노이엔 마이우한테 거기까지 들었나 보군.”
지부장은 뒷짐을 지고 말했다.
“네 말대로, 뇌제 폐하가 나에게 동부 지부를 맡기셨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동부의 질서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
“질서라니, 왠지 너희한테 가장 안 어울리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이건 사실이다, 시리우스.”
지부장의 목소리는 냉정했다.
“네가 동부의 흑회 세력들을 차례차례 괴멸시킬 수 있었던 건, 우리 연맹에서 강력한 흑회 조직의 탄생을 억제해 왔기 때문이다.”
“…….”
“예를 들어…… 네가 얼마 전에 죽인 울텐슈바인은 동남부 전체를 장악할 능력이 있는 놈이었다. 잘하면 동부 전체를 지배하면서 왕 노릇을 할 수도 있었겠지. 그렇게 되지 않도록 관리한 것이 바로 우리다.”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는 시리우스를 향해, 지부장이 계속해서 설명했다.
“시리우스, 이것이 동부 지역의 질서다.”
“…….”
“알브라임 가문도, 아그타스 가문도 흑회 소탕에는 의지가 없었다. 동부 지역이 무법지대가 되지 않도록 관리해 왔던 건 우리란 말이다.”
그렇게 말하고, 지부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가 동부의 흑회 조직들을 관리하지 않았다면 리겔 가문은 이미 진작 멸망했을 것이다.”
“…….”
“리겔 가문은 온통 불바다가 되었을 테고, 선조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유물들도 전부 도둑맞았을 테고…… 그래, 네가 사랑하는 아내도 어딘가로 팔려 가서 다른 남자의 술 시중이나 들게 되었겠지.”
웃음기가 담긴 목소리로 지부장이 그렇게 도발한 직후.
알레이온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신 나간 놈…… 너희는 이제 다 죽었다.”
“무슨 소리죠?”
“방금 단주님의 아내를 언급하면서 천박한 소리를 했잖아. 단주님은 그런 걸 절대로 못 참으신다.”
“아…….”
베르디안이 납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부장, 마치 너희 연맹이 균형의 수호자라는 듯이 말하는군.”
수하들의 잡담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들리면서, 시리우스는 입을 열었다.
“여러 가문과 흑회 조직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게 너희 연맹의 역할이라는 건가?”
“정확히 말하자면 동부 지부의 역할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뇌제 폐하께서 우리에게 부여해 주신 사명이고.”
어떻게 보면 시리우스가 추구하는 것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시리우스도 흑과 백의 조화를 추구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웃기는군.”
시리우스는 차갑게 쏘아붙였다.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지 마라. 속이 시커먼 놈들이 명분을 내세우면 더 추잡해지니까.”
“뭐라고?”
“너희가 울텐슈바인 같은 놈들을 견제한 건, 그놈들이 큰 세력을 이뤄서 너희 연맹에 반기를 드는 걸 염려한 걸 텐데?”
시리우스의 발언에 지부장이 침묵했다.
“내가 듣기로, 다른 지역에는 동부의 중소 조직들하고는 비교가 안 되는 거대 조직이 있다고 하더군. 그런 조직들도 전부 연맹한테 절대적 충성을 바치고 있나?”
“…….”
“대형 흑회 세력이 생기는 건 너희 연맹 입장에서도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잘게 쪼개 놓고 관리하는 거지.”
물론 그런 놈들도 연맹이 본격적으로 나서면 굴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바에야 그냥 처음부터 대형 세력의 출현을 억제하는 것이 더 낫다.
중앙의 실력자들이 나서지 않아도, 이런 지부장들 힘으로 관리할 수 있을 테니까.
“너희는 그냥 너희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을 뿐이다. 그동안 동부의 흑회 조직들을 억제해 왔던 건, 그렇게 해야 너희들한테 이익이 되기 때문이지.”
“…….”
“우리는 이익을 추구한다, 우리는 힘을 추구한다……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면 그 나름대로 멋이 있었을 거다. 그런데 뭐라고? 질서를 관리해?”
시리우스는 코웃음을 쳤다.
“구차하기 짝이 없구나, 뇌제의 졸개.”
“…….”
지부장은 대꾸하지 않았다.
짧게 한숨을 내쉬었을 뿐이다.
“얘기가 안 통하는 놈이군. 그냥 죽여라.”
지부장의 지시가 떨어진 순간.
나머지 네 명이 움직였다.
두 명이 장검과 단검을 들고 달려들었고, 두 명은 화염의 창과 바람의 칼날을 날렸다.
하지만 시리우스도 이미 검을 뽑아 든 상태였다.
시리우스는 화염의 창과 바람의 칼날을 여유롭게 회피한 뒤, 가장 앞장섰던 놈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윽……!”
놈은 장검을 제대로 휘두르지도 못하고 목이 날아갔다.
시리우스는 놈을 밟고 뛰어올라 비수를 날렸다.
화염의 창을 날린 놈이 다음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갑자기 날아온 비수에 당해 쓰러졌다.
“이놈……!”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의 칼날이 쏟아졌다.
하지만 시리우스가 날린 검풍(劍風)에 모조리 흩어졌고, 오히려 바람의 칼날을 날린 놈이 검풍에 휩쓸렸다.
“으윽……!”
바로 그때 시리우스한테 갑자기 뿌연 연기가 날아왔다.
샤잘리나가 단검을 휘두르자 연기가 발생해 시리우스를 덮친 것이다.
시리우스가 다른 놈들을 해치우는 사이 독약을 뿌린 것인데…… 시리우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상당히 독한 약인 것 같군. 이것도 독왕의 약인가?”
“아악……!”
가볍게 검을 휘두르자 연기가 샤잘리나 쪽으로 날아갔다.
샤잘리나는 다급히 얼굴을 막고 물러서려 했지만, 시리우스가 발생시킨 검풍이 더욱 빨랐다.
결국 눈, 코, 입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다만 독을 다루는 기술은 베르디안보다 한참 못 미치는 것 같군.”
독공(毒功)이라는 건 단순히 강력한 독을 만드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걸 상대에게 제대로 중독시키는 기술도 겸비되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독공이라 할 수 있다.
“지, 지부장, 살려, 살려…….”
샤잘리나가 땅을 기면서 지부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지부장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뒷짐을 진 채 모든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고 있었을 뿐이다.
“제법이군, 시리우스 카니스루트.”
순식간에 제압당한 수하들 앞에서, 지부장이 입을 열었다.
“역시 마력으로 육체 능력을 강화하고 있는 건가. 하지만 베르디안과는 다른 방식인 것 같으니 독왕 파벌하고는 관계가 없는 게 맞군.”
다른 사람들이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부장은 시리우스의 능력을 분석하고 있었다.
“네가 어디서 그런 능력을 얻은 건지는 모르겠다. 연맹의 다른 파벌과 관계가 있는 건지, 아니면 어디서 고대의 특별한 마도서를 손에 넣은 건지…….”
“…….”
“하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다.”
콰르릉!
갑자기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시리우스에게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바로 앞에서 땅을 기어 다니던 샤잘리나에게 떨어진 것이었다.
샤잘리나는 단말마의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죽었다.
“네 힘으로는, 뇌제 폐하가 전수해 주신 이 뇌전 마법에 대항할 수 없다.”
자신의 힘을 과시하면서, 지부장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분수를 깨닫게 해 주마, 시리우스 카니스루트.”
“…….”
지부장이 펼친 뇌전 마법의 위력에 알레이온과 베르디안이 숨을 삼켰다.
하지만 그들은 모를 것이다.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지부장을 보면서, 시리우스가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