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명가의 절대무신 55화
55화. 큰물에서 놀자
칼날이 가슴에 꽂힌 순간, 지부장은 시리우스의 칼날에 어떤 기운이 전개되어 있는지 이해했다.
이건 뇌전 마법도 아니고 마법검도 아니었다. 뇌전 마법을 변환하여, 번개의 성질을 지닌 채 칼날 위를 흐르는 유체(流體)로 만들었다.
시리우스가 펼친 기술은 지금까지 지부장이 알고 있던 그 어떤 마법과도 달랐다.
“너는, 대체…….”
시리우스는 대꾸하지 않고 지부장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지금 시리우스는 천랑신공의 세 번째 단계인 창뢰(蒼雷)의 힘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정식으로 창뢰의 단계에 입문한 것은 아니다.
뇌전 마법의 뇌기(雷氣)를 끌어모은 뒤, 그 힘으로 창뢰의 검기를 재현하고 있을 뿐이니까.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도.
시리우스는 지부장의 뇌전 마법을 능가하여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다.
그것이 천랑무제 백무랑의 무위(武威)였다.
“아…….”
공중에 피를 뿌리며 지부장이 추락했다.
땅바닥에 충돌한 지부장의 입에서 소리 없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남길 말이라도 있나?”
시리우스는 지부장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러자 지부장은 시리우스를 노려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대체…… 어디서 그런 힘을 손에 넣은 거냐.”
“지금 상황에 그게 궁금한가?”
“네가 방금 사용한 힘…… 뇌전 마법의 상식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아무리 고대의 고유 마법을 익혔다고 해도 그런 식으로는…….”
지부장은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했다.
시리우스가 지부장의 가슴에 손을 대고 북명의 공력을 펼쳤기 때문이다.
“네놈, 무엇을…… 커헉!”
지부장의 서클이 파괴되어, 마법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유출된 마력은 시리우스의 육체에 흡수되었다.
마력의 양은 8서클에 걸맞은 것이었고, 지난번 발레리안보다 정갈했지만…… 이 마력으로 내공이 크게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마력을 흡수해서 내공을 증진시키는 건 더 이상 어려울 것 같군.’
단전이라는 것은 커다란 호수와 같다.
내공을 쓴다는 건 이 호수에서 물을 퍼다 쓰는 행위다.
물을 많이 퍼 가면 호수의 물도 일시적으로 줄어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회복된다.
내공이 소모된 뒤 운기조식을 하는 것도, 북명의 공력으로 상대방의 기운을 흡수하는 것도…… 이렇게 줄어든 호수의 물을 빨리 채워 넣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서 엄청난 양의 물이 호수에 유입되었다고 치자.
그러면 물이 범람하면서 호수 자체가 확장된다.
그때 둑을 잘 쌓으면 호숫물의 최대치를 영구적으로 늘릴 수 있다.
강력한 영약을 복용했을 때 내공이 늘어나는 건 이런 원리다.
한편 고만고만한 양의 물이 유입되면 어떻게 될까?
수량이 일시적으로 늘어날 수는 있겠으나, 호수 자체가 크게 확장될 수는 없다.
별것 아닌 영약을 아무리 많이 먹어 봤자 절대 고수가 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십 년 묵은 하수오를 일천 뿌리 먹어 봤자 천년하수오 한 뿌리 먹는 게 더 효과적인 것이다.
북명의 공력으로 상대방의 기운을 빨아들이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만약 자신과 엇비슷하거나 더 많은 내공을 지닌 사람에게서 흡수하면 호수를 크게 넓힐 수 있다.
하지만 자신보다 내공이 적은 사람에게서 흡수하면 기껏해야 줄어든 호숫물을 보충하는 정도로 끝난다.
소위 흡성대법이라는 걸 터득했다고 으스대는 놈들이 대성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자신보다 약한 하수들에게서 내공을 빨아들여 봤자 강해질 수 없다.
한편 실력 있는 고수들은 흡성대법으로 내공을 빨아들일 기회를 주지 않는다.
결국 높은 경지로 올라가려면 스스로 강해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9서클이 상대라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8서클의 마력을 흡수해 봤자 의미가 없겠지.’
시리우스는 고개를 돌래 베르디안을 쳐다봤다.
베르디안은 시리우스가 지부장을 쓰러뜨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감탄하는 중이었다.
‘그러니 저 녀석의 도움이 필요한 거다.’
이것이 시리우스가 베르디안을 거둬들인 또 다른 이유였다.
독왕의 직속 제자인 베르디안은 다양한 약물의 지식을 갖고 있을 테니까.
백빙화는 백어증을 불러일으키는 독약이었으나, 시리우스한테는 극음의 내공을 부여하는 영약으로 작용했다.
베르디안을 통해 그런 식으로 작용하는 약물을 알아낼 수 있다면 내공을 크게 늘릴 수 있을 것이다.
“끄으으…….”
마력을 잃은 지부장에게서 힘없는 신음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끝으로, 지부장의 숨이 완전히 끊겼다.
“끝났군.”
주위에 남아 있는 놈이 없다는 건 이미 기를 뻗어 확인했다.
이걸로 연맹 동부 지부는 괴멸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주님, 정말로 경이로웠습니다.”
모든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알레이온이 감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그놈, 지난번 발레리안 아그타스보다 강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 놈을 상대로 이렇게 완승을 거두시다니…….”
“여유로운 싸움은 아니었다. 내 힘이 조금만 부족했어도, 시체가 되어 땅을 뒹구는 건 나였겠지.”
이건 겸손이 아니었다.
지부장의 뇌전 마법은 상당히 강했다.
극한의 집중력으로 대응했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군요, 시리우스 님.”
그때 베르디안이 입을 열었다.
“동부 지부장까지 쓰러뜨리다니, 당신의 실력은 8서클 중에서도 상위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죠. 당신의 경지를 서클로 판단하는 게 옳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
베르디안이 은근히 날카로운 지적을 했다.
“하지만 9서클에 대항할 수 있을 수준은 아닙니다. 당신은 절대로…… 연맹에 이길 수 없어요.”
“9서클들이 그렇게 대단한가 보지?”
“당연하죠. 당신 실력으로는 동부 지부장의 스승인 뇌제 폐하는 물론이고, 제 스승인 독왕 전하도 꺾을 수 없어요.”
“…….”
“압도적인 힘을 목격하고 당신의 높은 콧대가 꺾이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퉁명스러운 목소리였지만 적개심은 담겨 있지 않았다.
시리우스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나도 기대되는군.”
“네?”
“그 대단한 9서클들을 만날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 어떤 힘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거든.”
시리우스는 전생보다 높은 경지에 오른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9서클들과의 싸움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대체 당신은…….”
“소용없다, 베르디안.”
그때 알레이온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단주님은 그렇게 겁을 준다고 해서 두려움을 느낄 분이 아니다. 큰 그릇을 지니신 분이라고 말했을 텐데.”
“쯧…….”
베르디안이 혀를 찼다.
“뭐, 지금 당장 연맹에서 시리우스 님을 말살하기 위해 움직이지는 않을 거예요. 그쪽도 상황 파악을 우선하려 하겠죠. 그러니…… 어떻게 해야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지나 고민해 보세요.”
“충고 고맙군, 베르디안.”
“딱히 충고가 아니거든요.”
툴툴거리는 베르디안을 보면서, 시리우스는 피식 웃었다.
* * *
시리우스는 아그타스 가문으로 돌아가 연맹의 동부 지부를 괴멸시켰다는 얘기를 전했다.
카이엔을 비롯한 아그타스 가문의 사람들도, 사절단으로 와 있던 리겔 가문의 사람들도, 다들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오로지 유스티아만이 ‘또 엄청난 일을 저질러 버렸군요.’ 하고 한숨을 내쉬었을 뿐이었다.
다만 연맹의 동부 지부를 괴멸시켰다고 해서 동부 전체가 평화로워지는 건 아니었다.
지부장이 말했던 대로 연맹이 동부의 흑회 조직들을 관리하고 있었던 건 사실이니까.
마침 주요 흑회 조직의 수장들도 목이 달아난 상태고, 이번 기회에 세력을 키워 보겠다고 궐기하는 놈들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니…… 슬슬 체제를 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시리우스 님.”
“동북부에서는 별일 없었나?”
“루트베인 님하고 협력하면서 치안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천랑검단에 대항하는 세력도 없고,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있지요.”
시리우스는 유테루스 가문의 팔테온을 불러들였다.
“요새는 동북부도 여유로운 것 같군.”
“그렇죠. 이게 다 시리우스 님의 덕분입…….”
“그러면 이쪽으로 와라, 팔테온.”
“네?”
“동북부는 루트베인 님에게 맡겨라. 유테루스 가문도 적당한 사람한테 맡기면 되겠지.”
“……?”
팔테온이 눈을 깜박였다.
“혹시 유테루스 가문의 가주 자리에서 내려오라는 말씀은 아니시겠죠?”
“그럴 필요는 없지. 다만 더 큰물에서 놀자는 거다.”
“…….”
시리우스의 말을 듣고, 팔테온이 찜찜한 표정을 지었다.
팔테온은 약삭빠른 놈이다.
가만 내버려 두면 요령을 피우면서 딴생각을 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놈이 허튼 생각을 못 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좋은 방법은 쉴 새 없이 부려 먹는 거다.
천랑무제 백무랑 시절에도 쥐새끼처럼 약삭빠른 놈 하나를 측근으로 두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리우스는 이런 녀석을 다루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팔테온, 너도 동북부 촌구석에서 대장 노릇만 하다가 죽고 싶지는 않을 거다.”
“아니, 저는 그 정도여도 충분히 만족합니다만…….”
“큰물에서 놀자, 큰물에서.”
“…….”
팔테온은 시리우스의 권위를 등에 업고 동북부에서 여유롭게 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리우스가 이렇게 나오면 어쩔 수 없다.
“저한테 뭘 시키실 생각입니까?”
“조직 관리.”
“천랑검단의 관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 앞으로 내가 만들 조직을 관리하는 거다.”
“혹시…….”
“나는 동부뿐만 아니라 대륙 전체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조직을 구상하고 있다.”
“…….”
팔테온이 침을 삼켰다.
예전에도 시리우스한테 비슷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조직을 구성하고 운영하는 실무 작업을 너한테 맡기려고 한다.”
“그걸 저한테 맡기시겠다고요?”
“내가 지금까지 살펴보니 네 실무 능력이 가장 뛰어나더군.”
“네? 제가 말입니까?”
팔테온이 들뜬 표정을 지었다.
시리우스한테 이렇게 좋은 평가를 받을 거라고는 예상 못했기 때문이다.
“유스티아만 빼고.”
“아…….”
팔테온이 살짝 실망한 표정을 지었지만 바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뭐, 그게 객관적인 평가겠죠. 유스티아 님은 제가 봐도 천재니까요.”
“비하할 건 없어. 사람들을 관리하는 능력은 네가 유스티아보다 더 뛰어나니까.”
“그건 뭐…… 유스티아 님이 워낙 쌀쌀맞아서 그런 거고요.”
“그 부분은 동감이군.”
시리우스가 동의해 주자 팔테온이 실실 웃어 댔다.
“어이쿠, 시리우스 님이 아내 뒷담을 하시다니, 이거 유스티아 님한테 알려 드려야겠…… 악!”
“깝죽대지 마라.”
한 대 얻어맞은 팔테온이 울상을 지었다.
“아직 동부도 완벽히 안정되지 않은 상태고, 본격적인 조직을 갖추기에는 아직 이른 측면이 있다. 하지만 기초적인 부분은 미리 만들어 놓는 게 좋겠지.”
“기초적인 부분…….”
“훗날에는 매우 큰 규모의 조직이 될 거다.”
천랑무제 시절의 무림맹은 일전(一殿), 이원(二院), 삼당(三堂), 사각(四閣), 오단(五團)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일전은 맹주전(盟主殿)을 뜻하며 무림맹주와 그 직속 부하들이 속해 있다.
이원은 무림맹의 질서를 관장하는 호법원, 원로들이 소속된 원로원이 해당된다.
삼당은 작전 지휘를 담당하는 군사당(軍師堂), 금전적인 부분을 책임지는 만금당(萬金堂), 무림맹 전체의 인재를 관리하는 협원당(俠員堂)으로 구성된다.
사각은 정보 수집이나 비밀 작전 등 독립적 임무를 수행하는 네 개 조직이었고, 오단은 주로 일반적인 전투를 담당하는 다섯 개 부대들이었다.
“팔테온, 너는 협원당을 책임지는 협원당주다.”
“협원당이요?”
“조직의 구성원 전체를 관리하는 부서라고 생각하면 된다.”
“인사부인 거군요.”
당시 무림맹 내부 조직은 대부분 서문세가에게 장악당해 있었다.
원로원과 호법원은 처음부터 서문세가가 꽉 잡고 있었고, 군사당과 만금당과 협원당도 천마신교 멸망을 전후하여 서문세가에게 넘어갔다.
이렇게 되면 사각과 오당도 서문세가의 꼭두각시가 되어 버린다.
그렇기에 마지막 순간에 백무랑 편에 섰던 건 맹주전 직속인 십이위병밖에 없었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시리우스는 모든 조직에 자신의 측근들을 배치할 생각이었다.
전생에서 십이위병은 맹주전 일만 했지만, 이번에는 시리우스의 측근들이 조직 전체를 관할하게 될 것이다.
“팔테온, 조만간 천랑검단과는 별도로 새로운 단을 만들 거다.”
“새로운 단이요?”
“지역 사회를 호위하는 현무위단(玄武衛團)을 새로 만들 거다. 천랑검단은 보다 공격적인 역할을 맡게 할 생각이고.”
“아…….”
천랑검단은 칼슈타인 검단을 모체로 하고 있고, 흑회 출신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명문가의 병력들이 참가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그렇기에 현무위단을 새로 만들어, 아그타스 가문을 비롯한 여러 가문에서 병력을 지원하게 할 생각이다.
“현무위단은 동부의 여러 가문이 참가하는 치안 유지 부대가 될 거야.”
“알겠습니다. 여러 가지 조율이 필요하겠군요.”
팔테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일당(一堂) 이단(二團) 체제가 될 거다.”
일당은 협원당.
이단은 천랑검단과 현무위단.
일전, 이원, 삼당, 사각, 오단의 무림맹 시절에 비하면 조촐하지만, 앞으로 점점 몸집이 커질 것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시리우스 님.”
갑자기 팔테온이 목소리를 낮췄다.
“이건 리겔 가문 몰래 진행하는 겁니까?”
“그렇지는 않지.”
이 세계에서 무림맹 같은 세력을 만들려면 대륙 5대 명가 중 하나인 리겔 가문의 간판이 필수적이다.
특히 유스티아가 운영하는 천랑표국이 훗날 만금당 역할을 해 줘야 하기에…… 리겔 가문과 결별할 이유가 없었다.
“유스티아하고도 얘기할 거야.”
“아, 역시 그렇군요.”
팔테온이 씨익 웃었지만, 곧바로 자기 머리를 손으로 가렸다.
“아이쿠, 딱히 부부는 일심동체라든가 그런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오해 마십시오.”
“누가 뭐래?”
“그러면 왜 자세를 잡고 계신 겁니까?”
“쯧…….”
시리우스는 손을 아래로 내렸다.
“그럼 왜 웃었는데?”
“아니…… 부러워서 말입니다.”
“부럽다니?”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유스티아 님은 정말 유능하신 분입니다. 동북부에서 함께 일을 하다 보면 탄복할 때가 많았습니다.”
팔테온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 재녀(材女)와 결혼하신 시리우스 님이 부러워서 괜히 웃음이 나왔던 겁니다. 저는 어떤 여자와 결혼하게 될지…… 하하.”
“…….”
“그런 분하고 결혼하셔서 시리우스 님도 든든하시겠어요.”
팔테온의 질문에 시리우스는 감정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글쎄, 어떨까.”
시리우스는 유스티아를 신뢰하고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서로의 목표를 위해 협력하는 동지로서의 신뢰다.
부부로서의 신뢰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전생에서 아내에게 배신당해 무형지독에 중독되었던 걸 생각하면…… 유스티아를 아내로서 신뢰하는 건 어려울 것이다.
어차피 형식적인 부부이고, 그런 건 필요 없지만 말이다.
* * *
늦은 저녁, 시리우스는 유스티아의 숙소를 찾았다.
앞으로의 일들을 의논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스티아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있었다.
“얘기를 나누고 계시는 중이었군요. 저는 다음에 오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 잠깐 앉아 봐, 제부.”
유스티아의 언니 레티시아가 시리우스를 붙잡았다.
“리겔 가문의 미래에 관한 이야길 하던 중이었으니, 제부도 참가하는 게 좋겠지.”
“…….”
리겔 가문의 미래.
그 말을 듣고, 시리우스는 유스티아의 얼굴을 쳐다봤다.
유스티아의 표정은 평소보다 딱딱했다.
“진지한 얘기인 것 같군요.”
현재 리겔 가문은 막내 유스티아의 남편인 시리우스가 주도권을 잡고 있다.
언니 입장에서는 별로 반가운 상황이 아닐 것이다.
그런 얘기를 하려고 한다면 시리우스도 정면에서 상대해 줄 생각이 있다.
“말씀해 주시죠. 경청하겠습니다.”
레티시아는 남부의 명문인 레티우드 가문과 결혼했다.
레티우드 가문은 아그타스 가문 못지않은 세력을 지녔고, 게다가 남부 가문들의 모임인 ‘남부 연합’의 일원이다.
시리우스가 남부로 진출한다면 남부 연합과의 충돌은 필연적일 테고…… 레티시아와의 갈등도 피할 수 없다.
만약 레티시아가 먼저 선전 포고를 한다면 시리우스는 정면에서 맞서 싸울 생각이었다.
“언니, 이 얘기는 더 이상…….”
“가만있어 봐, 유스티아.”
유스티아가 레티시아를 제지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시리우스와 유스티아를 번갈아 쳐다본 뒤, 레티시아가 입을 열었다.
“너희, 애는 안 만들 거니?”
신혼부부를 다그치는 언니의 목소리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