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명가의 절대무신 60화
60화. 기생충들의 집단이란 거다
루펠치아 자경단을 빠르게 제압한 뒤, 시리우스는 배로 돌아갔다.
그리고 천랑표국의 업무가 마무리되는 대로 배를 출발시켰다.
“시리우스, 이제 2시간만 더 가면 샤히트 수적단의 세력권이에요.”
유스티아가 지도를 확인하며 말했다.
“특별한 작전이 있나요? 진형을 취할 필요가 있다면 선단 전체에 공유해야 할 것 같은데요.”
“그런 건 없어.”
“네?”
“수상전은 상대편이 더 익숙해. 어설프게 작전을 세워 봤자 소용없을 거야.”
천랑무제 백무랑도 수상전 경험은 그리 많지 않았다.
수적을 토벌한 적은 몇 번 있지만, 놈들의 본거지인 수채를 급습하는 형태였다.
사전 정보도 부족하고, 샤히트 수적단의 본거지를 찾아내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정면에서 대결하는 수밖에 없지.”
“그렇다면 정면에서 대결하기 위한 작전이 필요할 텐데요.”
유스티아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준비가 되었나요?”
“먹이를 던져 주면 되지.”
시리우스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구석에서 대기하고 있던 백금색 머리카락의 여성에게 시선을 향했다.
“왜 쳐다보는 거죠?”
“베르디안.”
시리우스는 베르디안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번에 나와 함께 앞으로 나서자.”
“……?”
베르디안은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어서 눈만 깜박였다.
* * *
사전 정보대로,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인 구간이 시작되었다.
확실히 경치는 끝내주게 좋았다.
“이런 곳에서 물에 빠지면 살아남기 어렵겠네. 아무리 헤엄쳐도 뭍으로 올라가기 어려우니까.”
“운 좋게 붙잡고 올라갈 곳이 있어도, 저 기암절벽을 기어 올라간다는 건 쉽지 않겠지.”
시리우스는 옆에서 떠들어 대는 벨리드의 말에 담담히 대꾸했다.
지금 시리우스는 선두(船頭)에서 전방을 주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시리우스, 이렇게 경치가 좋은데…… 아내하고 둘이서 분위기 좀 잡아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듣기로 이게 신혼여행이라고…… 아얏!”
“검 휘두르는 연습이나 해라.”
“기껏 생각해서 말해 줬더니만…….”
벨리드가 투덜거리면서 가검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처음에는 목검과의 무게 차이 때문에 어려워했지만, 이제는 꽤 익숙해진 상태였다.
“일만육백이십이…… 일만육백이십삼…….”
휙휙휙, 휙휙휙…….
벨리드가 삼재검법을 펼치는 소리를 배경 음악 삼아, 시리우스는 전방의 경치를 계속 구경했다.
“일만육백이십사…… 일만육백이십…….”
“벨리드, 멈춰.”
“아니, 이제 막 시작한 참인데…….”
벨리드는 아직 눈치채지 못했지만, 시리우스는 이미 파악했다.
저 멀리…… 물안개를 가르고 여러 척의 배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쪽 선단보다 배의 숫자가 많다. 상당한 규모였다.
“앗……!”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벨리드가 숨을 삼켰다.
“뭐, 뭐야? 저렇게 많아?”
“배를 모조리 끌고 나온 모양이군. 우리가 큰 먹잇감이라 생각한 거겠지.”
시리우스는 후방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다른 배는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고, 시리우스가 타고 있던 배만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단주님.”
베르디안과 함께 서 있던 알레이온이 시리우스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작전이 통할까요?”
“통하겠지.”
시리우스는 지금까지의 기억을 되새기며 말했다.
“샤히트도 연맹에 인정받고 싶어서 전전긍긍하고 있다면 말이다.”
알레이온의 스승이었던 칼슈타인도 그랬고, 울텐슈바인도 그랬고…… 다들 연맹에 인정받고 싶어서 발버둥 치고 있었다.
루펠치아에서 들은 대로 샤히트도 연맹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거라면 분명 걸려들 것이다.
“거기, 멈춰라!”
전방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저쪽에서도 선봉장, 아니 선봉선(先鋒船)이 앞서 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이 일대를 관리하고 있는 샤히트 두령님의…….”
“샤히트를 만나고 싶다.”
시리우스는 놈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너희 두령한테 안내해라, 지금 즉시.”
“뭣……!”
선봉선 선두에 서 있던 놈이 눈을 치켜떴다.
“네놈, 대체 뭐 하는 놈이기에…….”
“내 정체는 알 거 없고.”
“뭐라고?”
“샤히트한테 이렇게 말하면 지금 당장 우리를 불러들일 거다.”
시리우스는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연맹에서 혈안이 되어 찾고 있는 배신자를 데리고 왔다고 말이다.”
뒤에서 베르디안이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 * *
잠시 뒤, 시리우스는 놈들의 선단 중심으로 안내받았다.
수적들의 대장선이라고 해야 할까, 가장 커다란 배 위에 바로 올라탈 수 있었다.
“이렇게 간단히 놈들의 심장부까지…….”
벨리드가 감탄하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칼을 든 수적들이 노려보고 있었지만 덤벼드는 놈은 아무도 없었다.
“이쪽으로 와라.”
시리우스는 알레이온과 벨리드, 베르디안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수적단의 간부들이 모여 있었다.
“…….”
분위기가 제법 진중했다.
다들 옷차림도 단정했기 때문에 수적단 간부가 아니라 명문가의 가신들이 모여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가장 상석에는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여자라고는 해도 체구는 여기 있는 누구보다 컸다.
시리우스가 기를 뻗어 살펴보자 상당한 마력이 느껴졌다.
샤히트 수적단의 두령인 샤히트였다.
“얘기는 들었다.”
샤히트의 입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연맹의 배신자를 데리고 왔다고 하던데.”
샤히트는 네 명의 방문자를 쓱 훑어봤다.
그리고 베르디안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확실히 연맹 관계자한테 들었던 것하고 똑같이 생겼군.”
그렇게 말하면서 샤히트가 주위의 간부들을 둘러봤다.
“동부 지부에서 배신자가 있었다고 한다. 동부 지부가 완전히 괴멸된 것도 그 배신자 탓이라더군.”
“…….”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그 배신자를 잡아다가 넘겨주면 큰 공적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 공적으로 우리 수적단이 연맹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샤히트가 피식 웃었다.
“하지만 강물 위를 떠도는 우리들이 그 배신자를 잡으러 육지를 뛰어다닐 수도 없고…… 그냥 포기하고 있었지.”
“…….”
“그런데 그 배신자가 우리들 앞에 제 발로 굴러들어 왔다. 이렇게 기쁜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하고 샤히트가 입을 다물자 침묵하던 간부들이 앞다투어 발언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운명이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드디어 두령님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동부 지부 괴멸의 원흉을 잡은 것이니 연맹에서도 두령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죠.”
그 모습을 보면서 알레이온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칼슈타인 검단에 있던 시절, 사형들이 칼슈타인에게 과잉 충성하던 모습을 떠올린 것이다.
“너희 대표는…… 너인 것 같군.”
샤히트가 시리우스를 쳐다봤다.
“루펠치아 자경단과 트러블이 있었다는 얘기는 이미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유혈 사태가 불가피하리라 생각했는데, 이런 선물을 준비했다면 얘기가 다르지.”
“…….”
“저 여자를 통행료로 받겠다. 통과시켜 주마.”
샤히트의 발언에 벨리드가 눈을 크게 떴다.
“토, 통과시켜 주겠다고? 그냥?”
“음? 무슨 오해가 있는 모양이군.”
샤히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는 딱히 지나가는 배들을 모조리 털어먹는 무법자가 아니다. 명확한 규칙을 갖고 활동하고 있지.”
“명확한 규칙…….”
“자진해서 충분한 통행료를 지불하는 배는 그냥 통과시켜 준다. 사람을 해치지도, 화물을 빼앗지도 않는다.”
“…….”
“그러지 않는 놈들만 피해를 입을 뿐이지.”
그렇게 말하고 샤히트는 시리우스를 다시 쳐다봤다.
“네 성의는 잘 받겠다. 너희 선단은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마. 루펠치아 자경단 문제도…….”
“샤히트, 잠시만.”
그때 시리우스가 샤히트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이놈, 감히 두령님의 말을……!”
“죽고 싶은 거냐!”
간부들이 분노했지만 샤히트가 손을 치켜들어 제지했다.
“따로 할 말이라도 있나?”
“아무래도 오해가 있는 것 같군.”
“오해?”
“나는 통행료를 내겠다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저 녀석을 건네주겠다고도 하지 않았고.”
“…….”
샤히트가 잠시 침묵했다.
“거짓말을 한 것이냐?”
“나는 내가 연맹의 배신자를 데리고 있다고 말했을 뿐이다. 딱히 거짓말을 한 건 아니지.”
그 말을 듣고 베르디안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베르디안은 딱히 연맹을 배신한 게 아니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자면 거짓말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네놈…….”
“속인 거냐?”
주위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이번에는 샤히트도 간부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샤히트가 가장 무서운 눈으로 시리우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샤히트, 사실 나는 통행료를 징수하는 것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뭐라고?”
“산적 중에는 산사태가 나서 길이 막히면 솔선해서 길을 치워 놓는 놈들이 있다. 어떤 산적들은 산 위에 지름길을 만들어 놓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까지 하지. 그런 놈들이라면 통행료도 지불할 만하다.”
산속에 있는 길은 관리가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길이 막혀서 다른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표국이나 상인들 입장에서는 큰 손해가 된다.
녹림의 산적들이 수시로 살펴보며 관리해 준다면 통행료 정도는 내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너희는 이곳을 지나다니는 선단에게 아무런 기여를 한 게 없다.”
“…….”
“너희가 뭘 했지?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인 이 구간에 선원들이 쉬어 갈 수 있는 선착장 하나 만들어 놓지 않았다.”
그동안 계속 살펴봤지만 그런 장소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 잘 안 보이는 곳에 수적들만을 위한 선착장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너희는 그냥 강을 가로막고 돈을 뜯어냈을 뿐이다. 심지어 요새는 그것도 귀찮아져서 루펠치아 자경단과 협업 체제를 구축했더군.”
“…….”
“결국 샤히트 수적단은 이 세상에 아무 쓸모가 없는 기생충들의 집단이란 거다.”
시리우스의 폭언에 간부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이놈이……!”
“죽고 싶냐!”
왼쪽에서 한 놈, 오른쪽에서 한 놈.
칼을 뽑고 좌우에서 동시에 달려들었다.
시리우스는 왼손으로 비수를 날리면서 오른손을 옆으로 뻗었다.
왼쪽에서 달려들던 놈은 목에 비수가 꽂혀 절명했고, 오른쪽에서 달려들던 놈은 목이 꺾여 죽었다.
“……!”
다른 간부들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움직임을 멈췄다.
그들은 움직임이 느렸던 탓에 목숨을 건진 꼴이 되었다.
“오늘부로 샤히트 수적단은 폐업이다.”
시리우스는 무자비한 목소리로 말했다.
“배에서 충각을 제거해라. 무기는 전부 강물에 던져 버려라. 누군가를 해치고 협박하기 위한 물건은 하나도 남기지 마라.”
“……!”
“너희의 배를 부수고 연결해서 누구나 쉬어 갈 수 있는 선착장을 하나 만들어라. 지나가던 선원들이 쉬어 가면서 배를 채울 수 있도록 식당이라도 하나 운영하면 굶어 죽지는 않을 거다.”
휴게소나 운영하면서 살아라.
시리우스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놈들은 앞으로 나와라. 강물 속에 처넣어서 물고기 밥으로 만들어 주마.”
시리우스의 선언에 마침내 샤히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