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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명가의 절대무신-62화 (62/129)

몰락명가의 절대무신 62화

62화. 목숨을 노려 준다면

샤히트 수적단의 선박들은 대부분 불타 가라앉았다.

두령의 원수를 갚겠다고 달려든 수적들은 다들 물고기 밥이 되었다.

무기를 버리고 항복한 놈들은 포박하여 남아 있는 배에 태웠다.

그들은 천랑검단의 감시를 받으며 이 구역을 정비하는 노동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가혹한 노동을 하게 되겠지만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이것은 그들이 지금까지 저지른 악행에 대한 벌이니까.

“나중에는 이 일대를 경비하는 업무에도 투입할 생각이야.”

“괜찮은 발상이네요.”

유스티아가 시리우스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대는 수적들이 활동하기 좋은 지형이에요. 샤히트 수적단이 사라져도 금방 또 새로운 놈들이 나타나서 노략질을 시작하겠죠.”

“그래, 그런 놈들을 견제하는 데 쓸모가 있겠지.”

무림에서도…… 큰 산적이나 수적을 토벌하면 치안이 더 나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곳은 특정 문파가 지속적으로 관리하기 힘든 곳이라, 녹림의 거물급이 사라지면 그 일대가 더 무질서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림맹에서 길목마다 인원을 배치하고 상시 관리하는 것도 불가능했기 때문에…… 너무 행패를 부리지 않는다면 적당히 눈감아 주곤 했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이번 생에서는 그렇게 타협할 생각이 없었다.

산적이든 수적이든 모조리 굴복시키고, 철저히 관리할 예정이다.

“어쨌든, 빨리 뒤처리를 마무리하고 출발했으면 좋겠네요.”

“무슨 이유라도 있나?”

“언니 때문이죠.”

유스티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언니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것 같아요. 빨리 육지에 내려 주고 싶은데.”

“아…….”

유스티아의 말을 듣고 시리우스는 턱을 쓰다듬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군. 어쩐지 조용하다 했어.”

“정말 매정한 사람이군요…….”

리겔 가문의 둘째 딸인 레티시아도 이번 여행에 동행하고 있지만, 멀미 때문에 계속 선실에 누워 있었다.

“내가 한번 진찰해 보지.”

“네?”

유스티아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의사였어요?”

“의사는 아니지만, 의술에도 조금 조예가 있지.”

시리우스는 레티시아가 있는 선실로 향했다.

“제부……?”

레티시아는 땀에 젖은 얼굴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많이 불편하신 모양이군요.”

“보면 알잖아…….”

“예전부터 이러셨습니까?”

“아니, 이런 적이 없어. 그래서 배를 탄 거였는데…….”

“제가 한번 진찰해 보겠습니다.”

시리우스는 레티시아에게 다가가 손목을 붙잡았다.

“제, 제부, 갑자기 왜 손목을…….”

“잠시만요.”

시리우스가 레티시아의 손목을 잡은 건 진맥을 하기 위해서다.

원래 무공을 익히다 보면 기초적인 진맥 정도는 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시리우스, 왜 그래요?”

옆에서 지켜보던 유스티아가 물었다.

시리우스의 표정이 딱딱해졌기 때문이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예요?”

“아니…… 그냥 멀미야.”

그렇게 둘러대고, 시리우스는 레티시아의 손목 안쪽에 손을 댔다.

그리고 손목 안쪽 주름에서 2촌 떨어진 내관(內關)을 꾹 눌렀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윽……?”

내관(內關)은 멀미와 구역감의 특효혈이다.

단순히 지압만 하는 게 아니라, 내공을 불어넣는 거라 효과가 좋을 것이다.

실제로 레티시아의 얼굴색이 금방 좋아지기 시작했다.

“어? 왠지 속이 편해지는 듯한…….”

“금방 좋아지실 겁니다. 쉬고 계십시오.”

그렇게 말하고 시리우스는 바로 선실에서 나왔다.

“시리우스, 방금 뭘 한 거죠?”

“말했잖아. 조금 조예가 있다고.”

“아무리 그래도…….”

따라온 유스티아가 미심쩍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아까 손목을 잡고 있었을 때 표정이 굳어진 건 어째서죠?”

“그건…….”

시리우스는 말꼬리를 흐렸다.

그 모습을 보고 유스티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언니한테 무슨 심각한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아니, 그건 아닌데…….”

잠시 망설인 뒤,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배 속에 아기가 있는 것 같더군.”

“…….”

원래 다른 혈 자리도 지압해 주려 했지만, 임신에 영향을 끼칠 수 있어서 그나마 안전한 내관혈만 지압했다.

내관혈은 입덧에도 효과가 있는 혈자리라 괜찮다.

“그러면 이번에만 심하게 멀미를 한 것도…….”

“아마 그것 때문이겠지.”

“으음…….”

서로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이 사실 자체는 축복할 만한 일이지만, 이전에 2세 계획이 어떻게 되냐고 레티시아가 타박하던 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확실한 건 아니니 레티우드 가문에 도착하면 그곳 의사에게 진찰을 받아야 할 거야.”

“그렇군요. 정말로 아기가 생긴 건지 확인해야…….”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 때.

복도 너머에서 벨리드가 나타났다.

“시리우스, 이제 샤히트 수적단의 본거지로 간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 거야?”

“나도 같이 가지.”

이 어색한 분위기에서 빨리 탈출해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시리우스는 벨리드한테 걸어갔다.

“아, 시리우스.”

복도를 걷는 도중, 벨리드가 시리우스에게 귓속말을 했다.

“정말 축하한다.”

“축하라니?”

“너희 분위기가 너무 냉랭해서 혹시나 했는데, 역시 사이가 좋았던 거구나. 너도 이제 아빠가 되었으니 좀 더 너그러운 마음을…… 아얏!”

“엿들으려면 제대로 엿들어라, 멍청한 녀석.”

시리우스는 벨리드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 * *

샤히트 수적단의 본거지는 기암절벽 사이에 교묘하게 숨겨진 동굴에 있었다.

“와, 어떻게 이런 곳이 다 있지?”

함께 온 벨리드가 감탄했을 정도로 절묘한 위치에 숨겨져 있는 동굴이었다.

확실히, 이런 곳에 숨어 있으면 토벌대가 와도 잡기 어려울 것이다.

“들어가지.”

시리우스는 수하들을 이끌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내부는 상당히 넓었다.

수적들의 잔당이 남아 있었지만 모조리 제압했다.

“벨리드, 놈들이 쌓아 놓은 재물을 바깥으로 옮겨라. 필요하다면 배를 더 부르고.”

“일만팔백구십팔…… 알겠어!”

벨리드에게 지시를 내린 뒤, 시리우스는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샤히트의 방이 있었다.

“…….”

샤히트의 취미인지 병장기들이 많이 장식되어 있었다.

저것들도 밖으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하며 시리우스는 내부를 탐색했다.

그리고…… 편지 몇 장을 발견했다.

“베르디안.”

시리우스는 방문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베르디안에게 말을 걸었다.

“남부 지부는 염제(炎帝)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건가?”

“후우…….”

베르디안이 한숨을 내쉬었다.

“맞아요. 남부 지부는 염제의 영향력이 강하죠. 남부 지부장도 염제의 제자고.”

“샤히트가 사용하던 화염의 마법검도 그쪽에서 전수받은 기술이겠군.”

샤히트가 보관하고 있던 편지는, 연맹 남부 지부의 간부가 보낸 것이었다.

상납금을 독촉하는 내용이었는데, 염제와 남부 지부장을 들먹이면서 샤히트를 협박하고 있었다.

샤히트도 결국 연맹에게 착취당하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말해 두지만, 남부 지부에 관해서는 저도 아는 게 별로 없어요. 그러니 더 이상은 저도 확인해 줄 수 없네요.”

“지난번에도 들었어.”

남부 지부는 동부 지부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구조도 다르다고 한다.

지부들끼리도 정보 공유가 잘 안 되기 때문에 독왕의 제자로서 동부에 파견되어 있던 베르디안은 남부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았다.

“하지만 염제 파벌은 독왕에 적대적이라는 얘기도 했었지.”

“…….”

“그러니 네가 염제 파벌과 싸운다고 해도 독왕을 배신하는 행위가 되지는 않아.”

어차피 남부 지부는 베르디안을 생포하여 독왕을 견제하기 위한 무기로 써먹고 싶을 것이다.

베르디안 입장에서는 이대로 시리우스 편에 서서 남부 지부와 적대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앞으로도 협조 부탁하지, 베르디안.”

“그러니까, 아는 게 별로 없어서 협조해 줄 게 없다니까요…….”

베르디안이 투덜거리면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적염초(赤炎草)는 어떤 성질을 지닌 약초지?”

“……!”

생각지 못한 질문에 베르디안이 움찔했다.

“그건 왜…….”

“편지를 보니 적염초를 구하면 보내 달라는 얘기도 적혀 있어서 말이야.”

시리우스는 편지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름부터가 수상한데…… 혹시 이게 백빙화와 반대 성질을 지닌 약초인가?”

“…….”

그동안 시리우스는 백빙화나 그에 준하는 약초를 계속 찾아왔다.

하지만 적염초는 완전히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염제에게 진상해야 하니 작은 조각이라도 얻으면 바로 알려 달라고 적혀 있던데.”

“후우…….”

결국, 베르디안은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적염초가 바로 백빙화에 대응되는 약초예요. 불꽃처럼 뜨거운 기운을 갖고 있죠.”

“역시 그렇군.”

드디어 찾았다.

극양(極陽)의 영약으로 작용할 수 있는 약초를 찾아낸 것이다.

“염제는 얼마 전부터 적염초를 구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백빙화 이상으로 희귀한 약초라서, 아직 입수하지 못했을 거예요.”

“적염초를 뭐에 쓰려는 거지?”

“거기까지는 저도 몰라요. 독왕 전하라면 알고 계시겠지만.”

“흠…….”

염제는 화염 마법의 대가인 것 같으니…… 그런 쪽으로 활용할 생각일 것이다.

“그러면 남부 지부 놈들보다 적염초를 찾아내서 확보해야겠군.”

“정말로 희귀한 약초이니 찾아내는 건 쉽지 않을 거예요.”

“네가 도와주면 조금 더 쉬워지지 않을까?”

“…….”

베르디안이 입을 다물고 인상을 찡그렸다.

독왕의 제자인 베르디안은 약초에도 조예가 있다.

시리우스는 적염초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니 베르디안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아, 그리고.”

“또 뭐죠?”

“여기 있는 검 말인데.”

시리우스는 장검 하나를 집어 들었다.

샤히트의 소장품 중에서 질이 가장 좋아 보였던 검이다.

“칼날이 약간 불그스름한데, 왜 이런 거지?”

“이건 이그레트식(式) 가공을 한 요철검(燎鐵劍)이네요.

“요철검?”

“마력이 잘 흐르도록 처리를 한 거예요. 남부의 이그레트 공방에서만 만드는데…… 최상급품이네요.”

“최상급품이라…….”

샤히트가 쓰기에는 너무 작아서 그냥 장식만 해 놓은 모양인데, 시리우스에게는 적당한 크기였다.

다만 완벽하지는 않다.

이 정도 검을 만들 수 있는 장인이라면 시리우스가 원하는 검도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엔트로빌의 슈미츠에게 주문해 놓았던 것도 있지만…… 이그레트 공방에도 한 번 찾아가 봐야겠군.”

시리우스는 붉게 빛나는 검을 챙겼다.

마침 샤히트의 대검을 받아 내는 과정에서 그동안 쓰던 검이 약간 뒤틀린 상태였다.

한동안 이 요철검을 사용하는 게 좋을 것이다.

“이그레트 공방은 함부로 접근하지 않는 편이 좋을 텐데요.”

“어째서지?”

“이그레트 공방은 연맹 남부 지부와 연결되어 있거든요.”

베르디안의 목소리를 듣고, 시리우스는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아는 게 별로 없다더니 그냥 겸손이었군. 박학다식하네.”

“짜증…….”

베르디안이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어쨌든, 당신은 그런 것들보다 다른 걸 더 신경 써야 하는 것 아닌가요?”

“다른 거라니?”

“레티우드 가문이요. 이제 곧 도착할 거잖아요?”

레티우드 가문.

남부 연합을 구성하는 중견 가문으로, 레티시아는 그 차남인 데이비드 레티우드와 결혼했다.

“레티우드 가문은 줄곧 리겔 가문을 장악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어요. 당신을 눈엣가시처럼 생각하고 있겠죠.”

그렇다.

레티우드 가문은 레티시아를 차기 가주로 만들어 리겔 가문을 장악하는 걸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시리우스의 등장으로 일이 틀어졌다.

“레티시아 님은 동생의 남편인 당신을 친근하게 생각하고 있겠지만, 레티우드 가문이 그러리란 보장은 없어요.”

“…….”

“어쩌면 당신의 목숨을 노릴지도 모르는 일이죠. 어떻게 할 건가요?”

베르디안의 질문에 시리우스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내 목숨을 노려 준다면 나로서는 오히려 반가운 일이지.”

“뭐라고요?”

“레티우드 가문이 어떤 가문인지 단번에 파악되니까.”

상대편이 속마음을 숨긴 채 기회만 엿보고 있으면 행동에 나서기 어렵다.

하지만 그쪽이 먼저 칼을 들이댄다면…… 이쪽도 칼을 뽑기 쉽다.

“걱정 안 해 줘도 된다, 베르디안.”

“시리우스 님, 당신…….”

“인척(姻戚) 관계인 가문이라고 해서, 손속에 사정을 둘 생각은 없으니까 말이다.”

아내의 언니가 시집간 가문이라고 해서 특별히 봐주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전생에서 아내의 가문을 배려해 줬다가 큰 실패를 경험했다.

이번에도 그런 실수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레티우드 가문이 나한테 손을 내밀지, 칼을 내밀지…… 지켜봐야지.”

레티우드 가문의 운명.

그것은 그들이 스스로 결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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