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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명가의 절대무신-64화 (64/129)

몰락명가의 절대무신 64화

64화. 남부 최초의 맹원

레티우드 가문은 긴 역사를 지닌 명문가다.

천 년의 역사를 지닌 대륙 5대 명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6백 년의 역사를 지녔다.

이 대륙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가문이라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존경의 대상이 된다.

그 역사에 걸맞은 힘을 갖고 있으면 더욱 좋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레티우드 가문은 역사와 실력을 겸비한 명문가라 할 수 있다.

제법 많은 병력을 보유하고 있고, 대대로 훌륭한 마법사를 배출했다.

가주인 앤드류 레티우드가 병석에 누운 상태이지만 자식들이 유능하다.

특히 장남인 안드레스는 삼십 대의 나이로 8서클에 도달했다.

언젠가 9서클에도 도전할 수 있을 테고, 미래가 밝다.

이렇게 되면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남부의 중견 가문에서 안주하지 않고, 대륙 전체가 알아주는 명문가로 발돋움할 테니까.

그러기 위해 눈독을 들인 것이, 대륙 5대 명가 중 하나인 리겔 가문이었다.

데이비드와 결혼한 레티시아를 차기 가주로 만들고, 리겔 가문을 레티우드 가문의 보호하에 놓는다.

대륙 5대 명가의 보호자를 자청하면서 대륙에서의 발언권을 점차 늘려 나가, 최종적으로는 리겔 가문을 대신하여 대륙 5대 명가의 일각이 된다.

그게 안드레스 레티우드의 계획이다.

하지만 이 계획에 큰 차질이 생겼다.

시리우스 카니스루트가 등장해 버렸으니까.

“시리우스…….”

집무실에 불쑥 나타난 시리우스를 보면서, 안드레스가 헛기침을 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군. 우리는 딱히…….”

“어떤 부분이 오해입니까?”

시리우스는 소파에 앉은 채 냉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무엇을 오해하고 있는지 알려 주시죠.”

“…….”

안드레스가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건 해명하면 해명할수록 구차해진다.

그냥 없었던 일로 취급하고 화제를 돌리는 게 최선이다.

“시리우스, 우리는 그냥…….”

“데이비드.”

안드레스는 동생인 데이비드의 발언을 중간에 끊었다.

“여기서 꾸물거리지 말고, 가서 리겔 가문 사람들을 응대하도록 해라. 네 아내도 쉬게 하고.”

“아, 알겠습니다.”

데이비드가 허둥지둥 바깥으로 나가고 문을 닫았다.

집무실에는 시리우스와 안드레스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시리우스, 안드레스한테 얘기를 들었는데…… 루펠치아 자경단의 수장을 죽이고 샤히트 수적단도 괴멸시켰다고 하더군.”

안드레스가 헛기침을 하면서 화제를 돌렸다.

“여러 가문의 골칫덩이였던 놈들이야. 그래서 자네가 놈들을 처리해 준 건 고맙게 생각하지만…… 너무 섣불렀어.”

“섣부른 짓이었습니까?”

“그래, 하다 못 해 우리한테 미리 얘기라도 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안드레스가 시리우스의 표정을 살폈다.

“외부 세력이 활개 치는 걸 좋아하는 가문은 어디에도 없어. 동부 출신의 자네들이 남부에서 피바람을 불러일으킨다면 다들 언짢아하겠지. 그렇게 되면…….”

“신경 쓰지 않습니다.”

“뭐라고?”

“방금 여러 가문의 골칫덩이였다고 하셨죠.”

시리우스는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골칫덩이를 정리해 줬는데 언짢아한다? 그런 배은망덕한 사람들은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저희한테 고마워하는 사람들하고 친하게 지내면 되는 거죠.”

“……!”

“안드레스 님, 혹시 레티우드 가문에서는 저희 행동을 언짢게 생각하는 겁니까?”

“아니, 그건…….”

안드레스가 말꼬리를 흐렸다.

그 모습을 보면서 시리우스는 코웃음을 쳤다.

“그냥 솔직하게 얘기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뭐, 뭐라고?”

“듣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미 속내를 드러내셨고, 서로 터놓고 얘기하는 편이 효율적일 텐데요.”

방금 전, 안드레스는 시리우스를 어떻게 견제할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시리우스는 바깥에서 그걸 다 듣고 있었다.

방음이 잘되어 있는 방이었지만 시리우스한테는 별 의미 없는 얘기였다.

“저를 제거하고 싶으십니까?”

“무, 무슨 소리를…….”

“레티우드 가문에서는 제가 없어야 리겔 가문을 집어삼키기 쉽겠죠.”

“……!”

안드레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우리는……!”

“솔직하게 얘기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안드레스 님.”

시리우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

“저는 상관없습니다.”

“뭐?”

“저를 제거하고 싶으시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

상식을 벗어난 말에 안드레스가 눈을 크게 떴다.

“마침 남부로 와 있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레티우드 가문 앞에 나타났는데, 지금 죽이지 않으면 언제 죽이겠습니까?”

“대, 대체 자네는…….”

안드레스는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실 시리우스의 말이 맞다.

시리우스가 동부에 머무르고 있는 상태면 레티우드 가문이 손을 쓰기 어렵다.

이렇게 남부에 찾아온 지금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물론 저도 가만있지는 않을 겁니다.”

“뭐?”

“그쪽이 칼을 들이댄다면 저도 칼을 들이대야죠.”

“……!”

“당연한 것 아닙니까?”

할 말을 잃은 안드레스에게, 시리우스가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로 입장을 확실히 하자는 겁니다, 안드레스 님…….”

“…….”

“사생결단을 낼 거면 최대한 빨리 결론을 냅시다. 그게 서로에게 효율적이죠.”

시리우스의 목소리에는 여유가 있었다.

“지금 당장 저를 죽여 버리고, 레티시아 님을 데리고 동부로 달려가십시오. 그리고 리겔 가문의 보호자를 자처하면서 대륙 5대 명가 중 하나를 손에 넣으시는 겁니다.”

“…….”

“명분이 걱정되신다면 시리우스 카니스루트는 샤히트 수적단과 싸우다가 입은 부상 때문에 급사했다고 발표하십시오. 제가 미리 유서도 써 드리겠습니다.”

이건 엄청난 배려였다.

시리우스가 말하는 대로 하면 레티우드 가문은 아무런 문제 없이 리겔 가문을 집어삼킬 수 있다.

하지만…….

“물론 그쪽도 미리 유서를 쓰십시오.”

“……!”

“그래야 공평하지 않겠습니까?”

안드레스는 전율했다.

시리우스가 이런 얘기를 하는 건, 딱히 레티우드 가문에 양보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서로 정면 대결을 하면 레티우드 가문을 괴멸시킬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아무리 불리한 조건에 놓여 있다고 하더라도.

“시리우스, 역시 무슨 오해가…….”

“안드레스.”

그 순간.

안드레스는 갑자기 숨이 막히는 걸 느꼈다.

“이미 너는 속내를 보였다. 시간 낭비는 그만하도록 하자.”

“……!”

지금 시리우스는 예의 없는 말투를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드레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갑자기 느껴진 위압감에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으니까.

“시간을 끌어 봤자 좋을 게 없습니다, 안드레스 님…….”

“허억…….”

시리우스가 다시 존댓말을 사용하기 시작하자 안드레스의 숨통도 트였다.

“시, 시리우스.”

안드레스는 거칠게 숨을 쉬면서 시리우스의 얼굴을 쳐다봤다.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나?”

“그걸 왜 저한테 묻습니까? 안드레스 님이 결정하셔야죠.”

“시리우스……!”

안드레스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기선을 완전히 제압당했다.

시리우스가 이렇게 나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 못 했다.

아무리 시리우스가 동부에서 패도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해도, 인척 관계인 레티우드 가문한테까지 이럴 줄은 몰랐다.

지금 시리우스는 서로 공정하게 싸워서 결판을 내자는 듯이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건 실상 레티우드 가문을 괴멸시키겠다는 선언이다.

동부에서 여러 세력을 차례차례 괴멸시켰던 것처럼, 레티우드 가문도 박살 내겠다는 뜻이다.

안드레스도 자기 실력에 자신이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시리우스와 직접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니 숨이 콱 막혔다.

동부 최강의 마법사로 이름 높았던 발레리온 아그타스도 시리우스한테 처참하게 패배했다고 한다.

자신도 그런 꼴을 당하게 되는 것 아닐까?

그런 상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서로 사생결단을 낼 수밖에 없는 건가? 다른 길은 없냔 말이다!”

“당연히 있지요.”

시리우스가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서로 싸우지 않고 손을 잡으면 됩니다.”

“손을?”

“물론…… 더 이상 불필요한 다툼이 없도록, 레티우드 가문은 리겔 가문의 후계자 문제에 더는 관여하지 말아야겠지요.”

“……!”

그건…… 레티시아를 리겔 가문의 차기 가주로 만드는 걸 포기하라는 얘기였다.

그 부분만 포기하면 다툴 이유가 없어지는 건 맞다.

하지만…… 레티우드 가문으로서는 쉽게 양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제가 만들고 있는 맹(盟)에 참가해 주십시오.”

“뭐……?”

“흑회들의 연맹하고는 다릅니다. 이름을 아직 정하지 못했는데…… 하여간 이 연맹에 레티우드 가문도 참가하십시오.”

“레티우드 가문도 참가하라고? 동부의 세력들이 모인 동맹이라고 들었는데…….”

“남부에서의 첫 참가자가 되겠군요. 명예로운 일입니다.”

안드레스가 입을 떡 벌렸다.

“안드레스 님, 저는 이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맹을 만들려 합니다.”

“대륙 전체?”

“생각해 보십시오, 안드레스 님.”

시리우스는 천천히 말했다.

“그동안 레티우드 가문은 루펠치아 자경단이나 샤히트 수적단 같은 놈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어째서였죠? 레티우드 가문은 흑회들이 사람들을 마구 수탈해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가문입니까?”

“그, 그렇지는 않아!”

“그렇겠죠. 여러 가지 사정이 있을 겁니다. 거리 때문일 수도 있고, 다른 가문과의 신경전 때문일 수도 있죠.”

대륙은 넓다.

그렇기 때문에 치안 공백이 생기는 곳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제가 만들어 나갈 맹은, 그런 곳까지 세세하게 챙길 수 있는 조직이 될 겁니다.”

“……!”

“동부에서는 이미 많은 가문이 참가하고 있습니다. 남부의 가문들도 동참해 주기를 바랍니다.”

안드레스가 침을 삼켰다.

“그러면 그 맹이라는 건…… 그렇게 대륙 구석구석을 챙기기 위해서 만드는 조직인가?”

“그것뿐만은 아닙니다.”

시리우스가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특정 가문의 힘으로는 대항하기 어려운 거악(巨惡)을 쓰러뜨리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

무림에서도 천마신교나 흑사련 같은 거대한 위협이 있었다.

그런 놈들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개별 문파가 아니라 무림맹 차원에서 움직여야 했다.

“그건 흑회들의 연맹을 말하는 건가?”

“그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죠. 가령…… 본분을 잊고 악행을 저지르는 명문가도 제가 쓰러뜨릴 대상에 해당됩니다.”

“……!”

그 말을 들은 순간, 안드레스의 눈동자가 떨렸다.

“한 가지 확인하겠습니다, 안드레스 님.”

안드레스의 표정을 확인하면서, 시리우스는 천천히 말했다.

“레티우드 가문이 리겔 가문을 집어삼키고 대륙 5대 명가의 일각이 되려고 하는 건…… 단순히 권력욕 때문입니까?”

“뭐……?”

“다른 이유는 없냔 말입니다.”

갑자기 안드레스가 주먹을 꽉 쥐었다.

피가 날 정도로 입술까지 깨무는 모습을 보면서, 시리우스는 전생을 떠올렸다.

천랑무제 백무랑의 친위대인 십이위병 중에서 신귀(申鬼)이라는 놈이 있었다.

그는 부모의 원한을 갚기 위해 거대 문파를 노리던 복수귀였다.

백무랑 앞에서 본심을 토로할 때의 신귀의 모습과 지금 안드레스의 모습은 많이 닮아 있었다.

“동부를 떠나기 전에 저희 가주님이 귀띔해 주셨습니다.”

“루, 루트베인 님이……?”

“레티우드 가문은 어떤 ‘명가’에 원한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 복수를 위해, 그들과 맞먹을 수 있는 가문으로 성장하려던 것 아닙니까?”

“……!”

그렇다.

이것이 레티우드 가문이 리겔 가문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다.

남부의 중견 가문으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복수를 할 수 없다.

하지만 대륙 5대 명가와 동등한 지위를 손에 넣는다면…… 복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갖고, 레티우드 가문은 리겔 가문을 병합하려 했다.

“시, 시리우스, 그 얘기는…….”

“다른 사람에게 발설할 생각은 없습니다. 유스티아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비, 비밀을 지켜 주게. 이건 내 동생인 데이비드도 모르는 일이야. 지금 병석에 누워 있는 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 준 얘기니까.”

“걱정 마십시오.”

시리우스는 안드레스를 안심시켰다.

“안드레스 님, 그 복수가 정당한 것이라면 제가 도와드릴 수도 있습니다.”

“뭐, 뭐라고?”

“상대가 거대한 악(惡)이라면 함께 싸워야죠. 그러기 위한 맹입니다.”

상대가 명망 높은 명문가라도, 세상을 위해서라면 칼을 들이대야 한다.

그것이 시리우스가 만들어 나갈 진정한 무림맹이다.

“…….”

안드레스가 입을 다문 채 시리우스의 얼굴을 쳐다봤다.

“결국 선택권은 우리에게 있는 거군.”

“그렇지요.”

시리우스는 레티우드 가문에 선택권을 줬다.

리겔 가문의 주도권을 놓고 사생결단을 낼 것이냐.

맹에 참가하여 함께 싸울 것이냐.

레티우드 가문이 어떤 걸 선택하느냐에 따라, 시리우스의 태도도 달라질 것이다.

“대답은…… 어떤 식으로 하면 될까.”

“굳이 말로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시리우스는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저하고 사생결단을 내고 싶으시다면 제가 이곳에 머무는 동안 언제든지 습격하십시오. 다만 저희 일행은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당연하지. 그런 짓을 한다면 자네도 우리 가족에게 손을 댈 테니까.”

“그런 일은 없어야 하겠죠.”

안드레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하고 손을 잡을 생각이라면?”

“조만간 제가 어떤 곳을 습격할 것 같은데, 맹의 일원으로서 지원을 해 주십시오.”

시리우스는 천천히 말했다.

“이그레트 공방이라는 곳이 있다더군요. 연맹과 연결되어 있다는데, 거기를 한번 들쑤셔 볼 생각입니다.”

“이그레트 공방? 거기가 연맹과 연결되어 있었다고?”

“내부 정보이니 확실할 겁니다.”

“으음…….”

안드레스가 신음 소리를 냈다.

“시리우스.”

“네, 안드레스 님.”

“자네한테 협력한다고 해 놓고…… 나중에 뒤통수를 칠 수도 있어. 그건 걱정하지 않는 건가?”

“그러고 싶으면 그렇게 하십시오.”

“뭐라고?”

“물론 그때는 저도 안드레스 님과 정정당당하게 싸우려 하지 않을 겁니다.”

시리우스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드레스 님이 가족들과 어울리며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갑자기 안드레스 님 눈앞에 나타나겠죠.”

“…….”

“눈앞이 아니라 등뒤에 나타날 수도 있고, 뭐 그렇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시리우스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면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레티시아 님이 아이들을 소개해 주겠다고 성화여서 말입니다.”

“아…….”

안드레스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잔뜩 살벌한 얘기를 하다가 조카들을 만나러 간다니, 왠지 현실감이 없었다.

“남부 최초의 맹원(盟員)이 되어 주시는 걸 기대하겠습니다, 안드레스 레티우드.”

그 말을 남기고, 시리우스는 집무실을 뒤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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