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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명가의 절대무신-65화 (65/129)

몰락명가의 절대무신 65화

65화. 그것이 진정한 패도입니다

안드레스 레티우드에게 뜻을 전한 뒤.

시리우스는 유스티아와 함께 레티우드 가문의 사람들과 교류했다.

레티우드 가문은 리겔 가문에서 온 사람들을 정중히 대접해 줬다.

그러던 도중, 레티시아한테 셋째가 생겼다는 사실이 정식으로 밝혀져서 소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벨리드 형아, 나도 하면 안 돼?”

“일만구천이백삼십육…… 너한테는 무거워서 안 돼!”

벨리드가 정원에서 가검을 휘두르고 있자 레티시아의 첫째 아들이 다가와서 관심을 보였다.

어째서인지 레티시아의 자식들은 시리우스보다 벨리드한테 더 호감을 느끼는 듯했다.

“정신 연령이 비슷해서 그런 건가?”

“제가 보기에는 시리우스도 큰 차이 없는 것 같은데요?”

시리우스가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유스티아가 한마디 했다.

“평소 벨리드 님이나 알레이온 씨하고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면 남자들은 몇 살이 되어도 비슷하게 노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거기 베르디안, 웃지 마라.”

근처에 있던 베르디안이 피식했기 때문에, 한번 째려봤다.

“어린애한테 친근하게 느껴지는 성격이 아니라서 그렇겠죠.”

“그 점에 관해서는 당신도 마찬가지겠지, 유스티아.”

“네, 우리 모두 육아에는 어울리지 않는 성격이네요.”

그 점은 동감이었다.

레티시아는 동생 부부가 빨리 아이를 갖기를 바라고 있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나도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지. 하지만 금방 생각이 바뀌더군.”

“데이비드 님.”

레티시아의 남편, 데이비드 레티우드가 다가왔다.

“자네들도 아이가 생기면 달라질 거야.”

“네…….”

시리우스와 유스티아는 빠르게 시선을 교환했다.

그냥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다가 화제를 돌리자, 하고 서로 시선만으로 합의했다.

이런 것만큼은 서로 호흡이 잘 맞는 부부였다.

“솔직히 나도 불안감을 느꼈어. 내가 아버지 노릇을 잘할 수 있을지 말이야. 하지만 갓 태어난 첫째 아이를 본 순간, 앞으로 내 인생은 이 아이를 위해 바치자는 생각이 들더군.”

“그러셨군요.”

“훌륭하십니다.”

영혼 없는 대답이었다.

“자네들도 아이가 생기면 많은 것을 깨닫게 될 거야. 한 명의 인간으로서도, 부부로서도 크게 성장하게 되겠지.”

“기대되는군요.”

“참고하겠습니다.”

그렇게 유부남의 가르침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자 결국 벨리드가 아이를 상대로 검술을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나무 막대기로 삼재검법을 펼치는 모습이 꽤 그럴싸했다.

“시리우스, 저거 괜찮은 건가요?”

“어린아이 놀이 상대를 해 주는 거니까…… 괜찮겠지.”

원래 벨리드는 아직 누군가를 가르칠 수준이 아니다.

아직도 초보 중의 초보니까.

“시리우스.”

한동안 아이가 검술 흉내를 내는 걸 구경하고 있자 데이비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형님이 요새 고민에 빠져 계시더군.”

“…….”

“자네하고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 고민하고 계신 것 같아.”

시리우스는 자신이 떠나기 전에 선택을 해 달라고 안드레스에게 부탁했다.

가문의 미래가 달린 일이니, 고민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체 형님한테 무슨 얘기를 한 거지?”

“그건 제가 아니라 안드레스 님한테 들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으음…….”

시리우스의 냉정한 대답에 데이비드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시리우스, 솔직히 말해도 될까?”

“말씀하시죠.”

“나는 자네의 행보가 우려스러워. 솔직히 그리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아.”

솔직한 발언이었다.

“자네는 너무 패도적이야.”

패도적.

천랑무제 백무랑 시절에도 들었던 얘기다.

“그동안 자네가 여러 흑회 조직들을 토벌한 건 인정해. 하지만 결국 자네는 칼을 휘둘러서 사람들을 굴복시켰을 뿐이지. 그런 패도적인 방식…… 대륙 5대 명가인 리겔 가문의 막냇사위답지 않다고 생각한다.”

“데이비드 님, 그건…….”

유스티아가 한마디 하려 했지만, 시리우스가 눈빛으로 제지했다.

데이비드는 리겔 가문의 둘째 사위다.

그렇다면 막냇사위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시켜 두는 게 좋을 것이다.

“데이비드 님.”

시리우스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패도(覇道)라는 말이 어디서 왔는지 아십니까?”

“뭐? 글쎄…… 그런 부분에는 조예가 없어서.”

데이비드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먼 옛날…… 세상은 하늘의 뜻을 받든 군주에 의해 이상적으로 다스려지고 있었습니다.

“……?”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군주에 의한 통치가 어려워졌습니다. 하늘의 뜻을 아무리 얘기해도 사람들은 귀담아듣지 않았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데이비드에게, 시리우스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음…… 세상이 질서를 잃고 혼란스러워졌겠지.”

“맞습니다.”

시리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강력한 힘을 지닌 사람들이 군주를 대신하여 세상의 질서를 유지했습니다. 그들을 일컬어 패자(覇者)라고 했습니다.”

“패자……?”

“패자의 도(道)가 바로 패도입니다.”

“아……!”

물론 이것은 이 세계의 얘기가 아니다.

천랑무제 백무랑이 살던 세계의 역사를 얘기했을 뿐이다.

이 세계에서 패도의 어원이 뭔지는 알 수 없다.

시리우스는 그저 자신의 길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 얘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패도라는 것은 단순히 힘으로 모든 것을 제압하는 폭력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러면…….”

“숭고한 이상이 통하지 않는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질서를 지키기 위해 힘을 행사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패도입니다.”

“아…….”

데이비드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물론 이상만으로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 수 있다면 더 좋겠지요. 하지만 이 시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

“명문가들이 아무리 고상한 척해 봤자 세상을 바로잡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패도로써 세상을 바로잡으려 하는 겁니다.”

물론 이것도 하나의 이상이다.

실제 역사를 살펴보면 패도가 세상을 바로잡은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이 세상에서 이상적인 패도를 실현할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진정한 무림맹을 만들려 하는 거니까.

“으음…….”

데이비드가 신음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그런 신념을 갖고 있을 줄은 몰랐군. 그래, 그게 자네가 패도를 추구하는 이유인가…….”

여러 번 고개를 끄덕이며 시리우스의 말을 음미한 뒤, 데이비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시리우스, 하나만 더 솔직하게 말해도 될까?”

“그러시죠.”

“나는 카니스루트 가문을 그리 대단치 않게 생각하고 있었어. 옛날부터 학문 연구를 많이 했다고 들었지만…… 어떤 업적을 이뤘는지는 전혀 듣지 못했거든.”

그렇게 고백한 뒤, 데이비드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내 착각이었군.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옛 역사에서 그런 진리를 도출한 뒤, 그걸 자신의 신념으로 삼아 직접 실천에 옮기다니……. 이건 학자로서 궁극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겠지.”

“과찬이십니다, 데이비드 님.”

“고상한 인격을 지니신 장인어른이 왜 자네 같은 사람에게 힘을 실어 주는지 궁금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군. 자네의 깊이를 다 꿰뚫어 보셨던 모양이야.”

데이비드가 유스티아를 쳐다보자 유스티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버지도 비슷한 대화를 나누고 시리우스를 신뢰하게 되셨습니다.”

“역시 그랬군.”

“그런데 데이비드 님, 오늘 너무 지나치게 솔직하시네요. 제 남편이 상처받지 않았을까 걱정됩니다.”

“그, 그런가? 미안하군…….”

데이비드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숙였다.

괜찮다고 미소를 지으면서 시리우스는 슬쩍 시선을 돌렸다.

방금 전까지 정원 한편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던 안드레스는, 이미 자리를 뜬 상태였다.

* * *

안드레스는 줄곧 혼란스러웠다.

그동안 시리우스라는 인물에 관해서 계속 정보를 수집해 왔다.

하지만 직접 만난 시리우스는 상상했던 것하고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대체 어떻게 저런 인물이 있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모르겠어…….’

복잡한 심경에 휩싸인 채 안드레스는 본성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레티우드 가문의 가주인 앤드류 레티우드의 침실이 있었다.

“아버지, 접니다.”

안드레스는 침실에 발을 들였다.

넓은 침실 한가운데에 창백한 얼굴의 노인이 잠들어 있었다.

“…….”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안드레스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앤드류 레티우드는 누구보다 정열적인 남자였다.

레티우드 가문을 이끌고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남부를 위해 헌신했다.

앤드류가 건재했던 시절에는 샤히트 수적단 같은 놈들도 활개 치지 못했다.

하지만 십여 년 전에 몹쓸 일을 당한 이후, 폐인이 되어 이렇게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앤드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는 건, 레티우드 가문에서도 안드레스뿐이다.

동생인 데이비드도 자세한 건 전혀 모른다.

함부로 떠들고 다녀서는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버지.”

잠들어 있는 아버지를 보면서, 안드레스는 입을 열었다.

“저는 그동안 생각했습니다. 대륙 5대 명가와 같은 지위를 손에 넣는다면 그놈들의 죄를 낱낱이 밝힐 수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그놈들.

아버지를 이렇게 만든 놈들.

안드레스는 그 ‘명가’에 복수하기 위해 줄곧 준비해 왔다.

“그렇게 해서 그놈들을 단죄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안드레스는 아까 시리우스가 데이비드한테 하던 얘기를 떠올렸다.

“그건 너무 안이한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가 놈들을 규탄해 봤자…… 놈들은 끄떡도 하지 않겠죠.”

레티우드 가문이 대륙 전체에 놈들의 죄를 아무리 알려도, 다른 가문들은 찬동해 주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명확한 물증도 없으면서 누명을 씌운다고 레티우드 가문을 비난할 것이다.

그 정도로 놈들은 어려운 상대다.

“결국 시리우스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

놈들이 죗값을 치르게 하려면 힘으로 단죄하는 수밖에 없다.

패도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저희 가문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리겔 가문을 집어삼키고 대륙 5대 명가와 동일한 지위를 손에 넣는다고 해도, 놈들과 맞서 싸울 힘을 얻는 건 어려울 겁니다.”

상대가 너무 강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드레스가 죽기 전에 놈들에 맞먹는 전력을 갖추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뿐이겠죠.”

시리우스는 말했다.

자신이 만들어 나갈 맹(盟)은…… 특정 가문의 힘으로는 대항하기 어려운 거악(巨惡)을 쓰러뜨리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안드레스는 그 말에 희망을 걸어 보고 싶었다.

“아버지, 저는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안드레스는 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 대륙 최강의 가문에 맞서기 위해, 시리우스와 손을 잡아 보겠습니다.”

* * *

사흘 뒤.

시리우스는 레티우드 가문을 떠날 채비를 했다.

명목상으로는 천랑표국의 새로운 거래처를 개척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이그레트 공방을 기습하기 위한 것이었다.

“유스티아, 당신은 천랑표국의 일을 진행해.”

“네, 제가 판단해서 움직일게요.”

유스티아는 시리우스와는 따로 움직이면서 천랑표국의 남부 진출을 추진할 것이다.

천랑검단이 유스티아를 호위할 테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그렇게 세 사람만 데려가도 되는 건가요?”

“여럿이서 몰려다닐 필요는 없지.”

시리우스는 이번에도 알레이온, 벨리드, 베르디안을 데려가기로 했다.

베르디안은 거의 전력이 안 되지만 연맹과 관련된 사안에 대처할 때 도움이 될 것이다.

“이그레트 공방은 만만치 않다.”

바로 그때.

붉은 제복을 걸친 안드레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력이 더 필요할 것이다, 시리우스.”

“안드레스 님…….”

유스티아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안드레스를 쳐다봤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차분한 표정으로 그를 맞이했다.

“선택은 끝나셨습니까?”

“시리우스.”

안드레스가 냉정한 표정으로 시리우스를 쳐다봤다.

“지난번에 듣지 못했는데…… 남부 최초의 맹원이 되면 뭔가 특전이 있나?”

“글쎄요. 미처 생각을 못 했군요.”

시리우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원하시는 게 있으면 말씀해 주시죠.”

“먼 훗날이라도 좋으니 가문을 하나 괴멸시켜 줬으면 좋겠군.”

살벌한 얘기였다.

하지만 안드레스의 눈빛은 진지했다.

“부탁해도 되겠나?”

“부탁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안드레스 님.”

시리우스는 차분한 태도로 대답했다.

“그렇게 되어야 마땅한 가문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할 겁니다.”

“그게 네 패도이기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좋다.”

안드레스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렇다면 나도 네가 추구하는 패도에 동참하도록 하지. 이제부터 레티우드 가문은 네가 만드는 연맹과 함께할 것이다.”

남부의 천재 마법사, 안드레스 레티우드.

그가 남부 최초의 맹원으로서 시리우스와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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