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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명가의 절대무신-66화 (66/129)

몰락명가의 절대무신 66화

66화. 이 공방은 우리가 접수한다

시리우스는 이그레트 공방으로 향했다.

알레이온, 벨리드, 베르디안, 그리고 안드레스가 동행했다.

“시리우스, 사실 어제 이만 번을 채웠어.”

말을 타고 가던 도중, 벨리드가 과제를 완수했다는 걸 말해 줬다.

“가검이 무거워서 더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금방 끝나더라.”

“그만큼 네 기초 능력이 성장하고 있다는 뜻이지.”

처음에는 목검으로 일만 번을 달성하는 것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묵직한 쇳덩이인데도 금방 끝났다.

“목검으로 일만 번, 가검으로 일만 번…… 합쳐서 이만 번 기술을 펼치니까 이제 슬슬 감이 오는 것 같더라.”

“감이 와?”

“응, 이 검술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알게 된 것 같아.”

“그래, 알게 된 것 같단 말이지…….”

“시리우스, 그러면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되는 건가?”

눈을 반짝이면서 묻는 벨리드를 향해, 시리우스는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삼만 번 추가해서 오만 번을 채워.”

“왜……!”

벨리드가 말 위에서 뛰어내릴 듯이 반발했다.

“슬슬 알게 된 것 같다니까! 깨달음을 얻었다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지!”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는 걸 깨닫는 게 다음 단계다.”

“뭐, 뭐?”

시리우스의 말에 벨리드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옆에 있던 알레이온은 납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슬슬 알겠다는 기분이 들 때가 가장 위험합니다.”

“보통 그 단계에서 죽는 사람이 많죠.”

베르디안까지 한마디를 하자 벨리드의 표정이 굳어졌다.

“쯧…… 알겠어, 그럼 오만 번까지 해 볼게.”

“그래, 생각만큼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이만일…… 이만이…….”

벨리드는 말 위에서 가검을 휘두르며 다시 연습을 시작했다.

그 기괴한 광경을 보면서 안드레스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이상한 집단이군.”

“빨리 익숙해지시는 게 좋을 겁니다. 적응을 못 하면 계속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죠.”

“으음…….”

베르디안의 말을 듣고, 안드레스가 신음 소리를 냈다.

안드레스는 매우 진지한 성격이다.

이런 분위기에 적응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자네가 누구인지 아직 듣지 못했는데, 자네도 천랑검단인가? 검을 들기에는 너무 가녀린 체구인 것 같은데…….”

“저는 연맹 사람입니다. 포로로 잡혀서 시리우스 님에게 끌려다니고 있죠.”

“뭐?”

안드레스가 눈을 크게 떴다.

“아니, 농담하는 건가?”

“진담입니다.”

“포로로 잡혀서 끌려가고 있는 사람이, 포승도 족쇄도 없이 말을 몰고 있어? 마음대로 도망칠 수 있는 상황이잖아?”

“도망쳐도 소용없다고 시리우스 님이 무섭게 협박해서요.”

“…….”

베르디안의 설명에 안드레스가 할 말을 잃었다.

“시리우스, 이렇게 가녀린 사람한테 대체 얼마나 험한 말을 한 거지? 나이도 유스티아보다 어려 보이는데…….”

“가녀린 사람이 아닙니다, 안드레스 님. 베르디안이 본래 실력을 발휘하면 레티우드 가문을 하루아침에 몰살시킬 수 있을 겁니다.”

“뭐, 뭐라고?”

안드레스가 눈을 크게 떴다.

“나보다 강하단 말인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시리우스는 말을 몰면서 계속 말했다.

“안드레스 님은 8서클의 마도사시니, 몰려오는 다수의 적을 상대로 원거리 공격을 퍼부을 때 가장 실력을 발휘할 수 있으시겠죠.”

“그야…… 그렇지.”

“베르디안은 남몰래 어딘가로 숨어들어가 사람들을 조용히 몰살시킬 때 가장 실력을 발휘하는 사람입니다.”

“……!”

안드레스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한편 베르디안은 입을 삐죽이고 있었다.

“그 힘을 전부 빼앗아 간 분이 그런 얘기를 하세요?”

“전부는 아니지. 머릿속의 지식은 남아 있을 텐데.”

“마법을 쓰지 못하면 제대로 써먹을 수 없다고요.”

시리우스는 베르디안의 투덜거림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안드레스 님, 만약 베르디안 같은 인물이 레티우드 본성에 숨어 들어오면 안드레스 님의 마법으로 대응할 수 있겠습니까?”

“그건…….”

안드레스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모르겠군. 아마 어려울 거다.”

“제가 지금까지 살펴보니 명문가의 마법사들은 다양한 상황에 대응하는 능력이 부족하더군요.”

“…….”

“마법은 매우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는 힘입니다. 그런 특성을 제대로 활용하여 다채로운 전술을 펼쳐야 하는데, 명문가의 마법사들은 그냥 원거리에서 일방적으로 공격 마법을 날리는 것만 연습한 것 같았습니다.”

“아마 아카데미의 교육 때문이겠지.”

안드레스가 딱딱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카데미에서 여러 명문가의 자제들에게 마법을 가르치는 건 딱히 마법 전투의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냥…… 마법이라는 학문을 가르치는 느낌이지.”

“그런 것 같더군요.”

“애초에 명문가 자제들이 실전에 나서는 일은 별로 없다. 웬만한 건 아랫사람들에게 맡기니 말이다. 내 동생인 데이비드도 실전 경험은 거의 없지.”

“안드레스 님은 어떠십니까?”

“나는 남한테 일을 맡기면 영 불안해지는 성격이라서 말이다. 직접 나서는 걸 선호하지.”

그렇게 말하면서 안드레스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자네 말대로 다양한 상황에 대응하는 능력은 부족할 거다. 그러니 자네한테 많이 배우고 싶군.”

“그럼 검술이라도 배워 보시겠습니까? 목검으로 일만 번 연습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만.”

“그건…… 미안하지만 사양하고 싶군.”

안드레스가 벨리드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군요. 안드레스 님이 특기로 하시는 화염 마법을 응용해 화염의 마법검을 펼치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화염의 마법검? 실전성이 없을 것 같은데…….”

“그런 기술, 들어 보신 적 없습니까?”

“미안하군. 처음 듣는 얘기야.”

지난번에 싸웠던 샤히트는 화염의 마법검을 사용했다.

안드레스도 들어 본 적이 없다고 하니 역시 연맹의 염제(炎帝) 파벌을 통해 전수받은 기술이 맞는 모양이다.

“아, 슬슬 보이는군.”

언덕길을 오르자 저 멀리 높은 담벼락으로 둘러싸인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새카만 연기가 여기저기서 올라오고 있어, 대장장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저곳이 이그레트 공방이다.”

마법검에 적합한 요철검(燎鐵劍)을 생산하는 이그레트 공방.

베르디안의 정보가 맞다면 저곳도 연맹 소속일 것이다.

* * *

이그레트 공방은 병장기를 전문으로 만드는 곳이다.

이런 곳은 힘이 없으면 다른 세력들에게 착취당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이그레트 공방은 스스로 힘을 갖췄다.

공방에 찾아와서 돈을 뜯어내려고 하거나 무기를 헐값에 빼앗아 가려는 놈들이 있으면 용서하지 않고 쳐 죽였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연맹 남부 지부의 관계자까지 죽이게 되었다.

이튿날 남부 지부의 간부가 찾아와서 대장장이 중 절반을 죽여 버렸다.

그리고 앞으로 연맹에 복종할 건지, 나머지 절반도 죽을 건지 선택을 강요했다.

이그레트 공방은 그 이후 연맹에 복종하며 요철검 등의 무기를 공급하고 있었다.

“뭐라고? 그게 사실인가?”

공방 구석에서 카드놀이를 하고 있던 남자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들은 근처에 있는 흑회 조직인 ‘나인트 길드’ 소속으로, 이그레트 공방의 관리 및 감시를 위해 파견된 놈들이었다.

“책임자를 만나고 싶다고 하던데…… 어떻게 할까요?”

아틸란 이그레트는 그들 앞에서 고개를 조아렸다.

그는 이그레트식(式) 가공술의 계승자로, 예전에는 이그레트 공방의 수장이었다.

하지만 연맹 관계자를 잘못 건드렸다가 지금은 노예처럼 부려 먹히고 있었다.

“단순히 무기 제작을 의뢰하러 온 건 아닐 테고…….”

얼굴에 흉터가 있는 남자가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는 나인트 길드의 길드장과 형제 사이로, 여기 있는 사람 중 가장 지위가 높았다.

“그런 거면 우리가 응대해야지. 아틸란, 너도 동석해라.”

“알겠습니다.”

다 함께 응접실로 들어갔다.

응접실 안에는 붉은 머리의 남자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네 명의 수하들을 거느린 채.

“안녕하십니까, 안드레스 님.”

“음…….”

안드레스 레티우드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방문해서 미안하군.”

“아닙니다. 고명하신 안드레스 님을 뵐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사실 안드레스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시리우스가 왜 이런 짓을 시키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방금 전, 시리우스는 안드레스한테 앞장서 달라고 부탁했다.

자신들은 안드레스의 부하인 것처럼 행세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는지? 무기 제작 때문입니까?”

“이걸 좀 봐 줬으면 좋겠군.”

안드레스가 검 한 자루를 앞으로 내밀었다.

“이 공방에서 만든 요철검이 맞나?”

“이건…….”

어깨너머로 보고 있던 아틸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희가 만든 요철검입니다. 기억나는군요.”

“샤히트 수적단의 우두머리인 샤히트가 이 검을 갖고 있더군.”

“네?”

“약탈품이 아니라 어디서 정식으로 받은 것 같았다. 어떻게 샤히트에게 넘어가게 되었는지 경로를 조사하고 있는데, 정보를 제공해 줬으면 좋겠군.”

“안드레스 님이 왜 그런걸…….”

“샤히트가 흑회들의 연맹과 깊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거, 얘기가 좀 길어질 것 같군요. 이봐, 차를 가져와.”

얼굴에 흉터가 있는 남자가 부하에게 지시를 내렸다.

“안드레스 님은 연맹에 관심이 있으신 겁니까?”

“동부에서 연맹의 하위 조직이 괴멸되었다는 소식을 들어서 말이다. 남부도 가만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더군.”

“레티우드 가문은 동부의 리겔 가문과 사돈 관계셨죠. 그러고 보니 가족분들은…….”

그렇게 대화를 주고받고 있자 따뜻한 홍차가 준비되었다.

“드시지요. 입에 안 맞으실지도 모르지만.”

“아니, 마시도록 하지.”

솔직히 냄새만 맡아도 하급품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레티우드 가문에서 마시던 홍차하고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다.

하지만 상대가 대접해 주는 차를 거절하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드레스는 내색하지 않고 찻잔에 입을 대려 했다.

하지만 그때 갑자기 불쑥 손을 뻗어 찻잔을 가로챈 사람이 있었다.

“……!”

후룩.

안드레스의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장발의 청년이 홍차를 마셔 버리는 모습을 보고, 나인트 길드 출신들이 눈을 크게 떴다.

“대체 뭐 하는…….”

경악한 건 안드레스도 마찬가지였다.

시리우스가 이런 돌발 행동을 할 거라고는 예상 못 했다.

“베르디안, 확인해 봐.”

시리우스가 한 모금 마신 차를 베르디안에게 건넸다.

베르디안은 잠깐 냄새를 맡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에란트 민들레와 날파리풀 뿌리를 조합했네요. 사람의 판단력을 저하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주로 상대방의 비밀을 캐내고 싶을 때 사용하는 약이죠.”

“……!”

안드레스가 눈을 크게 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 나한테 독을 먹이려 했던 건가!?”

“레티우드 가문의 장남을 독살할 정도로 간이 큰 놈들은 아닙니다. 그냥 안드레스 님이 어떤 속셈인지 알아내기 위해 약을 탔을 뿐이죠.”

시리우스가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드레스 님, 남부 최초의 맹원으로서 흑회들과 싸우려면 이런 일에도 대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이번에 시리우스가 안드레스를 앞장서게 만든 건, 이걸 깨닫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진정으로 세상을 바로잡으려면 그냥 전투 기술을 갈고닦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렇게 지저분한 놈들과 진흙탕 싸움을 하는 법도 알아야 한다.

시리우스는 안드레스가 이걸 실감해 주기를 바랐다.

“이, 이봐,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얼굴에 흉터가 있는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변명을 하려 했다.

하지만 시리우스의 손이 더 빨랐다.

“컥……!”

쫘아악!

싸대기 한 번에 이빨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남자가 피를 뿜으며 쓰러진 직후, 다른 놈들이 다급히 검을 뽑았다.

“이 자식, 뭐야!?”

“뭐 하는 놈이냐……!”

흥분한 놈들을 보면서, 시리우스는 아까 안드레스가 내밀었던 요철검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주위를 쓱 둘러봤다.

높은 담벼락으로 둘러싸인 요새 같은 곳이다.

무림맹의 병장기를 생산하기에 딱 알맞은 장소였다.

“앞으로 이 공방은 우리가 접수한다.”

시리우스는 이곳을 무림맹의 강철각(鋼鐵閣)으로 삼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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