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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명가의 절대무신-69화 (69/129)

몰락명가의 절대무신 69화

69화. 어느 쪽이 후회하고 있지?

싱클레어 검회에서 도망친 놈들이 도착한 곳은, 경치 좋은 산속에 세워진 별장이었다.

“프랜시드 상단이 보유한 별장인 것 같다.”

흑의인 복장을 유지한 채 안드레스가 말했다.

“이번에는 어떻게 잠입할 생각이지?”

“정면으로 들어갑시다.”

“정면?”

싱클레어 검회에서 도망쳐 온 놈들이 별장으로 다가갔다.

정문에는 칼을 찬 경비원들이 있었다.

“멈추십시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지금 상단주님은 중요한 손님과…….”

“싱클레어 검회에서 큰일이 터졌다. 상단주님께 말씀드려야 하니 어서 들여보내 줘!”

심각한 목소리에 경비원들은 바로 문을 열어 줬다.

“일단 복면은 벗읍시다.”

“벗으라고?”

시리우스는 복면만 벗어서 얼굴을 노출시켰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얼굴을 드러낸 안드레스와 함께 정문으로 향했다.

“방금 들어간 사람들 일행이다. 우리도 들어가서 단주님께 보고를 드리겠다.”

“아, 그러시군요. 어서 들어가시죠.”

당당하게 말하자 경비원들은 별 의심도 없이 통과시켜 줬다.

“이게 된다고?”

“분위기만 잘 잡으면 됩니다, 분위기만…….”

시리우스와 안드레스는 앞서 들어간 놈들을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얼굴에는 다시 복면을 썼다.

“단주님! 실례하겠습니다!”

꼭대기 층에는 어깨가 넓고 살이 찐 중년 남자가 있었다.

그는 갈색 피부의 여자와 단둘이서 술을 마시는 중이었다.

“싱클레어 검회에서 큰일이 터졌습니다!”

놈들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그 모습을 보고 시리우스와 안드레스도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무슨 일이냐, 말해 봐라.”

“요클랜드에서 열리고 있던 싱클레어 검회의 연회에 괴한들이 들이닥쳤습니다! 놈들이 연회장을 불태우고 싱클레어 검회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습니다!”

“싱클레어는 어떻게 됐지?”

“저희가 확인은 못했지만…… 목숨을 잃은 것 같습니다!”

“…….”

중년 남자…… 프랜시드가 인상을 찡그리며 술잔을 내려놨다.

“대체 어떤 놈들이 그런 짓을 한 거지?”

“모르겠습니다. 시커먼 옷차림인데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시커먼 옷차림?”

프랜시드가 고개를 내밀면서 물었다.

“너희 뒤에 있는 놈들처럼 말이냐?”

“네?”

고개를 숙이고 있던 놈들이 다급히 뒤돌아봤다.

그리고 두 흑의인의 모습을 확인하고 눈을 크게 뜬 순간.

“억……!”

콰직!

놈들은 벽에 처박혀 기절했다.

순식간에 놈들을 처리한 뒤, 시리우스는 몸을 일으켰다.

그 모습을 보며 프랜시드가 인상을 찡그렸다.

“누구냐.”

“너희는 알 필요가 없…….”

“형님, 너무 남발하면 가치가 떨어지니 그만합시다.”

시리우스에게 제지당한 안드레스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두건을 쓰고…… 딱 봐도 수상한 놈들이군.”

프랜시드가 혀를 찼다.

“누구한테 사주를 받은 거냐? 싱클레어 검회를 먼저 친 뒤 나한테 왔다는 건, 양쪽에 원한이 있는 놈들의 소행이라는 건데…… 얼마 전에 몰살당한 알비온 길드냐? 아니면 슈클레 가문?”

“평소 원한 살 일이 많았나 보군, 프랜시드.”

“사업을 하다 보면 그렇게 되는 법이지.”

정체불명의 흑의인을 앞에 두고도, 프랜시드는 전혀 겁먹은 분위기가 아니었다.

“얼마를 받고 움직이고 있지?”

“금액이 궁금한가?”

“싱클레어는 제법 실력 있는 놈이었다. 부하들도 강했고. 그놈들을 하룻밤 사이에 박살 냈으니 몸값이 꽤 나가는 실력자라는 얘기지.”

프랜시드가 몸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너희한테 의뢰한 놈들보다 값을 더 쳐주겠다. 나한테 붙어라.”

“뭘 모르는군, 상단주.”

“모르다니?”

“돈을 더 준다고 잽싸게 진영을 바꾸는 흑의인은 흑의인이 아니다.”

“……?”

“진정한 흑의인은 그런 제안을 받아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코웃음만 칠 뿐이지.”

생각해 봐라.

돈 몇 냥 더 주겠다고 해서 ‘그럼 그쪽에 붙겠소.’ 하고 바로 아군이 되는 흑의인이 있다면 세상 사람들이 흑의인을 두려워할까?

흑의인이 돈에 휘둘리는 소인배로 인식되면 강호 전체에서 흑의인들의 몸값이 폭락한다.

그래서 강호의 흑의인들은 웃돈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아도 코웃음만 치는 것이다.

흑의인들이 돈에 연연하지 않는 인물이라 그런 게 아니다. 흑의인 전체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다.

이것이 천랑무제 백무랑이 십이위병 신귀(申鬼)와 함께 이상적인 흑의인에 대해 논의하면서 내린 결론이었다.

술을 마시며 새벽에 떠들다가 결론을 내린 거니 그냥 개소리일 수도 있고.

“대체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냐? 도무지 이해할 수 없군.”

“이해 못 해도 된다.”

황당한 표정을 짓는 프랜시드를 향해, 시리우스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여기서 죽을 거니까.”

“…….”

프랜시드의 얼굴이 비로소 딱딱하게 굳었다.

시리우스가 대놓고 살기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프랜시드는 서클이 없는 평범한 상인이다.

살도 많이 쪘고, 몸싸움조차 하지 못한다.

하지만 프랜시드는 목소리를 높여서 부하들을 부르지 않았다.

“어쩌면 좋겠습니까?”

그 대신, 그는 고개를 돌렸다.

살벌한 대화가 오가는 동안에도 혼자 술을 홀짝이고 있었던, 갈색 피부의 여자를 쳐다본 것이다.

“말이 안 통하는 놈들 같은데…… 아무래도 도움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

사실 시리우스는 이곳에 발을 들였을 때부터 그녀에게 주목하고 있었다.

프랜시드와는 달리, 상당한 수준의 마력이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옆에 있는 안드레스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너희들, 이분이 누구신지 아느냐?”

프랜시드가 다시 시리우스와 안드레스를 보면서 호통을 쳤다.

“이분이야말로 ‘연맹’의 남부 지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계신 파사리아 님이시다! 나한테 칼을 들이대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겠냐!?”

“…….”

호가호위 그 자체였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별다른 불쾌감을 느끼지 않았다.

안드레스와 얼굴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일이 잘 풀리는군요, 형님.”

“그러게 말이다, 아우.”

남부 지역의 흑회들에는 독특한 구조가 있다.

상위 조직에서 하위 조직에 사람을 파견해 간섭하고 감시하는 구조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그레트 공방에는 나인트 길드에서 파견된 사람이 있었고, 나인트 길드에는 싱클레어 검회에서 파견된 사람이 있었고, 싱클레어 검회에는 프랜시드 상단에서 파견된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프랜시드 상단에는 연맹 남부 지부에서 파견된 사람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잘 풀렸다.

8서클의 마력을 지닌 거물이 마침 프랜시드와 한자리에 있던 것이다.

“프랜시드.”

그때 침묵을 지키고 있던 파사리아가 입을 열었다.

“일 처리가 영 깔끔하지 못하구나. 이런 상황을 애초에 만들지 말았어야지.”

“죄, 죄송합니다.”

“이번 일을 만회하려면 더 많은 돈을 상납해야 할 거다. 미리 준비해 둬라.”

파사리아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너희들.”

파사리아는 이제야 시리우스와 안드레스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나는 살육을 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다. 그러니 너희들이 스스로 오른쪽 손목을 자르고 물러서라. 그걸로 마무리하지.”

대단한 사고방식을 가진 여자였다.

시리우스는 마음속으로 감탄하며 물었다.

“거절하면 어떻게 되지?”

“너희한테 거절할 권리는 없다.”

파사리아의 말을 듣고, 안드레스가 시리우스에게 귓속말을 했다.

“자네하고 말하는 방식이 비슷하군.”

“별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대꾸하며 시리우스는 허리에 손을 댔다.

“파사리아라고 했나? 내가 질문할 게 하나 있었는데.”

“너희한테 질문할 권리는 없다.”

‘역시 비슷하군.’이라고 중얼거리는 안드레스 옆에서, 시리우스는 검을 뽑았다.

“혹시 이 요철검을 본 적이 있나?”

이그레트식 가공이 되어 있는 불그스름한 칼날.

그 모습을 확인하고, 파사리아와 프랜시드가 동시에 반응을 보였다.

“네놈, 설마…….”

“저, 저건……!”

이그레트 공방에서 제작된 이 요철검은 나인트 길드와 싱클레어 검회를 거쳐 프랜시드에게 전달되었다.

프랜시드는 요철검을 파사리아에게 넘겨줬고, 파사리아는 그걸 샤히트에게 하사했다.

얼마 전에 목숨을 잃은 샤히트의 검이 여기에 있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너희들, 그렇다면…….”

파사리아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시리우스가 움직였다.

중간에 있던 프랜시드는 그냥 발판으로 삼았다.

쇄골이 부서져 비명을 지르는 프랜시드를 내버려 둔 채 오로지 파사리아만을 표적으로 삼았다.

콰쾅!

불꽃이 터졌다.

폭발로 인해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무너지는 천장 사이로 파사리아가 뛰쳐나갔고, 시리우스도 그 뒤를 따랐다.

“아우!”

밑에서 안드레스가 가세하려 했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손을 내밀어 제지했다.

“이 여자는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형님은 나머지 놈들을 상대해 주십시오.”

소란을 눈치챈 프랜시드의 부하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잔챙이들은 안드레스에게 맡긴 뒤, 시리우스는 파사리아를 노려봤다.

그녀는 어느새 검을 들고 있었다.

그녀의 검도 요철검인 것처럼 보였는데, 칼날이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화염의 마법검이었다.

“샤히트에게서 그 기술을 가르쳐 준 게 너인가?”

“역시 시리우스 카니스루트가 맞는 모양이군…….”

“들켜 버렸군.”

시리우스는 복면을 벗었다.

숨이 트이면서 더 편해졌다.

“네놈, 설마 동부 지부뿐만 아니라 남부 지부에도 싸움을 걸 생각이냐?”

“그러면 안 되는 건가?”

“정신 나간 놈이구나.”

파사리아가 혀를 찼다.

“동부 지부를 괴멸시켰다고 기고만장한 모양인데, 남부 지부는 그런 촌구석 지부하고는 비교가 안 된다. 규모도 훨씬 크고, 간부들의 실력에도 차이가 난단 말이다.”

“그런 것 같더군.”

시리우스가 보기에 동부 지부에서 파사리아 수준의 실력자는 동부 지부장뿐이었다.

그런데 파사리아는 남부 지부장이 아니라 일개 간부에 불과한 것 같으니…… 남부 지부의 종합적인 전투력은 동부 지부와 비교가 안 될 것이다.

“남부로 와서 매번 느끼고 있다. 확실히 동부는 좁디좁은 촌구석에 불과하더군.”

“그래, 그러니 주제를 알고…….”

“이 넓은 남부 지역을 다 청소하면 정말로 보람이 있을 것 같다.”

“…….”

파사리아가 인상을 찡그렸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그럼 농담으로 할까?”

“정말로 주제를 모르는 놈이군.”

파사리아가 들고 있는 검에서 불꽃이 더 거세게 타올랐다.

샤히트가 사용하던 마법검보다 더 기세가 격렬했다.

그러면서 더 안정적인 것으로 보였다.

“후회하게 될 거다.”

콰직!

건물 지붕을 무너뜨리면서 파사리아가 도약했다.

요철검을 휘두른 순간,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무공에 비유하자면 검풍(劍風)을 날리는 것과 비슷했다.

상대가 가까이 있으면 검기로 베고, 상대가 멀리 있으면 검풍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이미 백랑의 공력을 전개한 상태였다.

냉기의 검막을 펼쳐 파사리아의 화염 방출을 막아낸 뒤, 곧장 검을 휘둘렀다.

쇄도해 오는 파사리아의 공격을 측면으로 흘려보냈다. 그리고 동시에 측면으로 파고들었다.

두 사람이 교차한 직후.

무너진 별장 지붕 위에 불꽃과 함께 핏물이 떨어져 내렸다.

전부 다 파사리아에게서 떨어진 것이었다.

“지금 어느 쪽이 후회하고 있지?”

“네놈……!”

어깨에 큰 상처가 새겨진 파사리아가 분노를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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