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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명가의 절대무신-73화 (73/129)

몰락명가의 절대무신 73화

73화. 길을 열어 주마

쿠쿠쿠쿵!

엄청난 양의 용암이 시리우스와 안드레스를 향해 밀려들었다.

어떤 방어 기술로도 막아내기 어려워 보였다.

“이걸 어떻게 해야…… 윽!”

시리우스는 곧바로 안드레스의 목덜미를 붙잡고 날아올랐다.

경공을 활용해 높이 뛰어오르자 이번에는 용암이 중력을 거슬러 솟구쳤다.

“형님, 알아서 처신하십시오.”

“뭐?!”

휘익!

시리우스는 안드레스를 하늘 높이 집어 던졌다.

비행 마법을 쓸 수 있는 사람이니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용암을 뿌리치고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도망만 친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이 환영을 파훼하지 못한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

“자네는 비행 마법은 쓰지 못하는 것 같군. 어떻게 대처할 생각이지?”

어디선가 들려오는 환왕의 목소리대로, 시리우스는 하늘을 날지 못한다.

지금 내공으로는 허공답보(虛空踏步)도, 능공허도(凌空虛道)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용암 속에 빠져야 하는 건 아니다.

시리우스는 백랑의 공력을 두 발에 집중시켰다.

검막과 비슷하게 냉기의 보호막을 만들어, 용암을 박차고 다시 뛰어오르는 것에 성공했다.

“제법이군!”

용암이 마치 화룡처럼 꿈틀거리면서 여러 방향에서 시리우스를 덮쳤다.

그 지옥 같은 광경 속에서 시리우스는 검을 들었다.

백랑의 검기를 전개한 요철검을 휘둘러, 화룡을 한 마리씩 격파해 나갔다.

어떨 때는 화룡을 통째로 일도양단했고, 어떨 때는 검풍을 날려 화룡을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아무리 화룡을 투입해도 시리우스가 끄떡도 하지 않자 이번에는 용암의 거인이 출현했다.

“……!”

쿠쿵!

하늘에 머리가 닿을 듯한 거인이 주먹을 내리쳤다.

시리우스는 주먹을 피했지만 주먹이 땅바닥을 후려치면서 온갖 암석들이 튀어 올랐다.

불규칙하게 날아오는 암석들을 방어하기 위해 검막을 전개하자 이번에는 거인이 두 손을 치켜들었다.

마치 벌레를 잡듯이, 두 손으로 시리우스를 짓뭉개려 했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벌레처럼 죽을 생각이 없었다.

공중에서 몸을 틀면서 백랑의 공력을 칼날에 가득 담았다.

그리고 거인의 오른쪽 손을 향해 전력을 다한 공격을 날렸다.

콰쾅!

무너지는 거인의 오른쪽 손을 뚫고,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용암이 없는 곳에 가까스로 착지한 순간, 주위가 갑자기 어두워졌다.

“끼아아아아아!”

이번에 출현한 건 무시무시한 비명을 지르는 시커먼 악귀들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 모습을 보기만 해도 오줌을 지리며 주저앉을 것이다.

그래도 시리우스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냉정함을 유지하며 검을 휘둘렀다.

백랑의 검기를 펼치면서 악귀들을 하나씩 베어 나갔다.

그렇게 종횡무진 악귀들을 쓰러뜨리고 있었을 때.

시리우스의 목덜미에서 서늘한 감각이 느껴졌다.

“소용없습니다.”

“음……!”

촤악!

시리우스의 배후를 노리던 환왕의 손목이 날아갔다.

하지만 환왕의 손은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꽃잎이 되어 사라질 뿐이었다.

“어르신은 여기서 부상을 입어도 별 상관없으신 것 같군요.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그건 내가 이 공간에서도 자아를 똑바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지.”

환왕이 어둠 속에서 웃었다.

“목을 날려도 안 죽는 겁니까?

“한번 시도해 보게.”

환왕의 모습이 수십 개로 늘어났다.

그리고 다 함께 시리우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손에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빛이 전개되어 있었는데, 닿기만 해도 생기가 빨려 나갈 것 같았다.

시리우스는 환왕을 베고, 베고, 또 베었다.

환왕의 분신은 꽃잎이 되어 흩어졌다.

“수십 개의 분신 중에서 진짜는 어디에 있을까?”

환왕의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애초에 진짜가 섞여 있긴 한 걸까? 한번 맞춰 보게.”

“도무지 모르겠군요.”

애초에 시리우스는 환영 마법을 경험해 보는 게 처음이다.

게다가 이건 보통 환영도 아니고 환왕이 스스로 창조한 고유 마법이니…… 이해하는 게 쉽지 않았다.

“너무 완벽하고 정교합니다.”

“하하, 당연하지.”

“하지만 한 가지는 알겠습니다.”

“무엇을 말이냐?”

“이 공간을 무너뜨릴 방법 말입니다.”

“뭣…….”

시리우스는 내공을 한계까지 끌어 올렸다.

그리고 북명의 공력을 전개하여 막대한 흡인력(吸引力)을 발생시켰다.

“이건……!”

천랑신공의 첫 번째 단계, 북명.

그것은 시커먼 북쪽 바다처럼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힘이다.

물론 9서클 대마도사인 환왕의 환영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건 불가능하다.

기껏해야 일부분을 빨아들이는 것이 한계다.

하지만 이미 시리우스는 이 공간의 ‘뼈대’에 해당되는 부분이 어디인지 찾아낸 상태였다.

이곳은 극도로 정교한 공간이다.

그렇기에 공간을 지탱하는 뼈대가 조금만 어긋나도…… 전체 구조가 비틀리기 시작한다.

“암흑 마법?! 아니, 이건……!”

환왕이 경악하면서 공간을 수복하려 했다.

하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시리우스가 전개한 흑색의 힘은 환왕의 마법적 지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렇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다.

“윽, 으으윽……!”

지금까지 환왕의 목소리는 사방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한쪽에서만 들려오게 되었다.

시리우스는 그 방향으로 요철검을 날렸다.

북명의 공력이 가득 담긴 요철검이 공간을 왜곡시키면서 질주했다.

“커헉!”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진 순간.

모든 환영이 무너지면서, 공간이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헉, 헉…….”

주위를 둘러보니 허름한 식당 바닥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내쉬고 있는 안드레스의 모습이 보였다.

환왕이 시리우스를 공격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덕분에 안드레스도 끝까지 버틸 수 있었다.

“끄윽…….”

한편 환왕은…… 한쪽 무릎을 꿇고 웅크린 채 피를 토하고 있었다.

무림인이 내상을 입은 상태와 비슷했다.

“대체, 어떻게…….”

“사실 예전에도 비슷한 환술(幻術)을 경험해 본 적이 있어서 말입니다.”

“뭐, 뭐라고……?”

천마신교에도 환술을 쓰는 놈들이 많이 있었다.

그놈들과 싸워 본 경험이 있기에 환왕의 환영 마법을 상대로도 냉정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르신의 환영 마법은 정말로 대단하더군요. 어떤 원리인지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야 당연하지. 쉽게 이해되면 그게 고유 마법이겠냐…….”

피를 토하면서 환왕이 투덜거렸다.

“젠장, 검제나 염제도 아니고 이런 애송이한테 파훼 당하다니…… 그동안 헛수고를 했군.”

“비하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충분히 대단한 힘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시리우스는 환왕에게 손을 뻗었다.

환왕은 자신의 목숨을 취하려는 줄 알고 몸을 움찔했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환왕의 몸 곳곳을 손가락으로 찔렀을 뿐이었다.

“욱……!”

환왕이 왈칵 피를 토했다.

시리우스가 환왕의 혈도 몇 곳을 짚어 줬기 때문이다.

“좀 편해지셨을 겁니다. 이제 의자에 앉으시죠.”

“뭣…….”

의자에 앉는 시리우스를 보면서 환왕이 눈을 크게 떴다.

“지금 무슨 짓을…….”

“그래서, 아까 했던 약속 말입니다만.”

시리우스는 환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제 수하가 되어 주실 겁니까?”

“……!”

환왕은 할 말을 잃고 시리우스를 쳐다봤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말없이 환왕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답답해진 환왕이 거친 목소리로 물었다.

“나를 수하로 삼겠다고? 연맹의 9서클 대마도사, 환왕의 칭호를 지닌 나를?”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어르신이 승리하면 제가 수하가 되고, 제가 승리하면 어르신이 수하가 되는 걸로.”

“아니, 아무리 그래도……!”

납득하지 못한 환왕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자.

시리우스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환왕.”

“……!”

“나도 아무한테나 이런 제안을 하지는 않는다.”

환왕이 몸을 움찔했다.

단순히 시리우스가 반말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십 대 중반의 애송이에게서,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무게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만약 네가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다짜고짜 마법을 날려 죽이려 들었다면 나도 이런 제안은 하지 않았을 거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저기 주방에서 졸고 있는 주인 할머니도 죽었을 것이다.

그러면 시리우스도 망설임 없이 환왕과 싸웠을 것이다.

어느 한쪽이 죽을 때까지.

“그러지 않았다고 해도……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네 가치관을 강요하면서 우리를 짓뭉개려 하는 사람이었어도 마찬가지였겠지.”

최근에는 샤히트나 파사리아 같은 놈들이 그랬다.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시리우스는 빈 접시에다가 그림을 그렸다.

먹다 남은 콩 수프의 시커먼 국물을 사용해서, 흑색 원을 그렸다.

“나는 이렇게 흑색으로 가득 찬 놈들은 굳이 살려 두지 않는다.”

“…….”

“하지만 너는 그러지 않았지. 우리를 잡아야 하는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어떤 인물인지 관심을 가지며 대화부터 시도했다. 우리를 이해하려 했고, 우리에게 자신을 이해시키려 하기도 했지.”

그렇게 말하며 시리우스는 빈 접시에 새로운 그림을 그렸다.

“그렇다고 네가 새하얀 백색의 인물이라는 건 아니다. 연맹에 소속되었던 사람이니 그동안 악행도 많이 저질렀을 테고……. 하지만 나는 네가 흑색 일변도의 인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

“너를 표현하자면 흑색과 백색이 함께 존재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지.”

흑색의 원도 아니고.

백색의 원도 아니고.

흑색과 백색이 절반씩 나눠진 원도 아니고.

흑색과 백색이 서로 어우러지며 조화를 이루는 것.

흑백이 어우러진 태극(太極)의 문양.

그것을 보여 주면서, 시리우스는 말했다.

“이 도형은 조화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어떨 때는 흑색이 되고, 어떨 때는 백색이 되고…… 너는 그렇게 변화할 수 있는 사람이다.”

“…….”

“그러니 갱생의 가능성도 있다고 봐야겠지.”

환왕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시리우스가 그린 흑백의 문양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9서클을 넘어 10서클에 도전하고 있는 마법사다.

이 문양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는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대체 뭐냐.”

환왕이 딱딱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처럼 실제로는 나이가 많은 거냐?”

놀랍게도 그는 시리우스의 본질을 꿰뚫어 봤다.

“환왕, 그동안 너는 흑색 세상에서 살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네가 원하는 경지에는 오르지 못했지.”

“……!”

“너도 알고 있을 거다. 연맹에서 내리는 명령을 거부하고 혼자서 수련에만 열중했는데…… 아직도 검제나 뇌제 같은 놈들을 앞지르지 못했다는 걸.”

환왕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니 변화를 주자. 이제 백색 세상에서도 한번 살아 보는 거다.”

“대체…….”

“흑색 세상에서 악행만 하고 사니까 다음 경지로 넘어가지 못하는 거다. 백색 세상에서 선행을 하고 살면 새로운 단서를 얻을 수 있지 않겠나?”

이건 궤변이다. 논리의 비약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환왕은 묘한 설득력을 느끼고 있었다.

이십 대 중반에 불과한 애송이가 자신보다 깊은 깨달음을 보유한 것처럼 느껴졌다.

“갱생해라, 환왕.”

“…….”

“내가 백색 세상으로 가는 길을 열어 주마.”

그렇게 말하고 시리우스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환왕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더 설명해 달라고 요구하기 위해 입을 열었을 때.

어디선가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식 나왔어요…….”

식당 주인 할머니가 비틀거리면서 음식을 가져왔다.

그 모습을 보면서 환왕이 당혹스러워했다.

“나는 아직 주문 안 했는데?”

시리우스는 무슨 음식이 나왔는지 살폈다.

호밀빵과 콩 수프, 닭고기구이.

아까 시리우스와 안드레스가 시켰던 음식이다.

그게 또 나왔다.

“귀가 어두운 것뿐만 아니라 치매도 있으셨군…….”

시리우스가 신음했고, 안드레스도 옆에서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냥 먹어라, 환왕.”

“뭣……?”

“안 시켰으니 도로 가져가라고 할 수도 없잖아.”

시리우스는 환왕을 일으켜 세워서 의자에 앉혔다.

환왕 입장에서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인가?

“이봐, 지금…….”

그때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말발굽 소리가 들렸고, 사람들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아……!”

환왕은 바로 깨달았다.

남부 지부의 추격대가 환왕을 쫓아 뒤늦게 도착한 것이다.

“이봐, 지금 바깥에…….”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환왕이 멈칫했다.

지금 자신이 무슨 짓을 하려고 한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바깥에 남부 지부의 추격대가 왔다고 알려 주려 한 건가?

시리우스를 위해서?

“밥이나 먹어라, 환왕.”

시리우스가 환왕의 어깨를 눌러 다시 자리에 앉혔다.

“식사 다하고 얘기하자.”

환왕은 할 말을 잃은 채 시리우스를 쳐다봤다.

이십 대 중반의 애송이가 마치 인생 선배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형님, 준비하십시오.”

“아, 그렇지.”

하지만 바로 그때.

시리우스가 안드레스와 함께 식당에서 옷을 벗어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카만 옷으로 갈아입는 것 아닌가.

“형님, 옷맵시가 좋아지셨군요.”

“실과 바늘을 빌려 와서 수선했거든.”

그들은 흑색 두건과 흑색 복면까지 착용한 뒤 식당 바깥으로 나갔다.

환왕은 황당한 심정으로 두 사람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도대체 뭐 하는 놈들이란 말인가.

“백색 세상으로 가자고 말하더니 자기들은 새카만 옷으로 갈아입어?”

안드레스는 고개를 돌려 아까 시리우스가 그림을 그리던 접시를 쳐다봤다.

그곳에는 흑과 백이 어우러진 문양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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