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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명가의 절대무신-74화 (74/129)

몰락명가의 절대무신 74화

74화. 때와 장소에 맞는 차림

환왕을 쫓아온 건 연맹 남부 지부가 보유하고 있는 정예 부대였다.

어떤 흑회 조직에 속한 것이 아닌, 남부 지부장 직속의 해결사들이었다.

“이 짐마차, 설마…….”

“부대장님, 틀림없습니다!”

그들은 허름한 식당 앞에 세워진 짐마차를 확인했다.

도둑맞은 재물들이 그대로 실려 있었다.

“그렇다면 이 식당 안에…….”

범인들은 이미 환왕에게 제압당한 상태인 걸까.

그들이 식당으로 들어가려 했을 때 식당의 문이 활짝 열렸다.

“……!”

검은색 옷, 검은색 두건, 검은색 복면을 걸친 괴한들.

흑의인 2인조가 모습을 드러냈다.

“네놈들…….”

설마 환왕이 당했단 말인가?

파벌을 만들지 않고 은거 중인 상태였지만 엄연히 환왕은 연맹의 왕(王) 중 한 명이다.

9서클의 경지에 오른 대마도사가, 이 괴한들을 제압하지 못했다고?

“너희 선배님은 안쪽에서 식사 중이다.”

“뭣……!”

“너희도 아직 식사를 못 했을 것 같은데, 들어가서 식사나 해라.”

흑의인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자 그 옆에 있던 또 다른 흑의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메뉴는 통일이다.”

“……?”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일까.

어쨌든, 이놈들의 설명대로라면 환왕은 임무를 내팽개치고 식사를 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설마 이놈들에게 회유된 것일까.

본부의 명령도 무시할 정도로 제멋대로인 성격이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어쩔 수 없지.”

부대장은 혀를 찼다.

그리고 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렇게 된 이상, 우리 힘으로 해결한다. 쳐라.”

“네……!”

마법검사들이 앞으로 뛰쳐나가고, 다른 대원들은 공격 마법을 전개했다.

지부장 직속의 정예 부대다. 철저히 훈련된 움직임으로 2인조를 제압하려 했다.

하지만 2인조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한 놈이 오른손을 치켜들어 거대한 화염의 방벽을 만들었다. 모든 공격 마법은 방벽을 뚫지 못하고 완벽하게 차단당했다.

그 위로 다른 놈이 뛰어오르더니 허공에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냉기가 불어닥쳐 마법검사들의 몸을 얼어붙게 했다.

“이놈……!”

“컥……!”

거침없이 뛰어든 놈이 현란하게 팔을 움직였다.

주먹이나 손바닥에 얻어맞을 때마다 정예병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게다가 화염의 화살도 쉴 새 없이 쏟아지면서 그들을 유린했다.

“……!”

부대장도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손에 들고 있던 장검에 화염 마법을 전개했다.

칼날이 불타오르는 화염의 마법검을 휘두르면서 적들의 빈틈을 파고들려 했다.

하지만 금방 깨닫게 되었다.

마구잡이로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적들에게서, 아무런 빈틈도 찾을 수 없었다.

“윽……!”

오히려 부대장이 빈틈을 공략당했다.

어떻게 덤벼들어야 할까 주춤하고 있는 사이, 새하얀 냉기에 휩싸인 손바닥이 날아들었다.

절묘한 구도로 파고들어 온 손바닥이 가슴을 후려친 순간, 부대장은 자신의 심장과 서클이 동시에 터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끄으…….”

상대가 되지 않는다.

절망감에 휩싸인 채 부대장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 * *

“전부 다 쓰러뜨렸군.”

쓰러진 시체들을 확인하면서 안드레스가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실력이 괜찮던데…… 연맹의 정예병들인가?”

“평소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놈들 같더군요.”

그렇게 말하며 시리우스는 사방으로 기를 뻗었다.

근처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 또 새로운 추격대가 나타날지 모른다.

“슬슬 떠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마을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게 됩니다.”

“그렇지. 방금 전에도 식당이 휘말릴 뻔했어.”

시리우스는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환왕은 팔짱을 낀 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식사는 빵 한 조각만 먹고 나머지는 손을 안 댄 상태였다.

“그걸로 충분하십니까?”

“원래 아침은 많이 안 먹는다.”

환왕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방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더군. 내가 식당에서 뛰쳐나와 너희 후방을 기습하면 어쩔 생각이었나?”

“그러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어째서?”

“그런 건 재미가 없으니까요.”

“…….”

“식사 다했으면 갑시다.”

시리우스는 탁자에 돈을 올려놓았다.

“…….”

환왕은 잠시 갈등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결국 시리우스의 뒤를 따라 식당을 나갔다.

“출발합시다, 형님.”

“정말로 그 사람도 데려가는 건가?”

안드레스는 환왕을 부담스러워했다.

환영 마법 속에서 죽을 뻔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제가 책임질 테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음…… 아우가 그렇게 말한다면 믿어야겠지.”

시리우스는 환왕을 데리고 짐칸에 올라탔고, 안드레스가 마차를 출발시켰다.

“…….”

환왕은 마차를 모는 붉은 머리 남성의 뒷모습을 관찰했다.

이미 환왕은 그가 레티우드 가문의 장남인 안드레스라는 걸 눈치챈 상태였다.

명망 높은 레티우드 가문의 귀공자가 왜 이런 짓을 하고 다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체를 숨긴 채 밤이면 밤마다 흑회 조직을 습격하고, 전장의 재물을 강탈하고…… 심지어 짐마차를 모는 마부 노릇까지 하고 있다니.

“…….”

사실 환왕도 알고 있었다.

모든 건 지금 함께 짐칸에 타고 있는 청년의 영향일 것이다.

환왕은 곁에 있는 청년이 시리우스 카니스루트라는 것도 눈치챈 상태였다.

그동안 환왕은 혼자 은거 중이었지만 리겔 가문의 막냇사위가 연맹 동부 지부를 순식간에 무너뜨렸다는 정보는 파악하고 있었다.

대체 어떤 놈이기에 그런 짓을 저질렀나 궁금했었는데…… 직접 만나 보니 정말 터무니없는 놈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후우…….”

사실 환왕은 마음만 먹으면 마차에서 뛰어내려 도망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시리우스는 환왕을 짐칸에 태워 놓았을 뿐 기절시키지도, 묶어 놓지도 않았으니까.

몸 상태도 그럭저럭 회복되었고, 한눈을 팔고 있는 틈을 타서 도망치면 된다.

하지만 내키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도망친다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패배한 쪽이 수하가 되기로 조건을 걸고 싸웠고, 패배했다.

그런데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꽁무니 빠지게 도망친다?

그 모습을 보면서 시리우스나 안드레스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상상하면…… 그냥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후우우…….”

약속을 지키기도 싫고.

냅다 도망치기도 싫고.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환왕이 한숨만 푹푹 쉬고 있는 사이, 짐마차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깊은 산속에 숨겨진 동굴이었다.

“오셨군요.”

시리우스가 동굴에 접근하자 베르디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현재 천랑검단은 유스티아와 함께 움직이면서 천랑표국을 도와주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베르디안은 혼자서 이곳에 몸을 숨기고 있다.

남부 지부가 계속 베르디안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전리품이 많네요. 저한테 이런 일까지 떠넘기…….”

베르디안이 움찔했다.

시리우스와 함께 나타난 환왕의 모습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화, 환왕 전하……?”

“자네는…….”

환왕이 인상을 찡그리며 베르디안의 얼굴을 살폈다.

베르디안은 다급히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늦었다.

“그 여자가 기르던 꼬맹이 아니냐?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그, 그건…….”

“아, 혹시 동부 지부의 배신자라는 게…….”

동부에서 들려온 소문을 떠올리고, 환왕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놀랍군. 자네가 그 여자를 배신하고 이런 놈들한테 붙다니.”

“저는 독왕 전하를 배신한 게 아닙니다!”

베르디안이 다급히 해명했다.

“남부에서 염제 파벌 사람들에게 붙잡히지 않도록, 일시적으로 시리우스 님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을 뿐입니다! 어디까지 독왕 전하를 생각해서…….”

“흥, 그 여자가 자네 생각을 존중해 줄까?”

환왕과 독왕 사이에도 모종의 갈등 관계가 있는 모양이었다.

문득 시리우스는 아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식당에서 환왕이 ‘가끔 여자와 인연이 생겨도 표독스러운 마녀 같은 것들하고만 엮이더군. 그런 것들은 내 쪽에서도 사양이지.’라고 했었는데…… 독왕도 ‘표독스러운 마녀’ 중 한 사람 아닐까?

“그러는 환왕 전하야말로, 왜 시리우스 님과 함께 오신 겁니까?”

“나는…….”

“설마 시리우스 님과 손을 잡기로 하신 건가요?”

베르디안의 질문에 환왕이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저 사람은 내 수하가 되기로 했어. 그러니 앞으로 친하게 지내.”

“네……?”

베르디안이 시리우스와 환왕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농담하시는 거죠?”

“저놈이 멋대로 떠들어 대는 거다.”

환왕이 투덜거리자 시리우스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환왕.”

“뭐냐.”

“제 수하들은 각자 서열이 있습니다. 가장 막내가 여기 있는 베르디안입니다.”

“저 녀석이 막내라고?”

베르디안을 쳐다보며 환왕이 피식 웃었다.

“어떻게 된 거냐? 독왕의 수제자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막내라고?”

“그건…….”

환왕이 베르디안을 비웃었다.

그런 환왕을 보면서, 시리우스가 말했다.

“환왕, 오늘부터는 당신이 막내입니다. 가장 늦게 제 수하가 되었으니까요.”

“뭐라고?!”

환왕의 눈이 커졌다.

“농담입니다.”

“이놈이……!”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농담이 아니게 될 수도 있겠죠. 서클을 파괴하고 두 번 다시 마법을 쓸 수 없는 몸으로 만든 뒤, 노예 취급하면서 철저히 부려 먹을 겁니다.”

“……!”

허를 찔린 환왕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시리우스가 말했다.

“당신이 갱생을 못 한다면 언젠가 그렇게 되겠죠.”

“…….”

환왕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참 뒤에야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자네는…… 나를 데리고 뭘 하고 싶은 거지?”

아까 환왕은 시리우스에게서 백색 세상에서 살라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건 전혀 듣지 못했다.

“연맹 남부 지부를 무너뜨릴 수 있게 도와 달라는 건가?”

“남부 지부와의 싸움은 통과점에 불과합니다.”

“잠깐, 설마 연맹 전체와 싸우겠다는 건가?”

“그것도 통과점입니다.”

“도대체가…….”

“환왕,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해도 됩니다. 일단 당신이 살아가는 방식부터 바꿉시다.”

그렇게 말하며 시리우스는 베르디안에게 손짓을 했다.

“베르디안, 지도 좀 가져와.”

“네, 시리우스 님.”

베르디안이 남부 지역의 지도를 가져왔다.

그 위에는 그동안 수집한 정보가 잔뜩 적혀 있었다.

“오늘 밤에는 이 도시에 있는 니아스 경매장이라는 곳을 습격할 겁니다.”

“니아스 경매장을 습격한다고?”

“아시는 가게인가 보군요. 거기서 뭘 하는지는 아십니까?”

“그냥 큰 경매장 아닌가?”

“그렇지 않습니다. 서너 해 전부터 그곳은 남부 지역 인신매매의 주요 거점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심지어 어린애들까지 매매한다고 합니다.”

“…….”

환왕이 잠시 침묵했다.

“니아스, 그 녀석이 어떻게 남부 지부의 간부까지 되었나 했는데…… 그런 일에 손을 댔었군.”

“니아스 경매장의 주인이 남부 지부의 간부였군요.”

시리우스의 말을 듣고 환왕이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본의 아니게 남부 지부의 정보를 알려 준 셈이 되었다.

“잘됐습니다. 함께 가서 덮치도록 하죠.”

“이봐, 나는 아직 함께한다고는…….”

“그러면 저런 쓰레기들을 가만히 둡니까?”

“…….”

환왕은 입을 다물었다.

만약 환왕이 뼛속까지 흑색 일변도인 인물이었다면 이런 말을 들어도 ‘내가 알 바 아니다.’라고 대꾸했을 것이다.

하지만 환왕은 그런 말을 입에 담지 못한다.

그렇기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던 것이다.

“환왕.”

시리우스의 목소리가 진지해졌다.

“딱히 네가 하루아침에 선량하고 정의로운 인물이 되는 걸 기대하지는 않는다.”

“…….”

“지금은 그냥…… 나를 따라다니면 뭔가 새로운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거다, 그 정도 마음가짐이면 충분하다.”

새로운 단서.

그건 환왕이 새로운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단서를 의미한다.

환왕은 줄곧 9서클을 초월하여 10서클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연맹 본부의 호출도 거부하고 혼자 틀어박혀 수련에만 열중한 것도 오직 그것 때문이다.

하지만 환왕은 그동안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시리우스를 따르면 정말로 새로운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후우…….”

환왕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시리우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오랜만에 패배를 맛보게 한 실력자다.

게다가 자신의 이해를 초월한 힘을 지니고 있다.

시리우스가 왜 이렇게 강한지 알아내기만 해도 적지 않은 수확이다.

어차피 연맹에 대한 충성심 따위는 없다.

그런 게 있었으면 본부의 요청을 거부하고 은거하지도 않았다.

더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한 단서만 얻을 수 있다면…… 시리우스와 함께 행동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고, 환왕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지?”

환왕의 질문에 시리우스가 미소를 지었다.

“일단, 옷부터 갈아입으시죠.”

“옷이라니?”

“설마 그 모습 그대로 야습에 나설 생각이십니까?”

시리우스가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모름지기 때와 장소에 맞는 차림을 해야 하는 법입니다.”

“……?”

환왕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 * *

“빌어먹을…….”

남부 지부장은 마차 바퀴 자국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한 마을에서 추격대가 전멸한 흔적을 발견하고 그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중간에 흔적이 끊겼다.

어디로 도망쳤는지 추적하기 어렵게 무슨 술수를 부린 모양이었다.

밤늦게까지 탐색했는데도 놈들이 어디 갔는지 알 수 없었다.

“환왕은 대체 어디로 간 거지?”

이해할 수 없는 건, 가장 먼저 추격에 나섰던 환왕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는 점이다.

환영 마법은 흔적을 남기지 않기 때문에 환왕이 놈들과 전투를 벌였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설마 임무를 내팽개치고 돌아갔나?”

환왕은 항상 제멋대로 사는 남자다.

오죽하면 연맹 본부에서도 제어를 못 해서 그냥 방치해 뒀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중간에 싫증이 나서 돌아가는 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지부장님.”

“무슨 일이냐?”

그때 참모 역할을 하는 청색 가면의 남자가 다가와서 귓속말을 했다.

“니아스 경매장이 방금 습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니아스 경매장이?”

그곳도 남부 지부의 주된 자금원이다.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 그곳을 통해 입수하기도 했다.

“설마 그 2인조인가?”

“그것이…….”

참모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셋으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뭐라고?”

2인조가 3인조로 늘어났다.

그 얘기를 듣고, 지부장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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