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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명가의 절대무신-76화 (76/129)

몰락명가의 절대무신 76화

76화. 대체 정체가 뭐냐

“병력은 이미 배치했나?”

“네, 물샐틈없이 경비하고 있습니다.”

참모와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서, 남부 지부장은 현재 상황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놈들한테 적염초를 빼앗기면 안 된다. 그것만큼은 절대로 막아야 해.”

“네, 알고 있습니다.”

어떤 상인이 적염초를 갖고 있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지부장은 뛸 듯이 기뻤다.

그동안 골치 아픈 일들만 이어졌는데, 오랜만에 좋은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바로 흑의인들의 예고장이 도착했다.

어디서 소문을 들은 건지, 자기들이 적염초를 가져가겠다고 예고장을 보내온 것이다.

“한순간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염제 폐하에게 적염초를 전달할 때까지 경계를 늦추지 마라.”

“네……!”

유르켈 전장에 예고장이 도착했을 때는 환왕만 믿고 있다가 탈탈 털렸다.

이번에는 그렇게 되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다짐하면서 지부장은 계단을 올라갔다.

“이쪽 방입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엘류스 상회(商會)의 사람이 문을 열어 줬다.

엘류스 상회는 남부 지부의 하위 조직으로, 적염초를 갖고 있다는 상인과 만나서 1차 교섭을 했다.

하지만 엘류스 상회에서는 적염초가 진품인지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지부장이 직접 나선 것이다.

“만나서 반갑소.”

“아, 안녕하세요.”

방 안에는 생각보다 젊은 청년이 앉아 있었다.

그는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이렇게 분위기가 험악하죠? 칼을 찬 사람들도 잔뜩 모여 있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안전한 거래를 위한 거니까.”

지부장은 맞은편에 앉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만큼 우리가 이번 거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지.”

“아…….”

“적염초는 매우 민감한 약초야.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약효가 급감하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것이니 이해해 주게.”

그들이 상인에게서 적염초를 억지로 빼앗지 않은 것도 이것 때문이었다.

강탈하는 과정에서 약초가 손상될 수도 있으니까.

최대한 평화적으로 적염초를 전달받는 게 좋다.

“저기, 그러면 대금은…….”

“걱정 말게. 약속한 대로 전부 지급할 테니까.”

“아…….”

“물론 적염초가 진품이어야 하겠지만.”

지부장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감정해 보고 싶으니 적염초를 보여 주게.”

“진품인지 감정하실 수 있습니까?”

“그래서 내가 여기에 온 것이지.”

상인이 우물쭈물하면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상자 안에는 습기 조절을 위한 깃털이끼가 채워져 있었는데, 상인이 나무 막대로 이끼를 젖히자 붉은색 약초가 드러났다.

“보시죠.”

“…….”

지부장은 눈을 크게 뜨고 약초를 살폈다.

적염초는 전체적으로 붉은 색깔을 띤 약초다.

적갈색 뿌리는 집게손가락만 하고, 잔뿌리가 별로 없다.

뿌리 위에 불그스름한 줄기가 뻗어 있는데, 물방울처럼 생긴 이파리가 달려 있다.

그리고 가장 길게 뻗은 줄기 끝에는 마치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생긴 진홍색 꽃이 피어 있다.

“틀림없군…….”

목소리가 떨렸다.

“진품이다. 진짜 적염초야!”

“아……!”

옆에 있던 참모도 탄성을 질렀다.

“축하드립니다, 지부장님.”

“그래, 이걸 바친다면……!”

10서클에 도전하고 있는 염제가 그리도 찾아다니던 약초.

이걸 바친다면 염제에게 큰 도움이 될 테고, 지부장 및 남부 지부의 평가도 올라갈 것이다.

“진품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람 말을 믿으셔야지…….”

상인이 한숨을 내쉬며 상자 뚜껑을 덮으려 했다.

“그러면 대금은…….”

하지만 바로 그때.

지부장이 손을 내밀어 상자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미안하게 됐군.”

지부장은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요즘 들어 우리에게 들어오는 상납금이 줄어들어서 말이다. 약속한 금액을 전부 지불하긴 어려울 것 같다.”

“방금 전과는 얘기가 다르지 않습니까?”

“세상일이 다 그런 것이다.”

이번에는 참모가 손을 뻗어 상인에게서 상자 뚜껑을 빼앗았다.

그리고 상자에 뚜껑을 덮은 뒤, 미리 준비해 온 가방에 집어넣었다.

“사례금은 주겠다. 그러니 너무 불만 갖지 말도록.”

“이건 말도 안 됩니다. 돌려주시죠.”

“고집부리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그게 오래 사는 길이야.”

그렇게 협박하면서 지부장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 상인을 내버려 두고, 지부장은 참모와 함께 건물 바깥으로 나갔다.

“이제 출발한다! 전원 집합!”

주위에 흩어져 있던 병력을 집합시켰다.

이제 이 병력은 적염초를 옮기는 수송대가 된다.

“지부장님, 타십시오.”

“그래.”

지부장이 마차에 올라탔고, 참모도 뒤따랐다.

백여 명의 호위 병력과 함께 적염초 수송대가 출발했다.

“올 테면 와 봐라.”

마차 바깥을 내다보면서 지부장은 혼잣말했다.

흑의인들이 적염초 강탈을 위해 나타나도, 지부장은 격퇴할 자신이 있었다.

9서클 대마도사인 환왕의 환영 마법은 여전히 위협적이지만…… 이미 대비책도 세워 놨다.

“지부장님, 올터스 님이 전방을 확인했는데 매복은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계속 전진해라.”

도시를 벗어난 수송대가 숲길에 접어들었다.

남부 지부의 간부인 7서클 마도사가 앞장서서 확인했기 때문에 안심하고 전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숲 한가운데를 지나치고 있었을 때.

“지부장님!”

앞장서고 있던 올터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놈이 갑자기 나타나서 앞길을 막고 있습니다!”

“뭐라고?”

지부장은 일단 수송대를 멈추게 했다.

그리고 마차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전방을 확인했다.

“오랜만이군, 후배.”

“환왕……!”

날카로운 눈빛의 중년 남자가 길을 막고 있었다.

얼마 전에 임무를 내팽개치고 사라졌던 환왕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선배님이라고 부르라고 했을 텐데.”

“적염초를 강탈하러 온 겁니까?”

지부장은 환왕을 노려봤다.

환왕이 흑의인들에게 붙었다는 건 이미 파악한 상태였다.

“환왕, 당신에게는 실망했습니다.”

“실망?”

“연맹은 당신을 배려했습니다. 명령을 무시하고 남부에 틀어박혀도 그냥 내버려 뒀지요. 그런데 이렇게 배신하는 겁니까?”

지부장의 비난을 듣고도, 환왕은 피식 웃을 뿐이었다.

“지부장, 내가 연맹에 몸을 담고 있었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네?”

“자네도 알겠지만 나는 딱히 충성심 같은 게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연맹 내부에 세력을 만들어 놓은 것도 아니었지. 언제든지 연맹을 떠날 수 있는 몸이었다.”

“…….”

“그럼에도 계속 연맹에 소속되어 있었던 건…… 나 말고도 10서클을 노리는 놈들이 여러 명 있었기 때문이었지. 그놈들과 경쟁하면 10서클에 도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말하고 환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연맹을 떠나는 편이 더 10서클에 빨리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더군.”

“어째서 그런 생각을…….”

“지부장.”

환왕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하복부를 가리켰다.

“자네, 아랫배에 서클을 만들 수 있나?”

“갑자기 무슨 소리입니까?”

“그러면 마력을 특정 경로를 따라 순환시킬 수는 있나?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체외로 방출하는 게 아니라, 그냥 체내에서 끊임없이 순환시키는 것 말이다.”

“……?”

지부장이 당혹스러워했다.

“왜 그런 짓을 합니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짓인데.”

“자네한테는 아무런 의미도 없겠지. 나한테는 매우 중요한 힌트지만.”

“힌트라고요?”

“그래, 10서클에 도달하기 위한 힌트다. 나는 이걸 제대로 터득하기 위해 연맹을 떠날 생각이다.”

“……!”

환왕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지부장은 살짝 열등감을 느꼈다.

자신보다 높은 경지에 있는, 자신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하는 대마도사에 대한 열등감이었다.

“그게 연맹을 떠나는 이유라는 겁니까?”

“그래, 양해해 줬으면 좋겠군.”

“알겠습니다. 솔직히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당신은 연맹의 배신자가 되기로 결심한 모양이군요.”

열등감을 애써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며 지부장은 환왕을 노려봤다.

“좋습니다. 적염초와 함께 당신의 목도 염제 폐하께 바치도록 하죠.”

“내 목을 염제 녀석한테 바친다고?”

“불가능할 것 같습니까?”

환왕은 9서클의 대마도사다.

한편 지부장은 아직 8서클이다.

6서클 이하의 마법사와 7서클의 이상의 마도사 사이에는 큰 격차가 있다.

하지만 8서클 미만의 마도사와 9서클의 대마도사 사이에는 그보다 더 커다란 격차가 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8서클 마도사는 9서클 대마도사를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염제 폐하가 아무런 대비도 없이 저를 남부에 파견했을 것 같습니까?”

“뭐라고?”

지부장은 품 안에 있던 약병을 꺼내서 바닥에 집어 던졌다.

병이 깨지면서 보라색 연기가 주변에 퍼지기 시작했다.

“마력 노이즈를 발생시켜 환영 마법을 방해하는 연기입니다. 독왕한테서 어렵게 얻었다고 하더군요.”

“독왕한테서……?”

환왕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그 모습을 보며 지부장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환왕은 줄곧 환영 마법만 연구해 온 대마도사다.

환영 마법을 제대로 쓸 수 없다면 전투력은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염제 폐하는 당신이 언젠가 이런 말썽을 피울 거라 예상하고 있던 겁니다.”

“…….”

“환영 마법을 쓰지 못하는 당신 정도는…… 저희들 힘으로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죠.”

이미 올터스를 비롯한 정예 병력이 환왕을 포위하고 있는 상태였다.

환왕이 9서클의 마력을 활용해 반격한다고 해도, 환영 마법을 쓰지 못하는 상태라면 버틸 수 없다.

“어떻습니까, 환왕.”

지부장이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적염초를 강탈하려고 저희를 습격한 건…… 그냥 자살행위였던 겁니다.”

“뭔가 착각하고 있군.”

환왕의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적염초를 강탈할 생각이 없었다. 너희를 습격할 생각도 없었고.”

“네……?”

“환영 마법을 방해하는 연기라고 했나? 마침 잘됐군.”

환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상자를 열어 봐라.”

“상자……?”

지부장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다급히 참모한테 눈짓하며 상자를 열어 보게 했다.

“앗……!”

참모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상자 안에는 여전히 붉은색 약초가 있었지만…… 모양새가 아까하고는 조금씩 달랐다.

“설마……!”

“다른 약초에 색을 칠하고 모양을 다듬은 뒤, 환영 마법으로 한 번 더 위장한 거다.”

환왕의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력 노이즈로 환영 마법이 해제되었기 때문에 본모습이 드러난 것이지.”

“……!”

적염초는 가짜였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처음부터 함정이었단 말인가?

“환왕……!”

“그러면 난 이만 물러나도록 하지.”

환왕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부터 난 자네하고 싸울 생각이 없었어. 지금까지 자네한테 신세 진 것도 있고 말이지.”

“……!”

쿠쿵!

갑자기 주위에서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환영 마법은 아니었다. 진짜 불이다.

누군가가 고화력의 화염 마법을 작렬시킨 것이다.

“지부장님!”

“불길이 너무 거셉니다!”

지금 수송대는 숲길 한가운데에 있다.

자칫하면 숲속에서 불타 죽을 위기였다.

“그러면 뒷일은 다른 녀석들에게 맡기기로 하지…….”

“……!”

어느새 환왕의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환영 마법 없이도 포위망을 빠져나간 것이다.

“지부장님! 일단 여기서 탈출해야…… 컥!”

목소리를 높이던 참모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참모의 목에는 날카로운 날붙이가 꽂혀 있었다.

지부장은 날붙이가 날아온 방향을 다급히 확인했다.

불타는 나무 위에 한 남자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시커먼 옷을 입고, 두건과 복면으로 얼굴을 완전히 가린 상태였다.

“네놈, 대체 정체가 뭐냐……!”

“궁금한가?”

바로 그때.

불길 속에서 하나둘씩 새로운 그림자가 나타났다.

전부 똑같이 흑색 옷을 뒤집어쓴 놈들이었다.

아까 확인했을 때는 분명 매복이 없었는데, 어느새 수많은 흑의인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너희가 알 필요는 없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지부장은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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