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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명가의 절대무신-78화 (78/129)

몰락명가의 절대무신 78화

78화. 여행이나 합시다

깊은 밤.

시리우스는 목욕재계를 하고 조용한 방에서 자리를 잡았다.

눈앞의 상자에는 적염초가 이끼에 싸여 있었다.

‘잘 먹겠다, 유스티아.’

마음속으로 유스티아에게 다시 한번 감사했다.

적염초는 남부 지부가 그토록 찾아다녔는데도 손에 넣지 못했던 희귀 약초다.

유스티아가 없었다면 시리우스도 적염초를 손에 넣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면…… 슬슬 먹어 볼까.’

복용하는 방법은 베르디안과 의논하면서 생각해 뒀다.

적염초는 특별한 가공 없이 통째로 복용해야 한다.

심지어 입으로 씹는 것도 안 된다.

통째로 삼켜야만 그 기운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자살행위지만…… 극양의 내공을 얻기 위해서는 전초(全草)를 통째로 복용해야 한다.

“후우…….”

한번 깊게 호흡을 한 뒤, 적염초를 입 안에 넣고 그대로 삼켰다.

그러자 상초(上焦)에서 묵직한 열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속에 들어가자마자 이런 기운을 방출하다니, 역시 보통 약초가 아니었다.

시리우스는 신속히 가부좌를 틀었다.

그리고 천랑신공의 구결에 따라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

적염초는 예상했던 것보다 거친 기운을 지닌 약초였다.

제대로 흡수하려면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

시리우스는 진기를 일주천하고 이주천하고 삼주천했다.

어차피 한 번에 녹여낼 수 있는 기운이 아닐 것이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몸에 적응시켜야 한다.

‘확실히…… 무림에서 구할 수 있던 영약들보다 성질이 독해.’

백빙화를 복용했을 때도 느낀 거지만 이쪽 세계의 약초들은 무림의 웬만한 영약보다 거칠고 거센 성질을 지닌 것 같다.

특히 적염초는 백빙화보다 훨씬 격렬한 기운을 담고 있었다.

‘자칫하면 주화입마에 빠질 수 있지만…… 제대로 다스릴 수 있다면 큰 내공을 얻을 수 있을 터.’

이런 약초들을 통해 내공을 늘려가다 보면 무림에 있었을 때보다 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천랑무제 백무랑의 힘을 회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의 힘을 얻어 내는 것이다.

“윽…….”

하지만 바로 그때.

시리우스의 배 속에서 무언가가 펑, 하고 터지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약의 기운이 진기의 흐름을 벗어나 폭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주륵.

코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탁기가 배출되는 게 아니다. 핏줄이 터져 정말로 피가 흘러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동요하지 않았다. 눈을 감고 계속 진기를 운용했다.

백빙화보다 훨씬 격렬한 성질의 약재다. 그 기운을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 거친 짐승을 포획하기 위한 방법을 깨달아야 한다. 시리우스는 쉬지 않고 계속 진기를 돌렸다.

맹수가 발톱으로 할퀴듯이 약의 기운이 경맥을 난도질했다.

당장이라도 경맥이 터져 나갈 듯했지만, 시리우스는 꾹 참았다.

그러던 도중…….

“우욱!”

입에서 시커먼 피가 터져 나왔다.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릴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계속해서 덤벼 봐라, 적염초.’

여기서 약해지면 안 된다.

이 격렬한 기운을 상대로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고작 이런 약초 하나의 기운조차 다스리지 못한다면 어떻게 세상을 다스리겠는가.

“욱……!”

다시 한번 피를 토했다.

하지만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투지가 끓어올랐다.

이 야수 같은 기운을 굴복시켜, 내가 너의 주인이라고 똑똑히 알려 주고야 말겠다.

그런 생각으로 계속 진기를 운용했다.

이것은 적염초라는 야수와의 승부였다.

“…….”

대체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언제부터인가 적염초의 저항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저항하는 느낌은 있지만 공격한다기보다는 가볍게 대드는 느낌이었다.

지금이다.

그렇게 확신하고 시리우스는 뜨거운 열기를 단전으로 몰아넣었다.

누구에게도 길들여질 것 같지 않던 적염초의 기운이 단숨에 단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쿵.

마치 심장이 크게 뛰는 것처럼 단전에서 충격이 느껴졌다.

실제로 물질적인 충격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미 단전에 존재했던 극음의 내공과 충돌했기 때문이다.

‘이제 이 뜨거운 기운을…… 기존에 갖고 있던 극음의 내공과 조화시켜야 한다.’

무림에는 음양지체(陰陽之體)라는 개념이 있었다.

극음의 내공과 극양의 내공을 동시에 보유할 수 있는 체질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백무랑은 큰 의미 없는 개념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원래 인간은 처음부터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많은 무림인이 극음의 내공과 극양의 내공을 동시에 보유하려다가 실패하는 건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단전 안에서 극음과 극양을 조화시키는 것이다.

억지로 음양을 분리해서 저장하려고 하면 사달이 나게 되어 있다.

음양이 서로 어우러지는 태극처럼…… 극음과 극양이 함께 결합된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

극음의 내공이 단전 안에서 꿈틀거렸다.

새롭게 들어온 뜨거운 기운을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 내려 했다.

뜨거운 기운도 극음의 내공과 어우러지면서 점차 가장 안정된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후우…….”

시리우스는 길게 숨을 내쉬면서 눈을 떴다.

그리고 단전에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틀림없었다.

정순하기 그지없는 극양의 내공이 단전 안에서 극음의 내공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마침내 극음과 극양을 동시에 보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곧 음과 양의 조화를 추구하는 천랑신공의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게다가 내공의 총량을 계산하면 3갑자를 훌쩍 넘어선 상태였다.

“…….”

어두운 방에서 몸을 일으켰다.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 방문을 열어젖힌 순간.

휘이이잉!

싸늘한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바깥은 별채 복도가 아니라 모든 것이 얼어붙은 설원(雪原)이었다.

“환왕?”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환왕의 환영 마법이다.

단순히 사람에게 환영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아예 환영으로 가득 찬 공간을 만들어 사람을 가둬 버리는…… 환왕이 스스로 만든 고유 마법이다.

쿠쿠쿵!

눈보라 속에서 얼음의 용이 솟구쳤다.

지난번에는 화산 지대에서 화룡(火龍)을 생성시켜 공격하더니 이번에는 빙룡(氷龍)이었다.

게다가 지난번보다 훨씬 더 몸집도 크고 기세도 격렬하다.

단번에 집어삼키겠다는 듯이 무시무시한 빙룡이 시리우스에게 돌진해 왔다.

“…….”

하지만 시리우스는 당황하지 않았다.

단전에 새로 자리 잡은 극양의 내공을 끌어 올렸다.

순간, 적염초를 복용했을 때처럼 온몸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이 열기를 그대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보다 실용적으로, 실전적으로 전환하여 사용해야 한다.

극양의 내공이 순식간에 새로운 기운으로 전환되었다.

파직, 파직. 경맥에서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 온몸의 터럭이 솟구치고 눈썹까지 치켜 올라갔다.

그 상태에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주먹을 가볍게 쥐자 푸른색 기운이 파직파직 소리를 내면서 요동치기 시작했다.

뇌기(雷氣)의 발현이었다.

콰쾅!

천둥소리와 함께 푸른색 뇌창(雷槍)이 뻗어 나갔다.

뇌창은 시리우스를 집어삼키기 위해 덤벼들던 빙룡을 관통했다.

그 직후, 거대했던 빙룡이 산산조각 났다.

극양의 힘을 다루는 천랑신공의 세 번째 단계…… ‘창뢰(蒼雷)’의 뇌기였다.

“…….”

이어서 공간 전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빙룡을 관통한 뇌전이 공간까지 찢어발겼기 때문이다.

지난번에는 공간의 급소를 찾는 과정이 필요했지만, 이번에는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천랑신공의 세 번째 단계인 창뢰는 무엇이든 꿰뚫어 버리는 관통력을 지녔다.

9서클 대마도사의 환영 공간에도 구멍을 뚫어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제기랄…….”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상적인 공간으로 돌아온 시리우스는 창문을 통해 지붕 위로 올라왔다.

그곳에서는 환왕이 주저앉아 있었다.

“이번에는 일격에 공간을 무너뜨려? 확 마법사를 때려치우고 싶어지는군.”

“상대가 나빴을 뿐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시리우스는 환왕 옆에 앉았다.

밤바람이 시원했다.

“지난번보다 더 강해진 것 같은데, 대체 어떻게 한 거지?”

“계속 관찰하고 계셨지 않습니까?”

“적염초에서 힘을 얻었다는 건 이해했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그 정도의 에너지를 획득한 건지는 도무지 모르겠군.”

시리우스가 적염초의 기운을 흡수하는 동안, 환왕은 바깥에서 계속 시리우스를 관찰하고 있었다.

하지만 의문점만 늘어났다.

“속 시원하게 가르쳐 주면 안 되나? 대체 어떻게 한 거지?”

“그걸 쉽게 알려 주면 재미가 없지요.”

“이봐!”

시리우스는 환왕이 자신을 관찰하면서 탐구하는 건 얼마든지 허락할 생각이다.

시리우스 본인도 9서클 대마도사인 환왕의 마법을 계속 관찰하고 싶으니까.

하지만 환왕한테 무공이 무엇인지 일일이 알려 줄 생각은 없었다.

“당신도 자신의 고유 마법을 누군가에게 가르쳐 줄 생각이 없을 텐데요.”

“큭…….”

환왕이 입술을 깨물었다.

할 말이 없어진 것이다.

“그러니 그냥 잔말 말고 계속 저를 따라다니기나 하십시오.”

“건방진 놈…….”

시리우스를 노려보던 환왕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환왕.”

“뭐냐?”

“스트라우스 가문의 가주와 싸워 본 적 있습니까?”

“…….”

시리우스가 질문을 던지자 환왕이 잠시 침묵했다.

“싸움을 걸어 본 적이 있지만, 저쪽에선 상대를 안 해 줬다.”

“상대를 안 해 줬다고요?”

“나하고 싸울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더군.”

환왕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시리우스, 우리 같은 흑회 마법사들은 다들 강해지기 위해 마법을 수련한다. 하지만 명문가의 마법사들은 꼭 그렇지는 않아.”

“…….”

“그냥 마법이라는 진리를 탐구하고 싶을 뿐인 놈들이 수두룩하지. 그놈들에게 마법이란 그냥 학문일 뿐이야.”

그 말을 들으니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장인인 루트베인 리겔도, 레티시아의 남편인 데이비드 레티우드도…… 마법사보다 ‘마법학자’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리는 인물들이었다.

“스트라우스 가문의 가주도 비슷한 놈이다. 9서클에 도달했지만…… 다른 9서클 마법사와 실력을 겨뤄 보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안 하지.”

“…….”

“그놈 앞에 서면 내가 속물이 된 것 같은 기분만 든다. 그래서 결국 그놈한테는 더 이상 가까이 가지 않게 되었지.”

이번에는 천랑무제 백무랑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무림을 흑과 백으로 나눈다면 흑색의 끝에 있는 건 마도(魔道)였다.

그들은 그야말로 흑색 자체였다. 가만 내버려 두면 세상을 파멸시킬 자들이었기에 백무랑은 전력을 다해 그들을 섬멸했다.

한편 무림에는 백색의 끝에 있는 자들도 있었다.

마도의 반대니까 세상을 구하는 정의로운 자들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천마신교 토벌에도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으니까.

스트라우스 가문의 가주도 그런 인물일까?

만약 그런 인물이라면 시리우스가 만들어 나갈 새로운 맹(盟)에도 도움을 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궁금해지는군요.”

“뭐라고?”

“직접 만나 보고 싶어졌습니다.”

“…….”

환왕이 시리우스의 얼굴을 쳐다봤다.

“남부 연합의 회합에서 만나면 되지 않나?”

“안드레스에게 들으니 출석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더군요. 대부분 대리인을 보낸다고 합니다.”

“그래? 그러면 회합이 있는 날까지 기다려 봐야겠군.”

“굳이 그럴 필요 없습니다.”

“뭐라고?”

어차피 남부 연합의 수장은 스트라우스 가문의 가주다.

이번 회합에 참석하는 것보다 그를 직접 만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일 수도 있다.

만약 말이 잘 통한다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고…… 말이 안 통하는 상대라면 남부 연합과 정면충돌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환왕, 우리 여행이나 합시다.”

“여행?”

“남부 연합의 회합 전에 스트라우스 가문의 가주부터 만나고 옵시다.”

“……!”

“스트라우스 가문은 남쪽 바닷가에 있다고 하니 가볍게 여행이나 다녀오죠.”

환왕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정신 나간 자식아, 여행을 떠나고 싶으면 마누라하고 같이 갈 것이지 왜 나하고…….”

“아쉽지 않습니까?”

“뭐?”

“지난번에 스트라우스 가문의 가주에게 무시당했던 것 말입니다.”

“뭣……!”

시리우스의 발언에 환왕이 눈을 치켜떴다.

“가서 재도전해 봅시다.”

“아니, 그놈은 나하고 싸울 생각이 없다니까?”

“꼭 힘으로 싸우는 것만 도전입니까? 마법이라는 진리를 얼마나 깊게 이해하고 있는지 겨뤄 보는 것도 도전이죠.”

“……!”

“그런 도전이라면 스트라우스 가문의 가주도 상대해 줄 거라 생각합니다.”

환왕이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시리우스를 쳐다봤다.

“갑시다, 환왕.”

시리우스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부의 또 다른 9서클 대마도사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우리 한번 제대로 확인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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