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몰락명가의 절대무신-80화 (80/129)

몰락명가의 절대무신 80화

80화. 지각이에요

“거듭 말하지만 나는 피를 흘리는 걸 좋아하지 않네.”

찻잔을 앞에 두고, 샤디엔 스트라우스가 입을 열었다.

“흑회 사람들이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는 건 잘못된 일이네. 하지만…… 죄 없는 사람들을 죽였다는 이유로 흑회 사람들까지 무자비하게 죽인다면 그것 또한 잘못된 일 아닐까?”

“…….”

“사람의 목숨을 아껴야 한다면 그것은 죄 없는 사람이나 죄 있는 사람이나 마찬가지가 되어야 한다는 게 내 결론이네.”

그렇게 말한 뒤 샤디엔은 시리우스의 얼굴을 쳐다봤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일리 있는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시리우스는 천천히 대답했다.

“만약 그 사고방식을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정말로 평화로워지겠죠.”

“흠…….”

“하지만 그건 불가능합니다.”

“어렵다는 것도 아니고 불가능하다는 건가?”

“네, 맞습니다.”

“그 근거를 듣고 싶군.”

샤디엔은 차분한 태도로 시리우스의 대답을 기다렸다.

“먼저 여쭙겠습니다만, 샤디엔 님은 방금과 같은 결론을 어떻게 얻으셨습니까?”

“무슨 뜻이지?”

“아마 샤디엔 님은 깊은 사색과 고찰 끝에 그런 결론을 내리셨을 겁니다. 아닙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렇다면 그것은 자연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샤디엔 님의 사유에 근거한 것입니다.”

“…….”

샤디엔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불쾌감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군.”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시리우스는 천천히 말했다.

“자식을 지키기 위해 부모가 강도를 죽였습니다. 이건 머릿속 사유에서 나온 행동일까요?”

“…….”

“아닙니다. 자연의 본성에서 비롯된 행동입니다. 동물들도 새끼를 지키기 위해 천적과 목숨 걸고 싸우니까요. 이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샤디엔은 입을 다문 채 시리우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가까운 사람, 약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은 자연의 본성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웃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도, 마을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도…… 나아가서는 세상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도, 결국 따져 보면 이런 본성에서 출발한 것이죠.”

“흠…….”

“그렇기에 이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성립하는, 인간 본연의 천성입니다.”

시리우스는 이야기를 이어 갔다.

“샤디엔 님, 차별 없이 생명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정신은 확실히 훌륭합니다. 하지만 그건 자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샤디엔 님의 사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즉, 샤디엔 님처럼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만 이해하고 동의할 수 있습니다.”

“…….”

“그렇기에 세상의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정신이 아닌 것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얘기는, 시리우스가 천랑무제 백무랑 시절부터 갖고 있던 지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제자백가 중에 유가(儒家)는 인애(仁愛)를 추구했고, 묵가(墨家)는 겸애(謙愛)를 추구했다.

인애는 가족처럼 가까운 사람부터 사랑하면서 그 사랑을 점점 확장시켜 나가자는 것이다.

겸애는 누구나 차별 없이 동등하게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애는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는 인간의 본성에 근거한 것이지만 겸애는 논리적 사유를 통한 통찰이었다.

어느 쪽이 맞는 것이었을까?

옳고 그름과는 별개로, 살아남은 것은 유가의 인애 정신이었다.

묵가의 겸애 정신은 세상 사람들에게 외면당했다.

겸애는 열심히 생각해서 진리를 깨달아야 실천할 수 있었지만, 인애는 가족을 사랑하는 인간의 본성에 따르기만 해도 실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샤디엔의 이상을 이 세상에서 실현할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유다.

악인들의 생명도 차별 없이 존중해 주는 이상적인 세상을 만들기에는…… 세상 사람들은 아직 미숙하다.

“훗날 세상이 안정되고 민중의 교양 수준이 향상되면 세상에 그 이상이 받아들여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려운 것이죠.”

“흠…….”

샤디엔은 말없이 깊은 사색에 잠겼다.

그러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하군. 잠깐 혼자서 고민한 다음에 얘기해도 되겠나?”

“그러시죠.”

그렇게 말하고 샤디엔은 다시 바깥으로 나갔다.

아까처럼 뒤뜰에서 바다를 보면서 사색에 잠기려는 것 같았다.

“자네는 도대체 어떻게 된 인간이지?”

옆에서 가만히 듣기만 하고 있던 환왕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샤디엔하고 동등하게 토론한다고? 아니, 오히려 샤디엔이 가르침을 받는 느낌이었는데?”

“카니스루트 가문은 원래 학자 가문입니다. 저도 나름 학문 공부를 했지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백무랑은 평소 여러 서책을 읽으면서 학문을 연구했다.

이건 더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한 단서를 찾기 위한 것이었고…… 무림맹주로서 올바르게 처신하는 법을 공부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백무랑이 공부한 건 주로 제자백가의 저술이라, 이쪽 세계의 철학하고는 많은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리우스가 하는 얘기는 샤디엔이나 루트베인 같은 사람들에게 신선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옆에 앉아 있으니 내가 무식한 사람처럼 느껴지는군.”

“9서클에 도달하셨는데, 무식한 사람일 리가 있겠습니까?”

“나는 강해지기 위해 마법을 연구한 거지. 자네들처럼 세상의 진리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어.”

환왕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관심 없는 얘기만 이어져서 지루하시다면 퇴석하셔도 괜찮습니다.”

“웃기지 마라. 그러면 내가 얘기를 못 따라가서 도망친 것 같지 않으냐.”

그렇게 말하며 환왕이 팔짱을 꼈다.

“계속 옆에서 잘 알아듣는 척 앉아 있을 테니 얼마든지 얘기해 보거라.”

“알아듣는 ‘척’하시는 겁니까?”

그때 샤디엔이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아까 하던 얘기에 관해서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어떻겠나?”

“들려주십시오, 샤디엔 님.”

샤디엔이 다시금 이야기를 시작했고, 시리우스도 거기에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환왕은 팔짱을 낀 채 그 모든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끊임없이 다양한 의견들이 오가는데도 불구하고…… 얼굴을 붉히는 사람도 없었고,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도 없었다.

* * *

“미치겠군…….”

남부 연합과의 회합이 열리는 날.

안드레스 레티우드는 마차 안에서 머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이번 모임에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시리우스가 어디론가 사라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유스티아, 정말로 시리우스가 어디 간 건지 모르는 건가?”

“저는 전혀 들은 게 없네요. 편지만 봤을 뿐이죠.”

안드레스와는 달리, 유스티아는 침착했다.

이번에 시리우스와 유스티아는 ‘초청객’ 자격으로 회합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다.

리겔 가문의 대표로서 부부 동반 참석 예정이었건만, 시리우스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그런 상황인데도 유스티아는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당신은 걱정되지 않는 건가? 남편이 편지 한 통만 남겨 놓고 사라져 버렸는데?”

“그동안 남편과 함께 밤이면 밤마다 사라지셨던 분이 제게 그런 말을 하시는 건가요?”

“윽…….”

그동안 시리우스는 안드레스와 함께 흑의인 활동을 하느라 유스티아 곁에서 머물지 못했다.

그것 때문에 안드레스는 내심 유스티아에게도 미안한 감정을 갖고 있었다.

“어딘가 알아서 잘하고 있겠죠. 그리 걱정되지는 않네요.”

“남편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모양이군…….”

“오해하지 마세요. 그 사람을 100%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건 아니니까.”

유스티아의 목소리는 냉정했다.

남편 얘기를 할 때마다 애정을 잔뜩 드러내는 언니 레티시아하고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자매가 이렇게 다를 수도 있군…….”

“뭐라고 하셨죠?”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안드레스는 헛기침을 하면서 얼버무렸다.

“그래도 유스티아…… 시리우스가 불참하게 되면 곤란해지는 건 사실이야.”

“그건…… 그렇죠.”

“남부 연합에는 배타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들도 많아. 그들이 리겔 가문의 남부 진출에 거부감을 드러낼 수 있어. 그들을 납득시키려면…… 시리우스 본인이 있어야 해.”

유스티아는 천랑표국의 표국주로서 남부 연합 앞에서 할 말이 있다.

천랑표국의 활동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남부 연합의 구성원들을 설득해야 하니까.

하지만 천랑검단이나 연맹 남부 지부 등과 관련된 얘기를 하려면 시리우스가 있어야 한다.

“남부 연합의 회합은 그리 자주 있는 게 아니야. 이번 기회를 놓치면…….”

“네, 계획에 큰 지장이 생기겠죠.”

유스티아가 천천히 말했다.

“하지만 그건 시리우스도 알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 분명 참석할 거예요.”

“…….”

유스티아의 목소리는 여전히 냉정했다.

하지만 안드레스는 그녀의 목소리에 시리우스를 향한 신뢰가 담겨 있다고 느꼈다.

“좋아. 나도 일단 기다려 보지.”

결국 안드레스는 유스티아와 함께 회합장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번 회합은 남부의 중견 가문인 리든버러 가문의 성관(城館)에서 열렸다.

화려한 걸 좋아하는 가주의 성격이 반영된 건지, 회합장은 무도회장처럼 요란하게 꾸며져 있었다.

“원래 이렇게 파티 같은 분위기인가요?”

“평상시에는 그냥 사교 모임이니까.”

이미 여러 사람이 모여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안드레스가 나타나자 다들 아는 체를 했다.

“어이쿠, 레티우드 가문의 귀공자가 오셨군.”

“오늘도 잘생기셨구려. 그런데…… 옆에 계시는 미녀는 누구신지?”

사람들의 시선이 유스티아에게 향했다.

“설마 약혼자라든가?”

“오호라, 안드레스 님에게도 드디어 짝이…….”

“오해 마십시오, 여러분.”

안드레스가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유스티아 리겔 양입니다. 다들 인사 나누시죠.”

“안녕하세요. 리겔 가문의 막내딸인 유스티아입니다.”

“아……!”

뒤늦게 이해한 사람들이 허둥지둥 인사를 했다.

“이것 참, 몰라뵈어서 죄송합니다. 리겔 가문에서 오셨군요.”

“그러고 보니 초청객으로 참석하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루트베인 님은 잘 계신지요?”

그들은 유스티아에게 깍듯이 예의를 차렸다.

이건 유스티아가 대륙 5대 명가 중 하나인 리겔 가문의 딸이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남부 연합에는 권위를 중시하는 사람이 많았다.

“흥, 동북부 촌구석으로 밀려난 리겔 가문의 딸이 왜 남부 연합에 얼굴을 들이미는지.”

하지만 반감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었다.

유스티아가 쳐다보자 발언한 장본인은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요새는 장사치 노릇도 시작했다고 하는데, 사정이 많이 어려운가 봅니다?”

“누구시죠?”

“인사가 늦어져서 미안하군요. 라스엔드 가문의 유틀레아라고 합니다.”

“라스엔드의 가주님이셨군요.”

라스엔드 가문은 역사가 오래된 명문가로, 유틀레아는 5년 전부터 가주 역할을 맡고 있는 여성이었다.

안드레스의 평가에 의하면…… 남부 연합에서 가장 배타적인 성격을 지닌 인물 중 한 명이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유틀레아 님.”

“저는 별로 반갑지 않군요. 갑자기 남부에 나타나 쓸데없는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아가씨 얼굴을 봐서 뭐가 반갑겠어요?”

유틀레아는 대놓고 적대적인 반응을 보였다.

“요즘 프랜시드 상단에서 사람을 빼 가고 있다면서요? 상단주가 비명횡사해서 슬픔에 잠겨 있는 상단에 그런 짓을 하다니…… 너무 천박한 것 아닌가요?”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유틀레아 님.”

“뭐가 오해인가요? 덕분에 프랜시드 상단이 사실상 망하기 직전인데!”

“라스엔드 가문과 긴밀한 사이였던 프랜시드 상단이 그렇게 됐으니, 불만을 품으신 그 마음은 이해가 됩니다.”

유스티아는 천천히 말했다.

“하지만 프랜시드 상단은 이미 썩어서 무너지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능한 사람들만 천랑표국이 받아들인 겁니다.”

“뭐, 뭐라고요?”

“프랜시드 상단은 여러 흑회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흑회를 이용해 경쟁자를 제거하거나 거래처를 협박하기도 했죠. 그 모든 것을 프랜시드가 주도했기 때문에 상단의 미래는 어두운 상태였습니다.”

“너무하는군요! 무슨 그런 모함을……!”

그때 안드레스가 다급히 끼어들었다.

“유틀레아 님, 유스티아 양의 말은 사실입니다.”

“뭐라고요?”

“프랜시드는 흑회들과 연결되어 있던 게 맞습니다. 심지어…… 연맹 남부 지부와 직접 관계를 맺고 있었죠.”

“무슨……!”

주위가 술렁였다.

그들 앞에서 유스티아는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들었다.

“그건 이 서류를 통해 증명할 수 있습니다. 연맹 남부 지부의 간부였던 파사리아가 프랜시드에게 작성하게 했던 서류입니다.”

“뭐, 뭐라고요?”

“직접 확인해 보시죠.”

유틀레아가 서류를 훑어봤다.

하지만 곧바로 서류를 되돌려줬다.

“이, 이런 게 무슨 증거가 된다는 건가요?”

“증거가 되는 내용입니다. 혹시 내용을 이해 못 하셨다면 제가 설명 드리겠습니다.”

“윽……!”

정곡을 찔린 유틀레아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원래 유틀레아는 실무적인 부분은 아랫사람들에게 맡기고 있었다.

그래서 상단에서 사용하는 계약 서류를 꼼꼼하게 따져볼 능력이 없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바로 그때.

진중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흑회 얘기가 나오니 그냥 넘어갈 수 없군요.”

“아, 로이에드 님……!”

회합장에 은발 중년이 모습을 드러내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쏠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유스티아 님. 로이에드 스트라우스라고 합니다.”

“……!”

로이에드 스트라우스.

아버지인 샤디엔 스트라우스를 대신하여 스트라우스 가문의 대표 역할을 맡고 있는 인물이다.

스트라우스 가문은 남부 최강의 가문이기 때문에, 남부 연합에서 로이에드의 발언력은 독보적이었다.

“요즘 남부 지역의 흑회들 사이에서 엄청난 혼란이 발생했다고 하더군요. 프랜시드도 그 혼란 속에서 희생되었다고 하고.”

“…….”

“희생자가 많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한밤중의 방화 사건도 연달아 발생했죠.”

로이에드의 발언에 안드레스가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유스티아 님, 혹시 일련의 사건들과 리겔 가문이 관계 있는 겁니까?”

“그건…….”

“이상하지요. 리겔 가문이 남부에 방문하면서부터 이런 사건들이 생겼으니 말입니다.”

로이에드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듣자 하니 동부에서도 흑회 조직들이 모조리 제압당했다고 하더군요. 그걸 주도한 게…… 유스티아 님의 남편이라고 들었습니다.”

“…….”

“이번 일들도 전부 유스티아 님의 남편이 저지른 일입니까? 아니면 부부가 함께?”

로이에드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안드레스가 앞으로 나섰다.

“로이에드 님, 이번 일은…….”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안드레스 님.”

로이에드가 안드레스의 말을 강제로 끊었다.

“이건 좀 심각한 일입니다. 대륙 5대 명가 중 하나인 리겔 가문이 남부에서 만행을 저지르고 다니다니 말입니다.”

“지금 만행이라고 하셨나요?”

“네, 만행이지요.”

유스티아의 확인에 로이에드가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흑회의 구성원들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죽여서 될 줄 아셨습니까? 그들도 우리 남부 지역의 구성원들입니다!”

로이에드가 목소리를 높이자 주위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남부 연합에서 로이에드는 그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다.

“리겔 가문은 대체 뭘 하려는 겁니까? 흑회 조직들을 밀어내고 상단을 가로채서…… 남부 지역 사람들의 고혈을 빨아먹을 생각이십니까?”

“말씀이 너무 심하시군요, 로이에드 님.”

“저희는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유스티아 님.”

유스티아의 항의에도 로이에드는 계속해서 강경한 태도를 유지했다.

“동부에서 어떻게 하든 신경 쓰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남부에서는…… 더 이상 함부로 행동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며 로이에드는 유스티아에게 접근했다.

자신보다 키가 작은 유스티아를 위협하듯이 내려다보면서,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 남부 연합이 용서치 않을 테니까요.”

“…….”

“남부의 평화를 위협하지 말아 주십시오, 유스티아 님.”

하지만 유스티아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

로이에드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당당한 태도를 유지했다.

고작 스무 살밖에 안 되는 애송이가 그렇게 나오는 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로이에드가 인상을 찡그렸다.

“유스티아 님, 어른이 좋은 말로 할 때…….”

바로 그때.

회합장 입구 쪽이 소란스러워졌다.

“스, 스트라우스 가문의 가주님이 오셨습니다!”

“……!”

다들 입구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로이에드도 마찬가지였다.

“아, 아버지가 오셨다고?”

이런 회합에는 대부분 로이에드가 참석했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로이에드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늦게 도착한 건 아닌가 모르겠군. 중요한 얘기는 이미 다 끝난 건가?”

평소 불참할 때가 많다고 해도, 남부 연합의 수장은 엄연히 샤디엔 스트라우스다.

순식간에 회합장의 주목은 샤디엔에게 쏠렸다.

“오오, 안드레스 군, 오랜만이군.”

하지만 샤디엔이 처음으로 말을 건 상대는 다름 아닌 안드레스였다.

“안 그래도 얘기 많이 들었네.”

“네?”

“이쪽 청년한테서 말일세. 이번에 많은 활약을 했다고 하더군.”

“……?”

그렇게 말하며 샤디엔이 몸을 비켜 주자.

입구 쪽에서 장발의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얼굴을 보고 안드레스가 눈을 크게 떴다.

“시, 시리우스? 왜 샤디엔 님과 함께…….”

“……!”

시리우스.

그 이름을 듣고 모든 이들이 숨을 삼켰다.

방금까지 로이에드에게 비난받고 있던 유스티아의 남편이 등장했으니까.

그것도 로이에드의 아버지인 샤디엔과 함께.

“지각이에요, 시리우스.”

오로지 유스티아만이 냉정한 표정으로 중얼거렸을 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