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명가의 절대무신 81화
81화. 자네도 우리를 믿어 주게!
“저게 리겔 가문의 막냇사위?”
“원래 병약한 학자였다고 들었는데…… 건장한 미남자 아닙니까?”
“그래, 안드레스 님에게도 뒤지지 않는군.”
“유부남만 아니었어도…….”
사람들이 시리우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특히 여성들은 시리우스의 외모에 찬사를 보냈다.
남부 연합의 미남자라고 하면 레티우드의 귀공자 안드레스였는데, 시리우스의 외모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의 안드레스가 화려한 분위기의 귀공자라면 흑색 장발의 시리우스는 위험한 매력을 발산하는 미스테리어스한 미남이었다.
“왠지 평소보다 겉모습에 신경 쓴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거죠?”
심지어 그동안 시리우스의 얼굴을 자주 봤던 유스티아조차 오늘의 시리우스가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보다 더 고급스러운 예복을 걸치고 있기 때문일까?
그것도 한 가지 이유겠지만 그것뿐만은 아니다.
최근 시리우스의 내공은 3갑자를 넘어섰다.
단전에서 음양의 조화까지 이루어지면서 시리우스의 육체는 한 단계 더 정비되었다.
근골의 균형이 더 완벽해지고, 피부색이나 머리카락의 윤기에도 변화가 있었다.
그렇기에 유스티아조차 의문을 느낄 정도로 외모가 향상된 것이다.
“크흠, 당신이 시리우스입니까.”
그때 로이에드 스트라우스가 헛기침을 하면서 시리우스에게 접근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런데 복장이 너무 요란한 것 아닙니까? 무도회장도 아닌데 말입니다.”
치졸한 트집이었다.
이런 자리에서 기선 제압을 할 때 옷차림 등을 지적하는 건 아주 흔한 수법이지만 로이에드는 너무 노골적이었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로이에드에게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 대신, 옆에 있던 샤디엔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샤디엔 님.”
다들 어리둥절했다.
로이에드에게 사과한다면 몰라도, 왜 샤디엔에게 사과한단 말인가?
“샤디엔 님이 준비해 주신 예복을 제대로 소화해 내지 못했습니다. 사과 말씀드립니다.”
“나야말로 미안하군. 내가 나이가 많다 보니 요즘 유행을 잘 몰랐나 보네.”
“……!”
이번에는 다들 경악할 차례였다.
샤디엔 스트라우스가 자기 가문 사람도 아닌 시리우스에게 예복을 준비해 줬다니?
“아, 아버지……?”
특히 로이에드의 얼굴은 흙빛이 되었다.
자기 아버지가 준비해 줬다는 것도 모르고 시리우스의 옷차림을 비아냥댔으니까.
“시리우스의 옷차림이 이런 회합에 참여하기에는 적합하지 못하더군. 그래서 급히 준비시킨 거다.”
“아…… 그러, 그러셨군요. 왠지…… 센스가 느껴진다 했습니다…….”
궁색한 변명을 하는 로이에드를 내버려 둔 채. 샤디엔이 시리우스와 함께 회합장 중앙으로 나아갔다.
“그래서, 지금 무슨 얘기들을 하고 있었지?”
샤디엔의 질문에 로이에드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최근 남부에서 리겔 가문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만행?”
“요즘 민간 흑회 조직들이 습격받는 사건이 빈발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리겔 가문의 짓으로 의심 중입니다.”
로이에드가 시리우스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동부 지역에서 시리우스 카니스루트가 흑회 조직을 몰살시키던 때와 수법이 흡사합니다. 그러면서 더 가열차고 잔혹하죠. 희생자가 너무 많…….”
“일련의 일들에 대해서는 이미 다 설명을 들었다.”
그때 샤디엔이 로이에드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민중을 괴롭히던 흑회의 악인들을 시리우스가 처단했다고 하더군. 정말로 영웅적인 행동 아닌가.”
“……?”
로이에드는 잠시 귀를 의심했다.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 아버지, 지금 뭐라고 하셨죠?”
“영웅적인 행동이라고 했다, 로이에드.”
“……!”
표정 변화 없이 말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로이에드는 숨을 삼켰다.
“아, 아버지, 희생자가 많습니다! 아무리 흑회 조직원들이라고,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죽여도 되는 겁니까?”
“무차별적으로 죽이면 안 되겠지.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고 하던데.”
샤디엔이 고개를 돌렸다.
“안드레스, 어떤가?”
“아, 네!”
지목당한 안드레스가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습격받은 흑회 조직들은 다들 인륜을 저버린 범죄 행위들을 일삼는 자들이었습니다. 단순히 생계를 위해 단체를 조직했다가 무력까지 갖추게 되었을 뿐인 경우는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아, 안드레스 님,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아시는…….”
로이에드가 의문을 제기하자 샤디엔이 입을 열었다.
“안드레스야말로, 시리우스의 영웅적인 활동에 가장 큰 도움을 준 협력자이기 때문이지.”
“……!”
레티우드 가문의 귀공자가 시리우스의 최대 협력자였다?
다들 당황했지만, 안드레스는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안드레스, 시리우스가 자네한테 매우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하더군. 덕분에 남부에서 활동할 수 있었다고.”
“아닙니다. 저야말로 시리우스 덕분에 정의를 위해 활동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안드레스가 자부심이 담긴 목소리로 말하며 주위 사람들을 쳐다봤다.
“여러분, 그동안 저희가 해 온 것은 결코 무차별적인 학살이 아닙니다. 힘없는 민간인들을 괴롭히던 악인들을 처단하여, 남부 전체를 보다 나은 땅으로 만들기 위한 행동이었습니다.”
“안드레스 님…….”
“그동안 남부의 흑회 조직들이 민중을 얼마나 괴롭혀 왔는지, 우리들 모두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걸 일일이 바로잡지 못했습니다.”
안드레스의 침착한 목소리가 회합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그걸 바로잡겠다고 나선 것이 바로 시리우스인 겁니다.”
“자, 잠시만요!”
로이에드가 다급히 끼어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폭력적입니다! 잔혹하단 말입니다!”
“그것은…….”
“우리는 교양 있는 명문가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잔혹한 방식으로 일을 해결하면 되겠습니까? 이런 건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로이에드가 다시 시리우스를 노려봤다.
“시리우스, 일련의 일들은 변명해 보십시오. 당신의 잔혹성을 정당화해 보란 말입니다!”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뭐라고요?”
“당신 같은 사람들의 비난을 각오하고 벌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
시리우스가 냉정한 표정으로 말했다.
“폭력적이다, 잔혹하다…… 그런 비난, 얼마든지 받아들이겠습니다. 분명 저는 평화적이지도 않았고 자비롭지도 않았죠. 그걸 알면서도 싸움에 나선 겁니다.”
“아니, 잘못된 걸 알면서…….”
“오해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비난을 수용하겠다는 얘기일 뿐, 당신의 비난이 옳다는 얘기는 아니니까 말입니다.”
“……!”
로이에드는 말문이 막혔다.
시리우스의 당당한 태도를 보니 자기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 아버지, 이건 스트라우스 가문의 가풍하고도 다릅니다.”
결국 로이에드는 다시 샤디엔에게 말했다.
“아버지도 이런 잔혹한 방식은 싫어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왜…….”
“로이에드, 나는 며칠간 시리우스와 대화를 나눴다.”
“네?”
“시리우스가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듣고 싶었기 때문이지. 아주 유익한……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
샤디엔의 발언에 주위가 웅성였다.
“시리우스의 학식이 매우 뛰어나더군. 덕분에 내가 그동안 잘못 생각하던 부분이 많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아, 아버지……?”
로이에드가 다급히 시리우스를 쳐다봤다.
“아버지가, 이런 젊은 사람한테…… 가르침을 받으셨다는 겁니까?”
“젊은 사람한테 가르침을 받으면 안 된다는 건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시리우스는 여러 관점에서 나한테 설명해 주더군.”
샤디엔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세상은 흑과 백이 어우러져야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이야.”
“흑과 백이……?”
“우리 같은 명문가들이 이상을 추구하는 건 하얀 백색이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세상을 절대로 구원할 수 없어.”
“아버지…….”
“필요할 때는 악인들을 처단하기 위해 검을 뽑을 수 있는…… 흑색이 필요한 것이지.”
흑과 백의 조화.
샤디엔은 시리우스의 사상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었다.
“아, 아버지, 아무리 그래도 시리우스는 너무 시커먼…….”
“로이에드.”
샤디엔이 타이르듯이 말했다.
“시리우스가 흑색 일변도였다면 이 회합장에 있는 우리 명문가 사람들부터 죽여 버렸을 거야. 그리고 강제로 복종시켰겠지.”
“……!”
“만약 시리우스가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별장에서 쉬고 있는 나를 기습하여 암살할 수도 있었을 거다.”
로이에드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샤디엔은 분명 9서클 대마도사이지만, 싸움에 익숙한 사람은 결코 아니다.
시리우스가 흑회 조직을 기습했던 것처럼 암살을 시도했다면, 샤디엔은 분명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그렇게 하지 않고, 나하고 대화를 하면서 설득하려 했지.”
“아…….”
“필요에 따라 흑과 백을 골라서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야.”
로이에드가 입을 다물었다.
아들이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하는 걸 확인한 뒤, 샤디엔은 주위를 둘러봤다.
“다들 들어 주게.”
모든 이들의 시선을 모으며 샤디엔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부 연합이 결성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네. 그동안 이 모임은 남부 전체의 안정에 큰 역할을 했지.”
“…….”
그동안 남부 지역에서는 가문들끼리 충돌하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남부 연합이 가문들의 관계를 잘 조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화가 지속되다 보니 남부 연합은 그냥 친목 모임처럼 변질되고 말았지. 우리들이 흥청망청 파티를 즐기는 사이, 흑회들의 연맹은 남부 지역에 완전히 뿌리를 내리게 되었지.”
환왕이 연맹 남부 지부장을 맡고 있었을 때는 그나마 양호했다.
하지만 염제의 부하가 새롭게 지부장으로 부임하면서, 중소 조직까지 철저하게 관리하며 연맹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남부 흑회 조직들은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고 치밀하게 연계하고 있었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그걸 무너뜨린 사람이…… 바로 여기 있는 시리우스일세.”
“아…….”
“시리우스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슬슬 남부 연합의 수명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네.”
남부 연합의 수명이 끝났다.
그건 이곳에 있는 명문가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남부 연합의 수장인 샤디엔이 그렇게 말한 이상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다들 귀를 기울이며 샤디엔의 말을 곱씹었다.
“동부 지역에서는 리겔 가문과 아그타스 가문, 알브라임 가문 등이 중심이 되어서 여러 세력을 아우르는 동맹이 만들어졌다고 하더군. 명문가들뿐만 아니라 민간 조직이나 흑회 출신의 힘 쓰는 사람들까지 받아들여서, 지역 전체의 치안을 지키기 위한 거대한 조직을 구축한 걸세.”
“그, 그렇다면…….”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남부에서도 그런 동맹을 새로 만들자는 말씀이십니까?”
“아니, 굳이 남부에서 따로 만들 필요는 없지.”
“네?”
“우리도 그 동맹에 참가하는 것이지.”
“……!”
다들 눈을 크게 떴다.
샤디엔의 제안은 그만큼 파격적인 것이었다.
“동부 지역에서 남부 지역으로 오는 물길에 수적단이 하나 있었다고 하더군. 시리우스가 토벌했다고 하는데…… 그런 놈들이 또다시 나타났을 경우, 동부와 남부가 힘을 합쳐서 대응하는 게 더 확실하지 않겠나?”
“아……!”
“지역을 나눌 필요가 없네. 어차피 같은 대륙에서 사는 동포 아닌가? 힘을 합쳐야 할 일이 있으면 힘을 합치면 되는 것이지.”
그렇게 말하고 샤디엔은 시리우스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러니…… 시리우스.”
“네, 샤디엔 님.”
“만약 우리의 힘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사건이 터질 경우에는 자네가 와서 도와주는 거겠지?”
“물론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시리우스가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우리 모두 하나의 맹(盟)이 될 겁니다. 남부 여러분이 위기에 처하면 제가 반드시 달려갈 겁니다.”
“아주 든든하군.”
“그러니…….”
시리우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 제가 위기에 처하면 남부 여러분들도 달려와 도와주십시오.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 그러도록 하지!”
샤디엔이 파안대소했다.
평소 근엄하기만 했던 남부의 큰 어른이 크게 웃는 걸 보고 다들 놀라워 했다.
“자네를 믿을 테니 자네도 우리를 믿어 주게!”
시리우스가 만든 동맹은 대륙의 변방이라 할 수 있는 동부 지역에만 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동맹은 거대한 남부 지역까지 확정되었다.
진정한 무림맹이 차츰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